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 나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울프의 편지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신현 옮김 / 북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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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이나 사조, 유파로서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뜸 난해하다, 난삽하다 같은 선입견을 발동하며 지레 멀리하려 듭니다. 그러나 조이스의 작품은 잠시 논외로 하고라도, 얘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라면 그녀 고유의 촉촉한 스타일, 절실한 말투 덕분에라도 그리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편이죠. 영문학과 불문학에 두루 능한 박신현 선생의 이 편역본만 보더라도, 작가의 한없이 다정다감한 심성과 감수성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지기에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한결 더 친숙히 받아들이고 교감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그녀가 남긴 여러 서신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작품과 서신은 물론 장르가 다르며 아무리 광의의 문학에 서신이 포함된다 해도 편지의 일차 목적이 (특정 상대방을 향한) 의사의 사실적 전달에 있기 때문에, 서간문의 표현양식이 소설에서처럼 난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편지는 여전히 그 작가의 육성을 담았으며, 당시는 현대처럼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로 소통하는 세상이 아니었기에, 작가의 인격적 진면목을 향한 중요 단서를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 독자들도, 버지니아 울프가 구사한 언어 체계의 키를 슬쩍 수집할 수 있고, 인간적 친밀감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낳기 위해, 주변에 얼마나 많은 능력자들이 포진하여 그(그녀)를 도와야 하는지도 실감됩니다. 작가들은 때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통속적 의미에서의 생활 감각이 떨어질 수 있기에, 엄연히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도서 시장에서 성공한다거나 그 성공의 과실을 자신의 것으로 챙기는 데에 서투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들을 보면, 편집자나 출판사대표야말로 그(그녀)의 첫째가는 팬이어야 하며, 동시에 작가의 내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통찰을 갖추어야 함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독자층의 기호와 트렌드에도 신경써야 하니, 출판사의 사회적 역할이야말로 공치사도 못 받으면서 섬세함과 지성은 그것대로 당대 최고 수준이어야 함도 확인이 가능했네요. 

아무리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조주라 해도, 그 피조물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며 작가의 의도와 독립된 영역이라고 하겠습니다. p57을 보면 울프는 본인 역시도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을 읽으며 이런저런 주관적 해석을 가하지만, 동시에 해밀튼, 매카시(일반 독자를 가리키는 임의의 호칭인 듯합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이름이 몰리인 걸로 봐서 그녀의 주 독자층이 여성들이었음도 추론 가능합니다) 등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각양각색의 해석을 시도하는 데 대해 그녀 자신이 신기해합니다. 여기서 서간의 수신인인 클라이브 벨은 영국의 평론가였으며 울프와 비슷한 또래입니다. 뉴질랜드의 맨스필드도 우리가 <The Garden Party> 등으로 잘 아는 바로 그 사람이며, 태생은 뉴질랜드지만 영국에서 성장기 교육을 받았기에 보통은 영국 작가로 알고 있죠. 울프보다 몇 살 아래지만 작풍(作風)이 좀 전통적(?)이라서 울프보다 훨씬 이전 시절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맨스필드의 시대에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가 되기도 했죠. 

우리들은 백여년 전의 사건을 역사로 추체험하며 다분히 객관적으로 거리를 둘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특히 버지니아 울프 같은 지성인들이 전간기에 남긴 소통의 흔적을 보면, 그토록 명민한 지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든가 동시대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의미에 대해 다분히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게 눈에 띕니다. 이런 경향은 사조와 스타일, 살아온 경력이 판이한 헤르만 헤세(나잇대는 비슷합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직접 엮였거나, 지근거리의 사람들이 치른 경험에 대해서는 "초연함"의 유지가 어렵나 봅니다. 그토록 초연함의 미덕에 대해 강조했던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이 점이 더 재미있는데, 그래서 역시 이런 분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알고 새삼 안도도 하게 되네요. 

책의 마지막은 히틀러를 몸서리치며 싫어했던 울프가 미국의 어느 진보 저널에 기고한 글이 장식합니다. 이런 글을 읽어 보면 울프와 어떤 세대 차이 같은 게 전혀 안 느껴지며, 자유를 갈망하고 획일성을 거부하는 시대정신이 이미 성숙한 형태로 저들 지식인들 사이에 공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화를 희구하는 저 열렬한 외침은 이미 21세기 채식주의자를 자처한 어느 동아시아 여성 작가의 육성도 고스란히 승계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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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캐나다 : 밴쿠버·토론토·몬트리올·퀘벡·로키 - 최고의 캐나다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2024~2025년 개정판 프렌즈 Friends 35
이주은.한세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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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시리즈는 이처럼 개정판이 자주 나오는 점도 좋습니다. 제가 작년(2023) 10월 하순에 최신판을 읽고 리뷰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시 최신개정판이 나왔네요. 이 새 책도 여전히 이주은, 한세라 두 분이 집필했고 독자 입장에서 언제나처럼 만족스럽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작년 판과 비교했을 때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제가 작년판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광대한 캐나다를 곧이곧대로(?) 커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프렌즈 시리즈를 리뷰하면서, 이 책들은 작은 인문서 기능을 겸한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서를 읽으려는 독자한테 과한 부담을 혹시 준다면 그건 또 곤란합니다. 이 캐나다 편은 노스웨스트, 유콘, 서스캐처원 등 북부 오지는 최소한도로만 다룹니다. 대신 태평양에 면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이른바 BC), 앨버타, 온타리오, 퀘벡 등 한국인이 즐겨찾거나 널리 좋아할 만한 지역에 포커스를 두는 실용성을 뽐냅니다. 프렌즈 시리즈 중 캐나다 편은 20년도부터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애틀랜틱 캐나다 편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캐나다도 본래 대서양에 면한 동부가 근본이죠. 게다가 한국인들도 너무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의 무대가 되기도 한 곳이 PEI인데 이 책 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캐나다 편은 특히 대도시 중심으로 시원시원하게 짚어나가는 게 독자 입장에서 보기 편합니다. p130 이하에는 밴쿠버의 명물 중 크래프트비어를 사진과 함께 설명해 주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수제맥주라고 부릅니다. 한국도 흔한(또 맛도 없는) 병맥 대신 시원하고 뭔가 고소하기까지한 수제맥주를 서비스하는 펍에 사람이 더 몰리는데, 밴쿠버를 다녀온 많은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이 크래프트비어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아마 이 프렌즈 캐나다판이 작은 기여라도 했을 수 있겠습니다. 5월말에 열리는 축제도 있고, 이 책에 실린 여러 유명 펍은 한 번쯤 들러볼 가치가 있겠네요. 

캐나다 대도시들은 전철 노선이 깔끔하게 정돈된 편이라서 현지에서 막 헷갈리고 어쩌고 할 걱정은 적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믿고 참조할 수 있는 노선도가 바로 곁에 있으면 더 좋죠. 프렌즈 시리즈는 (여행서의 기본이긴 하나) 커버하는 어느 도시이건 간에 가장 최신 사정을 반영한 노선도를 빠뜨리지 않아서 또 좋습니다. 캘거리는 계획 도시답게 구조가 단순하지만 잘못하면 방향을 그르게 잡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저처럼 심하게 길눈이 어둡다면). p218의 깔끔한 노선도가 그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많은 여행자들을 도와 줄 것입니다. 프린스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만 캘거리의 저 명소는 프린시즈(Prince's) 아일랜드(Island)가 정확한 이름(p224)이며 그 명명자(namesake)도 무슨 왕족이 아니라 피터 앤서니 프린스라는 19세기 사업가입니다(프린스가, 왕자라는 뜻이 아니라 성씨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 위스콘신에까지 기반을 나중에 넓혔기에 그곳에도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로키 산맥은 미국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험한 지형입니다만 그 40% 가량의 끝자락이 캐나다에도 뻗쳐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곳은 밴프(Banff) 국립공원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일 뿐더러 한국인들도 즐겨찾는 곳입니다. 이 책 p248 이하에 선명한 컬러 사진과 함께 자세히 다뤄지는데 프렌즈 시리즈는 이처럼 사진자료도 질적, 양적으로 빼어나다는 게 독자를 행복하게 합니다. 밴프 가는 길은 책 p251에 나오듯이 렌터카를 사용할 경우 밴쿠버, 캘거리 두 방면에서 다 가능한데 개인적으로는 밴쿠버 발(發)이 훨씬 편했던 기억입니다. 잘 이용들 않지만 버스나 기차편도 잘 마련되었는데 역시 책에 설명이 잘 나옵니다. 이 책은 타 여행서에 비해 이 밴프 국립공원(과 인접 다른 국립공원들)이 다각도로 잘 소개된 점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캐나다의 국기(國技) 하면 또 아이스하키입니다. p348에는 토론토의 명소 중 하나인 하키 명예의 전당이 나오는데, 그저 이런저런 선수 개인 기록이나 팀 연혁만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스하키 초보자들도 절로 그 매력에 푹 빠지게끔 종목 자체에 대한 입체적 안내가 갖춰진 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이죠. p350에는 세인트제임스 성당이 나오는데 원래 St. James Cathedral이라고 하면 미국 플로리다 올란도, 태평양에 면한 시애틀, 시카고, 심지어 뉴욕의 브루클린에도 있습니다. 이들 중 어떤 곳은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며 어떤 곳은 에피스코펄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캐나다 토론토의 성제임스는 영국 국교회 소속입니다. 

한국에도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물론 용인 에버랜드가 그곳이며 생각보다 역사도 오래되었습니다. 캐나다와 사파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토론토는 의외로 없는 게 없는 도시이며 용인에버랜드와 비슷한 시기에 개설된 Toronto Zoo(p364)가 관광객들을 기다립니다. 그런가하면 맛집도 의외로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p368에 나오는 트라토리아 네르보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p380에 나오듯 토론토에서 120km 정도 이동하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닿을 수 있는데, 클리프턴 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p393)입니다. 

세인트로렌스 강은 18, 19세기 미국이나 캐나다 양국에게 매우 중요한 수운(水運) 지형이었습니다. 이 강에 천 개의 섬들이 떠 있다고 해서 이름도 사우전드 아일랜드(Thousand Islands)인데, p425를 보면 이곳을 즐기는 세 가지 방법으로 크루즈, 헬기 투어, 전망대 등이 소개되네요. 많은 이들이 헷갈리지만 캐나다의 수도는 인구 백만의 오타와입니다. 외인들이 재미없다며 간과하지만 사실 오타와도 어트랙션이 풍부한 도시이며 두 분 전문가가 속속들이 잘도 그 매력을 짚어냈습니다. 캐나다 자체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예쁜 책이라는 말로 리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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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건강 증진을 위한 두뇌 훈련 가을편 2 인지건강 증진을 위한 두뇌 훈련 가을편 2
탑클래스 두뇌발전소.대한치매협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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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그 비결은 타 동물보다 용량이 크고 기능이 우수한 뇌를 지닌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신체의 활력이 떨어지듯 뇌 역시도 노화를 겪는 게 필연입니다. 신체 건강을 유지하고 싶을 때 운동을 하듯, 뇌의 선도를 지키려면 그에 알맞은 훈련을 통해 원하던 효과도 거두고, 그 과정에서 쾌감도 느낀다면 일석이조일 것입니다. 이 교재에는 다채롭고도 재미있는 문제가 많이 실려, 아직 두뇌 쇠퇴를 걱정할 필요를 못 느낄 세대도 이런저런 퀴즈를 풀며 어떤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p6 머리말을 보면 대한치매협회 회장 조범훈 박사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시리즈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주제로 맞춰 구성되었기에 앞으로도 나머지 세 시즌 편이 더 발간되겠습니다. ②라고 쓰인 건, 가을 편이 총 세 권으로 짜였는데 그 중 둘째 권이라는 뜻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은 모두 4주차 내용으로 꾸며졌습니다. 매주마다 15개의 퀴즈가 제시되는데, 저는 이 범주 다른 교재들에서 잘 보지 못했던 내용이 많아서 좀 신기하기도 하고, 과연 나는 뇌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 문제들을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매주차 맨처음에 나오는 게 지남력 퀴즈인데 일단 지남력이라는 말 자체가 저한테는 생소했습니다. 지남력은 한자로 指南力이라 쓰며, 우리가 지남철이라고 할 때의 그 의미 그대로입니다. 어떤 소녀 캐릭터가 늦가을 패션으로 나타나 "올해는 몇 연도인가요? 당신이 태어난 연도는 언제인가요?"를 묻습니다. 어르신들이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아갈 때 의사선생님이 물어보곤 하시는 질문 사항과 같습니다. 저도 작년 여름 무거운 백팩을 메고 어딜 좀 다녀오다 갑자기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라며 순간적인 지남력 상실 증상을 겪고 무척 놀랐기에 이 페이지의 체킹사항이 예사롭지만은 않았습니다. 

p11에는 순서맞히기 퀴즈가 나오는데 일단 컬러가 네 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20초 동안 이걸 외우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한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사실은 누구에게나 조금은 부담입니다. 만약에 교재가 바로 오른쪽에다가 바로 이어서 퀴즈를 내었다면 현저히 긴장감이 떨어졌을 텐데 페이지를 넘겨야만 문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점도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앞 페이지 색 배열을 홀랑 까먹어서 다시 앞을 넘겨 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 이런데, 나이 드신 시니어들은 아마도 좀 심각하게 헷갈리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p13의 다른 그림 찾기도, 아홉 개 중에 다른 걸 하나 고르기가 생각만큼 빠르게는 안 나왔습니다. 그러니 시니어들께서도, 혹 퀴즈를 해결 못 하셨다고 해도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두뇌에 경각심을 준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교재는 이 정도의 난이도는 지켜야지, 너무 물에 물 탄 듯 쉬운 문제만 나와도 훈련(?)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숨은그림찾기가 p17에 나오는데 제목은 저렇지만 왼쪽에 제시된 그림을, 오른쪽 15개나 되는 그림들 중에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약간 크기가 크고, 오른쪽의 15개 보기는 그보다는 약간 작습니다. p20, p21에는 모자를 쓰고 두 팔을 벌린 허수아비 그림이 있는데 독자는 두 그림이 서로 다른 부분을 찾아 표시를 해야 합니다(두 군데). 물론 저도 직접 문제를 풀어 보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두 군데를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아마 독자의 90%[비 시니어 포함]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아날로그 시계 보는 법을 학교에서 안 가르쳐서 모르기도 한다는데, p23에는 여러 시계 그림을 제시하고 몇 시인지 맞히기, 왼쪽 그림에서 30분, 45분 등이 지나면 바늘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그려 넣게 합니다. 30분, 45분처럼 딱딱 떨어지는 시간만 나오며 10분, 20분처럼 바늘의 각도가 정확하게 안 떨어지는 시간대는 묻지 않습니다. 

뇌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보통 뇌의 가소성(可塑性)이라고도 하는데, p30을 보면 우리의 뇌는 정말로 "상상하는 대로 그것을 현실과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생리작용을 낳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앞에서 조범훈 박사의 추천사를 보면 용불용설이라는 말씀도 나왔는데, 머리는 쓰면 쓰는 만큼 그 성능이 좋아진다는 거죠. 이게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특별한 기능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p51~p52에는 명상법 6단계도 나오는데, 혹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약간 피로감을 느꼈다면 이 방법을 통해 휴식을 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인쇄가 선명하고 독자를 많이 배려하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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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언제나 내 편인 이 세상 단 한 사람
박애희 지음 / 북파머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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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계시고 아마도 그분은 세상 최후에까지 남아 내 편이 되어 줄 분이겠습니다. 박애희 작가님이 쓰신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들이 담겨 있어 제3자가 엿보듯 읽어도 흐뭇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사연이 가득합니다. 아마도 이 책에 적힌 사연 중 적어도 몇몇은 우리 독자들이 매우 비슷하게 실제 체험해 본 일들이겠습니다. 혹 아니라고 해도, 사람 사는 세상에 부모와 자녀 간에 온당하게 오가야 할 교감이, 사랑이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교훈으로 가득하다는 점 누구나 동의할 만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p58)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이 말의 뜻이야 누구나 알지만, 책에서는 좀 더 깊이 의미를 파고듭니다. "남편도 나도 철없었을 시절..." 사실 예전에는 남의 댁 따님을 데려갈 때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얼추 다 갖춰진 후였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정말 취업이 힘들고 사회화 기간이 길어졌기에, 나이 서른이 되어도 남자 위상이 뭔가 어설프고 위태로운 걸 많이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위는 사위이며 내 딸의 배우자이며 내 딸을 끝까지 지켜 줘야 할 사람입니다. 저자께서는 "내 딸을 사랑해 줄 사람이라서 내 딸에게 보람이 가라고 내가 챙겨 준다"며 어머니의 배려를 해석하시지만, 전 좀 다른 의미도 여기서 읽었습니다. 딸 옆에 새로 둔 아들로까지 여기며, 어찌보면 친아들보다 더 소중한 면도 있다고 그 어머니께서는 생각하시는 거죠. 

박애희님처럼 작가분들이라면 이들이 쓰는 책 한 권 한 권이 다 자녀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책 같은 저자의 작품을 가리켜 "손녀딸"이라 부르셨다고 합니다(p124). 읽으면서 촌수가 과연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과연 한번 세상에 힘들게 태어나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 부모를 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관계의 유지와 형성입니다. 회사 등의 2차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이런저런 친분도 사실 까다롭기가 그지없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그를 대하고 이렇게 말하지만 그 상대방은 전혀 다른 해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반응을 접수합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그는 남일 뿐 나의 부모처럼 날 챙기지 않고 그에게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습니다. 크게 충돌이 발생하여 파탄이 꼭 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고 쌓이면 슬슬 꼬이던 관계가 흐지부지되며 마침내 쌍방으로부터 잊혀집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그나마 상처를 누구한테 크게 남기지 않은 게 어디냐며, 이왕 상한 관계, 미련 갖지 말고 쿨하게 보내 주자고 합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몸 돌봄에 매우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분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집안 살림 알뜰하게 챙기느라 자녀분들 더 돌보느라 몸에 어디가 탈이 나도 그냥 무심히들 넘깁니다. 그러니 자녀분들이 어느 순간 부모님 몸에 탈이 난 걸 발견하고 속이 상하는(p177) 게 당연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무방비상태로 태어났을 때 몸 안 상하도록 세심하게 돌봐 준 분들이 부모님입니다. 그런 부모님도 그저 인간일 뿐이라서, 나이 드시면 서서히 무기력한 존재로 늙어갑니다. 성장 과정에서의 보은을 위해서라도 그때부터는 우리가 거꾸로 부모님을 지켜 드려야 합니다. p191을 보면 작가님이 "다음 세상에는 어머니가 제 딸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지금 당장이라도 부모님께 잘하면 구태여 다음 세상을 기약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녀 관계도 잘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사랑이 더 강합니다. 고르게 사랑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때로는 누가 바람이 나기도 합니다. 둘다 사랑이 시들해지면 쿨하게 갈라서면 되는데 이런 경우는 그게 아니라서 더 심각합니다. 그러나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자식 사이는 그렇지가 않죠. 다만 치사랑은 내리사랑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많아서 세상에는 불효자가 사방에 밟힙니다. p220을 보면 엄마를 내가 더 사랑한다고 과감히 저자가 선언하시지만, 마치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처럼 자식의 사랑은 결국 어머니의 그것보다 한 발 더 뒤떨어집니다. 남자들이 결코 속속들이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게 출산의 고통입니다. p276을 보면 여성들은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어머니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아들도 엄마 아빠를 애틋이 그릴 수 있지만, 그 애절함이 결코 딸을 따라갈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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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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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배경인 비주얼 시티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서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상대의 내면과 교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용한 의사와 시설을 찾아 외모를 아예 바꿀 생각마저 품고 실행에 옮기는데, 그 결과 거리에는 내가 아닌 남의 가면을 쓰다시피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넘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비주얼의 변형을 금지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대중도 등장하는데,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이유로 집회를 열기까지 하는 이들은 없거나 극히 보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려는 시도에 대해 곧잘 무시와 경멸감을 과장되이 표현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표현과 자기신체 처분의 자유가 누구에게도 있으므로 성형 정도야 뭐 큰 문제삼을 게 있을까 싶지만, 때로 큰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나 봅니다. 한국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플라스틱 서저리가 발전한 나라도 드물겠으므로, 과연 이 소설 같은 기발한 픽션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아줌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로 보여? 어디 아줌만지 할머닌지 너도 한번 그 비주얼템을 벗어봐!(p18)" 이미 디지털 트윈이라는 게 개인의 생활 영역에서는 거의 구현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카오페이지든 인스타든 유저는 자신의 계정에다 진짜 모습을 올릴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필터를 사용하고, 동영상에까지 보정을 가하여 배경의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우스꽝스러운 효과가 속출합니다. 소설에서 사람들은 비주얼템이라는 걸 착용해 꿈 같은 외모를 하고 돌아다니는데, 이게 우리들이 가상 공간에서 온갖 허위의 치장을 하고 방문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와 대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것도 마스컬레이드 본능이라며 너그럽게 이해해 줘야 할지, 아니면 본격적인 존재의 타락 단계로 접어드는 시그널이라며 단호하게 제재를 내려야 하는지는 정말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육감, 혹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먼 거리에서 누군가가 잔뜩 치장을 하고 다녀도 우리는 아 저 사람이 실제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구나, 혹은 차마 감당 못할 무슨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이렇게 제법 확신을 갖고 판단합니다. 소설 p35를 보면, 비주얼템을 착용했음에도 선생님 눈에 빤하게 보이는 어떤 근심, 힘듦이 도은한테서 바로 풍긴다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성형수술이든 진한 화장이든, 이 픽션 속의 비주얼템이든 간에, 진짜 문제는 진실을 가리고 왜곡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결정적인 진실을 가려 주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노출시킨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그만큼이나 힘이 세며, 우리들도 예상외로 다들 현명하기에 그 진실을 잘도 캐치합니다.  

"니가 차도은이라고 지금 광고하고 다니는 거야?(p50)" 정상적이고 당당한 정신이라면 차도은, 선예, 혜선, 모현이라고 나를 내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 차도은 여기 있다며 광고할 만한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게 인생의 목적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 픽션 속이건, 21세기의 현실이건 이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금기 사항 중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비주얼 시티에서는 누가 자신을 최대한 과장하고 미화하는 게 능력의 척도이기까지 합니다. 인플루언서의 파워(p58)는 얼마나 이 은폐 도구를 잘 활용하는지로 측정됩니다. 

소설에는 초반부터 저 비주얼템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게 여덟 자리의 커넥트키입니다. 도은이의 경우 엄마아빠, 학교출결시스템 등이 고작입니다(p50). 이건 우리의 현실에서라면 인친이나 팔로잉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넷상의 소셜 미디어처럼 unsocial한 공간도 없는데, 소설 속의 커넥트키도 사실은 진정한 세상으로부터의 디스커넥트 키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비주얼 시티가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세상이 있는 걸 모르더라고(p62)." 이 말에 송모현은 벌써 시무룩해지는데 그나마 모현이 정도면 양반입니다. 인터넷에만 파묻혀 열심히 역할 놀이만 하느라 자신이 진짜 누구였는지 잊은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수두룩합니다. "그 주제에 뭘 믿고 리얼리티에 가입한다는 거야?(p107)" 아니, 내가 내 자신을 과감히 믿고 현실로 복귀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내 손을 잡아 주겠습니까? 망상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임을 이 소설은 우리에게 깨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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