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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가 말하는 아빠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아빠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40여 년을 아빠의 딸로 동거인으로 살아왔는데, 돌아가신 지 3년이 넘어가는데, 아빠에 대해 기억나는 건 한 가지다. 살아계시는 동안 가족들을 참 힘들게 했지. 아빠는 나에게 애틋한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많은 존재로 남았다. 함께 외식을 한 적도, 서로 대화를 한 적도 거의 없다. 다른 친구들 아빠들을 보면 딸과 참 돈독하게 잘도 지내던데, 나에게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던가 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마스다 미리 역시 아버지와 친근하게 지내지는 않은 듯하지만, 우리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며 보이는 부녀지간의 모습을 보인다. 읽는 동안, 서먹하고 다 이해하지 못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족의 한 자리에 있던 아빠를 기억하는 그녀가 너무 부러웠다.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일 텐데 몹시 먼 사람 같기도 하다. 딸을 편하게 대하지 못할 때면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과 애정을 자꾸 원하는데 자꾸 헛짚는달까, 애정 표현이 때때로 이상해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래서 성가실 때도 있다. (아빠라는 남자, 4페이지)
저자가 들려주는 아빠의 에피소드 중 한 부분인데, 아빠는 딸의 운동회나 학예회, 졸업식 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걸 거북스러워했다. 그런 아버지인데도 딸이 다닌 고등학교와 단기대학, 취직한 회사 주변은 훤히 알았다고 한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드시 견학하러 갔단다. 내 딸이 다닐 학교와 일하는 곳의 환경이나 지리를 미리 파악하고 다니셨던 거다. 세상 어느 아빠가 이 정도의 애정을 뽐낼까 싶다. 딸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하는 건 어색해서 피하면서도, 내 딸의 안위를 위해서는 몸소 움직여 안전을 살피는 아빠라니. 어떤 때 보면 굉장히 고집스럽고 독단적이면서도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라고,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그 고집스러운 면이 빛을 발하는 듯하다. 굳이 나서서 내 딸이 다닐 그 길을 살펴보는 아빠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비록 아빠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고 모든 상황에서 100% 소통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던 거다. 무뚝뚝하고 투박하지만, 그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걸 보면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다. 아빠의 그런 사랑은 소소한 기억에서 더 애틋해진다.
한없이 품이 넓은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도 천 엔짜리 라면에 흥분하는 아빠를 기억하는 모습은 불편하기도 하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공통으로 생각하는 건, 다음에 가족이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저자의 아빠 역시 그랬겠지. 하지만 그녀는 아빠와 외출하는 건 반기는 일이 아니었단다. 편하지 않았고, 아빠를 접대하는 시간으로 기억했다. 아빠의 기분을 맞춰주고 아빠가 화를 낼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였다고. 그러니 아빠가 기분 좋게 찾아낸 맛집을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선뜻 반길 수는 없었던 거지. 마음 편한 외출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결국 따라나선 시간은 어색하기만 하다. 아빠와 둘이서 라면을 먹는 상황이 겸연쩍어졌다고. ㅎㅎ 맛있다는 감탄사만 거듭하면서 그 불편한 시간을 견뎠나 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딸보다 더 오랜 시간 아빠의 모습을 보며 살아왔을 엄마의 마음을 어땠을까 하고.
'엄마.'
혼자, 가만히 입 밖에 내어보면 어린 시절이 되살아난다.
'엄마.'
이것은 마법 같은 단어다. 푸근하고 아늑해지는……. (엄마라는 여자, 4~5페이지)
둥지에서 떨어진 쇠약한 새끼 제비를 엄마가 주워 온 적이 있었다. 수건으로 따듯하게 감싸고 모이를 먹였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 새끼 제비 한 마리 때문에 우는 엄마를 보면서,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묵직한 일인지 나는 천천히 배웠던 게 아닐까. (147페이지)
엄마의 인생 역시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다. 소소한 기쁨을 맛보며 살아왔던 엄마의 시간이었고, 모든 아끼며 검소하게 가정을 꾸려왔다. 저자가 들려주는 엄마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전단을 이면지로 사용하는 것도 친근했고, 백화점 행사 매장에서 쇼핑하는 것도 익숙했다. 가정주부로 살면서 어떤 시간을 건너왔을지 상상이 된다. 소박한 수다에 사람의 정을 나누고, 별거 아닌 일에 까르르 웃으면서 일상을 견디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모든 순간이 '견디는' 세월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온 시간은 적응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고, 딸들을 키우면서 함께한 시간은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게 했지 않았을까. 어쩌면 엄마 자신이 성장하는 시간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엄마가 아니라 친구처럼 딸과 지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이기에 같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해야 했을 거다. 저자가 고향에 갈 때마다 엄마의 살림에 못마땅한 것을 지적할 수 없는 것은, 자기만의 방식의 삶이 인정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엄마와 딸 사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행하는 엄마와 딸 이야기는 가장 뭉클하면서도 내가 가장 바라는 시간이었다. 뭐 이런 걸 다 챙기고 왔느냐는 핀잔에도 순박하게 웃으면서 그 필요성을 어필하는 엄마의 표정을 상상하며 읽었다. 아마 어디를 갔어도, 어떤 피곤함이 있어도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의 외출에 들떠서 여행지의 택시 기사와 수다를 떨고, 눈에 보이는 곳곳에 감탄한다. 때로는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엄마이기도 하고,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바라보듯 작은 동물들을 감싸고 돌보는 엄마를 보기도 한다. 엄마에게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며 놀라기도 하지만, 원래 엄마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미안해지기도 한다. 도대체 우리는 엄마에 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엄마의 별것 아닌 모습에 낯섦을 발견하는 것일까. 그래도 딸이라고, 아들보다는 엄마를 더 잘 이해하고 안다고 자부했는데, 작은 에피소드 하나에서 끄덕일 때마다 내가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부모라고 부르며, 그들과 모든 생애를 같이 한다. 아빠를 이상형으로 꼽으면서 우상으로 여기며 자라기도 하고, 같은 여자로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기도 하면서 가족 그 이상의 감정을 나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제각각의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걸 보면, 혹시 엄마 아빠의 고정적인 성향이라도 있는 것일까 싶지만,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조금은 아는 그 감정을 흠뻑 느끼며 읽게 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아끼고 절약하는 게 습관이 되고, 마당 한쪽에 작은 꽃을 심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엄마의 표정을 떠올렸다. 엄마의 많은 부분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엄마가 해주시는 반찬 중에 하나도 못하는 나를 보면 '엄마'의 모든 것은 당연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그대로 보여주는 게 엄마였는데, 그걸 저자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에서 또 확인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어서 유감이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아빠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만큼 다 알지 못한다. 어떤 특별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 존재, 살아계시는 동안에도 서로 얼굴 마주하며 애틋했던 적이 없던 아빠를 떠올리는 게 익숙하다. 저자가 아빠에게 느꼈던 불편함과는 조금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는 마음 자체가 달라서 저자나 다른 사람이 아빠에게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저자가 말하는 아빠를 다 모르지 않기에, 다 드러내고 살아갈 수 없는 성격을 좀 알기에 이해해보고 싶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 아빠라는 존재가 미움으로만 가득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 권 모두,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내 부모의 모습을 다시 보게 하는 이야기다. 자기 부모에 대해 솔직하게 쏟아내는 저자의 입담에 꽉 조인 뭔가를 풀어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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