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동네 친구는 없지만 친근한 동네 도서관은 갑자기 찾아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준다. 월요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김에 도서관에 잠깐 들러 책 구경을 하다가 온다. 화요일, 속수무책 흔들리는 마음의 혼란이 극에 달할 때 찾아간다. 수요일, 나만 이리도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느끼려 걸어간다. 목요일,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받으러 간다. 금요일, 온 세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알아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될 때 찾아간다. 토요일, 돈도 없고, 딱히 약속도 없고, 빈둥대다가 시간 때우러 간다. 일요일, 맨얼굴에 막 주워 입은 옷 입고 책을 빌리러 간다. 나에게 도서관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마다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여행지다. (『날마다, 도서관』 9페이지)
4월 23일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라는 건 알았는데, 4월 12일이 도서관의 날이라는 건 이제야 알았다. 3월 말부터 도서관에 여러 가지 행사 안내가 공지되어 있던데, 그냥 날씨가 풀리고 해서 잠깐 이벤트처럼 행사하는 줄 알았다. 보통 책과 관련된 행사는 가을에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이런 봄에 갑자기 뭔 일인가 했다. 도서관의 날이었네. 찾아보니 2023년에 첫 번째 도서관의 날을 기념하였다고 하니, 몇 년 되지 않았구나. 익숙하게 들어본 적 없어서 몰랐던 거였네. 그래도 뭐, 이번 기회에 하나 알았다. 이제 해마다 4월 12일에는 도서관의 날이라는 걸 알았고, 평소에도 잘 이용하던 도서관이 이날만큼은 더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지금 사는 집을 구할 때 조건 중의 하나가 도서관의 위치였다. 보통은 아이들 학교나 학원에 가까운 곳, 소아청소년과가 멀지 않을 것, 마트나 은행 등 생활권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하는데,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는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도서관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느냐 하는 거였다. 뚜벅이인 내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를 연체하지 않고 반납하고, 필요한 책을 바로 대출하러 갈 수 있는지 하는 게, 어느 정도의 위치에 집을 구할 것인가 하는 기준이었다. 어쩌다 보니 도서관의 위치는 생각하지도 않고 남편의 출퇴근이 부담스럽지 않은 동네로 정하게 되었지만, 결국은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곳이었다. 근처에 마트와 은행이 있고, 가끔 커피를 마시러 나갈 수 있는 카페가 여러 곳 있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게 가까이에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세 곳이나 있다는 거다. 시립도서관 두 곳, 작은 도서관 한 곳이 있고 걸어서 1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다. Y 도서관은 주로 도서 대출과 반납, 가끔 커피 한잔 사 들고 가서 책 읽기에 편한 분위기다. 1층에 있는 북카페에 앉아 있다가 약속 시간 맞춰 나가도 좋다. B 도서관은 공부할 게 있을 때 주로 간다. 여기에도 1층에 북카페가 있는데, 거의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수험서 넘기는 소리도 그러려니 한다. 사실 작은 도서관은 폐관 시간이 너무 빨라서 잘 이용하지 못했다. 언젠가 주말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도 느껴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도서관의 풍경을 듣고 있자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많은 이가 공감할 수밖에 없다. 요일별로 일주일 동안 도서관의 분위기를 들려주는데,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평일과 주말을 나누어서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알았는데, 요일별로 그날의 도서관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사실 어느 지역이나 도서관은 있기에, 이런 이야기가 새삼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도서관에 앉아 있다 보면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껴지는 흐름이 있다. 유독 도서관에 가는 날이 있고, 연체하면서도 가기 싫은 날이 있다. 도서관의 여러 가지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지만 도서관마다 다르기도 하고,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에 따라 도서관을 선택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도서관의 외관부터 특색있게 설계하기도 해서 무슨 관광명소 가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도서관이 어떤 외관을 가졌든, 도서관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쉼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지식의 창고가 되기도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각자의 쓰임에 맞게, 기분에 따라서 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지역의 시립도서관은 보통 월요일이 휴관이다. 그러니 저자가 찾아낸 월요일 아침 도서관의 풍경은 나에게 낯설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저마다 등굣길 출근길에 바쁜 시간이 지나고 오전에 찾는 도서관이라니. 생각보다 그 시간에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많았고, 익숙한 듯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이상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자리가 있음에도 꼭 앉는 자리에 앉는다. 그래야 마음의 안정이 된다. 혹시라도 항상 내가 앉는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 있다면, 이제 새로운 자리찾기가 시작된다. 어디에 앉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불안해야 하는가. 마치 인생 같다. 사는 내내 자기 자리찾기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도서관에서 자리 찾기처럼 어쩌면 인생은 적당한 자리 찾기 게임일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거리를 수없이 재가며 눈치 보고 분석해서 어느 자리쯤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말이다.”(『날마다, 도서관』 18페이지) 이 문장을 보면서 씁쓸했다. 그냥 인생이 그런 거려니 했는데, 마음 편하게 찾는 도서관에서조차 이런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니. 사는 게 참, 그렇네.
화요일의 도서관을 찾는 저자의 마음에 나의 경험도 얹어본다. 전날부터 남편과 싸워서 서먹했다. 퇴근 후 남편 얼굴을 마주하기가 싫었는데, 그 시간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집 근처 카페는 문을 닫았고, 설령 영업 중이라고 해도 저녁 늦은 시간에 오래 앉아 있기에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추운데 밖을 헤맬 수도 없고. 이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도서관이다. 화요일 저녁, 휴관일도 아닌 데다가 자료실은 10시에 문을 닫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 늦게까지 있고 싶으면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학습 열람실로 가면 된다(독서실 칸막이가 있는 공부하는 곳). 사실 그렇게까지 늦게 도서관에 있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 시간에 나를 거부하는 곳이 없다는 게 기쁜 일이 아닌가. 저자도 그랬단다. 아, 웃겨. 세상에 도서관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단 말인가.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게 기뻐서, 오늘도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했다.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으면 또 핑계 삼아 도서관에 한 번 더 가는 거다. 좋아, 너무~ 좋아(‘폭삭 속았수다’의 애순이가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좋다고 말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평소 밤에 도서관 앞을 지나면서, 창문으로 비치는 불빛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3층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을 것 같은데, 2층의 자료실에서는 누가 도서관을 찾아 앉아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시간에 도서관을 찾고서야 알았다. 그 시간에 도서관 불빛 아래 앉아 있던 사람 중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다고. 꼭 책을 읽고 싶어서는 아니어도, 갈 곳이 없어서 자리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도서관에서 교양 강좌를 들은 적도 있고, 그 강좌를 듣고 자격증을 취득한 적도 있다. 물론 민간 자격증이었지만, 일정 시간에 꾸준히 수업을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런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좋았다. 어느 정도 출석률을 채워야 시험도 가능한 일이니, 그걸 도서관에서 강좌로 개설해주어서 좋은 기회였다. 생각보다 사람들 반응이 좋았는지, 일 년에 한 번 정도 같은 강좌가 계속 개설되고 있었다. 어떤 교양 강좌는 1회성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유명한 작가가 아니면 빈 좌석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는데, 데스크에 있던 사서가 책을 고르는 나에게 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더라. 그 주에 진행되는 추리소설 작가의 강연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신청자가 많지 않았나 보다. 신청은 진즉에 마감되었는데, 나더러 시간 되면 강좌에 오라고 했다. 도서관에 자주 가서 그분과 안면이 있기도 했지만, 아마 내가 대출하려고 손에 든 책이 추리소설이어서 옳다구나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회로 강좌를 개설한 사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저조하니 난감했을 거다. 저자의 강연에도 빈자리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강의를 계속하게 되는, 어떤 강의에는 없는 시간 만들어서라도 참석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는 여전히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아서다.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새로운 배움의 세계로 가는 발판으로 여기며 기뻐하는 사람, 배울수록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가며 더욱 겸손해지는 사람,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사람, 배워가는 삶 가운데 자신의 성장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사람.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무명하더라도 도서관 강의를 계속하고 싶다(『날마다, 도서관』96페이지)”라는 저자의 진심이 도서관에 있었다.
주말의 도서관처럼 편한 곳이 없다. 조금 늦잠을 자고, 배를 채우고 조금만 더 뒹굴뒹굴하다가, 목 늘어진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서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다. 양말을 신는 것도 귀찮아서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혹시 모르니 가방에 생수 한 병 정도는 챙겨서 집을 나선다. 이런 날은 그림책을 한 권 골라서 읽어도 좋겠다는 마음에 어린이 자료실로 들어간다. 아차, 여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양말이라도 하나 챙겨올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가족 단위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옆에 그림책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한 권씩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원래 음식물 반입 금지인데, 가방에서 슬쩍 젤리 하나를 꺼내 입에 넣는 아이를 보고 괜히 웃음이 난다. 몇 권쯤 읽었을까, 아이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어 있다. 바닥이 따뜻해서 잠이 슬슬 잘도 올 것 같다.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아이를 깨워서 나가겠지. 어쩌면 도서관에서 나가면 저녁을 외식으로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하루의 모습이었다. 그 중심에 도서관이 있어서 괜히 더 즐거웠다. 주말 나들이의 장소가 되고, 아이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습관처럼 도서관을 가깝게 만들어주는 시간. 주말 낮의 도서관 풍경이, 태풍처럼 바람이 불었던 오늘의 추위를 데워주는 듯했다.
도서관의 날을 검색하다가 몇 권의 책을 더 발견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고, 지식의 요람이자 저항의 무대, 권력의 그늘, 누군가의 삶과 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되기도 하는 이야기가 가득한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우리나라에 이런 도서관이 있었나 싶게 처음 듣는 도서관이 많았다. 4⸱19 혁명기념도서관, 한때 안가(安家)로 사용되었다는 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민주주의를 외치던 대학도서관 등 우리 역사 속 도서관을 탐험하는 시간이 될 듯하다. 『나의 도서관은 낙타 등에 있어』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이동도서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너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동도서관이 오지 않는다면 책을 구경할 수도 없는 환경이어서 안타까웠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낙타가 책을 운반하는 방식이다. 상상이 잘되지 않는데, 그래서 더 재밌는 책의 이동 수단이었다. 이렇게 이동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원할 때마다 책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오늘은 도서관 가는 날』은 그림책인데, 엄마가 도서관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아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아빠를 만난다. 어떤 이유로 부모가 헤어졌고, 면접 교섭일을 지키듯이 아이가 아빠를 만나는 날, 만나는 장소로 도서관이 되었다. 아이의 환경은 슬프기도 했지만,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빠를 다시 데려오는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울컥해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도서관 가는 날은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여행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다른 이용자를 위해서라도 연체하지 않으려고, 나가는 길에 도서관에 반납할 책을 캔버스백에 담아두었다. 이 가방이 가볍게 돌아와야 하는데, 반납한 만큼의 책이 다시 가방에 채워져서 도서관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도 참 이상하네. 시간도 없어서 다 못 읽을 것 같은데, 이놈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또 다짐한다. 최대한 다 읽고 반납해야지. 응, 그래야지. 무심코 넘긴 그림책 한 페이지에서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그게 책을 읽는 이유이자 의미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 또 도서관에 가야 할 이유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일상의 소박한 행복 하나를 추가하는 기분에, 즐겁다. 날씨도 좋아지는데, 도서관으로 향하는 산책길이 더 좋아질 것 같다.
#날마다도서관 #강원임 #싱긋 #책 #책추천 #도서관 #도서관의날
#이토록역사적인도서관 #오늘은도서관가는날 #나의도서관은낙타등에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