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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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종류의 책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림 그리는 이가 그림과 함께 전하는 이야기들. 크게 거북스럽지도 않고 한밤의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차분하게 읊조리는 듯한 말들.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래, 그랬지...'하는 추임새를 넣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건 요즘을 사는 우리들 마음의 온도가 금방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의외로 쉽고 익숙해져 버렸고, 바닥에 떨어진 온도를 올리는 일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닫고 끝을 알리는 것보다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따스함을 건네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꾸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 순간이 많아지고, 그런 공간을 찾아 누군가는 계속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은 기억한다

 

아무리 지난날이 아름다웠다 되새겨도

문득 그날의 상처가, 그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아름답게 변해도

추억이 색색이 고운 빛깔의 옷을 입어도

 

가슴은 그날의 아픔을 기억한다. (63페이지)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따금 우리는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을 오롯이 대면해야 한다.

 

누군가의 딸, 아들, 엄마, 아빠…….

어느 학교에 다니든

어느 회사에 다니든

 

나에게 부여되는 많은 이름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걸 벗어나 그저 그냥 나이고 싶을 때가 있다. (78페이지)

 

 

사랑을 잃고 아팠던 시간을 꺼내놓으면서 아픔을 조금씩 덜어내려는,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을지 모를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과정을 거치는,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계속 연습하는 거 아닐까. 하나의 사랑은 끝났지만 이렇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사랑이 끝났다고 지금의 생이 끝난 것은 아니므로.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가는 담담하게 자기 경험의 시간을 드러낸다. 헤어지고 아팠던 시간을 털어놓듯 꺼내놓으면서, 우리 각자의 사랑을 한곳으로 끌어모은다. 아픈 날들은 이제 지나갈 것이고, 누구나의 것이며, 이런 위로의 순간으로 채워지는 오늘이 슬프지 않다고 말이다.

 

 

막다른 벽

 

인생이 갑자기 막막해질 때가 있다.

 

지난 시간 나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멈출 줄 몰랐다. 설익은 밥을 허겁지겁 먹는 것마냥 깊은 고민보다는 결과를 내기에 급급한 시간을 보냈다.

 

숨이 막혔지만 가끔은 무언가 이뤄 나가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다. 목표를 향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던 인생의 선택지 앞에 갑자기 거대한 벽이 나타난 순간, 많은 생각들이 나를 휘어감았다.

 

그동안 나의 선택지에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밀려났던 중요한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129페이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우리는 머리와 마음을 무겁게 이고 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서서히 그 시간을 잊히겠지만, 잘라낸 기억처럼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지나간 시간 속 누군가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속상했던 일들 떠올라 울기도 한다. 우는 게 잘못이 아닌데도 마치 큰 잘못을 하는 것처럼 소리 죽여 눈물을 안으로 삼기도 했던 순간들. 저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같이 듣게 하면서, 그 시간을 같이 걸으며 다시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의 서툴렀던 시간을 복기하듯, 다음 사랑에서는 더 잘하고 싶어지게 하는 기운 내게 하는 말들을 불러온다. 숨이 가쁜 100미터 달리기 말고, 천천히 가도 괜찮은 산책을 하듯이.

 

 

이별 노래 한 곡 듣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이야기들에, 뭔가 큰 짐 내려놓은 것처럼 한숨 놓이는 기분이다. 가르치려 드는 말이 아니라, 같은 선에서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듯한 그림과 문장들에 진심 어린 위로가 들려오는 것 같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듣기는 어려운 위로와 공감의 말들이 눈에 들어오는 그림과 함께 다가온다. 차분하게 마음 내려놓고 싶을 때, 한낮의 숨 가쁨이 버거워질 때, 내게 남아있는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을 때, 괜한 불안함에 잠을 설칠 때, 누군가의 손끝이라도 잡고 싶어질 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다가오는 위로가 될 것이다.

 

끝에 다다르는 시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달라졌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에 집중하니

도전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경험이 되었고

실패는 나를 보완하고 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사랑은 내게 살아있다는 충만감을 주었고

이별은 내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배려심을 주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기회와 경험은 결코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15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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