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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평점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 중 하나는 자라다.
생김새는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 등 껍데기도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거북이와 다르다. 언뜻 팬케이크에 머리와 다리가 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속지 말 것. 자라는 치명적일 때가 있다. 모래에 숨어 미동도 없이 먹잇감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언제든 아주 날카로운 주둥이로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먹이를 잡으려면 필요한 것, 바로 인내심이다.
이렇게 자라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313페이지)
잘 짜인 하루 시간표처럼 움직이는 여자가 있다. 내털리의 옆자리 동료인 돈 쉬프. 거북이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한 가지 색으로 구분된 식사를 한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화장실 이용하는 시간마저 정확하게 짜여 있는 그녀의 하루를 들으면서 숨이 막히기도 했다. 사람이 5분 늦게 출근할 수도 있고, 다른 것을 하다가 점심을 놓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돈이 어떤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의 영역에 침범할 이유도 없지만, 혹시나 그 성향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쨌든 소설 속 인물이 가진 특성을 일단 지켜봐야 했는데, 내털리 역시 돈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던 그녀가 오늘은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에 없다. 별일이네.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정도가 아니라,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털리는 계속 일하면서도 틈틈이 돈의 출근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안부를 모른다. 한 번도 없던 일이 생기자 돈의 주변을 탐색한다. 그녀가 좀 독특하긴 했지만, 여러 사람과 편하게 교류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사라지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언젠가 한 번 돈을 집에 데려다준 기억이 난 내털리는, 외근 후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옆자리에서 매일 같이 얼굴 보고 지냈던 동료가 출근하지 않았으니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것뿐이다.
돈의 집에 갔던 내털리는 피가 낭자한 집안의 모습에 놀라고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곧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돈의 주변 인물, 그래봤자 특별한 교류가 없는 회사 동료들을 면담하면서 사건 해결에 힘쓰게 되는데,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돈과 내털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동료들의 제보, 돈이 유일하게 모든 일상을 공유했던 친구 미아에게 보낸 이메일, 이 모든 게 내털리가 돈을 살해했다는 증거로 작용하면서 내털리는 궁지에 몰린다. 돈의 살해 용의자가 된 거다.
정말로 내털리가 돈을 죽인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 읽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성들에게 매력을 어필하면서 영업 실적을 올리는 내털리의 작업 능력에 의심을 더해야 하는지, 내털리의 주변에서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사람들을 의심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그 중심에는 다른 사람을 때로 불편하게 하는 돈의 성격도 있었고, 돈의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는 사람들의 방어적인 태도도 있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독자에게는 용의자가 된다. 누구 하나 돈과 호의적인 관계였던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모두 돈을 살해할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사건은 먼저 돈의 행적을 찾는 것, 돈의 집에 낭자했던 피가 무슨 의미인지 찾아내야 한다.
소설은 내털리와 돈의 시선에서 교차로 펼쳐진다. 돈이 사라진 날부터 시작된 내털리의 일상과 살해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읽게 되고, 회사 내 왕따처럼 보였던 돈은 모든 일상을 친구인 미아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듯 들려주는 방식이다. 돈이 회사 내에서 대화로 풀어내지 못한 동료들과의 관계를 미아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확인하게 되는데, 읽으면서 참 묘하더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돈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게 아쉬워서. 당사자와 대화하고 소통하고 풀어야 하는 문제들을 이 일과 전혀 관계없는 이에게 토로하듯 풀어놓는 말들이, 이 불편한 관계의 회복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도 있었고, 혹시나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 추측했던 게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결말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기도 했고,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결말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이런 설정 실화냐? 소설이니까 가능한 결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즘 세상에서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는 우리 어렸을 적 읽던 전래동화에서나 어울리는 말인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단 말이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소설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혹은 누군가 어떤 의도를 품고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결과)에는 반드시 그 시작(원인)이 있기 마련일 테니. 그러니까, 착하게 살자. 괜히 살인 용의자가 될 수도 있고, 살해당할 수도 있고, 좋은 사람 놓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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