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2010년대편 1 - 증오와 혐오의 시대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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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전북대 신방과 교수로 재직하셨으며 당대에 큰 논란이 될 만한 이슈를 과감히 제기하여 언제나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고, 현재는 명예교수직인 강준만 박사님의 새 책입니다. 이 제1권은 2010년, 2011년을 각각 다룬 1부, 2부로 구성되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2010년대는 다섯 권의 책들이 더 나온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근간예정도서들의 목차가 이 책에 마치 예고편처럼 실려 있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2010년에는 유시민씨가 국민참여당이란 당을 만들었다고 p78에 나옵니다. 이런 책에서 상기시켜 주지않으면 이제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유시민씨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장관에 임명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많은 노선과 불일치하는 행보를 자주 보여서 주류에 의해 이단시되던 경향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지난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이 챕터의 말미에,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가 "절독을 하려면 조용히 하면 되지, 구태여 선언을 해 가며 해야 했나?"며 일침을 놓은 발언이 실렸습니다. 홍세화씨는 작년(2024) 4월에 타계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이명박 정부가 서서히 임기말에 달하며 권력 누수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참모였던 권재진씨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려 하자 야권에서 많은 반발을 표시했습니다. 정부는, 특히 법무행정과 검찰권 감독을 맡은 부서는 청와대로부터 독립된 인사가 그 장을 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에서였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이런 책을 통해 되짚지 않으면 전혀 생각조차 안 날 듯한데, 강준만 교수가 마치 실록처럼 상기시켜 줘서 기억을 더듬어가며 재미있게, 또 의미깊게 읽을 수 있습니다. 

p226에서 저자는 물리적 인의 장막과 심리적 인의 장막을 지적합니다. 전자는 이른바 문고리권력 실세 집단으로 우리가 아는 것이며, 후자는 특정 정치인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후자에 대해서 저자는 특히 "사모(思慕) 집단"이라고 규정하는데 책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하던 약칭 박사모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듭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치인은 팬덤이 아니라 항상 보편적인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런 인의 장막이 그를 막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정치인에게 해롭고 국가를 위해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고 저자는 소결론을 냅니다.   

p248을 보면 2011년 4월 27일에 (봉하마을이 소재한) 김해을 선거구에서 보궐선거가 있었나 봅니다. (거듭되는 말입니다만) 이런 사실은 책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진 사건들이라서 새삼 지난 역사의 의미에 대해 반추도 하게 됩니다. 당시 유시민씨는 여전히 국민참여당을 유지하며 자당의 후보 이봉수씨를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단일후보로 내세웠으나 선거에서는 패배합니다. 이때 원래 민주당에서는 김경수(나중에 경남지사를 지내는 바로 그 인물)씨가 나올 예정이었다고 하네요. 또 강금원씨가 유시민씨에 대해 그는 친노가 아니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사실도 적혔습니다. 그리고 이 챕터에는 문재인 비서실장, 탁현민 공연기획자 등 진보 진영의 다음 시기를 이끌어갈 중요인물들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원래 2007년 즈음에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내부가 아니라 재야단체(지금 명칭으로 시민사회단체)에서 대부처럼 활약한 박원순 변호사를 차기 대선 후보로 모셔오면 어떻겠냐고 한 적 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 변호사가 한사코 고사했죠. 그때만 해도 박원순이라는 인물에 대해 일반 시민들사이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1년 이 시점에서는 분열만 거듭하는 민주당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여, 박원순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이때 안랩이라는 벤처 기업의 성공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안철수씨가 갑자기 인기가 높아져서 단번에 서울시장 보선 후보로 떠올랐는데, 결국 박영선(민주당 내 인사. 방송인 출신), 박원순 등과 단일화를 거쳐 박 변호사를 서울시장에 당선시키는 데 일조합니다. 

p334에 나오듯이 이때는 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의 경제학자가 제기한 불평등 아젠다가 크게 주목받았는데, 저자는 동물학자 리처드 코니프의 말도 인용하며 무슨 이유로 빈자들이 부자를 찬양하고 고마워하는지를 두고 호되게 비판합니다. 또 저자의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종편 허가, CJ E&M 등의 창립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어 서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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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운다
안영실 지음 / 문이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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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실 작가의 단편 여덟 작품이 실렸습니다.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다!" 서문에 나오는 작가님의 말인데, 아니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도 아니고, 소설이 이야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같은 서문 안에 안영실 작가 본인이, 답 아닌 것 같으면서도 답인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떠도는 존재다." 이건 또 무슨 동문서답입니까? 하지만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보다 더 적실한 설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국 소설에는 왜 이렇게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떠도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역마살이라는 이름으로 좋게 포장하곤 하죠. 이게 여자 입장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게 더 기가 찹니다. 든 정이 있어서(p22l 차마 사람을 미워하지는 못하겠고 그저 사주팔자에 무슨 마가 껴 저러는 거겠거니 합리화를 하는 심리인데, 아무튼 이게 지난시대 어른들이 세상사를 이해하던 한 방식이었습니다. <만전춘별사>까지 그 유래를 거슬러올라갈 수 있네요(그보다 훨씬 전이겠지만). 그리고 아일랜드의 봄, 갓 구운 스콘에까지 심상이 옮아옵니다. 극과 극의 전환이며, 에밀리를 위한 왈츠(?)를 말로 표정으로 연주하는 "그"와 함께 금지, 아니 지금의 밤이 깊어갑니다. 원심력은 그저 겉보기로 구색을 맞춘, 힘의 평형을 이루는 장식에불과하니 결국은 이 왈츠가 돌림노래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비지땀의 뜻을, 비지를 먹으면서 흘리는 땀이라고 의도적으로 제시한 오답 선지를 읽으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문제은행의 그 출제자는 사람들더러 웃으라고 그런 선지를 고안한 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진지하고 심각한 학력평가에 그런 문장이 나오니 웃음보가 터질 수밖에 없었겠는데... p58(<늑대가 운다> 中)을 보면 비지는 날콩을 갈아넣어야 제맛이 난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요즘 K푸드가 세계를 휩쓰는 세상이라지만 날콩과 익힌 콩의 그 미묘한 차이를 외국인들이 비지(혹시 이걸 먹는다면)에서 알아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비지는 그 비릿한 맛 때문에 한국인도 잘 못 먹는 이들이 많죠. 

지금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외교 방침(한때 기업 화웨이의 영업전략이기도 한)을 전랑의 그것이라 불렀는데, 이런 걸 보면 그들의 유전자 안에 몽골인의 그것이 적잖이 들어갔나 봅니다. p61에 보면 몽골 전통의 연주 가락을 "흐미"라 부른다고 나오는데, 이게 그들이 좋아하는 늑대 울음소리와 닮았습니다. 개들의 하울링, 숙희(이 작품에서 개 이름입니다)의 울음... 사람들도 이에 익숙해지면 뭔가 속으로 감정이 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나 늑대나 그 깊은 본성은 닮은데가 있고 둘 다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니. "마니 녜드 이녜드(네 이름은 웃음이란다)." 

"늙음은 미(美)가 아니라 추(醜)다." 이건 죽은 움베르토 에코 같은 사람한테 물어 보면 책 두 권으로 답을 내놓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 <매미>에서 화자는 한자를 파자(破字)하며 그 깊은 뜻을 파고들려 합니다. 술 유(酉)에 귀신 신(神)이 붙은 글자라는 건데, 그럼 모습이 보기 싫어지는 건가요? 여튼 상관없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화자가 "미만 따지는 시상(세상)이 덜 되야먹은 겨!"라고 바로 일갈하시니 말입니다. 경(經)을 읽으면 절로 눈물이 난다...(p84) 전 도저히 그 경지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개수대도 깨끗하고 젊은 양반 기억도 싹 사라진 치매의 부작용, 아니 특효까지도 말입니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p105(<여자가 짓는 집> 中)에 인용되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 제목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확실히 그 눈에 콩깍지가 씌는지 엄마 눈에는 딸 인생 망칠 작자(J라는 분)라는 게 훤히 보이는데도... 이 사위라는 자는 학벌이 아깝고 인물이 아까운데(그 장모님의 평가입니다)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합니다. J가 멋진 양복을 입고 첫출근을 하던 날 전철에서 유도선수들에게 맞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같은 회사 직원들이 손쓸새 없이 그런 일이 터졌겠다고 짐작은 되지만, 전 솔직히 요즘도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그런 걸 일부러 시키는지 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설정상 요즘 일은 아닙니다). 약은 인간은 전철에서 설령 시비가 붙어도 상대 약만 올려놓고 적정 단계에서 빠져나오는데 J는 고수한테 아직 배울 게 많은 듯합니다. 아, 아무튼 지금 숨이 가뿐 건 내가 아니고, 이 수치스러운 감정도 내가 아니며 나는 어딘가에 상처없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그 여성분의 생각, 너무 슬픕니다. 

냉장고 정리를 평소에 잘 해둬야 합니다. 안 그러면 p218(<바람벽에 흰 당나귀> 中)에서처럼 가뜩이나 내성발톱으로 아픈 발가락을 더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죠. 전 가끔 소설가분들이 마치 AI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소설이라는 게 이런이런 효과를 노리고 치밀하게 설계된 소산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꺼내시는 중 기막히게 떠오른 온갖 이미지와 주제가 희한한 조화를 이루며 작품 하나가 만들어지니 말입니다. 내성발톱 이야기가 나왔다고 진짜 작가분이 내성발톱으로 고생하는 건 아닐건데, 또 물리학 전공하고 졸업 후 재벌사에 입사한 남친이 정말 있었던 것도 아닐텐데 이야기가 이렇게 신기하게 잘 이어지니 말입니다. 아무튼 <갈릴레이 갈릴레오(순서가 바뀐 건 이유가 있습니다)>에서 희수와 함께 망원경을 들고 다니는 J는 앞의 그사람과는 또다른 인물이겠습니다. 옷 벗은 마야(p167)가 사실 진짜 아름다운 데가 어딘지 정확히 아는 그는 망원경도 필요 없는 인물이며, 유도선수들에게 맞은 곳도 이제 멀쩡히 다 나았으리라 믿습니다(아니, 애초에 다른 사람이었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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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장 - 365 에세이 일력,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결심 (만년형, 스프링북)
오유선 지음 / 베이직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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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랩에 싸인 종이박스를 개봉하니 정말 예쁜 일력 한 권이 나옵니다. 요즘은 이렇게 탁상용으로 제작된 일력 형태의 출판물이 많이 나오는데 이게 일종의 굿즈도 되고 팬시상품도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권의 책이며 독자는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차분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일력들이 그렇듯이(아닌 것도 있습니다만) 날짜는 적혀 있지 않고, DAY 1, DAY 2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를테면 DAY 5에는 데일 카네기의 말이 나오는데, 주제는 걱정 내려놓기입니다. 걱정해도 아무 소용 없는 문제로부터는 스스로를 좀 해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해야 마음의 평화가 생긴다는 건데, 사실 마음의 평화라는 것도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사치입니다. 하루하루의 과제를 열심히 해결해 나가는 이들에게는, 쓸데없는 걱정을 빨리 제거해야 자신의 당면과제에 집중할 여력이 생깁니다. 단, 걱정을 벗어나는 것과 현실을 도피하는 건 엄연히 다릅니다. 현실의 어려운 과제가 내게 도전해 오면 바로 맞서야 하며, 이를 피했다간 더 큰 위험과 손해가 닥칠 뿐입니다. 나를 위협하는 손톱만한 시도에도 죽기살기로,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 문제가 일부라도 해결됩니다. 

데스몬드 투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회(앙글리칸) 주교였고 생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분입니다(3년 전 타계). 이분의 말이 DAY 54에 나오는데, 그 주제는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특별하게 되고 싶어하며, 평범한 자신에 끝없이 실망하고 자신을 비하합니다. 그러나 투투 주교는 "당신이 미처 느끼지 못할 뿐,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우리들에게 힘을 줍니다. 나의 장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럿 있겠지만, 투투 주교는 메모지에다 그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죽 적어 보는 것을 그 중 하나로 꼽습니다. 

사람은 일도 해야 하고, 그 바쁜 일로부터 릴랙스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걸 20세기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일과 사랑의 균형"이라고 불렀고 그 내용이 DAY 85에 나옵니다. 그 표현이 재미있는데 "당신이 가능을 믿든, 불가능을 믿든, 당신이 딱 믿는 대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매사가 부정적인 사람은 그 말이 재수없어서라도, 될 일조차 안 되기 마련입니다. 이 페이지에는 심리학의 개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도 함께 실렸습니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감정, 지식은 이미 불구의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DAY 123을 보면 마우드 V 프레스틴의 말이 소개됩니다. 이분 이름은 정확하게는 Maude V Preston인데 Sharing이라는 제목의 시(詩)에서 앞 연(聯)을 인용한 것입니다. There isn't much that I can do,
But I can share my bread with you, And I can share my joy with you, And sometimes share a sorrow too, As on our way we go.가 영어 원문입니다. 인생이란, 결코 혼자 걷는 길일 수 없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데서 온전한 형태가 완성됩니다. 

링컨도 생전에 그토록이나 많은 반대에 직면했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자신을 변함없이 지지한다고, 함께 가 줄 것이라고 믿었다면 아마 큰 힘을 얻었으리라는 저자의 말씀(DAY 151)이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링컨은 강철 같은 의지를 가졌던 인물이며 지지자도 많았으므로 그가 생전에 가던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믿음이 곧 (그에게)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도 합니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역 U자형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20세기 초에 프랑스를 이끌었던 정치인입니다. 이분 말이 DAY 351에 나오는데, 이 장에는 데일 카네기의 말도 함께 실렸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 돈은 나중에 따라온다." 글쎄 현실적인 필요를 무시하고 전적으로 취미에만 몰입할 수 있는 특권은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부여되지 않겠습니다만 여튼 자신의 정직한 열정이 무엇인지 알 필요는 있겠습니다. 물론 그게 주제파악이 안 되는 환각, 자기기만이 되어서는 대단히 곤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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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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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아픈 경험을 참척(慘慽. p10, p75, p133)이라고 부릅니다. 고 박완서 선생은 1988년, 57세 때에 당시 25세였던 맏아들 서울대 의대생 호원태씨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박완서 선생은 둘째 아드님도 의사로 키우신 분인데, 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로 자라나야 마땅했을 금쪽같은(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장남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내셨으니 그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박완서 선생은 작가로서의 데뷔가 당시 기준으로는 다소 늦은 편이었는데, 1981년 <엄마의 말뚝 2>의 이상문학상 수상으로 문단과 독자들 앞에 완전히 그 존재를 각인시켰습니다. 이후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는데, 그 와중에 저런 큰일을 겪으신 겁니다. 이 책은 초판이 2004년에 나왔고 올해 출간 20주년을 맞습니다. 아드님이 돌아가신 후 16년이 지나서야 관련 글들을 모아 책을 내셨다는 사실도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죠. 

이 책엔 평소 선생의 글쓰기 스타일이나 주제와는 크게 다른 글들이 많아 독자를 처음에 약간 당황하게도 합니다. 하지만 글들의 모티브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면 당연히 저런 문장과 생각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선생은 팬들이 다 알듯이 가톨릭신자이며, 1980년대 전반 혹심한 군사독재의 칼날이 번득일 때 용감하게 정치(그리고 사회의 병든 세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작품 안에 띄우기도 한 분입니다(물론 통속 소설도 잘 쓴 분입니다). 저는 그걸 천주교인으로서의 양심 그 발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독실한 신자분이 아무 잘못도 없이 성실히 삶을 산 엘리트 아드님을 갑자기 데려간 신에 대해 이처럼이니 격한 분노와 원망을 표현하니, 얼마나 그 참척의 아픔이 크셨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p62를 보면 다섯 아이를 젖먹여 기르던 당시에 영세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책 곳곳에 나오듯 선생은 평소에 여러 목사님의 설교집, 불교의 법구경 등도 깊이 읽으시던 분입니다. 

p55를 보면 생전에 호원태씨가 마취과로 인턴 진로(p63)를 정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차분하게 어머님 앞에서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마음과 태도가 얼마나 당당하면서도 합리적인 의욕으로 가득한지 모릅니다. 어머니들이란 본래 아들에 대해 객관화가 안 되는 법인데, 이처럼이나 태생부터가 잘나고 똑똑하며 도덕적으로도 흠 잡을 구석이 하나 없는 아드님의 의젓한 말씀을 들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자긍심으로 가득차셨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아들이 또 있을 수 있나, 전세계 그 어느 귀공자들을 트럭으로 데려와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만합니다. 자 그런데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아들을 뺏어간 신이라니? 이건 신이 아니라 살인강도의 악독한 범죄와도 비겨 마땅하다고, 기존의 모든 신앙을 폐기할 만하다고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에는 도무지 이유를 댈 수 없는 부조리와 비합리가 많습니다. 기독교 구약의 욥기(p30)를 보면 한때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욥이라는 장자에게 불행이란 불행은 모두 닥칩니다. 이 이유는 그저 신과 악마가 내기를 했다는 사실뿐이었는데, 욥 본인보다도 기록 밖에서 이 모든 사정을 다 관찰하는 독자가 더 화가 날 정도입니다. 대체 욥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저런 사람을 상대로 저 장난을 친단 말인가? 악마야 본래 악마라고 쳐도, 신이 이 저열한 장난에 동조한다는 게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그래서 선생은 욥기를 읽어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분노를 돋운다고까지 솔직히 말합니다. 독자들이 선생의 글을 좋아하는 것도 이같은 솔직함이 잘 드러나서입니다. 

그런데 참척의 가장 교과서적인 예는 바로 신약의 복음서에 잘 나옵니다. 바로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의 경우(p70)인데, 이분은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 분입니다. 십자가형은 반역자, 살인자, 강도 들이나 받던 형벌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대체 무슨 죄를 지어 그런 상황에 처해야 했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그 모든 분노와 불만과 부정의 감정이 다 정화(p172)될 수 있습니다(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박완서 선생의 경지를 추측건대 그렇겠다는 생각입니다. 전 그렇게 착해질 자신도, 의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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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도 축복이다 - 고정관념의 세상에서 뜻밖의 축복 누리기
정재영 지음 / 이비락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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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다들 보기 좋다고 하며 동안이다 뭐다 해서 지나치게 외관을 꾸미는 노력을 요즘은 그리 좋게들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자기 나이대로 보이는 게 최고이며, 그에 따른 연륜이 멋지게 드러나 보이는 늙음이야말로 가장 축복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문평론가 정재영 선생이 쓴 이 책에는 그런 멋진 노화에 대한 유익한 상념이 담겼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렸을 때에도 이성(異性)에 대한 설렘, 반함 같은 감정이나 체험이 있을까요? 답이 "있다"라는 건 우리 모두 그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p41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어떤 여자애한테 반했는데, 외모가 예뻐서라기보다는(물론 예쁘기도 했겠지만) 풍금(당시에는 학급마다 풍금이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연주 솜씨가 뛰어나서였다고 합니다. 아마 초등학교 때 관악부에서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 앞에서 지휘를 하는 친구 등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좋아했던 기억은 다들 있겠습니다(물론 공부 잘하는 것 앞에 다 깨갱이지만 ㅋ). 

아닌게아니라 악기를 잘 연주하는 재주는 남자건 여자건 당사자를 매우 돋보이게 하는데, 중근세 유럽 왕실에서도 공주들에게 이런저런 악기 연주를 가르쳤습니다. 이상하게도 동아시아에서만 이런 솜씨를 창기들이나 익히는 것이라 하여 기피했죠. 아무튼 이 챕터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씀은, 나이 들수록 오히려 악기 연주 같은 것에 취미를 붙여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라는 겁니다. 그 활동은 첫째 창의적일 것, 둘째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어야 할 것, 셋째 여럿이 해도 좋지만 혼자서도 가능한 활동일 것 등입니다(p46). 너무 쉬운 건 금세 재미도 잃을 뿐 아니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안 되며(이 책에는 치매 관련 정보가 매우 많습니다), 나이 들면 인원이 잘 모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p114)는 일찍이 내 힘을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안달복달해 봐야 어차피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걸 걱정해서 대체 뭘 어쩌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저자의 부인께서 들려 주는 충고가 매우 현명하며, 에픽테토스를 능가하는(?) 통찰이 든 말씀이라서 우리들도 귀담아 새길 만합니다. 워런 버핏은 심지어, 집중할 수 있는 몇 가지만 빼고 다 버리라고까지 했습니다. 

늙는 게 딱히 서러울 필요가 없다는 게 저자의 말씀인데, 가장 젊고 아름다웠을 시절의 나는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성기가 있고, 걔는 그대로 박제된 채 또다른 내가 늙어갈 뿐이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말은 원래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박완서 선생이 했다고 나오네요(p164). 이런 생각을 연장하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작으나 크나 그래도 흔적을 남겼다는 게 큰 의의가 있으며, 보람 없이 살다가는 인생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누구나 소소하게라도 전성기는 있지 않았겠습니까? 

p179를 보면 노안(老眼)이 와서 상대의 외모 결점이 잘 안 보인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도 멋진 표현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대목을 잘못 읽고, 나이 들면 미남(미녀)이나 추남(추녀)이나 다 똑같아져서 차별이 사라진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老眼이 아니라 이건 老顔인 셈이죠. 명배우 故 찰스 브론슨은 젊었을 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하게 못생긴 개성으로 유명했는데 나이 들고는 그 중후함이 외모에 완전히 각인되어 여느 미남배우보다 훨씬 근사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 감각이 서서히 상실됩니다. 그런데 p204를 보면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라는 할머니(스페인 분)는 청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세상의 온갖 잡된 헛소리, 시비거는 못된 놈들의 음성이 귓전에서 싹 없어지니 그처럼 좋을 수가 없더라는 건데, 물론 이분의 경우 고가의 청각보조장치 덕에 의사소통에 불편이 적었다는 점도 감안은 해야겠으나 여튼 무슨 말씀을 하는지는 이해가 되지요. 세상만사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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