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이랑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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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고전입니다. 이렇게나 모던하고 생기발랄한 캐릭터들이 무려 200년도 전에 창조되었다니! 배경만 약간 손질하면 21세기 지구촌 어느 부유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로코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 이런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사회 풍속이 일찍이 그 시대에 현실을 방불케 하며 펼쳐질 수 있었다는 게, 벌써 영국이라는 문명사회가 세계적 스케일에서의 승리자였다는 여실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시간과공간사 판을 보면 다섯 자매의 어머니는 막내 리디아를 두고 "피부가 곱고 인상이 좋으며... 왕성한 혈기와 타고난 일종의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딸로 여긴다는 구절이 있습니다(p67:13~16). 이처럼, 어떤 부모에게도,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밖에 내세워서 뿌듯한 딸이 있는가 하면 제발 벽장 속에 숨어 좀 안 나왔으면 하는(요즘 유행하는 말로 "수납되었다"고 합니다) 창피한 딸이 있기 마련이죠. 우리가 익히 알듯 제인은 바로 손아래인 엘리자베스를 리지라고 곧잘 부르는데, 이 번역판에서는 편지 등(p47)은 다른 폰트로 처리하여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청혼이 거절된 데 대해, 콜린스는 그 멍청한 성품이 당연히 보일 법한 반응이지만 매우 당황스런 기색입니다. 베넷 부인은 여튼 이 조건 좋은 신랑감을, 어떤 딸을 줘서라도 잡고는 싶은 심정이기에 그의 자존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베넷 부인에 대해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그 퍼스트네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내내 "베넷 부인"이기만 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베넷 부인은 이 시기 영국 중산층 주부 표준, 상징에 가까우므로 구태여 이름이 나올 필요도 없긴 합니다. 

"차남은 결혼도 마음대로 못 한답니다.(p236)." 피츠윌리엄 대령(백작의 차남. 다아시와는 동명이인처럼 보이지만 이 사람한테는 성씨죠. 인척이니 우연은 아닙니다)의 푸념입니다. 다아시는 비록 부유하긴 하지만 귀족 신분까진 못 되고, 애써 그 점을 숨길 생각도 아닌지(이런 점이 그의 성격 중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죠) 다소 거칠고 직선적인 매너(p245)를 종종 드러냅니다. 여기서 피츠윌리엄 대령이 다아시라 부르는 사람은 물론 남자주인공 그 사람입니다. 빙리를 가리켜 a great friend of Darcy's라고 하는데, 친척을 향한 살짝 부러움 같은 감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과연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베넷 가문 사람들에 대해, 자기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폄하하는 언사를 내보입니다. 이러니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경솔한 처신이 그에게 빌미를 주었나 하는 생각에 반성과 자책감(p264)을 표현하며 언니 제인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솟습니다. 대단치는 않아도 여튼 당대 영국 중산층 출신답게 가문의 명예도 챙기려는 의도이며 동시에 자연인으로서 친혈육인 언니에게 느끼는 애정을 표출하는 대목입니다. p271에서도 엘리자베스의 이런 감정은 반복적으로 표출됩니다. 

딸이 많으니 많은 돈을 막내에게 물려줄 수 없는 베넷 씨의 착잡한 심경이 제인, 엘리자베스 등과의 대화(p366)에서 잘 드러납니다. 위컴같이 돈 한 푼 없고 빚만 가득한 형편없는 사내에게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줘야 할 그 아픈 마음이 지면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듯한데, 그래도 예비 사위(?)를 두고 지나친 평가절하는 하지 않으려는 그 신사다움과 인격은 여전합니다. 이 양반 역시 당대 영국 향신, 중산층의 전형입니다. p383에는 일찌감치 시집을 가는 리디아(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딸이 이런 집안에 태어날 수 있죠?)가 언니들에게도 신랑감을 얻어 주겠다고 하자, 네 방식으로 남편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엘리자베스의 통박이 나옵니다. 아주 우스운 대사입니다. 

콜린스는 마지막까지 바보 같은 말을 들먹이며 베넷 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는데 이게 다 통제불능 막내딸의 미친 폭주 때문이므로 아빠나 엄마나 언니들이나 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다아시의 시원시원한 결단은 베넷 집안의 많은 문제들을 그나마 봉합했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음을 잘 돌려 해피엔딩을 짓기 때문에 그나마 독자의 마음이 덜 불편하게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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