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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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만나고 일곱 번 헤어지던 친구 커플을 봤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그렇게 같은 상대와 일곱 번을 연애하고 이별했다. 나는 남자 쪽과 더 친분이 있었기에, 그들이 한번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마다 그 친구(남자)와 한 번씩은 만났고, 그들의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만나고 나면 굳이 묻지 않아도 그들이 헤어진 이야기, 다시 만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그 친구에게 들었던 한결같은 대답은 이거였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는 "이번엔 좀 다를 거라 생각해. 한번 잘해보려고...",

그들이 다시 헤어졌을 때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힘들어. 한번 아니다 싶은 것이 다시 맞춰지지는 않는가 봐." 라고 말하곤 했다.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나 다시 만난 이유도, 내가 들은 그대로 말하자면 늘 같았다. 괜찮을 것 같아서 다시 시작하고, 잘 맞지 않아서 다시 이별하고. 남의 연애사를 내가 굳이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난 경험이 없는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을 같은 이유로 다시 만나고, 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지는 그들의 마음을 내가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지금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고 각자의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십 년이 넘게 서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그들이었는데, 그렇게 만나고 헤어진 횟수만큼 주변의 사람들은 그들이 인연이라 그렇다는 말을 했었다는 데. 역시, 사랑도 이별도 한 치 앞을 알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인지.

 

그렇게, 누구나 하는 이별 안에는 또 똑같이 사랑이 녹아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특이나 이 책 『이별 리뷰』를 읽고 나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별을 치유하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일에 이런 과정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쉽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내 방식대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조금은 어려우면서도 조금은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별도 힘들다는데 이별을 리뷰 하라니, '약을 주는 게 아니라 병을 더 주겠다는 말인가?' 하는 투정 어린 생각을 하다가, 저자가 들려주는 32편의 책에 담긴 다양한 사랑과 이별의 모습에서 또 한 번의 위로를 받게 된다.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어쩌면 누구나가 다 겪어가는 이별과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희망을 보기도 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문학을 통해서 보여주고 치유해주고자 하는 듯하다.

 

저자는 이별을 겪게 되는 다섯 가지 단계를 말한다. 우리가 이별이지 않을까 느끼는 이별의 전조와 실연의 정황들, 실연하고 이별을 부정하는 상태, 우리가 이별을 반복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지나온 사랑을 다시 생각하는 것, 이별에 대한 분노도 괜찮으니 터트려도 된다는 결론, 이별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더는 이별은 실패가 아닌 게 된다. 그것은 다시 하게 될 사랑의 희망이 된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분류하는 단계는 참 많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동안의 시간을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별의 단계를 저자가 말한 순서로 겪어온 것 같다. 그 단계를 통과하면서 나는 이별에 대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웠나 생각해본다. 아무런 변화나 업그레이드 없이 이별을 반복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과 함께.

 

저자가 소개해주는 각각의 작품 속에 다양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등장한다. 좀 특이하다 싶은 사랑도 있고, 이렇게도 이별이 성립하는구나 싶은 이야기도 있고, 이별 후의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공통점이 있다. 사랑이나 이별의 모양이 가지각색이지만 그들의 이별 안에는 늘 다음 사랑을 위한 되돌아보기가 필요하다는 것,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자신들의 이별에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별 앞에서 괴롭고 흥분된 마음이 꼭 상처로 남은 것처럼 여길 게 아니라는 거다. 이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시간이 흐르면, 그 이별도 어쩌면 괜찮은 기억으로 추스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작품들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로 또 다른 이별을 공감하게 한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와 '나'를 섞어가면서, 나는 더는 '나'만이 아닌 '그들'과 그들을 지켜보던 제3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더 넓은 시야로, 이별과 사랑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지 않겠느냐고... 이별에도 리뷰가 필요하다는 좀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것만도 아닌 듯하다. 시험을 보고 나서 정답을 맞혀보고, 틀린 문제에 대해 다시 풀어봐야 다음번 시험에 같은 문제가 나와도 다시 틀리지 않게 되는 것처럼. 감정에 대해 많은 부분도 리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사랑이나 이별 앞에서는 더더욱...

 

꼭 이별에만 리뷰가 필요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사랑이나 이별이 아닌 일상의 위로를 받고 있다. 책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서 그들 각자의 일 앞에서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를 들여다보고자 생각한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대부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더불어, 혹여나 내가 다시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지나간 이별에 대한 기억은 지우지 않고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겠다고. 그게 이별에 대한 리뷰이며, 이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가을이 온다. 이상하게 내 기억에는 사랑보다 이별이 어울리는 계절로 익숙하다. 계절에 맞춰 사랑하고 이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았던 가을은 이별에 더 어울리는 계절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바람이 불어오는 날 이별한 기억이 더 많다. 하지만 더는 계절의 이름에 기대어 사랑과 이별을 맞추지는 않으련다. 사랑도 이별도, 계절과는 상관없이 찾아오므로...

 

 

사. 랑. 하. 자.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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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여행 시리즈는 그동안 시간 되면 챙겨보는 정도라 분위기 파악만 했다. 할배들의 여행에서는 더 늦기 전에 시작된 그들의 여행에 응원을 보냈고, 누님들의 여행에서는 누군가의 마음 속 아픔을 보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그들의 여행에서 웃음만큼이나 눈물을 많이 봤다. 방송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의 진심 같은 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꽃보다 청춘> 1회를 재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유희열, 이적, 윤상. 꽃보다 여행 시리즈의 이번 테마는 ‘청춘’이라 부르더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들이어서 우연히 걸린 1회를 끝까지 봤다. 갑자기 떠나게 된 그들의 여행은 모험 같았고, 준비 없이 떠난 낯선 곳을 어떻게 걷게 될까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보다 보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2회는 본방을 봤다. 낯선 곳, 서로 친분이 있지만 함께 여행한 적은 없는 사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정해져있고, 성격이나 취향도 다른 사람들. 좋지 않은 조건에서 그들이 함께 할 시간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볼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이 황당한 여행의 시작에 웃음만 났는데, 2회에서 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달라졌다.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달라진 그 어떤 분위기. 더욱 놀랐던 건, 그 하루가 그들에게 만든 감정이었다. 알고 지낸 시간이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가슴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그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하루의 시간은 그들을 더욱 가깝게 만든 듯했다. 물론 그 사이에 약간의 오해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더 잘 알게 되는 준비운동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상대를 위한 배려가 본인의 마음과 다르게 전해지기도 하고 오해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몇 십 년을 함께 산 가족도, 같이 울고 웃던 친구도, 그 누구도 한 사람을 온전히 알기는 어려울 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거다. 조금 더 많이, 혹은 덜... 그래도 늘 몰랐던 게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어머, 그런 면이 있었어?’ 라고 놀랄 수 있는 일. 언제든 충분히 생길 거라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란, 많은 것을 얻고 또 잃게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달라진 뭔가도 함께 남아 있을 거다. 이들의 여행에서 내가 본 것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몰랐던 부분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낯선 곳에서 함께이기에 쌓이는 정 마일리지, 가까워지는 서로의 거리... 평균 20년의 친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다 알 수는 없었던 거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관계가 된다면, 더 알아가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는 거겠지... 이들의 여행이 이들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생각하고 있다.

 

 

 

 

 

 

 

 

 

 

2회에서 내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흔들었던 건, 유희열의 인터뷰였다. 청춘이라고 테마를 붙였지만 그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는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윤상의 얼굴에서 흰 수염이 났다고, 왼손잡이 노래를 부르던 이적의 얼굴에는 지금 주름도 보인다고, 그 묘한 느낌을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거의 지났어..." 라고 말하는 유희열의 목소리를 똑바로 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나이가 참 애매하다고 말하더라.

나이가 너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린 것도 아니고,

느끼기에 어른 같지도 않고, 청년 같지도 않고...

40대의 남자 셋이 하는 여행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것을 느꼈기에 유희열은 저렇게 말하는 걸까 싶다가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고 전해지는 게 있다는 것을 또 알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내일 아침부터 다시 청춘일 수도 있는 것 같아, 라는 말로 마무리되는 청춘...

 

20대는 그냥, 무조건 청춘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기를 넘어 스무 살에 진입하면 청춘인 거라고... 그게 유희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청춘을 어디에 붙여야 하는지 정해진 건 아닌 듯 같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모여 빙빙 돌면서 함박웃음으로 정신없는 세 남자, 좋은 것을 보면서 ‘좋다’ 연발하며 감탄하는 표정, 낯선 곳이 겁날 것도 같지만 철없는 모험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40대 아저씨의 모습이 늙었다는 게 아닌 파릇파릇해 보였다면 이상한 걸까. 그게 청춘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음악이 공통 주제가 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에서 열정을 느꼈고, 맛있는 것 앞에서 정전이 일어나도 웃으면서 먹으면 그만인 것을...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일.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 사막을 간다면 또 청춘은 다시 시작될 수도 있겠지..."

유희열이 2회의 마지막에서 청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다시 사막에 간다면'이 아니라, 지금 사막에 같이 갔던 그들이 청춘일지도...

한때 윤상 오빠를 보겠다고 꾀병 부리고 학교 조퇴를 했던 기억이 나고, 순수해 보이는 표정이 맘에 든다고 좋아했던 유희열은 이제 매의 눈으로 여자를 스캔하고 있고, 다양한 분위기의 노래로 귀를 사로잡았던 패닉의 이적은 이제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배가 오동통한 아저씨로 보이고...

그래도, 그래도...

이들을 청춘이라 부르고 싶다.

 

여전히 딱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청춘 같지만, 청춘이란 단어가 불러오는 설레는 감정은 같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청춘을 테마로 하면서 40대 유부남 아저씨들을 데리고 간 나피디의 의도가.

끝까지 보고 싶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꽃보다 여행 시리즈 대부분 봤는데, 이번 테마만큼 제 눈을 집중시키지는 못했다.

정말, 급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끝날 때까지 본방으로 보고 싶은 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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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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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장소는 나의 장례식장.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어 투명인간처럼 그 안의 모습을 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를 하러 찾아올까, 함께 했었던 그 시간 속의 나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같은 시간을 즐겼던 그 순간의 나와는 다른 기억으로 저장된 일들은 없을까. 마냥 궁금한 것투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궁금증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이겠지. ‘나’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식은 누군가의 탄생 소식과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켜짐과 꺼짐을 동시에 들었던 적도 있다. 대부분은 지인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소식, 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 안에서 들려왔던 죽음의 모습도 참 다양했다. 교통사고나 급사, 질병으로 인한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장소는 장례식장.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장소이다. 그 안에서 내가 평소에 들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죽은 이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올 때도 있었다. 조문객의 입장에서 나는 ‘아,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면서 그쳤지만, 그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려 하니 조금은 욕심 같은 바람이 인다.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해서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기억해주는 것의 바람에서 ‘좋은 사람’이었다는 바람까지 보태고 싶어진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거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속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역시나 나와 비슷한 느낌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공감을 준다. 더군다나 헤이즐과 거스(어거스터스)는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언제 자신에게 손짓할지 모를 죽음과 만날 준비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더더욱 죽음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상기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남겨진 시간, 얼마가 될지 모를 그 시간을 사랑해야만 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에게 닥칠, 자신이 선택할 일들을 받아내야만 했다. 실험용 의약품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산소통에 호흡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헤이즐, 의족으로도 멋진 소년이 되어보는 거스, 한쪽 눈을 잃고서도 유쾌하고 쿨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아이작까지. 눈물로 보낼 것 같은 시간을 웃음으로, 당연하게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받아들이려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에게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죽음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어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 나는 이렇게 신체의 한 부분을 내어주고서라도 너(죽음)와 싸우고 있어. 반드시 이길 테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싸워왔던 그 시간이 곧 멈출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싸우고 있다는 것 자체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라고.

 

그래서

 

나는 이 책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들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함께 만났다.

“고통이란 느껴야만 하는 거거든.” (70페이지)

이미 삶의 끝인 그 죽음을 알고 있는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의 슬픔, 닥치지 않으면 모를 것 같은 그 마지막을 향해가는 슬픔을 이 책의 주인공들과 만나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것 중의 대표주자가 바로 슬픔일 것이다. 헤이즐과 거스에게 똑같이, 갑작스레 찾아왔을 그 슬픔의 깊이를 같이 헤아려보고 있다. 그 슬픔이 유지되는 동안 더 깊은 슬픔과 무너짐을 선사했던 『장엄한 고뇌』의 저자 피터 반 호텐을 만나는 일까지 더해진 것은 이미 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슬픔이 다가올 것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 친절한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예고 없이 온다던 그 슬픔을 예고해 주려 했다니.) 한 권의 책을 통해 교감했던 그 시간을 저자의 무책임한 태도로 절망을 느끼게 했으며, 만나고 싶었던 그 마지막 이야기 역시 들을 수 없었다. 작가가 숨겨두고 싶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되지 않은 마무리였는지 모를 것들뿐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이 책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고 확인하길 바란다.) 그 먼 길을 목숨을 걸고 여행을 감행했던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더 많은 절망과 차마 얘기할 수 없는 슬픔의 무게였으리라.

 

“아니야. 향수병은 죽음의 부작용이야.” (249페이지)

그 아련한 느낌마저 지워야만 죽음과 멀어질 것을 알기에 때로는 인간이 가지는 어떤 감정들을 잘라내려고까지 한다. 죽음을 향해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차마 그 감정마저도 버려야 할 것만 같은 이름으로 기억창고에 저장하려 한다. 육체의 아픔이 가져오는 게 너무나도 어마어마해서 단순히 그 병명 이상의 것을 가져오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추억이란 아름다운 이름일 수 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버려야 할 것이 되었다면 그 병(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힘이 센 것인지를.

 

그럼에도

 

“응. 난 『장엄한 고뇌』에 나왔던 그 말을 믿어. ‘잃어가는 그녀의 시력 앞에 떠오르는 해는 너무 밝았다.’ 그게 신이라고 생각해. 떠오르는 해, 그리고 빛이 너무 밝고 그녀는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거. 우리가 산 사람을 위로하거나 혹은 괴롭히기 위해서 돌아온다고 믿지는 않지만, 우리가 뭔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 (178페이지)

이들이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고, 무언가가 되어 남아주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은 아프지 않은 우리와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이유를 주고, 내일 남겨질 나의 흔적을 새기는 일. 그게 바로 우리가, 이들이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목적이자 의무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헤이즐과 거스는 충분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평균 수명보다 모자란 시간을 끌어안고서 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느끼고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들의 사랑에 관객으로 동참했다.

슬프기에 아름다웠고, 아름다웠기에 더 아프게 느껴지게 했던 사랑을 보여주는 헤이즐과 거스. 인간의 평균수명보다 짧은 자신들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 자신의 몸에 대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아직은 열여섯, 열일곱. 그 나이의 평범한 십 대보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더 친숙한 일상을 살아가는 헤이즐과 거스에게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사랑은 찾아왔다. 다를 것이 없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감정이었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그런 일들이 다가온 것뿐이다. 단지 신체적 아픔을 가지고 있기에 또래보다 더 빨리 어른의 마음을 가지게 된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랑이 내 눈에는 아름다운 회색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무채색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이별의 순간에,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그들이 살아갔다는 그 흔적을 새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그렇게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누구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 상처까지 끌어안을 마음으로 헤이즐을, 거스를 사랑 했다. 서로에게 남겨진 흔적이 비록 상처라 할지라도 그 상처를 이기고 내일을 살아갈 것을 알기에 지금 이들이 하는 사랑 역시나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그냥, 사랑하면 된다. 그게 이들에게 숨 쉬고 있는 오늘을 각인시키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이들을 나 역시도 당연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음의 고저 없이 평범할 것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며칠 동안 TV와 라디오를 통해 내 눈과 귀에 들려왔던 모든 장면과 소리는 슬픔이었다. 누군가의 모습이 아릿해서 아프고 멜로디가 절절해서 슬픈 노래였다. 어쩌면 그 외의 다른 이유로,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슬픔을 더 깊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 맘처럼 흐르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슬픔이 헤이즐과 거스에게 찾아왔던 순간들처럼 느껴졌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 공감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 억지로 그 이유를 찾지 않아도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할만했지만, 나는 그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밀려오는 여운을 정리할 구실 또 한 번 찾고 있었나 보다.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한 권의 책에 빠져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이들의 평범하고 유쾌한 일상이 들려올 때는 웃고 있었고, 내일의 희망이 무너지고 좌절이 찾아올 때는 울고 있었다. 나(우리)에게 흘러가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도 않게 그저 누구나 비슷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과 같아서 안도하는 한편, 언제 높게 일지 모를 파도를 기다리는 불안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어제는 저런 일, 오늘은 이런 일,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지금 그대로인 것처럼……. 계속해서 이어지고 살아가는 날 중의 하루하루가 쌓여서 가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슬픔과 아픔이, 설렘과 즐거움이 오는 날들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늘 슬픔과 아픔을 느끼면서도 웃게 될 희망을 찾아서 살아가는 시간일 테고. 그러한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장면들로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322페이지)”

헤이즐과 거스, 두 사람은 이미 넘칠만한 흔적을 남겨주었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오늘을 다시 보게 하고 시한부로 살아갈 수도 있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한다. 이들이 보여주었던 시간이 슬프고도 아름답게,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되어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평범한 일상마저 ‘특별하게’ 살아준 그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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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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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의 유혹도 있었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과 친해지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그의 작품 중 나와 맞는 게 단 한편뿐이었기에... 담담한 듯, 조용한 말투가 가져다줄 어떤 느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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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 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
김보라 지음, 스폰지 그림 / 돋을새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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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문장 그대로다. 말하자니 치사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참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화병이 날 것만 같은 마음을 어쩌랴. 이럴 때 다른 방법은 없다. 쏟아내야 한다. 풀어야 한다. 속사포 욕이라도 마구 쏴줘야 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떤 ‘썰’을 풀어내는 그 화끈함이 시원하게 들린다. 여기에서 방점은 ‘사소’하다는 것에 있다. 뭘 그 정도로 그러냐, 별로 큰일도 아니구먼, 그냥 넘어가지 속 좁게 군다, 는 말들이 나올 상황들이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하기에 일상이나 인간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라 그 여파가 너무 크다. 그리하여 그 사소한 일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이 되고야 만다. 알~간? 그런 시간이 쌓여, 참고만 있자니 이 성격에 죽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들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듯 수다 삼매경에서 나올 법한 얘기인데, 저자의 말에 100%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정말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하게 된다. 나 혼자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은 내 방 안에서 나 혼자만의 일상이 가능할 때 얘기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겪어가는 일은 많은 배려와 이해를 동반해야만 한다. 저자는 아주 사소하지만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들을 말한다. 깨알같이 화가 나게 하는 일들이 끝도 없이 풀어져 나오는데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 참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앞뒤 없이 화만 내서도 안 되는 게 살아가는 처세술 아니겠나. 눈치껏 재주껏 어디 그 화를 풀어내 보시라.

 

어떤 일에 화가 나냐고?

공공장소를 개인장소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여긴 당신들 안방이 아니므니다. 먹는 사람과 뒤처리하는 사람 따로 있을 때 분노의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나는 식기 세척기가 아니라고요! 약속시각 몇 분쯤 습관적으로 늦거나 아무 미안함 없이 취소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돌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약속시각에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쯤 늦게 와서 복수해줄 겁니다. 집 없는 설움에 울게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대궐 같은 집에서 당신을 내려다볼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이제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요? 예전의 55사이즈가 지금 44사이즈도 안 되는 거 알고 있나요? ㅠㅠ 누군가의 값진 노동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판단하지 마세요. "~나 해야겠어요."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사라져가는 서점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출판사를 호구로 아는 거래처나 독자에게 섭섭합니다. 우리는 책으로 통하는 사이인데 말입니다. 피곤하다고 방바닥과 이불로 돌돌 말린 주말을 보낸 것이 너무 허망해서 화가 납니다...

 

아, 끝이 없다. 괘씸해서 화가 나고, 속상해서 화가 나고, 서운해서 화가 나고...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매일 살아가는 오늘이 기쁘면서도 그 깨알 같은 화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사는 게 그렇지, 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2%가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건 한 번쯤 터져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은 화, 혹은 가슴 속 상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쯤 이런 수다 삼매경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한번 말한다고 해서 화 내게 되는 그 많은 원인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이런 타이밍 한 번 맛보는 거로 생각하면 어떨까. ^^

 

저자의 에피소드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노약자 전용석이 아니라 ‘노약자 우선 좌석’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공감했다. 혹시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가도 노인분이 타면 바로 일어나면 되는 좌석인 거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만 다니는 이곳에도, 가끔 버스를 타다 보면 정말 자리 양보하기 싫어지게 하는 노인분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자리 양보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가 싫어진 적도 있다. 언제였던가. 노인분이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알아서 일어나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급하게 내 옆에 와 떡하니 서서 요즘 것들은 자리 양보도 할 줄 모른다는 둥, 아이고 팔다리허리어깨야 하면서 몸의 여기저기를 두드려대면서 굳이 바닥에 주저앉는 할머니. 저자도 말했지만, 노인분이 타면 자리 양보 안 하는 사람 거의 없다. 노인에게 자리 양보는 당연한 것처럼 배우고 자랐기에 나 역시 아무리 피곤해도 서서 간다. 그런데 저런 노인을 만나면 “저 일어나는 거 안 보이세요? 할머니 같은 분들 때문에 자리 양보하기 싫어져요.” 라며 굳이 한마디 하고 일어난다. 그러면 그 할머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싸가지가 바가지라는 둥 끊임없이 욕사포를 날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지까지 유유히 그렇게 서 있다가 내린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나쁜 년인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의아해서 둘러보니 와~ 대박. 사람들이 나에게 공감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살짝 엄지를 추켜드는 사람도 있었다. 아하~ 이런 마음이 나만 드는 건 아니었구먼. 결론은, 나는 나쁜 년이 아니라는 것. 뭐 이건, 나도 한껏 화가 났기에 했던 행동이었지만, 지나고 살짝 후회와 웃음을 함께 삼켰지만... 뭐, 조금은 뻘쭘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싸가지 바가지가 한 번쯤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긴 하더라.

 

공감해서 웃음도 나고 조금은 달라서 오버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저자의 에피소드를 곰곰이 듣다 보면 나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절반쯤은 공감하고 절반쯤은 공감하기 어려운 정도다. 그건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 하는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생각의 차이, 취향의 차이, 성격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저자가 발끈했던 일이 나에게는 그냥 흘러가듯 무시하는 일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사람의 성격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화가 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화를 내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조금은 가볍게 읽어도 좋고 조금은 무겁게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우리 사는 동네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들, 사람들이다.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속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내 끝장토론 한번 해보자, 하는 의미가 아니니 부담 없이 즐겨도 좋을 이야기다. 속이 좀 시원해질지도 모를 수다 한바탕 즐기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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