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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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하면서 읽기 시작한 이 짧은 소설들은 어느새 너무 웃픈 사랑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각 이야기의 제목이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에 혼자 웃으면서 씁쓸해졌다. 그러다가 결국은 웃으면서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독자가 되었다. 너무나 평범한 우리네 사랑 이야기인데, 왜 각자에게는 그렇게도 특별한 사랑으로 남을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된 듯하다.


부부가 오랜 세월 함께하면서 어떻게 정이 들고 늙어갈 수 있을까 했던 궁금증에 답을 준 <어떤 별거>는 한숨과 애틋함을 동시에 불러왔다. 아내와 더는 못 살겠다며 아들에게 투정하고, 가출 같은 별거에 당당함을 부르짖는 아버지의 마지막 한마디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젠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며, 싸울 때마다 별거했던 아버지의 다짐은 대단했다. 그런 아버지도 어머니의 건강 앞에서는 그저 걱정이 앞서는 한 남자였다. 어머니 관절약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며 잊지 말고 사다 주라는 아버지의 당부. 싸우려면 지독하게 싸우고 철천지원수가 되어 욕만 해도 될 텐데, 어머니 드시는 약이 떨어져 가는 걱정은 왜 하는 것인지. 어머니는 또 어떻고. 아버지 욕을 한 바가지 하면서도 평소 화장실 못 가서 힘들어하던 아버지의 선식을 챙겨준다. 이럴 거면 왜 싸우고 왜 별거를 하신다고 하는 건지. 이런 게 사랑이고 이렇게 부부가 같이 늙어가는 건가.


어린아이의 수줍은 사랑 역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독감>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행동에 '어머?' 하는 시선을 보내게 된다. 우리 어렸을 적 생각도 난다. 이런 마음이 뭔지 모르겠지만, 설레고 두근거리는 기분이 좋아서 마냥 웃음이 실실 새기만 했던 표정을 기억해본다. 독감으로 결석한 딸을 찾아온 같은 반 남자아이를 보고 의아해하던 느낌도 잠시, 남자아이가 가져간 딸의 마스크에 더 기가 막힌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쓰던 마스크를 쓰고 싶은, 학원에 가기 싫어서 감기 걸리고 싶다지만 그 아래에는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그렇게 티가 나는데 말이다. ^^ 아이의 마음이 이렇게 순수한가 싶으면서도, <개만도 못한>에서는 정말 키우던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한 남자의 처절한 절규가 하늘을 찌른다. "나도 데려가야지!" 이런 외침은 순간적으로, 완전 진심인 거다. 연애하던 남자와 여자는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 분양받는다. 같이 살면서 같이 키우고, 3년여의 세월을 함께했지만 결국 연애는 끝났다. 여자는 남자에게 강아지를 두고 떠났고, 남자는 강아지를 핑계 삼아 여자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강아지를 센터에 맡기겠다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고, 강아지만 데리고 떠난다. 으잉? 이게 아닌데? 남자는 예상 밖의 전개에 황당하지만, 여자는 진심을 드러내고 사라진다. 여자는 남자를 다시 볼 생각이 전혀 없었고, 강아지를 두고 협박한 남자를 정리하고자 마지막으로 나타난 거였으니. 남자는 그런 여자의 마음도 모르고 절규한다. "개는 데려가면서 나는 왜 안 데려가냐구!" 아, 역시 현실에서 확인하는 사랑의 끝은 아름답지만은 않아...


이별하고 정리하는 일이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의 노트북>을 보고 공감한다. 헤어지고 뒤늦게 돌려받은 노트북 바탕화면에서 사라진 사진. 여자는 자기 흔적을 남기기 싫다고 남자의 노트북 안의 사진을 지웠고, 남자는 남의 물건에 왜 함부로 손을 데느냐고 화를 낸다. 누가 잘못한 걸까? 남의 물건에 손을 덴 여자? 헤어진 여자 사진을 계속 보관하고 있던 남자? 남자와 여자는 싸웠고, 남자는 여자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여자는 헤어졌고, 남자는 헤어지자고 말한 순간부터 여자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무슨 타이밍이 이러냐. 헤어지자는 말에 여자는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헤어지고 있었고, 남자는 그 말이 무슨 신호탄이라도 되듯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니. 사람 마음이 이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순간들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너무 많잖아. 언제나 어긋나고, 언제나 후회하고. 그러다가 또 다른 인연에 용기를 내기도 하는.


<식혜 같은 내 사랑>의 성구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마흔여덟의 노총각이다. 그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손자 손녀 한번 보여드리지 못해 어머니께 불효하는 게 죄송한 나날이지만, 그게 어디 그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더냐. 선을 보고 여자를 만나도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면 연락이 뚝 끊기는 게 일쑤. 어느 순간 그도 결혼을 포기하고 지금의 가족 구성원에 만족하며 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이혼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여자 동창 지숙을 보고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시골 마을에 지숙의 소문은 금방 퍼지고, 마치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그런 지숙이지만 성구의 마음은 지숙의 현재를 더 사랑하는 일이 최선이었고, 지숙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든 중요하지 않은 거 아니겠나. 큰 소리로 사랑한다고 외치던 성구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날아갔을까. 마흔여덟의 총각 성구의 사랑은 이제 시작인 걸까. 시골 마을의 어느 잔칫날을 보는 듯한 기분에 자꾸만 성구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 건 나뿐인 건 아니겠지? 사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은근히 짠해 보이면서, 은근히 그 짠내에 힘을 보태주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 같다. 평범해 보이지만, 이게 우리가 살아가고 사랑하는 모습인 걸 부정할 수도 없다. 드라마나 영화 대사 같은 표현을 하고 싶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게 현실 속 우리 모습 아닌가. 너무 투박해서 이게 사랑이고 연애인가 싶다가도, 이런 모습마저 받아주는 이가 있어서 인연인가 싶은 마음에 안도하고. 그래서 사랑이다. 너무 유쾌하고 경쾌해서 얼핏 사랑이 아니고 코미디인가 싶으면서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이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 조금씩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사랑으로 위로받기도 하고 사랑에 아파하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걷는 사람들이다.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건 너무 잘 아는데, 그 쉽지 않은 일 중의 하나인 사랑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그래서 더 어렵고 알 수 없는 게 사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에휴, 쉽지 않구나, 사랑도. 마치 우리 삶처럼.


글쎄, 작가의 전작 짧은 소설을 이미 만나봐서인지. '누가 봐도 이기호의 글'이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게 가장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씁쓸한 시선에서도 웃음을 만들고, 찌질한 외침 속에서도 당당함을 보여주는 그만의 방식이 재미있다. 아, 세상 이렇게 살고 싶구나 싶을 정도로, 누군가의 시행착오 같은 이야기 속에서 은근한 처세술을 배우는 기분도 든다. 이게 사랑이구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사랑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배움? ㅎㅎ 울고 웃는 인생사 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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