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플랜3 - 전기차에서 AI, 우주를 담은 마스터플랜의 현주소
이진복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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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테슬라 하면 거품, 머스크 하면 광인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AT Kearney 소속인 저자 이진복 IT 전문 컨설턴트는 책날개에서 저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딱 저 같은 독자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테슬라는 이미 십 년 전부터 그 창립자 일론 머스커의 강력한 개성 덕에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중순 코로나 시국에 갑자기 테슬라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하고, 한국 증권사들이 미장에 개인들을 투자할 수 있는 채널을 개설하고 난 후에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테슬라 투자로 큰 수익을 봤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하지만 머스크 특유의 가벼운 처신, 언행 때문에 그의 동선을 좇다가 지치는 이들도 생겼고, 과연 이 기인의 비전과 인사이트, 전략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회의를 느끼는 쪽이 여전히 많습니다. 게다가 전기차 사업 자체가 캐즘(chasm)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현재 시장에서는 대세입니다. 저자는 이런 흔한 선입견에 대헤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왜 지금 테슬라社와 머스크에 주목하여 그 행로를 밀도 있게 살펴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설명합니다. 

지금이 12월인데, 책에서는 지난 10월 중순의 사정까지도 반영하니 꽤 최근의 정보가 담긴 셈입니다. 이때 머스크는 로보택시라는 서비스를 발표하여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p118에 나오는 설명대로, 승객에게는 낮은 요금, 차주에게는 높은 대여료 차징이 가능한 건 바로 인건비가 제로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은 자율주행(라이다)+로봇+전기차 등 테슬라社가 보유한 모든 첨단기술이 집약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가 이 모든 분야에서 이른바 초격차의 기술 우위를 보유했기에 시너지가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사이버캡이라는 운영체제로 이 모든 게 가능하다는 건데, 다만 항상 같이 제기되는 문제가 사고 위험 등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는 것입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현저히 낮아진 사고율 덕에, 기존의 어떤 보험사도 가능하지 않았던 수익 구조로 이 역시도 커버한다는 설명을 내놓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제 보험업에도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입니다. 

석유는 기적의 자원입니다. 등유, 경유, 휘발유에서 아스팔트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고 에너지 효율도 대단히 높습니다. 괜히 자동차 산업이 현대 경제의 총아가 아니며, 20세기 말 세계 제조업을 이끌었던 독일, 일본에서 세계 자동차 탑 메이커들을 이유 없이 보유했던 게 아닙니다. 한국도 반도체 하나만으로는 이 정도 규모의 경제가 유지될 수 없으며 자동차 산업이 함께 동력을 키워 줘야만 합니다. 아직도 휘발유로 돌아가는 기존 방식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게, 과연 전기차의 모터가 저 개솔린 엔진을 대체할 수 있느냐에 대해 여전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p145를 보면 머스크는 자사의 모터가 특별한 에너지 효율을 달성했다고 역설합니다. 세계의 운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마음 놓고 전기차로 넘어오라고 설득하여 캐즘을 확 줄이려면, 이 모터의 성능에 대해 확신을 줘야 합니다. 

몇 달 전부터 증시에서는 ESS 테마가 핫합니다. 2차전지도 그저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으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에너지 저장 매체 노릇까지 해 주기 때문에 기대를 받습니다. 테슬라는 ESS 쪽에서도 특별한 기술을 보유했다고 알려졌습니다(p229). 또 부품 자체를 대량으로 구매하므로 염가에 조달할 수 있어서 경쟁사들보다 원가가 덜 든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요즘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도 다른 방법으로 이점을 달성하므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또 테슬라는 AI 방면 기술이 탁월하여 이미 다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기 때문에 초격차를 유지한다고 나옵니다. 다만 이 팩터도, 중국 업체들이 자국 소비자들로부터 무지막지한 양의 데이터를 모아대는 중이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 볼 일입니다. 

시장을 개척할 때 문제 기반으로 시작하느냐, 아니면 반대로 솔루션부터 확보하고 반대로 문제를 찾느냐가 기업들의 고민입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은 자사가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이를 어디에 적용할지를 모색하여 시장을 개척합니다. 그런데 내 기술이 누군가에게 꼭 쓰여야 하는 건 아니며, 만약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기술을 완성했는데 아무데서도 상품성을 못 찾았다면 그대로 망하는 것입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이와 반대로 문제부터 먼저 정의하고 그에 걸맞은 무엇인가를 내놓으려 애썼는데 그게 바로 화성탐사입니다. 케네디 시절에는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가시적 업적을 내었다면, 요즘 미국에서는 스페이스X 같은, 필사적으로 런웨이(p261)를 늘리려는 혁신 기업들의 퍼포먼스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세계 최강국이 괜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며, 한국도 선진국으로 확실히 진입하려면 젊은 일론 머스크들이 출현하여 게임체인징을 과감히 시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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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파이썬(Python) 200제 - 2판
장삼용 지음 / 정보문화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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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의 대표격인 파이썬은 의외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만 최근 들어 특히 각광받습니다. 그 계기에 대해 저자께서는 연산 및 데이터 처리에 관한 라이브러리를 많이 갖춘 이 언어가 딥러닝 프레임워크의 기반으로 널리 쓰임에 따라 AI 개발에 특히 친화적임이 증명되어서라고 지적합니다. 책은 모두 22개의 챕터로 구성되었고, 비록 "초보자를 위한"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으나 파이썬의 핵심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슈가 다 커버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챕터들의 예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며 실력이 체계적으로 구축되도록 유도하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띕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본격적인 내용 설명이 이어지기 전 약어, 기호들의 해설, 파이썬 설치 과정 등도 초보자를 위해 하나하나 자세하게 풀어 줍니다. 모든 과정이 컬러 도판과 함께 안내되기 때문에, 객체지향 언어는 물론 프로그래밍에 대해 전혀 개념이 안 잡혀 있는 독자라 해도 아무 문제 없이 내용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이썬 라이브러리 외에도 요즘 많이들 쓰는 에디터인 주피터노트북, 비주얼스튜디오코드 등도 소개되며 이런 에디터가 하나는 있어야 무리없이 실습, 공부가 가능하겠습니다. 

자료형 크기를 확인하는 예제가 p20에 8번째로 나옵니다. 여기서는 len() 구문이 쓰이는데, 문자열, 리스트, 튜플, set 자료, 딕셔너리 등 다양한 경우에 그 크기가 출력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단순하고 당연한 과정인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자료형 확인을 위한 type()와 함께 정말 자주 쓰이므로, 파이썬을 나중에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단단히 다져 두어야 할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28에는 문자열에서 특정 문자열을 다른 문자열로 바꾸는 str.replace()가 다뤄집니다. 역시 프로그래밍할 때 자주 다루는 구문이며 파이썬 아니라 자바 관련 다른 언어에서도 눈에 익은 장치일 것입니다. 특히 팬더스에서 자주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페이지인 p129에 문자열 왼쪽을 0으로 채우게 하는 str.zfill()이 나오며, 이 둘은 특히 유기적으로 함께 기능할 때가 많으니 잘 익혀 둘 필요가 있습니다. p142에는 바이트 문자열을 유니코드 문자열로 변환하는 bytes.decode()가 나오는데, 페이지 하단에도 그런 설명이 나오지만 특히 우리 한국 유저들이 작업하면서 에러를 많이 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디코딩 통상의 에러보다 빈도가 더 높죠. 

특히 제가 이 책을 공부하며 유익하게 학습하고 몰입해서 풀어 본 파트가 제12장 딕셔너리 파트였으며, 그 중에서도 105번 딕셔너리에서 값 추출하기, 109번 요소 추가하고 값을 얻기 레슨이 쫄깃쫄깃한 설명 덕분에 내용이 쏙쏙 머리에 잘 들어왔습니다. 셀 105-2는 키가 수치 자료인 경우 딕셔너리에서 값을 추출하는 예제 코드로 제시되었는데, 여기서 ASCII 코드 97이 문자 a에 대응한다는 점 깜빡 잊지 않아야 하겠네요. 또 딕셔너리에 없는 키로 값을 추출하려 들면 KeyErrror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도 저자는 부기해 두었습니다. 

제14장은 클래스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렇게 객체지향언어와 라이브러리를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클래스, 메서드 개념을 혼동하는 경우를 봅니다. p196은 보기 좋은 다이어그램과 꼼꼼한 서술을 통해 클래스 관련 거의 모든 개념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진짜 이런 친절한 설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헷갈린다면 아예 파이썬이나 자바 공부를 그만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p208 이하에 나오는 클래스 상속에 대한 설명은 정말 최고입니다. 속이 뻥 뚫리는 끝판대장 설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의도치않게 버그를 남기는 대목이, 15장 이하에서 설명되는 예외처리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p219에 자주 발생하는 예외들을 정리한 표가 나옵니다. 파이썬뿐 아니라 프로그래밍 일반, 나아가 전선학 전반에 걸쳐 저 예외처리만 잘 마스터되면 과제의 칠부능선을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사람 애를 먹이곤 하는 데가 바로 파일 열고 닫기인데, p236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었습니다.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중급자 이상도 다시 생각을 정리할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유익한 교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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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트레이더의 주도주 매매법 - 지금 가장 뜨거운 종목에 투자하라!
서희파더(이재상) 지음 / 이레미디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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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책 저자께서는 (책 제목에도 나오듯) 주도주 매매 기법을 지론처럼 강조해 온 분입니다. 유튜브채널 더트레이딩TV는 구독자가 6만 5천에 가까운데, 많은 이들이 그의 "주도주 매매" 원칙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주도주 매매는 물론 이 저자분만이 주장하는 기법은 아닙니다만(예를 들어 토마토의 김 모 운용역이라든가), 저자의 채널을 보면 다양한 상황 하에서 자신이 대처하며 개발해 온 여러 구체적인 기술들이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주식 매매는 철저히 "기술"이므로 기술만 확실히 익혀 거래에 임하면 월천 아니라 월억이라도 안 될 바 없다는 게 그의 자신감 넘치는 토로입니다. 또 단기 투자와 스캘핑은 다르며, 자신이 주 기법으로 삼는 건 잦은 매매가 아니라 주도주 중심의 단기 매매라고 강조합니다. 주도주가 아니면 , 비록 과다낙폭이 보였다거나 눌림목이 감지되어도 쉽사리 들어가지 않는 게 원칙인데, 이렇게 하면 개별 케이스에선 아쉽게 수익을 놓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몇 년 혹은 십여 년 동안 일관된 원칙 하에 매매하면 결국은 실보다 득이 많겠다는 생각이 독자로서 들었습니다. 

그럼 대장주는 무엇인가? p58을 보면 역시 이 저자답게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상승 이유가 있을 때, (섹터 안에서) 가장 먼저 상한가에 드는 종목"입니다. 이어서 2023년 당시의 상황이 회고되는데, 로봇 섹터의 대장주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엔비디아 관련으로는 MDS테크, 리튬 테마에서는 금양 등이 상승을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엔비디아 테마에서는 현재 이수페타시스로 대장주 지위가 바뀌었다고도 덧붙이는데, 제가 독자로서 마음에 들었던 게 바로 이런 점들입니다. 실전 매매의 달인답게 서술이 구체적입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금양이나 이수페타시스나 지금 좀 비슷한 이유에서 어렵습니다. 

p103을 보면 저자가 2020년 코로나 시국에서 어떻게 큰 수익을 보았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이 설명됩니다. 저자에 따르면 몇 년에 한 번씩 큰 테마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테마가 상승의 기미를 보이면 바로 탑승해야 하며 그 타깃은 주도주라야 한다는 골자입니다. 주저주저하다가 정점에 이르러서야 들어간다면, 수익을 적게 보는 것은 물론 잘못하면 그 고점에 물려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른바 대왕고래테마는 요 며칠 사이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진입을 자제해야 할 듯합니다. p116를 보면 주도주와 대장주의 미세하게 갈리는 뜻(저자의 정의)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게 말은 쉬워도 실전에 마주해서는 과연 어디가 무릎인지 어깨인지 판단이 어렵습니다. p105를 보면 저자가 2017년 10월, 한중통화스왑 연장 소식을 듣고 아모레퍼시픽 매수를 고민하던 때의 매매일지가 인용됩니다. 저자는 이게 호재라고 생각하고 호가창을 계속 보았으나 특별한 움직임은 없고, 외인이 파는 대신 기관은 사는 게 보였으며, 저점과 고점을 살피니 들어갈 만은 하다고 여겨졌지만 확신까지는 들지 않아서 결국 1500주 매수에 그쳤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매매를 해 본 이들은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저때 27만원 정도였으므로 대략 4억원쯤 되는 매매대금입니다. 

p137을 보면 상한가따라잡기의 장점이 나옵니다. 상한가를 이미 기록한 종목에 들어가면 물론 위험 요소도 있습니다. 동력이 약할 경우 기 보유자들이 대거 수익 실현에 나설 수 있고 잘못하면 고점에 물립니다. 그러나 특정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했다는 건 이미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는 것이고, 제법 많은 경우 연속으로건 혹은 잠시 간격을 두고 나서건 다시 상승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한가 따라잡기를 해 보면, 돈의 흐름을 이해하며, 종목의 특성도 파악할 수 있고, 선택과 집중 전략의 진정한 장점이 무엇인지도 체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상매매라 함은 전일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을 매매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책의 chapter4가 전상매매의 구체적 사례들에 할당되었습니다. p206을 보면 대장주인지 아닌지를 먼저 살피고, 악재가 설령 발생했다 해도 이게 본질적인 악재인지 아닌지도 따져 보고, 아니라면 과감하게 들어가라고 충고합니다. 2024년 4월에는 다들 기억하듯 송배전 테마가 시장의 큰 주목을 받았는데 p202 이하를 보면 당시에 있었던 저자의 대원전선 매매 구체적인 기록이 나옵니다. 원래 저자의 주특기는 단기매매입니다만 제5장은 자주 시세를 볼 수 없는 직장인들을 위해 스윙매매법에 따로 배정되었고, 부록에는 테마주 일람도 나옵니다. 수요일에 정치인 테마주가 스무 개 넘게 상한가에 올랐는데 이 책에는 그 목록도 정리되었으므로 관심 있는 이들은 읽어 볼 만합니다. 보통 정치인 테마주는 하지 말라고도 하는데 저자분의 주도주 매매법에 충실히 따라도 과연 수익이 잘 날지 시도해 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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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하늘길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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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형입니다. 흑산도 앞바다의 다양한 어류를 주제삼아 사전을 저술한 인물로 우리는 그의 이름을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만 그런 명저가 어떤 배경에서 완성될 수 있었는지 깊이 있게 알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전남 장흥 해산토굴에서 실거주하며 구도의 삶을 살다시피 한 한승원 선생의 역작입니다. 장흥은 남해안이고 흑산도는 서해안이므로 거리는 좀 떨어져 있습니다만 다도해로 이어진 두 고장의 정취가 적잖이 닮은 바도 있으므로, 이백년 전 외딴 섬에 유배 온 고독한 선비의 삶이 어떠했을지를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실감나게 재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장성호는 손암(巽庵)에게 학문의 의의에 대한 질문을 듣고 제 나름의 생각한 바를 아룁니다. 남인 명가에 태어나서 우수한 두뇌로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그로서는 이 상민인 장가 녀석이 짧은 지식으로 주절주절 떠드는 품이 가소롭기도 했을 것입니다. 증광별시에서 일위로 합격(p64)한 그가 어떤 심경으로 아랫것의 변설을 들었을지야 우리 독자들도 짐작이 갑니다. 마치 음욕에 미친 노파가 방송 강좌 몇 줄 주워듣고 천하 이치를 통달했다는 듯 안하무인으로 설치는 꼴을 보는 듯 말입니다. 허나 장씨 성 가진 아랫것의 심성에 어떤 허세 따윈 없습니다. 이를 손암도 모르는 바 아니며, 자신의 현 처지가 워낙 불편하니 별의별 언사가 다 심경에 파란을 일으킬 뿐입니다. 

"간장은 신성함으로 돌돌 뭉쳐진 것이었다(p114)." 명가, 종가에서는 장 하나 김치 하나도 예로부터 소중히 전해 온 비결과 내력이 있습니다. 영양 성분의 문제라기보다,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생각하는 마음씀과 정성이 그 안에 담겨 전해 올 뿐입니다. 장 종지의 신성함이 후원 소재 사당에까지 비견됩니다. 그런 명문가에서 자란 손암이, 이곳 바람 차고 척박한 오지에서 거친 밥을 먹으며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뜬금없이 찾아와 "나리를 사모했다"며 시중을 드는 거무의 손길도 무덤덤하게 여겨졌을 만합니다. 그런데 현대 독자에게 이 장면은 다분히 남성 우월적 사고의 소산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허적(虛寂). 손암은 마음이 답답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가도 선비다운 수양의 힘으로 자세를 다잡습니다. 충동대로 몸과 마음을 휘두르는 자는 배운 바가 짧고 천성이 비천해서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이장 윤강순은 손암의 앞에서는 온갖 아첨을 하며 과장되이 악전의 수완을 칭찬하지만 뒤에서는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모릅니다. 아부 끝에 주역과 천주학의 이치에 대해 묻는데(p172), 약전은 벌써 이 작자가 말에 살을 찌워 윗선에 고해 바칠 심산인 걸 눈치챕니다. 태생부터가 악질의 종자를 타고났기에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부렁이요 모함이며 남의 불행을 통쾌해하는 못된심사로 가득합니다. 이런 자는 그 손자에까지 앙화와 저주가 내릴 만합니다. 그런 걸 두고 천벌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어느 밤 훨훨 날아가서 강진의 아우를 만날 수 있을 텐데(p205)." 지느러미가 마치 날개처럼 발달하여, 익숙지 않은 눈에는 마치 물고기에 날개나 달린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옥문은 손암에게 고기의 이름이 날치라고 알려 주고, 거무는 저도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니 살려 주라고 부탁합니다. 이 와중에 장성호는 대흑산도 모래마을 학동들을 모아 "좌랑어른"을 스승으로 모실 준비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배움은 역시 학문의 정수를 맛본 이를 통해야 제격이며, 다만 천성이 악하고 불성실하며 머리도 우둔한 천것은 반드시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창대, 작은이, 삼돌이... 약전 주변에서 알게모르게 도움을 주며 손암 같은 지사가 못된 자들의 흉계에 빠져들지 않게 돕는 이들은 선량한 민초(民草)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장 김부칠은 같은 직함이라도 저 악독한 윤강순과는 천지차이로 처신이 다릅니다. 험한 벽지 흑산도 자체를 권력자의 거대한 폭압 도구처럼 접했다가 이곳 자연의, 또 사람의 성정과 기어이 화합하여 대자연과 하나가 된 채 마침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정약전의 고요한 듯 치열한 삶을 보며, 섬이면서도 섬이 아닌 개인의 집념과 달관에 대해 깊이 상량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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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이랑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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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고전입니다. 이렇게나 모던하고 생기발랄한 캐릭터들이 무려 200년도 전에 창조되었다니! 배경만 약간 손질하면 21세기 지구촌 어느 부유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로코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 이런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사회 풍속이 일찍이 그 시대에 현실을 방불케 하며 펼쳐질 수 있었다는 게, 벌써 영국이라는 문명사회가 세계적 스케일에서의 승리자였다는 여실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시간과공간사 판을 보면 다섯 자매의 어머니는 막내 리디아를 두고 "피부가 곱고 인상이 좋으며... 왕성한 혈기와 타고난 일종의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딸로 여긴다는 구절이 있습니다(p67:13~16). 이처럼, 어떤 부모에게도,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밖에 내세워서 뿌듯한 딸이 있는가 하면 제발 벽장 속에 숨어 좀 안 나왔으면 하는(요즘 유행하는 말로 "수납되었다"고 합니다) 창피한 딸이 있기 마련이죠. 우리가 익히 알듯 제인은 바로 손아래인 엘리자베스를 리지라고 곧잘 부르는데, 이 번역판에서는 편지 등(p47)은 다른 폰트로 처리하여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청혼이 거절된 데 대해, 콜린스는 그 멍청한 성품이 당연히 보일 법한 반응이지만 매우 당황스런 기색입니다. 베넷 부인은 여튼 이 조건 좋은 신랑감을, 어떤 딸을 줘서라도 잡고는 싶은 심정이기에 그의 자존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베넷 부인에 대해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그 퍼스트네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내내 "베넷 부인"이기만 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베넷 부인은 이 시기 영국 중산층 주부 표준, 상징에 가까우므로 구태여 이름이 나올 필요도 없긴 합니다. 

"차남은 결혼도 마음대로 못 한답니다.(p236)." 피츠윌리엄 대령(백작의 차남. 다아시와는 동명이인처럼 보이지만 이 사람한테는 성씨죠. 인척이니 우연은 아닙니다)의 푸념입니다. 다아시는 비록 부유하긴 하지만 귀족 신분까진 못 되고, 애써 그 점을 숨길 생각도 아닌지(이런 점이 그의 성격 중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죠) 다소 거칠고 직선적인 매너(p245)를 종종 드러냅니다. 여기서 피츠윌리엄 대령이 다아시라 부르는 사람은 물론 남자주인공 그 사람입니다. 빙리를 가리켜 a great friend of Darcy's라고 하는데, 친척을 향한 살짝 부러움 같은 감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과연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베넷 가문 사람들에 대해, 자기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폄하하는 언사를 내보입니다. 이러니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경솔한 처신이 그에게 빌미를 주었나 하는 생각에 반성과 자책감(p264)을 표현하며 언니 제인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솟습니다. 대단치는 않아도 여튼 당대 영국 중산층 출신답게 가문의 명예도 챙기려는 의도이며 동시에 자연인으로서 친혈육인 언니에게 느끼는 애정을 표출하는 대목입니다. p271에서도 엘리자베스의 이런 감정은 반복적으로 표출됩니다. 

딸이 많으니 많은 돈을 막내에게 물려줄 수 없는 베넷 씨의 착잡한 심경이 제인, 엘리자베스 등과의 대화(p366)에서 잘 드러납니다. 위컴같이 돈 한 푼 없고 빚만 가득한 형편없는 사내에게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줘야 할 그 아픈 마음이 지면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듯한데, 그래도 예비 사위(?)를 두고 지나친 평가절하는 하지 않으려는 그 신사다움과 인격은 여전합니다. 이 양반 역시 당대 영국 향신, 중산층의 전형입니다. p383에는 일찌감치 시집을 가는 리디아(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딸이 이런 집안에 태어날 수 있죠?)가 언니들에게도 신랑감을 얻어 주겠다고 하자, 네 방식으로 남편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엘리자베스의 통박이 나옵니다. 아주 우스운 대사입니다. 

콜린스는 마지막까지 바보 같은 말을 들먹이며 베넷 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는데 이게 다 통제불능 막내딸의 미친 폭주 때문이므로 아빠나 엄마나 언니들이나 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다아시의 시원시원한 결단은 베넷 집안의 많은 문제들을 그나마 봉합했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음을 잘 돌려 해피엔딩을 짓기 때문에 그나마 독자의 마음이 덜 불편하게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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