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나는 이 사실을 대학원을 다닐때 배웠다. 
"환자랑 몇 년을 알고 지내도, 그들은 자넬 또다시 놀래킬걸세." 
우리가 첫 번째로 악수를 나눈 날, 웨즐리 교수가 한 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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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9-1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댓글은 처음 드리는 것 같아여 :-)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되세요~

구단씨 2019-09-17 20:55   좋아요 0 | URL
아이고, 추석이 이미 지나버린 다음에 봤네요.
명절 연휴 잘 지내셨나요? ^^
일교차 심해지는 날들이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가을 지내세요~
 

 

죽음에도 격차가 있다는 말이 씁쓸하게 들렸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온갖 차별과 부조리를 겪으면서 사는 우리인데, 죽음에도 차이가 있다는 게 아프게 들리는 건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차별받으며 살아왔더라도, 죽는 그 순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은 후에 우리는 하나의 시신으로 존재할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죽은 자들의 말은 그 평등을 한참 비껴가 있다.

 

법의학 현장에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현실"이 있다.

같은 의사의 길을 가지만, 법의학자는 직접 사람을 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임상의들과 거리를 좁혀, 법의학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공유할 필요성을 지금 느끼고 있다. (죽음의 격차 236페이지)

 

법의학자인 저자는 시신을 부검한다. 부검을 통해서 죽음의 원인을 알아낸다. 그 시신은 자살, 타살, 혹은 사고사로 죽음을 맞이했다. 부검의 결과는 때로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일은 부검으로 사건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사건과 연관 짓지 않고, 오직 시신이 자기 몸으로 하는 말을 듣는 것뿐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몸 안에서 발생한 문제로 죽음에 이른다던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단서를 몸 안에서 발견하여 죽음의 원인을 밝혀낸다던가. 딱 거기까지다. 그 이외의 일은 경찰이나 부검을 의뢰한 이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은 이들의 몸에서 죽음의 원인 그 이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고사, 교통사고, 살해. 죽음의 양상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안타까운 죽음이 저자의 눈에 많이 담겼던 듯하다. 아무리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눈앞의 시신을 봐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간단하던가. 저자는 객관적으로 자기 일을 하면서, 서류에 기록해야 할 것들 이외의 것은 가슴에 담았다. 그가 지켜본 죽음의 모습. 자살이나 고독사,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죽음에 이르는, 화장실에 버려진 신생아 등등. 돈이 돈을 낳는다고 하는 금수저의 인생이 아닌 보통의 삶은 흙수저에 가깝다. 살면서 겪는 환경의 차이가 있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까이에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했다. 살아있는 동안 겪는 그 차이를 죽음에서도 뚜렷하게 전하는 시신들이다.

 

출발선이 달라서, 사회적 도움이 부족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들려준다. 저자는 죽음으로부터 그 고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의 차별에 살기는 점점 힘들고, 그 차별에 도전하고 열심히 살아가려 하지만 자꾸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그러다 겪는 죽음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쓰라리다.

 

치매를 앓는 아내는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고 그 집에서 일주일 넘게 생활했다. 방문 도우미가 방문했을 때 방치된 시신을 보게 됐지만, 그때까지도 아내는 남편의 사망을 모른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시대. 고령화가 이유이기도 하지만, 시설이나 자녀의 도움을 제대로 받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 그래서 단 둘뿐인 노인의 가정에서 치매 아내를 돌보던 남편은 집안에서 사망했어도 자기 죽음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귀가한 여인은 며칠 후 죽은 채로 발견됐다. 뺑소니는 아니다. 가해자는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피해자가 거부해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런 여인이 며칠 후 사망했다. 외상은 없었다. 부검 결과 교통사고로 내상이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해서 죽은 거였다. 그녀는 왜 가해자의 치료를 거부했을까? 그녀는 술을 사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함께 사는 엄마가 자기가 술을 사 오다가 사고가 난 걸 알게 될까 봐 치료를 거부했다. 멀쩡하게 걸을 만했고 다친 데도 없었다. 인생의 실패 후 우울하고 술에 의존하며 살던 그녀는 술 좀 그만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간 거다. 그녀가 술에 의존해야만 했던 상황이 온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술에 의지하면서 버텨야만 했던 그녀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저자의 말을 듣다가 놀랐던 건, 의외로 동사가 많았다는 거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동사가 많았다. 동사의 대부분은 노숙자나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거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혼자 사는 이들이라는 거. 거리를 헤매며 살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거나, 집안에서 혼자 있다가 죽어서 사망한 경우였다. 특히 집안에서 사망했는데 왜 동사가 발생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생기는데, 그건 의외로 간단했다. 혼자 있다가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나지 못해서 추위에 난방을 켜지도 못한 상태로 얼어 죽은 거였다. 만약 그때 집안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금방 연락이라도 할 상황이었다면 그는 동사했을까? 아마도 옆에서 부축을 해주고, 구급차를 불러주고, 병의 치유를 도울 수도 있었겠지.

 

고독사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상황이 공감이 되지만, 공감이 된다고 해서 그 모든 고독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건 개인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기에 말이다. 저자도 이 부분에 많이 마음을 쓰는 듯했다. 세상을 살면서 겪는 격차가 죽음에게까지 이어지는 걸 많이 아파했다. 저자가 부검한 전체 주검의 약 50%가 독거자였다고 한다. 약 20%가 생활보호 수급자였고, 10% 조금 안 되는 사람이 자살자였단다. 지역마다 차이가 조금 있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보편적인 상황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들이 독거자가 되기도 하고 삶을 비관해 자살을 하기도 하는 현실 그대로를 목격한 거다. 저자는 죽은 자의 몸에서 발견한 신호, 구조 요청을 하는 것 대신 침묵을 선택하여 죽음에 이른 이들의 간절함을 읽고 우리에게 전한다.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그리게 한다. 행복한 죽음이 아니라 변사체가 되어 세상에 드러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보여주는 건 사회의 음지 모습이었다.

 

'빈곤에 의한 죽음'이란,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그 죽음이 참으로 제각각이다. 빈곤 때문에 병이 생겨 사망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통된 점은 이것이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죽음의 격차 52페이지)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저자가 들려주는 많은 죽음이 무겁게 다가왔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이 책으로 본 현실은 일본과 다르지 않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기에 말이다. 빛이 없는 이들의 삶 면면을 보면서 저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부검 사이사이에 들려오는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저절로 알 수 있다. 그가 목격한 죽음의 격차가 삶의 격차와 다르지 않음을, 그 격차를 줄이는 일에 개인을 넘어서서 사회가, 국가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많은 사회적 제도가 구제할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는 계속 발생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많은 문제가 우리 삶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파고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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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it! 점프 투 파이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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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나노 일본어 초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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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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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 중독자인가?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듯하다. 잡지든, 소설이든, 다른 장르의 책이든 계속 뭔가를 읽긴 한다. 습관적으로 가방에 읽을거리를 넣어서 다니기도 한다. 벽돌책은 무리지만, 가벼운 시집이나 소설 정도는 항상 가방에 비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읽을거리가 내 옆에 없다고 해서 불안에 떨거나 하지는 않다. 손이 닿는 거리에 책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며 없는 대로 일상을 지낸다. 장서가도 아니고 애서가도 아니다. 궁금한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한다. 구매한 책을 끌어안고 사는 것도 아니고, 중고로 되팔거나 기증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는 책 앞에서 줏대 없는 독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아끼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것도 아니고, 뭔가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한 느낌?

 

그런 내가 이들이 책을 대하는 자세에 많이 공감한 걸 보면, 독서 중독자까지는 아니어도 중독자 언저리에서 맴도는 독자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책을 읽는 방식에 새롭게 접근하는 것 같아서 신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부담 없이 책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하는 것 같아서 좋다.

 

 

여기 독서 중독자들이 모였다. 제각각의 일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였다. 서로의 실체와 본명도 모른다. 그저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독서 모임을 이어갈 뿐이다. 선생, 고슬링, 슈, 사자, 예티, 신입 회원 형사. 매번 모임에 참가하지만 쫓겨나는 노마드, 소설가 지망생 로렌스까지 개성이 뚜렷한 회원들이다. 이들의 행태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책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지만 은근 사회 부적응자의 아우라를 풍긴다. 저마다의 일상에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책 앞에서만은 중독 수준의 고수들이다. 거실의 중앙까지 꽉 채운 책장들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 장서가는 기본이고, 책을 대하는 저마다의 철칙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이사 가야 할 곳 근처에 도서관이 없으면 이사를 안 한다든지,

책 선택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책부터 선택한다든지,

독서 중독자들은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는 것,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간다든지,

책의 완독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든지,

저자 소개는 간단해야 하고, 저자보다 역자 소개가 많은 책은 걸러낼 것,

목차만 봐도 전체 구성이나 전개 방식을 가늠할 수 있는 책이어야 좋은 책이고,

......

 

 

 

 

 

세세하게 적기에는 그 항목이나 팁이 너무 많아서 어렵고, 각자의 책 고르는 기준이나 취향에 따라 조금 더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책에 모인 독서 중독자들의 지침을 처음부터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수가 있을 수 있으니, 차근차근 하나하나 천천히 독서 중독자의 길로 들어서는 게 덜 부담될 것이다. 또 어떤 리스트에 집중한다거나 베스트셀러에 의미를 둔다면 책을 가까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많이 공감했다. 남들이 다 읽은 것 같은 책을 나만 안 읽었다고 생각하면 오는 부담감. 어서 그 책을 읽어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 어떤 책이든 자기에게 다가오는 게 있어야 의미 있는 책이 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책장에 넣어두고 방치해도 내 자식.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 많은 자식 중에 마음이 가지 않은 자식이 없다는 말 같아서 듣기 좋더라. 먼지 푹 뒤집어쓰고 내 손길이 닿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책일지라도, 내가 너를 잊은 건 아니야, 라는 변명이 통하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해진다.

 

책은 넘쳐나지만, 모두가 읽지 않는 게 현실이다. 소개 글에 나와 있지만, 책 읽기를 독려하고 동네서점이나 독서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모두가 책을 읽는 건 아니라고... 솔직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도 너무 많았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적도 많다. 여기 모인 독서 중독자들이 전하는 독서 비법으로 나에게 맞는 방식의 책 읽기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게 하는 책이다.

 

굉장히 웃으면서 읽게 되는데, 그 웃음 안에서도 작가들의 내공이 보이는 순간은 독서 목록이다. 각 인물의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언급되는 다양한 독서 목록이 고수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게다가 로렌스가 쓰는 소설의 제목은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제목을 패러디하기까지 했다. (친절하게도 책의 뒷부분에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의 제목을 알려준다.) 은근 추리소설 분위기를 내면서 독서 중독자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로 남는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다양함과 매력들이 재밌고 엉뚱하면서도, 책 앞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은 고퀄리티의 독자들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별거 없다. 그냥 들고 읽어라. 그렇게 읽다 보면 자기만의 취향과 목적에 맞는 책을 고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고, 독서가 흥미로운 취미가 될 것이며, 이들에게 뒤지지 않은 독서 중독자가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지어다.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장을 하나 마련하고 책을 넣어두고, 점점 늘어나는 책으로 인해 또 다시 책장을 들여오게 되고... 그렇게 하나씩 늘어가는 책장은 처음 것과 달라서 크기나 색이 달라서 다 제각각인 모습의 책장으로 진열된다. 뭔가 맞춰지지 않은 높낮이와 색이 다른 책장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아마도,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하나씩 채워가는 책장과 책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보는 그 감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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