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가,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딱 여동생만큼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결혼생활의 이상향을 보여주었던 여동생이 이혼을 언급했을 때는 충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동생이 그런 생각을 할 거로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시’자 붙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역시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역시 시월드의 굴레는 벗어날 수 없는, 며느리의 고통 영역이었던가 싶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미 영화에서 보여준 김진영과 시어머니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보였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적응하면서 살아가기에도 힘든 게 결혼생활인데, 그 결혼생활이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관계에 머물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그 어려운 문제가 어떤 것인지 이 고부가 보여준 것이다. 처음에는 좀 충격이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이런 대화(라고 쓰고 싸움이라고 읽는다)를 한다는 게 놀라웠다. 누가 봐도 ‘감히’ 시어머니에게 ‘대드는’ 며느리라고 여길 테니까 말이다. 한편으로는 왜 이런 충돌이 계속되어야 하는지 그 시작점을 찾게 되더라.

 

남편은 아내의 입에서 직접 어른들에 대한 거부와 부정과 분노가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자식과 오래 알아온 부모님은 자기 자식의 허물에 더 너그럽다. 남편의 중재는 그렇게 간단한 이치에서 필요한 것이다.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173페이지)

 

행복해지자고 결혼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차곡차곡 만들어갈 하나의 가정을 상상하고 나아가고자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시작으로 만들어져야 할 하나의 가정이 주변 사람들의 개입으로 전쟁터가 됐다. 이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없다. 모두 상처 입고 나뒹굴어 피를 흘리고 있을 뿐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전쟁의 시작이 ‘간섭’과 ‘관심’의 차이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같을 말을 오랫동안 해왔다. ‘간섭’과 ‘관심’은 한 끗 차이라고, 그 한 끗의 차이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내가 건네는 게 관심이어도 상대가 받아들일 때 간섭이라고 느끼면 그건 간섭이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보이는 관심이 상대가 부담스럽고 과하다고 여기면 불편해진다. 그럼 나에게서 나간 관심은 간섭으로 모습을 바꾸어 상대에게 도착했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게 시월드와 며느리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며느리 김진영은 남편 선호빈과 함께 두 사람이 주축이 되는 가정을 이루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한 두 사람은 부모의 관심 안에 있었고, 부모는 그런 두 사람의 삶에 관여하고 계속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여긴 듯하다. 특히 시어머니는 아들의 인생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아들 며느리의 태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던 거로 보인다. 한번 시작된 김치 건네기는 언제나 싸움과 분노의 발단이 되었고, 며느리의 삶을 좌지우지해도 된다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개인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집안의 화장대 위치까지도 간섭하며 계속 말하는 것이었겠지.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의 며느리 삶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 며느리로 살아가는 부조리함을 말하는 게 이 책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앞서 만난 몇 권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 ‘라떼’를 마시면서 강요하는 과거 여성의 삶이 충돌을 일으킨다. 나 때는 말이야... 시월드의 모든 말에 복종하고 며느리는 그 집안의 하녀처럼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 그 시절을 언급하고 강요하면서 따라주지 않는 며느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갈등은 시작된다. 하지만 왜 그 시대가 기준이 되어야 할까 이해하기 어렵다. 그 시대의 며느리 모습은 잘못된 건데, 왜 그 모습이 기준이 되어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게 갈등의 발단이 되어 끝이 없는 전쟁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러니까. 서로가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 게 맞다.

 

사람들은 영화 〈B급 며느리〉보고 거의 두 가지 평을 내놓는다. 저런 며느리 얻으면 큰일 나겠다, 아니면 저런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하는 거다, 뭐 이런 비슷한 의미의 말들을 꺼낸다. 사실 이 책을 읽어도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이 책이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니, 영화의 연장선에 있으니까. 하지만 왜 그 상황이 시작되었는지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전쟁이 시작될 때마다, 항상 그 시작을 찾고 싶었는데 말이다. 며느리 김진영이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 그냥 인간 김진영으로 살다가 선호빈의 아내 김진영이라는 호칭이 하나 늘었을 뿐인데,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은 낯설고 힘들어졌다. 그녀의 존재는 사라지고, 새롭게 형성된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 머물기를 바라는 시선이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없애고자,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말들은 ‘B'급으로 취급받았다. 싸우고, 절연하고, 또 싸우고, 화해하면서도 분노의 찌꺼기는 남아있고.

 

막장드라마만 암 유발하는 건 아닌 듯하다. 며느리와 시월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고구마 한 박스 그냥 삼킨 것처럼 답답하다. 그럴 때마다 궁금하다. 우리 엄마와 나의 올케 사이에는 어떤 감정이 흐르고 있을까 싶다. 엄마에게도 ‘시’자의 냄새가 풍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를 조금 다독거린다. 엄마에게도 딸이 다섯이나 있다고, 사람들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그나마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고. 괜히 친해지려고 애쓰고, 잘하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지레 질려 나가떨어진다고. 안부 전화 한번 안 한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안부가 궁금한 사람이 전화하면 되는 것이고, 쓸데없이 전화 타령하지 말고 용건 있을 때 통화하면 되는 것이라고. 적당한 관심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적당한 선을 넘는 간섭은 서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니 조금만 무관심해지라고 말이다. 며느리 김진영의 시어머니를 보면서 느낀 건, 아들 며느리에게 관심을 넘어선 집착에 스스로 분노를 쌓아가는 것 같았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아들의 자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당신이 돌봐주면서 길렀던 아들의 모습으로만 뿌리박혀 있으니 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 자기를 가두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은. 무리하면 탈이 난다. 마음이 넘쳐도 탈이 난다.

 

과연 중간이 있었을까? 이제 보니 우리는 중간 지점에서 만난 게 아닌 것 같다. 각자 자신이 서 있던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성숙한 관계는 ‘나를 위해 네가 변해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줘’라고 말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동안 서서히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었던 것 같다.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젖어들듯이 말이다.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238페이지)

 

읽을수록 짠하다. 그러면서도 시원하다. 며느리니까 참아야 하는 건 없다. 하고 싶은 말 담아두기만 할 이유도 없다. 인간 대 인간으로, 새로 어우러진 가족이 된 일원으로 서로를 대하면 되는 일이다. 며느리 김진영이 투쟁하듯 이뤄낸 현재의 관계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아진 관계의 모습을 보니 이 투쟁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 있는 전쟁이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며느리 이미지가 바뀌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리’라고 하면서 ‘의무’를 강요하지 말고, 서로를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면서 같이 살아가야 할 일이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다. 이미 웹툰이나 후속작으로 그 후의 이야기까지 읽었지만, 아무리 많이 봐도 다시 보게 된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현실 속 이야기들이라 생생하고 또 생생하다.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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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느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요? 우앗... 저는 보기도 전부터 고구마 백 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오네요.

모든 시어머니들이 ‘나는 달라, 나는 좋은 시어머니야‘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 포함해서요. 저는 그럴 때마다 ‘엄마, 그래봤자 엄마는 시어머니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구단씨 님이 정말 정확한 지적을 하신 것 같아요.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만났을 때 왜 그렇게 갈등을 일으켜야만 하는건지, 우리는 그 시작을 찾아서 부숴버려야 하는건데 말입니다.

구단씨 2020-05-13 14:04   좋아요 0 | URL
20분짜리 드라마로 만들어진답니다.
방송하게 될지 웹드라마로 보여줄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옆에 사이다 캔맥주 한잔 가져다 놓고 보고 싶은 드라마여서 기다릴 겁니다요. ^^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남자 사람 포함해서요. 남자들이 하나같이 얘기해요.
˝우리 엄마는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너네 엄마가 더 그러더라, 라고 말하곤 했거든요.
실제로 저희 엄마도 아들 며느리 있는데요. 똑같이 말씀하세요. ˝나는 안 그래, 야.˝
그래서 제가 옆에서 자꾸 말씀드리죠.
엄마도 그럴 수 있다고. 그래도 딸 가진 엄마니까 며느리 마음 많이 헤아려주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