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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도 축복이다 - 고정관념의 세상에서 뜻밖의 축복 누리기
정재영 지음 / 이비락 / 2024년 11월
평점 :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다들 보기 좋다고 하며 동안이다 뭐다 해서 지나치게 외관을 꾸미는 노력을 요즘은 그리 좋게들 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자기 나이대로 보이는 게 최고이며, 그에 따른 연륜이 멋지게 드러나 보이는 늙음이야말로 가장 축복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문평론가 정재영 선생이 쓴 이 책에는 그런 멋진 노화에 대한 유익한 상념이 담겼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렸을 때에도 이성(異性)에 대한 설렘, 반함 같은 감정이나 체험이 있을까요? 답이 "있다"라는 건 우리 모두 그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p41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어떤 여자애한테 반했는데, 외모가 예뻐서라기보다는(물론 예쁘기도 했겠지만) 풍금(당시에는 학급마다 풍금이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연주 솜씨가 뛰어나서였다고 합니다. 아마 초등학교 때 관악부에서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 앞에서 지휘를 하는 친구 등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좋아했던 기억은 다들 있겠습니다(물론 공부 잘하는 것 앞에 다 깨갱이지만 ㅋ).
아닌게아니라 악기를 잘 연주하는 재주는 남자건 여자건 당사자를 매우 돋보이게 하는데, 중근세 유럽 왕실에서도 공주들에게 이런저런 악기 연주를 가르쳤습니다. 이상하게도 동아시아에서만 이런 솜씨를 창기들이나 익히는 것이라 하여 기피했죠. 아무튼 이 챕터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씀은, 나이 들수록 오히려 악기 연주 같은 것에 취미를 붙여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라는 겁니다. 그 활동은 첫째 창의적일 것, 둘째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어야 할 것, 셋째 여럿이 해도 좋지만 혼자서도 가능한 활동일 것 등입니다(p46). 너무 쉬운 건 금세 재미도 잃을 뿐 아니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안 되며(이 책에는 치매 관련 정보가 매우 많습니다), 나이 들면 인원이 잘 모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p114)는 일찍이 내 힘을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안달복달해 봐야 어차피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걸 걱정해서 대체 뭘 어쩌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저자의 부인께서 들려 주는 충고가 매우 현명하며, 에픽테토스를 능가하는(?) 통찰이 든 말씀이라서 우리들도 귀담아 새길 만합니다. 워런 버핏은 심지어, 집중할 수 있는 몇 가지만 빼고 다 버리라고까지 했습니다.
늙는 게 딱히 서러울 필요가 없다는 게 저자의 말씀인데, 가장 젊고 아름다웠을 시절의 나는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성기가 있고, 걔는 그대로 박제된 채 또다른 내가 늙어갈 뿐이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말은 원래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박완서 선생이 했다고 나오네요(p164). 이런 생각을 연장하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작으나 크나 그래도 흔적을 남겼다는 게 큰 의의가 있으며, 보람 없이 살다가는 인생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누구나 소소하게라도 전성기는 있지 않았겠습니까?
p179를 보면 노안(老眼)이 와서 상대의 외모 결점이 잘 안 보인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도 멋진 표현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대목을 잘못 읽고, 나이 들면 미남(미녀)이나 추남(추녀)이나 다 똑같아져서 차별이 사라진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老眼이 아니라 이건 老顔인 셈이죠. 명배우 故 찰스 브론슨은 젊었을 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하게 못생긴 개성으로 유명했는데 나이 들고는 그 중후함이 외모에 완전히 각인되어 여느 미남배우보다 훨씬 근사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 감각이 서서히 상실됩니다. 그런데 p204를 보면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라는 할머니(스페인 분)는 청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세상의 온갖 잡된 헛소리, 시비거는 못된 놈들의 음성이 귓전에서 싹 없어지니 그처럼 좋을 수가 없더라는 건데, 물론 이분의 경우 고가의 청각보조장치 덕에 의사소통에 불편이 적었다는 점도 감안은 해야겠으나 여튼 무슨 말씀을 하는지는 이해가 되지요. 세상만사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