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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딱 두 가지 이유로 이 책을 만났던 것 같다. 작가의 전작 <로맨스소설의 7일>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 속 이야기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그려지는 전작 단 한편으로 미우라 시온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일단 한번 웃고. ^^)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이 책의 소개 글을 보면서 이 문구를 안 본 사람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주책없다 말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이런 진심을 말하는 이유와 사정. ‘내가 한번 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이 말을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한적한 주택가 골목의 낡은 2층 건물 고구레 빌라. 고구레 빌라의 주인은 고구레씨가 저렇게 말했다. 70이 넘은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섹스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도 참 뜬금없었다. 병에 걸려 죽을 날을 앞에 두고 누워있던 친구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과의 섹스를 거부했다는 말에서 고구레씨는 갑자기 고민한다. 자신이 섹스가 하고 싶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물론 그 대상이 자신의 아내였으면 좋겠지만, 아내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될 것 같다. 그때부터 고구레씨의 고민은 시작된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하는…….

자칫 몇 가지만 보고 이 책이 코믹스러울 것이다, 혹은 읽지 않고서 가지는 선입견 같은 것을 갖고 볼 수도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상당히 가벼운 책이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고구레씨의 섹스에 관한 고민 뿐 아니라, 고구레 빌라의 거주자들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들려오는, 일곱 명의 사랑과 성 이야기다.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일곱 명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혹은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에 같이 등장하는) 연작소설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떠나버린 애인이 찾아와서 지금의 애인과 셋이서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는 여자의 이야기, 낡은 빌라의 구멍 뚫린 바닥을 통해 아래층의 여자를 훔쳐보는 남자, 남편의 외도를 흙탕물 맛이 나는 커피 맛으로 찾아내는 여자, 누군가의 불임과 누군가의 임신이 가져오는 허망한 사람의 마음, 음식의 맛으로 거짓말을 탐지해내는 여자, 지하철 역사에 생겨난 이상한 기둥을 보는 여자와 남자.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그들 각자의 성(性)이야기라고 해서 공통된 주제가 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들의 성(性) 보다는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저마다의 속사정을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그 안의 일부가 성(性)이었을 뿐이고. 남들이 보기에는 문란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아도 그 안의 아픈 사연이 있었고, 누군가의 거짓을 보고 음식 맛이 변한 것을 알아챈 여자는 그 어떤 음식도 선뜻 맛 볼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가지는 거짓이 바로 음식의 맛으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다른 이가 만든 그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된 여자의 속사정이 있다. 눈으로 확인하기가 미처 두려웠던 남편의 외도를 잡아낼 수밖에 없었던 아내의 마음도 여기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이들 쯤의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일인 것이다. 살아가는 시간들의 고통이 될 수도 있는 문제들이다. 그게 한때의 것으로 끝이 날지 오랜 시간 계속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은 그렇다.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 보내지고 기억될 것이다. 고구레 빌라의 입주자 모두에게는 각자 그런 사연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음침한 주제가 아니었다. ‘섹스’라는 단어가 풍기는 것이 이렇게 발랄하고 유쾌한 느낌인 것도 맛보기 힘들 것이다. 이들이 풀어내는 그 솔직함에 웃음이 저절로 난다. 그게 어이없음의 웃음이건, 정말 우스워서 내는 웃음이건 웃긴 건 마찬가지다. 이런 소재를, 이런 느낌으로 풀어내는 것도 작가가 가진 재주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어느 음지에서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몰래 엿보아야만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이상하게 들려서 피해야할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욕구에 이런 맛깔 나는 양념을 더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내다니. 풋~!

사람들이 가지는 연애 감정의 그 말랑말랑함, 그 안에 자리 잡을 사랑. 저마다가 다 달라도 그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라고 단정 짓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마음으로 통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그게 고구레 빌라 입주자들이 분명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하고 연애하고, 이별도 하고. 좋았던 마음처럼 또 힘든 마음도 찾아온다. 고구레 빌라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다. 그러면서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드러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있었다. 굳이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역할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사람의 정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주택가의 오래되고 낡은 목조 아파트, 판자 하나로 구분되어 있는 2층 건물의 방 여섯 개짜리, 그것도 네 가구만 사는 고구레 빌라. 건물 외벽은 갈색 페인트, 나무 창틀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그 곳. 하지만 낡은 그 빌라의 외관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살아가는 냄새로 충만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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