요며칠 이태준의 단편선집 <까마귀>(문학과지성사)를 읽는다. <복덕방> <불우 선생> <까마귀> <달밤> <해방 전후> 등등. 명색이 문학애독자로 자처하는 나로서는 부끄러운 일인데, 한국문학사에서 이효석과 함께 단편소설의 전범으로 꼽는 작가를 이제사 알아보았으니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물론 해방 후 좌파 문학을 한 전력과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백안시되다보니 나 역시 쉽게 접할 수가 없긴 했다. 그렇다고 아예 기회가 없었던건 아니다. 지난 80년대 기민사에서 월북작가 작품집을 출간했을 때 이태준의 단편집도 출간한바 있기 때문이다. 이후 창작과 비평사에서 <문장강화>도 출간했던것으로 기억나는데, 이제사 작품을 접하고보니 참으로 만시지탄일뿐이다.
<해방 전후>는 제목 그대로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한 단편인데, 작품성 여부를 떠나 당시 우리 문단, 사회 분위기, 일제 치하에 이어 해방직후 좌우 대립의 혼란스런 상황에 처한 지식인들의 고뇌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어 흥미가 있었다.
"단편이란 소설 형태 중에서 인물 표현을 가장 경제적이게, 단편적(斷片的)이게 하는 자라 생각하면 고만이다. 인물, 행동, 배경이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면 인물에만 치중하고, 행동이면 행동, 배경이면 배경에 강조해서 단일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이 단편의 약속이다. 단일적이게 어느 한 가지가 강조되도록만 구상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되도록 절약하는 것이다." - 이태준 <무서록>
이태준의 전매특허인 휴머니즘, 페이소스 넘친 따스한 시선은 어느 단편이든 어김없이 짙게 배어있다. 절제감있는 문장, 작고 세심한 눈길, 뭔가 미진한듯 여운을 남긴 끝맺음은 더욱 일품이다. 천성이 이런 작가에게 굳이 현실참여니 역사의식이니 하는 타박은 시대상황이 그랬으니 하고 그만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