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가 그랬던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자기 이야기를 한번 써보는 거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이 한 마디가 계속 생각나는 건,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감정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 몇 편을 접하면서, 그녀의 작품이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수식어를 그대로 흡수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가 왜 자신의 이야기를, 경험한 그대로 사실대로 적어야만 했는지 읽으면 저절로 느끼게 된다. 이건 그녀의 이야기이고, 그녀가 느낀 그대로 적어내려 애쓴 흔적이며, 그녀 자신이 걸어온 시간이면서,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이다.

 

1952년의 어느 여름, 그녀의 열두 살 일요일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때렸으며, 심지어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치면서 낫을 들었다. 공포의 순간,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으나 그날의 사건은 그대로 끝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탁에 앉는 부모. 흔한 부부싸움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렇게 행동했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이, 그렇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열두 살의 아니 에르노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그녀 삶의 방식이 되었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부끄러움』 117페이지)

 

'부끄러움'이라는 제목에서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의 행동을 떠올렸다. 흔히 어떤 행동이나 말투를 보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며 혐오의 눈길을 보내는 순간 말이다. 우리가 부끄럽다고 말할 때는 대개 그런 순간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부끄러운 순간은 충격이었다. 공감하고 싶지 않지만, 삶의 곳곳에서 묻어났던 어떤 감정이 생각났다. 부유하지 못한 우리가 세상에 부딪히면서 느끼는 순간순간들 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며 싸우던 그때. 아마도 그녀 가족이 중산층도 되지 못하는, 가난한 노동계층이라는 자각에서 그녀의 부끄러움은 시작된 것 같다. 싸우다가 자기 아내를 죽이겠다고 낫을 손에 휘두르는 남자가 아버지라는 사실이 트라우마가 된 건 아니었을까. 특히 그녀가 공립학교가 아닌 기독교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 수준 차이를 확실하게 느꼈던 순간 그 부끄러움은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기독교 사립학교는 그녀와 다른 아이들 사이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느끼게 했다. 결국, 가난하고 천박한 행동을 하는 부모가 부끄럽고, 그런 부모가 자기 존재의 뿌리라는 게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 거다.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도 잘하지만, 소녀스럽고 괜찮은 외출복을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 우아하고 예쁘게 자랄 거라는 긍정적인 말을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게, 사람들의 시선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아름다우며 고급스러운 어휘를 사용하는 대상으로 비치지 않는다는 게 그녀에게는 상처가 되고 부끄러움이 되었다.

 

아버지와 둘이 떠난 여행지에서도 그녀의 부끄러움은 계속됐다. 여유롭게 여행 준비를 하지 못해서 여행지에서 부족함에 시달렸다. 때가 낀 운동화를 신고 계속 다녔고, 넉넉한 돈을 준비하지 못했다. 레스토랑에 가서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했고, 우아하게 식사할 줄 몰랐다. 비슷한 또래의 여행객에게서 매 순간 다른 점을 볼 때마다 그녀는 좌절했다. 자기는 그들의 세계에 속하지 못한 배경을 가졌고, 또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이어갈지 모른다는 불안 같은 게 그녀에게 내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녀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근원이 시작된 그곳에서부터 이어져온 부끄러움이 사라질 곳이 있던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끄러움』 137페이지)

 

열두 살의 그녀가 체험한 1952년은,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그리 부유한 상황은 아니지 않았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분위기는 계속되었을 것이고, 전쟁 후에 안정적인 나라가 얼마나 되었으려고. 하지만 그런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부와 가난은 뚜렷하게 구분되기 마련이니, 그녀 가정의 가난이 쉽게 변할 환경도 아니었던 거다. 누구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모습일 테니, 그리 아파하거나 차별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한번 눈에 들어온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경험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그 체험의 감정을 그녀는 오랜 세월 담아두고 살았다. 부끄러움은 그녀 삶의 방식이 되었으며 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년이 된 그녀의 어느 날, 그녀는 1952년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낸다. 오랜 세월 그녀를 부끄럽게 했던, 그녀의 삶을 지배했던 그 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자기의 기억을 꺼내면서도 객관적인 그녀의 감정은 때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이기에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인간이기에 가능하고 허용될 것 같은 그 주관적인 느낌을 그녀는 철저히 배제하며 적었다. 그 순간의 상황이나 현상에 감정을 넣지 않는다. 오랜 전의 기억을 꺼내면서 추억 운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와서 이 기억을 꺼내놓아야만 했던 그녀의 간절함이 느껴져서다. 이런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기어코 이걸 써 내려가지 않으면, 이 순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위기를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자기 존재의 불편함을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하며 넘어서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 한 번쯤은 찾아올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옥죄며 단단히 묶어놓고, 어떤 기억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살아왔기에 완전하지 못했던 순간을 다시 마주할 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불안하게 세상으로 보게 했던 기억에, 지금 그 기억과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면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결국은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간절함에 몸부림칠 때.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은 해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한 것만 같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그런 글쓰기가 가능한 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는 말과 기억이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게 어렵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의 글이 더 충격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다들 비슷하게 경험하는 어떤 감정과 충격들일 텐데, 그 비슷한 경험과 영향에서도 비슷하지 않게 드러내는 방식들. 누구는 해냈고 누구는 해내지 못한 채로 간직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차이를, 그녀는 이렇게 통과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뿌리를 수치스러워했던 기억에서 벗어났다. '나는 기어코 이렇게 쓰고 말았어.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거든. 이제 벗어날 수 있어서 홀가분해. 이렇게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해냈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당신, You win!

 

전작들에서와 다르지 않은 그녀의 쓰기 방식이 가슴에 파고든다. 『단순한 열정』에서 사랑의 절절함을 목 놓아 우는 것처럼 기록해내더니,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을 적나라하게 서술하더니,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기억을 들추며 비루하며 수치스러웠던 솔직한 기억을 폭발시키는 듯하다. 그녀다운 글쓰기 방식이 혹시 언제 변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이 방식을 끝까지 고수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일기처럼, 기록처럼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느낌을 얻고 싶어서다. 아무리 솔직해도, 아무리 객관적으로 쓴다고 해도, 이렇게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아직은 부족한 우리들일 테니까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매번 충격적이지만, 그 충격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는 게, 아직은 그녀의 작품을 가까이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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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3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불과 얼마전에 이 책이 나온 걸 알게 되었는데 구단씨 님은 벌써 읽고 이렇게 근사한 리뷰를 쓰셨네요. 역시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아니 에르노 좋아요.
:)

구단씨 2019-05-30 14:29   좋아요 0 | URL
<세월>과 <사진의 용도>는 읽는 중이라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한 여자>와 <남자의 자리>, <단순한 열정>은 좋아하는 글이거든요.
이번 <부끄러움> 역시 짧은 문장 읽으면서 숨이 뚝뚝 끊어지는 듯한 묘한 느낌이더라고요.
이제까지 읽은 그녀의 글 중 가장 있는 그대로, 솔직한 문장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레삭매냐 2019-05-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나온 책의 재개정판
이더라구요.

구판으로 도서관에서 한 번 봐야겠네요.

구단씨 2019-05-30 15:51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는 기존 출간작을 몰랐어요.
번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자의 글을 만나는 데는 구판 신판 구분할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