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오쓰카 이치오 그림, 고향옥 옮김 / 베틀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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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이가 숲을 걷다가 발견한 빨간 모자. 이게 모자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모자를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쿠나의 것이라는 걸. 쿠나는 숲속에 사는 난쟁이인데, 북쪽에 살다가 남쪽으로 내려왔단다. 그러니까 우리 근처에서도 어쩌면 쿠나를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도대체 쿠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쿠나를 알려줄 수 있는 조그맣고 삼각형 모양의 빨간 모자뿐이라고 생각했어. 쿠나의 목소리는 찌르 찌르 찌르라고 들리는데, 혹시라도 어딘가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면 꼭 한번 뒤를 돌아봐봐. 쿠나가 바로 뒤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디선가 찌르 찌르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


작지만 어엿한 요정인 쿠나. 다친 곳을 치료해 주고, 일도 거들어주고. 가끔은 묘지에 나타나 죽은 사람도 만나게 해준대. 혹시 누군가 이 세상에서 먼저 떠난 사람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럼 쿠나에게 부탁해봐. 간절한 그 마음을 쿠나가 알고 만나게 해줄지도 몰라. ,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게 해준다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요정 쿠나를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이유가 여기 있었네. 내 마음속 간절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 떠올릴 때마다 쿠나가 저절로 생각날 것 같아.



주인공은 부모님 몰래 방안에 쿠나의 공간까지 만들어놓고 쿠나를 기다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지. 쿠나에게는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많다고 말이지. 들은 말이 많아질 때마다 더 궁금해진다. 쿠나를 어떻게 만날 수 있지? 사실 쿠나는 겁을 먹고 숲에서 잘 나오지 못하는데, 그건 쿠나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때문이야. 마을에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무서운 것이 많대. 그게 뭘까. 근데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것도 무서운 게 많잖아. 그러니 우리는 못 보는 걸 보는 쿠나에게는 얼마나 더 많이 보일까 싶기도 해. 그래도 용기를 내서 쿠나가 숲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 무섭고 두려운 것 말고, 이곳에 즐겁고 행복한 일도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런 책을 썼다고?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는데, 다 읽고 보니 딱 감독의 분위기와 맞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은은하게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이야기, 작은 요정 쿠나가 지금 숲속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러다가 곧 마을로 내려와 아이의 눈에 보이게 되겠지? 사실 쿠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생각하는 쿠나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여전히 쿠나의 존재를 믿고 기다리고 있겠지. 쿠나가 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중에는 무서운 것 말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희망도 있을 테다. 잘 될 거라는, 어려워도 이겨낼 거라는 믿음 같은 주문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 같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잊고 지내기 쉬운데, 사실 그 잊힘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없을, 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상상 같은 이야기에 마음을 얹어놓아도 좋을 것만 같다. 보이지 않지만, 가슴속에 항상 머물러 있던 그 믿음과 기대의 한 자락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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