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
이아현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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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이름은 옴브레(그림자). 니제르라는 본명을 두고 옴브레라 불린다.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을 드물다. 그 스스로 그 이름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슬픔과 고통의 이름이기에. 마피아의 수족이면서 살인병기로 키워진 그가 어둠의 방에서 새로 태어난다. 빛을 거부하는, 오직 어둠만이 그의 목숨을 이어가는 것만 같다. 웃음을 모르고 온몸은 차가움으로 칠갑한 그는 살아 숨 쉬는 이유 따위 연연하지 않는다. 개 같은 삶을 이어가는 것, 그뿐...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고 여행길에 오른 여자 미우. 가진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만 여행을 계속하기로 한다. 언젠가 그 돈이 다 사라지면 그녀의 목숨도 사라질 거다. 그녀의 바람은 그 정도다. 오직 여행이 끝날 때까지만 목숨을 연명하는 것. 하지만 신은 그녀의 바람을 거부한 듯하다. 사랑을 잘라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그녀에게 선뜻 죽음을 선물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에게 차가운 온기를 건넨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우연처럼 조우한 옴브레와 미우는 오해와 사건으로 함께 한다. 물론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애정이 생겨서가 아니다. 옴브레가 쫓던 여자의 흔적을 미우가 가지고 있었고, 옴브레는 그저 사라진 여자를 잡기 위해 미우를 감금한 채 붙들고 있다. 딱 거기까지다. 더도 덜도 말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서로를 붙잡고 있으면 된다. 남자는 조직을 뒤통수치고 달아난 여자를 잡기 위해, 여자는 어차피 하는 여행의 연장선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재미없다. 이 소설은 예상하는 대로 옴브레와 미우가 서로를 마음에 담는 것까지 이어진다. 다만,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에피소드나 장면들이 섬뜩하리만치 잔인한 게 많다. 인간에 대한 감각을 잃은 듯 마치 살인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마피아 수장의 살인개 노릇을 하는 남자의 마음을 열어보고 싶어진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지, 혹여 다른 목적을 두고 그 시간을 견디는지 궁금했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 여행길에 올랐는지, 눈앞에 보이는 잔인함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지...

 

살인이 놀이처럼 보이던 남자와 “죽여주세요.” 한 마디가 거침없이 나오던 여자 사이의 기류가 어둡다. 냉랭하다. 온통 어두운 방에서 악몽에 시달리던 남자와 나눠줄 거라고는 손에서 나오는 온기뿐이던 여자가 나누는 게 뭘까 싶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들이 함께 가는 곳이 정말 지옥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가자고 손을 잡았으니, 가야지. 달빛을 달빛으로 보게 하는 눈을 열어주었으니, 누구도 담아본 적 없는 심장에 그녀를 담게 했으니, 가봐야지. 그게 지옥이든, 어디든...

 

상당히 어두운 내용이다.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겐 읽기가 편하지 않았던 소설이기도 하다. 남자의 위치나 역할이 거부감이 일었던 게 아니고, 장면 묘사가 잔인해서 부담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사람이 마음을 여는 순간 변할 수 있다고 보여준 건 애틋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러할 테니.

 

전체적으로 무난히 읽을 수 있으나 개연성이 부족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좀 불편한 느낌이다. 또한 잔인한 장면들에 거부감이 있다면 망설여질지도 모르겠다. 읽기 어려운 게 아니라 취향 때문인지 선뜻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힘들었다고 해야 하나... 이 소설로 이아현 작가를 두 번째 만났다. 기존 작품들을 다 읽지 못해서 나름 기대감이 컸었던 듯하다. 조금 더 탄탄한 구조로 다음 작품을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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