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득 담고 2012년이 흘러갔다.
나에게도 유쾌하지 못한 감정으로 마무리가 된 한 해였지만,
주변인들에게도 슬픔과 아픔으로 무겁게 보내야만 했던 한 해가 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항상 흘러간 그 시간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유독, 지난 해, 너무 힘들게 연말이 흐른 것 같아 그 아쉬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와 알고 지냈는데, 그녀의 눈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지독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 보는데서 참 많이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번에 본 그녀의 눈물은 겨우 잠깐이었지만, 아마도 그녀에게는 통곡에 가까운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꾸만 변해가는 그녀의 부정적인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 역시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누군가(무엇에)에 대한 신뢰보다는 의심을 먼저 하는 인간이라
그녀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의심이 많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는 나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세상의 모든 일 앞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다른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원래 그래왔으니까 당연하게 받아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이의 의견이나 생각에, 단숨에 귀를 닫고 상대로 하여금 말문이 막히게 하는 태도에
이젠 나에게도 버겁고 지친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날 나의 역할은 그냥 앞에 앉아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뿐이었을 것이기에 또 한 번 참았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세 명의 그녀들은 2012년을 이틀 앞두고 터지고야 말았다.

듣고 있기에 너무나도 불편한 말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톡톡 두드렸고, 나는 그녀가 그 의미를 알아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녀는 얼굴이 굳었고, 행동이 변했고,
그 자리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모르겠다는 의미로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이야기를 해서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이러니까.’, ‘나만 고치면 되겠네.’ 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다.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하면 무언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을 만나고 나니, 나 스스로도 입을 다물고 싶어지고야 말았다.
그 순간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내고 보아왔던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입을 연 순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이렇게 정리가 되면서 이 관계가 끝나겠구나 싶은...
결국 나는 그녀들을 알고 지냈던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서로를 할퀴고 멍들게 하는 말들과 오해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전쟁 같았던 그날이 흐르고 그 다음 날, 나는 그녀와 만났다.
왜 그런 시작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다른 성격, 다른 표현방식, 그리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상황들에 대해서.
정말 마지막일수도 있겠구나하는 다잡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답답함만을 느껴야 했고,
서로를 위한 일이 어떤 것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가지,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말해 보고난 후의 달라질 그녀와 나의 관계였다.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럴 수밖에,
이런 기회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면 다행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녀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화살이 자기에게 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그녀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십년쯤 전에 그녀가 나에게 소개했던 이 책을 떠올렸다.

책을 잘 읽지 않는 그녀였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할례의식과 그런 힘든 시간을 건너와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던
소말리아 출신인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시의) 자신이 겪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용기가 난다고 했었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고, 쉽지 않겠지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자주 웃었고,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지내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메일 계정에 ‘인샬라(Inshallah)’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많은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

며칠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오래 전의 이 책이 저절로 떠올랐었다.
그녀의 지금 이런 이야기들이, 생각이, 행동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와 꾸준히 만나오면서 계속 보아오던, 언젠가 한번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만큼이나 나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사고방식들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여,
누군가가 보내는 배려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이 책을 그녀에게 건넬 차례인가보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김주영의 『잘 가요 엄마』의 이 한 줄처럼, 새벽 여섯시에 걸려오는 전화도 예사로울 리는 없다.
누군가는 벌써 그날의 활동을 시작했을 시간이지만, 아직은 주위가 캄캄한 시간.
갑작스러운 새벽의 전화는 며칠 전부터 엄마의 꿈에 보였다던 외삼촌의 소식이었다.
엄마의 몸도 편치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꿈에 보였던 외삼촌에게 전화를 한번 해본다는 것이
자꾸만 내일, 내일로 미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진료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신 다음 날 새벽, 외삼촌의 부음을 들었다.
엄마는 ‘그래서 자꾸 외삼촌이 꿈에 보였나보다.’ 하시면서 한참을 우셨고,
본인의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이 충격까지 더해져 극도의 슬픔으로 또 한참을 멍하니 앉아계셨다.
더군다나 엄마의 형제들 대부분이 미국에 살고 계셔서 5년에 한번 얼굴을 보면 자주 본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나마 한국에 남아계신 몇 안 되는 형제 중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계신 외삼촌이어서 그런지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 듯했다.
나이 육십,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야’, ‘너’ 하는 호칭을 써가면서 이야기할 때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는 참 웃음 밖에 안 나던데, 지금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인다.
나이를 얼마를 먹더라도 형제이기에 가능한 호칭들, 잔소리들, 관심들이었을 텐데…….
이제 그렇게 부를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아닌, ‘못 하는 것’이 되어버린 일들이 몰려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삐쩍 마른 사람, 이 추운 날 차가운 냉동실 안에서 더 춥겠네.’ 하시면서 또 한 번 통곡을 하시더니
일어나시려다 다시 주저앉으신다. 엄마의 눈물은,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나에게도 고통이다.
기억에서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이고 슬픔이겠지만,
조용히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듯해서 더 안타깝다.
지금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때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하는 말과 함께 여전히 계속되는 통곡은 내 마음까지 울린다.

언젠가는 누구나가 겪는 이별일 것이지만, 매번 겪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인 것 같다. 이별에 대한 연습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이별에 대한 연습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일들을 눈앞에서 겪는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해가 아니라,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견뎌야 할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이 다르고, 엄마가 견디는 만큼이 다를 것이기에 나는 또 한 번의 슬픔 앞에서 조연으로 존재할 뿐이다.

 

유독 추웠던 날, 기다렸다는 듯이 폭설까지 내렸던 날, 연말이고 연휴라서 누군가의 방문도 쉽지 않았던 날. 그렇게 아픈 날 시작되었던, 엄마는 친오빠와의 이별로 또 한참을 앓으실 것 같다. 그 앓음이 길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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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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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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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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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 도자기로 보는 조선 시대 삶과 예술 사회와 친해지는 책
조은수 글.그림, 최석태 감수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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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잔뜩 심어주기에 충분한 이 책의 제목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를 보고, 나 역시도 긍정적인 호기심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1편(풍속화)으로 만났던 이 책의 좋은 효과로 인해 호감을 가지고 있던 데다, 좋은 기회로 내 손에 들어온 이 책(2편)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흥미로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과 표지, 내용을 읽어가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마당 한편에 자리한 엄마의 장독대와 언니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들어온 그릇이었다. (언니는 도예를 전공했다.) 엄마의 장독대에 즐비한 항아리들이 왜 굳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불편하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몰랐는데, 항아리가 숨을 쉬고 있기에 보관이 더 잘된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겨울김장을 위해 가을에 미리 사둔 왕소금을 항아리에 넣어놓고, 잘 말린 나물들을 항아리에 넣어놓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보면, 처음 넣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진짜 항아리가 숨을 쉬고 있었나? 그리고 언니가 초보자의 솜씨로 가장 먼저 만들어온 이 그릇도 딱히 정해진 용도나 의미도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흔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용이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가끔 내가 군것질을 할 때 애용하는 그릇이다. ^^) 실제로 구매해서 쓰는 사기그릇보다도 더 오래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호감과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릇을 바라보게 되기는 한다. 모양이 똑같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지만, 손이 먼저 가게 되는 것.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도자기는 튼튼하기도 하고(물론 떨어뜨리면 깨지기도 하겠지만), 사용 목적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르다. 시대에 따라, 문화의 교류의 범위에 따라 모양이나 무늬가 다르기도 하다. 처음 어떻게 해서 이런 그릇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우리 조상들이 이런 그릇(도자기라 부를 수 있는)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다양함을 이 책을 통해서 같이 배울 수 있다.

복 받으세요~!
말 그대로 문화유산, ‘도자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굉장히 엄격하고 예스럽고, 박물관을 연상하기 마련인데-실제로 이름 있는 도자기는 박물관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펼친 첫 페이지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은 친근함이었다. 상당히 서민적이었고,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그대로의 바람이 담긴 기원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릇에 복을 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릇의 바닥에는 ‘복(福)’을 쓰고, 그릇에다가 음이 똑같이 ‘복(蝠)’으로 불리는 박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의 바람들을 담은 마음을 동식물로 표현하여 그릇에 그려내었다. 물고기나 연꽃, 매화, 연꽃과 함께 있는 백로 그림 등을 일상생활에 매일 함께 하는 그릇 안에 그려내면서 그네들의 삶의 기원을 함께 담아냈다.

에헤라디여~ 흥겹구나!!
코발트라는 광물로 만들어진 파란색 물감, 그 비싼 물감이 아낌없이 쓰였던 청화 백자가 많았던 조선 시대였다. 특히 왕실에서 사용하던 도자기들은 그 위엄과 아름다움, 귀한 잔치에서나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도자기의 무늬에서도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차별화를 두었는데, 용의 그림이 많았고, 용의 발톱은 그 도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수가 다르다는 것도 기억해둘만한 내용이다. 새해가 되면, 신령스러운 동물이라고 해서 호랑이를 용과 함께 그려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사옹원(조선 왕실의 음식과 잔치를 담당하던 관청)에서 사용하던 도장은 위엄 있는 동물인 사자 장식을 붙여넣기도 했다. 하지만 또 재치 있게, 그렇게 그려 넣은 동물들의 모습을 다양한 표정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하는 걸 보면 선조들은 그 잔치와 기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즐길 자세가 충분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폼 나게 한번 마셔(먹어)볼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늘 무언가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일상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병의 모양과 새겨진 무늬들이 특이했다. 특히 그 무늬들은 그 병이 사용되었던 시기의 시대적 배경들의 의미를 같이 담고 있어서인지 더욱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끈무늬 병>은 기마민족이었던 몽골족의 특성상 말을 타고 다니면서 목을 축일 수 있게 말에 병들을 매달고 다녔던 것을 상징하고 있었고, <연못오리무늬 팔각병>은 대량 생산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그려내기에 오직 하나의 무늬만이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의미로 십장생을 그려 넣은 병 역시나 우리 고유의 무늬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하게 그냥 마시는 용도로 만드는 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우리 일상에서 항상 사용해왔던 병이 이렇게나 다양한 의미와 무늬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선조들이 참 위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재미와 마시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도자기들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은 멋쟁이 선비~!
나도 가끔 책을 읽으면서 책갈피나 북다트, 메모지나 펜, 혹은 북커버나 북스탠드까지 책과 관련된 용품들을 구입할 때가 있다. 그냥 읽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필요한 일이 생기다보니, 하나의 세트처럼 책 관련 용품들을 소장할 때가 있는데 우리의 선비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 자연의 모양으로 만들어낸 붓걸이와 필통, 멋스러운 필세(붓을 씻는 그릇), 아기자기한 장난감처럼 보이는 연적, 조선시대 선비들의 고상한 취미로 여겼던 향로까지. 이상하게 이런 게 갖추어져 있으면 글도 잘 읽힐 것 같고, 선비의 맞춤형 아이템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무얼 하나 하려면 구색을 맞춰놓고 시작하면 더 잘 될 것 같고, 더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은 똑같았나 보다. ^^

우리, 저승까지 같이 갈래?
옛 여인들의 치장을 도왔던 분합이나 분항아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들의 미니어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그릇에 화장도구를 넣어놓고 사용하면 더 예쁜 얼굴로 치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대감도 갖게 만들기도 하고. ^^ 술이나 간장 물을 담아 옮길 때 사용하던 장군이란 것도 이번에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보관뿐만 아니라 발효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나 무늬들이 더 눈길을 끌었다. 그림으로 그려 넣기도 하고 새기기도 하는 방식들이 비슷해 보이는 모양들에서 차별화를 두듯이 다르게 보이게 했다. 왕실에서 태어난 왕자나 공주들의 탯줄을 보관하는 태항아리는 그 용도와 함께 그 안의 슬픈 마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고, 투각 기법(무늬를 뚫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던 도자기로 만든 베개는 ‘베고 자면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걱정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가장 많이 담았던 것은 ‘명기’라 불리던 무덤에 함께 묻어 주던 물건들이었다. 그릇이나 인형의 모습을 한 채로 죽은 이의 무덤 안에 같이 들어가는 역할이었다. 살아있을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을 정도였다면, 정말 진지한 마음을 담아 함께 넣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저승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주기 위한 배려였을까?

제사에 쓰이던 보와 궤(제사 그릇), 작(술잔), 대접(제사 전에 손을 씻는 용도), 자라병(술이나 물을 담음)과 같이 경건하게 사용되는 도자기들까지. 이름부터 낯설었지만, 그 용도와 역할까지 알게 되니 사뭇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옛날에 제사를 그리 많이도 지냈던 이유가 먹을 게 많지 않아서, 제사라는 구실로 먹을 것을 풍성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니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자기’라고 하면 어느 장소(혹은 집안)의 내부 인테리어를 위해 뭔가 고급스러운 연출을 하기 위해 비치해놓는 소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거리감 있게, 박물관의 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만난 도자기는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삶에서 특정 신분만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들을 오래전부터 도자기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도자기의 무늬에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어떻게 얼마나 멀리 교류가 이루어졌는지까지 알 수도 있었다. 이건 역사책에서도 배울 수 있는 한 부분이겠지만, 도자기 하나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살아가는 장소, 시대, 인물이 다른데도 비슷한 무늬를 발견했을 때 유추할 수 있는 그 기대감은 아마 신대륙 발견만큼이나 놀랄 일일 것만 같다.

한 시대의 모습을 도자기 하나로 많은 이야기와 함께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책이다. 항상 보아왔던 사물 하나로 이런 배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렵다는 선입견을 항상 가지고 있던 ‘역사’라는 과목에 대해 조금은 더 친근감 있게 만날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구연동화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에 놀이처럼 즐길 수 있었고, 나덤벙, 홍귀얄-두 아이의 이름은 이 책 속에서 들려주는 도자기 기법에서 따온 것- 두 아이와 함께 도자기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말처럼 쉽지 않은 박물관 관람을 이 책 한권으로 대신한 것 같기도 하다. 박물관의 도자기 방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구성에, 자주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 효과 만점일 것 같다.
초등 고학년 이상이 만난다면 큰 거부감 없이 배워가는 마음으로 접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1편과 함께 만난다면 더할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박물관 견학 예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유익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 책 한 권 미리 만나고 가면 예습하고 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지난주부터 아이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우리 자랄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바쁘고 말로만 방학이지 실제 방학을 즐길 여유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아쉬운 시간이라도 조금 짬을 내서 이 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 탐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
박물관으로 고고씽~!!!


덧1)
이 책이 읽어가고 배워가고 알아가는 재미는 더할 바 없이 좋았으나, 리뷰로 이 책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 수록된 70여점의 그림들을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리뷰를 쓰고자 하면서 저절로 느낄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소장을 추천하고 싶다. 소개 글과 다른 이의 리뷰를 통해서는 이 책의 진짜 맛을 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덧2)
이 책에서 들려주던 도자기의 여러 가지 기법들을 일부러 리뷰에 넣지 않았다.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니 결국에는 이 책 한권을 옮겨놓고 싶어지는 욕심에, 이 책을 만날 수 있는 재미 하나를 뺐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이 단순하게 70여점의 도자기의 그림이 전부가 아니라, 다양하고 깊은 설명과 도자기가 그 다양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 기법들을 직접 눈으로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기법들을 설명해놓으면 자칫 이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까봐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부러 제외시켰다.
덧3)
거의 15년 만에 다시 만난 이 책의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풍속화와 도자기,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선조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지 궁금할 수밖에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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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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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만으로도 신간을 살펴보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작가. 오소소한 스릴러 보다는 훈훈한 느낌을 전해줄 것 같아서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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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Healing
르비쥬 지음 / 청어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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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로맨스소설 한권 구매해 보는데, 제법 진지한 의학로맨스라고 하기에 재미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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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벌써 1월의 책들이 나오고 있다. 나, 지난달에 한권도 못 읽었는데...ㅠㅠ
마음 먹고 1월에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배부르게 골라 본다.










 

연말에 구매 했던 로설로 폭탄 맞고 보니, 마음이 아프다.

새로 나오는 책들은 제발 그 폭탄들 속에서 나를 구제해 주기를... 

신해영님과 이리리님의 공저라니 낯설면서 기다려지기도 하고, 채현님의 신간도 읽어보고 싶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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