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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공장 블루스 - 매일 김치를 담그며 배우는 일과 인생의 감칠맛
김원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평점 :
오늘도 엄마 집에 가서 엄마가 새로 담근 김치를 가져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항상 밥 먹을 때 김치를 찾는 사람이라, 이맘때가 가장 난감하다. 지난겨울 김장하면서 만든 겉절이는 한 달 정도면 충분히 먹었고, 그러고 나면 담근 지 한 달 정도 된 김장김치를 이제 막 담근 김치처럼 잘라 먹는다. 그러고 나면 이맘때가 된다. 김장김치는 익어가고, 새 김치를 담그자니 귀찮고 배춧값도 저렴하지 않은 때. 작년의 묵은지로 김치찌개도 끓이고 김치 볶음도 만들어 먹고 하지만, 그래도 막 담근 김치가 생각날 때다. 그럴 때 근처로 칼국수나 수제비 먹으러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겉절이를 실컷 먹고 오는데, 사실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 만드시는 분의 고단함이 있을 테고, 재료비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김치는 정말 쉬운 존재가 아니다. 입에 맞는 맛있는 김치 찾기도 어렵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기에도 서운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김치 담그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 언젠가부터 등장한 김치 판매처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누군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으니까. 이제는 엄마도 나도 종종 김치를 사 먹을 때가 있어서 그런가, 이 책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김치 공장 이야기인가 싶었다. 나이 지긋한 어느 어머님의 일터에서,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 수다 떠는 것처럼 인생 이야기가 피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오던 저자는 엄마가 운영 중인 김치 공장으로 이직한다. 굉장히 고민했을 것 같다. 자기 하는 일을 계속하면 될 것 같은데, 갑자기 엄마의 일터로 자기 인생을 옮겨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터. 엄마가 도전하고 쌓아오던 그곳에서 저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몸에 많은 근육이 있어도 하는 일마다 근육의 쓰임이 다르다던데, 저자 역시 많은 활동적인 일을 했어도 김치 공장에서 쓰는 근육은 달랐으리라. 그 근육이 탄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인생 전쟁터에 참전했을 것을 생각하니, 이야기를 듣기도 전부터 괜히 뭉클해진다.
일단 이 공장은, 제목처럼 김치를 만드는 곳이다. 작은 사업체라고 생각했는데,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김치를 만들고 있었나 싶게 놀라웠다. 나이 지긋한 베테랑 손맛 선수부터 외국인 노동자까지, 이 김치 공장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막연하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때는 몰랐다. 재료 하나에, 작업대의 위치 하나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매일 김치를 담그며 그곳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도 생생했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재료 수급부터, 손길 하나하나 담긴 김치 완성 트레일러의 움직임까지, 완벽한 포장으로 고객의 문 앞에까지 전달되는 김치의 사연은 다양했다. 고객마다 다른 입맛을 맞추기 어렵기에 들어오는 클레임, 홈쇼핑 생방송 배송에 맞추기 위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작업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나쁜 재료 절대 못 들인다며 퇴짜를 놓는 사장님, 그러다 보니 많은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현실. 이놈의 코로나는 이 김치 공장도 비껴가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격리 생활은 타국에서의 설움까지 겹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고, 공장 가동이 멈춰버린 현실에 또 얼마나 큰 손해를 만들고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더라. 그때 우리, 참 힘들었는데, 여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도 여전히, 사람 사는 곳이었다. 김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지만, 그 김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간의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진솔했다. 울고 웃는 게 우리 인생이라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들의 다양한 인생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카리스마 장난 아닌 사장님부터, 배추 트레일러에 서서 배춧속을 채우고 가정에서의 책임도 다하는 여사님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의 정을 나눠주며 책임을 다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로열패밀리(?)이면서 이 공장의 모든 곳에서 책임자이자 막내 역할을 하는 저자까지. 저자가 풀어내는 이들의 세상은 애정이 가득 담겼다. 읽으면서 괜히 더 애틋해지고, 성실한 이들의 모습에 등도 두드려주고 싶고, 뭔가 바라는 거 다 이뤄가면서 살아가길 응원하고 싶기도 한, 뭐 여러 가지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 정이 막 쌓이는 기분,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생산직 여사님들, 특히 김치 공장 여사님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얼마 전에 아는 동생이 김치 공장에서 일하다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안 하던 사람이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했을 때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여사님들 텃세와 괴롭힘에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좀 더 다녀보지 그랬냐고 했을 텐데, 그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그런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면 그럴만하다는 이유가 이해가 되더라. 김치 공장 여사님들 무서운 사람들이구나 싶어서, 정말 모르는 사람인데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책 읽으니 문제는 김치 공장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김치를 만들고, 인생을 알아가는 곳. 나쁘고 좋고 판단할 곳이 아니라 그곳은 그냥 딱 그런 곳, 사람 살아가는 곳이었을 뿐이다.
저자는 큰 회사에 다니다가 작은 김치 공장으로 왔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큰 세상이었다. 배춧잎이 켜켜이 쌓여 사람들의 마음까지 쌓인 곳, 더 작은 세상으로 온 게 아니라 더 크고 맛있는 세상으로 온 거였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생각한 ‘공장’이라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열심히 살고, 마음을 쏟아내고, 인생을 채워가는, 크고 작은 것을 계산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멋진 곳이었다. 엄마가 만든 김치를 자랑스러워하며 엄마의 단단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더 사랑하게 될 곳, 정말 괜찮은 김치를 만들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김치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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