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득 담고 2012년이 흘러갔다.
나에게도 유쾌하지 못한 감정으로 마무리가 된 한 해였지만,
주변인들에게도 슬픔과 아픔으로 무겁게 보내야만 했던 한 해가 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항상 흘러간 그 시간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유독, 지난 해, 너무 힘들게 연말이 흐른 것 같아 그 아쉬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와 알고 지냈는데, 그녀의 눈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지독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 보는데서 참 많이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번에 본 그녀의 눈물은 겨우 잠깐이었지만, 아마도 그녀에게는 통곡에 가까운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꾸만 변해가는 그녀의 부정적인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 역시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누군가(무엇에)에 대한 신뢰보다는 의심을 먼저 하는 인간이라
그녀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의심이 많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는 나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세상의 모든 일 앞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다른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원래 그래왔으니까 당연하게 받아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이의 의견이나 생각에, 단숨에 귀를 닫고 상대로 하여금 말문이 막히게 하는 태도에
이젠 나에게도 버겁고 지친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날 나의 역할은 그냥 앞에 앉아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뿐이었을 것이기에 또 한 번 참았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세 명의 그녀들은 2012년을 이틀 앞두고 터지고야 말았다.
듣고 있기에 너무나도 불편한 말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톡톡 두드렸고, 나는 그녀가 그 의미를 알아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녀는 얼굴이 굳었고, 행동이 변했고,
그 자리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모르겠다는 의미로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이야기를 해서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이러니까.’, ‘나만 고치면 되겠네.’ 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다.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하면 무언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을 만나고 나니, 나 스스로도 입을 다물고 싶어지고야 말았다.
그 순간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내고 보아왔던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입을 연 순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이렇게 정리가 되면서 이 관계가 끝나겠구나 싶은...
결국 나는 그녀들을 알고 지냈던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서로를 할퀴고 멍들게 하는 말들과 오해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전쟁 같았던 그날이 흐르고 그 다음 날, 나는 그녀와 만났다.
왜 그런 시작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다른 성격, 다른 표현방식, 그리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상황들에 대해서.
정말 마지막일수도 있겠구나하는 다잡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답답함만을 느껴야 했고,
서로를 위한 일이 어떤 것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가지,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말해 보고난 후의 달라질 그녀와 나의 관계였다.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럴 수밖에,
이런 기회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면 다행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녀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화살이 자기에게 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그녀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십년쯤 전에 그녀가 나에게 소개했던 이 책을 떠올렸다.
책을 잘 읽지 않는 그녀였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할례의식과 그런 힘든 시간을 건너와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던
소말리아 출신인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시의) 자신이 겪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용기가 난다고 했었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고, 쉽지 않겠지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자주 웃었고,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지내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메일 계정에 ‘인샬라(Inshallah)’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많은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
며칠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오래 전의 이 책이 저절로 떠올랐었다.
그녀의 지금 이런 이야기들이, 생각이, 행동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와 꾸준히 만나오면서 계속 보아오던, 언젠가 한번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만큼이나 나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사고방식들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여,
누군가가 보내는 배려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이 책을 그녀에게 건넬 차례인가보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김주영의 『잘 가요 엄마』의 이 한 줄처럼, 새벽 여섯시에 걸려오는 전화도 예사로울 리는 없다.
누군가는 벌써 그날의 활동을 시작했을 시간이지만, 아직은 주위가 캄캄한 시간.
갑작스러운 새벽의 전화는 며칠 전부터 엄마의 꿈에 보였다던 외삼촌의 소식이었다.
엄마의 몸도 편치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꿈에 보였던 외삼촌에게 전화를 한번 해본다는 것이
자꾸만 내일, 내일로 미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진료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신 다음 날 새벽, 외삼촌의 부음을 들었다.
엄마는 ‘그래서 자꾸 외삼촌이 꿈에 보였나보다.’ 하시면서 한참을 우셨고,
본인의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이 충격까지 더해져 극도의 슬픔으로 또 한참을 멍하니 앉아계셨다.
더군다나 엄마의 형제들 대부분이 미국에 살고 계셔서 5년에 한번 얼굴을 보면 자주 본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나마 한국에 남아계신 몇 안 되는 형제 중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계신 외삼촌이어서 그런지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 듯했다.
나이 육십,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야’, ‘너’ 하는 호칭을 써가면서 이야기할 때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는 참 웃음 밖에 안 나던데, 지금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인다.
나이를 얼마를 먹더라도 형제이기에 가능한 호칭들, 잔소리들, 관심들이었을 텐데…….
이제 그렇게 부를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아닌, ‘못 하는 것’이 되어버린 일들이 몰려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삐쩍 마른 사람, 이 추운 날 차가운 냉동실 안에서 더 춥겠네.’ 하시면서 또 한 번 통곡을 하시더니
일어나시려다 다시 주저앉으신다. 엄마의 눈물은,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나에게도 고통이다.
기억에서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이고 슬픔이겠지만,
조용히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듯해서 더 안타깝다.
지금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때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하는 말과 함께 여전히 계속되는 통곡은 내 마음까지 울린다.
언젠가는 누구나가 겪는 이별일 것이지만, 매번 겪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인 것 같다. 이별에 대한 연습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이별에 대한 연습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일들을 눈앞에서 겪는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해가 아니라,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견뎌야 할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이 다르고, 엄마가 견디는 만큼이 다를 것이기에 나는 또 한 번의 슬픔 앞에서 조연으로 존재할 뿐이다.
유독 추웠던 날, 기다렸다는 듯이 폭설까지 내렸던 날, 연말이고 연휴라서 누군가의 방문도 쉽지 않았던 날. 그렇게 아픈 날 시작되었던, 엄마는 친오빠와의 이별로 또 한참을 앓으실 것 같다. 그 앓음이 길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