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시인선 90
허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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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실의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는 몸에 관한 구절이 많다.

우리 몸, 특히 여자의 몸을 말하는 부분이 많아서 유심히 듣게 된다. 표현도 적나라하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표현해주어서 누군가의 솔직한 말을 듣는 기분이다.

이 가벼운 시집을 조금은 무겁게 조금은 깊게 읽고 있는데, 절반 정도 읽었을까.

갑자기 나타난 이 시 때문에 입에 웃음을 머금었다.

단순히 웃겨서가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이 정도로 표현할 수가 있지?' 싶은 마음 때문이다.

 

 

치질

 

밑구녕까지 꽃이 피었다

 

징후도 없이

예후도 모르는 채

부끄러움을 앓는다

 

걸음마다 꽃이 도져

앉지도 돌아눕지도 못하게 하는

 

괄약근이여

 

 

시에 관해 다양하고 전문적인 해석이 있겠지만,

시를 많이 읽지 않은 이 무지한 독자가 이 시를 읽고 처음에 든 생각은 단순했다.

'이런! 치질을 이렇게 표현하는 시라니, 대단하다!' 시의 구절 그대로 듣다 보면 치질에 관해 다 알아버린 느낌이다.

치질의 모양, 치질의 증상, 치질을 앓는 환자의 마음. 혹시 공감하는 독자가 있으려나?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흥미롭고, 솔직하고,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다.

우리 몸 구석구석의 생김새나 느낌을 적어가는 것만 같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못 보는 곳까지 언급하고 묻기도 하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읽은 시집인데, 특이하다는 생각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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