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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나의 힘 - 카프카의 위험한 고백 86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가시라기 히로키 엮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이렇게까지 절망스러워질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처럼 불행하다 생각해보지 않았음에 큰 위안을 갖게 되기도 했고, 카프카에 대한 무한한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상황을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그 자신을 더 옭아맸던 현실속에서 얼마나 절망했을지, 그리고 월급쟁이의 삶을 싫어했지만 정말 먹고 살기 위해 끝까지 그것을 놓지 못했고,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자 했으나 그는 끝까지 독신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현실이 얼마나 각박하고 괴롭더라도 분명 희망이 있다, 꿈은 언제고 이뤄진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분연히 일어서서 걷고 뛰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여타의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고, 내가 허우적거리면 그만큼 늪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제대로 된 부정어를 내뱉고 있다.
책에 담긴 부정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울려올수록, 난 이정도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이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낼 용기와 비전이 나에게 있음을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할수는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있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몇번이고 곱씹어보면 이 말처럼 정확하게 사람의 관계,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묘사한것도 없지 싶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할때는 장점으로 보이던것이 함께 사는 그 순간부터는 고쳐야 하는, 고쳐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단점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카프카는 그런 진리를 결혼을 통해 느꼈어야 하는데, 너무 이론적으로 파삭하게 알아버렸던것이 아닐까 싶은 아쉬움도 들었다. 사람은 그 누구나 결코 완벽할수 없고, 장점의 수만큼 단점도 있을수 밖에 없음을 알았어야 한다.
직장에 대해 묘사한 부분도 마음에 와 닿았다. 나 역시도 육아문제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퇴사를 생각했던 때가 있다. 물론 지금도 그 부분을 완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그마저도 놓았을때 난 완전 나라는 인격체를 놓아버린채 누구누구의 무엇이라는 존재로 살아갈것임을 알기에.
카프카는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가능한한 오랫동안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에 비유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안쓰러운가. 조금만 방심하면 한없이 추락하고 말 물속에서 살아보겠다고 목에 힘을 주고 최대한 뻣뻣하게 유지하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겠는가.
말을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은 채찍의 힘만 빌려서도 안되고, 당근만 주어서도 안된다. 두가지를 적절하게 혼용하여 쓸줄 알았을때 최대의 효과를 볼수 있다는 말처럼 아마 우리 인간들이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할수 있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메시지만 가능한 것은 아닐것이다. 쨍하고 해뜰날이 있고,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고, 어둠이 가야 새벽이 오듯이 우리가 정말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너무 힘들때,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도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때면 애써 긍정모드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기 앞서 내 기분을 가라앉히는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를 낼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