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페이스
R. F. 쿠앙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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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상상력, 여태 백인 문화권이 일궈놓은 모든 문학적 성취를 기발하게 비웃고 뒤틀어놓으며, 헌정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을 현란한 말빨로 (영어권) 독자들의 혼을 빼놓은 MZ 작가 R F 쿠앙의 최신작(작년 출판)입니다. 이 책 앞날개에도 그녀의 출세작 <양귀비 전쟁>이 잠시 언급되었는데 그걸 쿠앙이 스물두 살 때 쓴 겁니다(이 작품 중 p166 하단도 참조) . 우리 나라에서는 저 <양귀비...>가 마치 노빅의 테메레르 시리즈처럼 청소년 판타지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도 있는데, 그렇게 읽을 수도 있으나 쿠앙의 책은 더 중층적인 독해가 가능하다는 점이 다릅니다. 쿠앙의 작품들을 그리 대접해도 된다는 점, 이 <옐로페이스>가 증명했다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쿠앙의 성씨는 한자로 匡(광)이라고 쓰는데 송 태조 조광윤의 휘 일부와 같습니다. 참고로, p208에 키큰양귀비 증후군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출판은 느리게 진행된다(p60)." 예나 지금이나 출판 산업의 생리가 그러한 듯도 합니다. 출판 산업은 엔터테인먼트업계만큼이나 대단한 모험 산업이고, 출판사가 관리하거나 컨택하는 여러 작가들은 마치 연예계의 가수나 배우처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자산이자 골칫덩이들입니다. 여기에, 21세기 들어 각종 뉴미디어, 개인 소셜 계정 등이 등장함으로써 업계 경영자들이 고려에 넣어야 하는 변수는 훨씬 많아졌습니다. 

p61에는 대단히 속물적 어조로 1인칭 화자 준 헤이워드가 언제나 신경 쓰는(지가 왜?) 메이저 5대 출판사가 언급되는데 버젓이 현실에 존재하는 곳들을 실명으로 저리 늘어놓는 태도가 뻔뻔스럽습니다 ㅋ 사실 더 웃긴 건, 이 작품이 아테나 리우와 주인공과의 관계를 마치 디키 그린리프와 톰 리플리의 그것처럼 설정했는데, 누가 봐도 아테나가 작가 쿠앙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소수 인종 출신이 백인 스타를 언제나 선망하는 처량한 신세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흠. 

"아마존이나 굿리즈(Goodreads.com)는 물론이고... 하트가 쌓이는 걸 보니 출간일에 늘 그토록 원했던 세로토닌이 넘쳐흐르는 느낌이었다(p113)." 이런 게 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발랄하게 움직이되 최소한의 체면이나 무게는 잡으려 들었던 출판계나 작가들한테서 상상 못 했던 분위기입니다. 굿리즈에는 물론 좋은 리뷰도 많으나 자극적인 언사를 써 가며 주목만 받으려 들거나 아예 리뷰 등록의 의도가 의심되는 출판 홍위병 같은 유저도 있습니다. 하트고 뭐고 작가나 편집인이 과연 이런 데까지 신경을 쓰는 게 맞는지, 이래서야 참된 시대정신이 현창되는 걸작, 세월의 풍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명작이 나올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미스 사이공>은, 마케팅 용어로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며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됩니다. 그런데 코믹하게도 p178에서는  "조지타운에 있는 한 베트남 커피숍"에서 서빙하는 메뉴(커피)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참고로 작가 쿠앙은 조지타운대 출신인데 실제로 학교 근처에 이런 커피숍이 있지 않았겠냐고 독자인 제가 멋대로 짐작해 봅니다. 아, 아무튼 이 장면에서도 확인 가능한 것처럼, 마치 패리스 힐튼을 쫓아다니며 유명한 걸로 유명하던 킴 카다시안이 진짜로 셀럽이 되었듯, 준 헤이워드도 도둑질(참고로, 펄 벅의 <대지>에서 주인공 왕룽도 처음에 우연한 도둑질로 부자가 되었더랬죠)로 이제 스타덤에 올라섭니다. 그러나 악플러의 괴롭힘 등 셀럽 오서의 불쾌한 숙명 역시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p308의 캔슬 컬처 역시 좌우 불문 심각한 악습입니다. 

한국의 전상국 작가가 쓴 풍자적 단편 <달평씨의 두번째 죽음>의 내용도 그렇지만, 대중의 관심이나 호기심, 인기란 대단히 변덕스럽고 무상한 것입니다. 셀럽이나 셀럽호소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이제 내 밑천이 바닥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없는 말도 지어내어서, 예를 들어 내가 성희롱을 당했다 성범죄의 피해자다 어떻다 하며 아예 스토리를 날조해 대는, 빤한 작태의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죠(p381에 약간의 반전이 있을 듯도 한데...). 자, p285에서는 드디어 충격적인 실상이 드러납니다. 도둑계의 상도덕 1번은 장물을 또 훔치지 않는다는 거라는데(물론 그런 건 있지도 않습니다), 글쟁이라는 사람들이 알고보니 그 직업윤리가 도둑만도 못했던 거죠. 이제 준 헤이워드는 원죄의 사함을 받은 것일까요? 

"훔치려면 좀 나은 걸 훔쳤어야지!(p362)" 음식점 사장님들도 별 한 개짜리 리뷰만 보면 미치기 직전까지 간다는데 아마존 자기 책에 ★가 융단폭격된 걸 보면 게슈탈트가 녹아내리겠죠. "준 헤이워드는 반드시 속죄해야 한다." 어디, 참회의 AV라도 찍으라는 걸까요?(백인 장르도 있습니다) p363에 본문 중 설명으로도 나오지만 미디엄닷컴이라는 출판 플랫폼이 실제로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국작가 백용운의 <상두놀이>라는 작품을 리뷰했었는데, 그 작품의 플롯도 살짝 생각났습니다. "뒤에 땅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허공이었다.(p427)" 출판계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국면이, 알고보면 이와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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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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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搜査)의 달인인 수사(修士). 우리말로는 묘하게 동음이의어 구조를 이루는 두 단어가 모두 이 주인공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캐드펠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박학하고 침착한 지성인의 전형입니다만 그 불타는 정열만큼은 최대한 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생의 순결을 서원하고 베네딕토 회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폐쇄된 공동체를 이루며 오로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명하고, 청빈과 지식 정리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의 모임치고는, 암투와 경쟁, 모함, 야망 등으로부터 기인한 복잡다단한 정치 싸움 때문에 그리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노르만 인은 일광이 길지 않은 추운 고장에서 내려와 유럽 곳곳에 세력을 뻗쳤습니다. 프랑스 북서쪽에 거하던 노르망디 공 윌리엄은 브리튼 섬의 혼란을 틈타 해협을 건너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새 왕조를 열었습니다. 영어에 침투한 고급 프랑스어 어휘는 대부분 이때 들어온 것입니다. 시리즈 3권 서두에 잠시 언급될 스티븐 왕과 마틸다는 비생산적인 싸움을 벌이다 결국 노르만 왕조의 문을 닫는데, 이 1권 p16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콜롬바누스 수사(고위 성직자의 길을 통해 출세의 우회로를 닦는)는 그 노르만 귀족의 혈통을 이어받아 훤칠한 외모에 튼튼한 체격이 돋보이는 인물입니다("야심가들은 수도복을 입고서도 엄청나게 출세를 한다잖아요[p236]"). 이처럼, 수도원에 들어온 인물들의 동기는 모두 제각각이며 생김새나 기질, 특기도 천차만별입니다. 

"농노가 자유민을 때리면 손목을 자르게 되어 있습니다.(p84)" 중세 신분제 사회가 배경이라 이처럼 비인도적 비합리적 인습도 도처에 가득합니다. 3권에서도 장원의 각종 비밀을 요긴하게 캐드팰에게 알려 주는 역이었던 앨프릭의 신분도 역시 농노였습니다. 여기에, 수천 년을 두고 이어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항쟁 대립상도 여전하며, 떠돌이 베네드와 쇼네드 리샤르트 사이의 사랑도 갖가지 악폐가 낳은 장애물 때문에 순조롭게 풀리지 못합니다. 캐드펠 등이 던져진 중세 영국은 이런 사회입니다. 이 와중에 리샤르튼는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됩니다(p128). 

잘 짜여진 추리소설은 일단 시신을 둘러싸고 그 위치, 자세, 주변 환경(밀실이라든가)에 대한 세팅이 무척이나 정교합니다. 이 사람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이 모습으로 죽을 수 없었을 텐데... 사실 누군가를 범인으로 정하려면 구태여 죽음(살인)의 매 단계를 물리적으로 소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2011년 경북 문경에서 일어난 십자가 살인사건의 경우도, 검경이 재판에서 밝힌 사건의 경위가 모두에게 납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명탐정은 일단 상식선에서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접근합니다. 이 의문이 풀리는 과정에서 진범의 정체도 자연스럽게 큰 단서를 노출합니다. "어떻게 얼굴을 바닥으로 한 채 쓰러지셨을까요?" "바로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지."(p190) 

카이, 아네스트나 쇼네드나 보통내기들이 아닙니다. 부수도원장 로버트나, 콜롬바누스 수도사는 이들 캐드펠의 동맹군들과 곳곳에서 부딪힙니다. 아무래도 영혼의 빛깔이 다르다보니 별것아닌 계제에서도 뭔가 서로를 밀어내게 되나 봅니다. "꼭 위니프리드 성녀가 자기 것이나 되는 양 큰소리를 치더라구요.(p275)" 성녀 위니프리드에 대해서는 p349에 후주로 설명되는데 은근히 이 작품 안에서 인문적으로 중요한 함의을 지니게 됩니다. 존 수사는 과연 집행관의 마수를 피해 신변의 안전을 꾀할 수 있을까요? 

"열정 앞에, 격식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뼛속까지 웨일즈인인 여자였다.(p298)" 캐드펠(혹은 전지적 화자)이 쇼네드를 두고 내린 평가이며 우리 독자들도 그녀의 행보에 대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중세적 억압도, 혹은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전개된 역사의 흐름도, 소수 종족의 자존과 개성을 끝내 말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그 민족혼의 불씨를 살려 새 발전의 발판으로 마련합니다. 압제는 항쟁을 짓누를 수 없고, 거짓과 흉계는 진실의 불빛을 폐색할 수 없음을 명탐정 캐드펠은 화려하게 증명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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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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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중세 문화의 전반적 수호자, 지성인 노릇을 했던 가톨릭 성직자들의 제복 중 두부 착용 파트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 책 p73에 나오듯 약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야 약초가 따로 있는 법이지, 아무리 약초라도 그로부터 특정 성분만 고순도로 정제해 낸다면 바로 독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p38].") 주인공 캐드펠 수도사는 약학 지식에 매우 능한데,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장크트벤델 출신 세베리노 수도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의 캐드펠은 사실상 detective이기 때문에, 구태여 <장미의 이름>에서 누구를 매칭시키자면 단연 배스커빌의 윌리엄이겠습니다. 

옛 여인을 만나는 일은 당연히 설렙니다. 보넬 가에 재취한 마님에 대한 이야기를 메이리그로부터 들을 때만 해도 캐드펠은 세상이 그렇게 좁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보넬 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아무래도 변사체로 간주해야 할 그의 시신을 누군가에게 검시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장원에서 캐드펠을 소환했을 때, 캐드펠은 바로 이 댁 여주인이 과거의 그녀임을 알아챕니다. 반면 레이디 보넬은 그를 일단 알아채지 못한다고 나오는데, 본래 남자란 세상의 모진 풍상을 겪으면 그 영혼이 열두 번도 넘게 변합니다. 그저 세파에 찌들어(작품에서는 그가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고 나옵니다) 노화를 겪어서가 아닙니다. 반면 안정적인 가정에서 조용히 육아와 가사에 몰두해 온 여인이라면 그 정신의 빛깔이 대체로는 그대로입니다. 동창회에서 "너 참 안 변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 타입이죠. 

p88에 나오는 행정관의 냉정한 말을 보십시오. 그는 여태 자신이 처리해 온 숱한 사건들의 어떤 패턴에서 벗어나는, 간교한 범죄자의 예외적인 동기와 수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수도사님의 해박함은 그 용의자의 체포, 자백 앞에 구태여 필요 없는 것이 될 겁니다." 중요한 건 행정상의 편의, 당국의 권위 확립, 공포를 통한 가짜 평화의 회복 같은 게 아닙니다. 무엇이 진실이며, 간악한 범죄가일시 파괴한 정의를 회복하는 게, 주님의 명분이건 세속의 이익을 위해서건 지상의 과제일 텐데, 행정관은 자신의 인간적 양심을 배반하면서까지 힘으로 진실을 덮으려 듭니다. 캐드펠은 이런 자들의 역겨운 행태를 여태 지겹도록 겪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에서 식료계 담당이었던 레미지오 수도사의 직분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가 이 작품의 페트러스입니다. 물론 그 개성은 사뭇 다른데, 레미지오 수도사는 그 작품에서 특별한 동기를 지니고 제법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죠. 여기서 페트러스는 다혈질에 괄괄한 성격으로 세팅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이름이 같은)의 실제 개성과도 닮았습니다. p138에도 나오듯, 캐드펠은 사실 페트러스와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광신, 광신... 그 대상이 종교이건 신념이건, 일단 사람이 광신에 빠지면 세상을 흑과 백 둘 중 하나로만 몰아넣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공동체는 문제가 생겼을 때 올바른 방법을 모색할 능력을 상실합니다. 

자신의 물건을 훔칠 수도 있을까요? 말만 들었을 때 너무도 이상하여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싶어도 법학은 기묘한 가능성의 향연을 전개하기도 하는지라 이게 현실에서도 제법 높은 빈도로 일어납니다. 캐드펠은 성인치고(또 그가 겪어온 삶의 치열함을 감안할 때) 다소 키가 작은 편이나, 자신이 루퍼스의 주주인라고 외치는 소년은 해당 말을 결코 훔치지 않았음을 좌중과 캐드펠에게 납득시키는데 그의 미묘한 설득력는 맑은 눈빛, 남달리 큰 키 등에서도 조금은 비롯하지 않나 짐작합니다. 그 말은 레이디 보넬의 것일까요? 또 이 소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람 하나만 잡아들이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던 사건이, 알고보니 당초 예상대로 흘러가는 구석이 대체 없습니다. 

중세가 암흑의 시기라는 건 그저 종교의 압제가 과학적 지성을 질식시켜서가 아니라, 이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범죄, 질서의 교란이 그저 권위자의 전단만으로 미봉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보넬 같은 유력자의 생명도 이처럼 음모와 착각에 의해 진상이 오도될 뻔했는데, 아무 힘도 없는 민초의 운명이야 얼마나 하찮게 희롱되었겠습니까? 비뚤어진 분노, 질시의 폭발이 마치 정의감의 발로인 줄 착각하는 어리석고 사악한 무리들의 의도를 보기좋게 꺾어버리는 게 캐드펠의 지혜와 용기입니다. 어둠이 빛을 결코 이길 수 없듯, 캐드펠의 방대한 지식과 명철한 판단력이 악에 기생하는 숱한 음모꾼들의 추한 시도를 그 근원부터 박멸하는 과정이 통쾌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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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I 보안 전략 - 일찍 시작하고 끝까지 지키는 안전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필수 방어 기술
콜린 도모니 지음, 류광 옮김 / 정보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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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I는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약자입니다. p6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API는 공격자들에게도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말은, 대략 15년 전부터, 라이브러리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이처럼 중간단계를 두어 개발상의 여러 편의를 도모하는 API 시스템이, 그 누구보다 개발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더랬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API라는 게, 마치 전에 없던 새 시대를 연 듯(일부 사실이지만) 폭발적 호응을 얻었던 게 대략 15년 전이라는 뜻이죠. 그러나 저 구절에서도 보듯, 섬뜩하게도 API는 공격자, 즉 해커들에게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타겟이 되어가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라이브러리도 물론 핵심 파일들의 묶음입니다. 그러나 API는 이보다 더 높은 단계에서 부품들을 미리 엮어두어, 다소의 변형만을 가한 채 사용하기 때문에, 이제 어떤 프로그램이라 해도 대충의 얼개가 닮아가는 셈입니다. 개발자의 개성이 희석되었으니 도둑들이 편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p7을 보면 "기존 보안 도구들은 API의 보안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 예로 웹 애플리케이션 방화벽 같은 걸 들고 있습니다. 한때 이것만 갖춰 놓으면 든든하다고들 여겼던 강력한 도구들이 뒷방 노인 취급 받는 걸 보면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더 심각한 지적은 뒤에 나옵니다. "개발자가 API의 보안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도 합니다. "개발자란,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사이다."  우리도 흔히 "행복회로를 돌린다"는 말을 냉소적으로 쓰곤 하지만, 미국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happy path라는 표현이 있나 봅니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개발자가, 한번 만들어 놓은 코드 변경을 일반적으로 꺼리는 데에도 원인이 있는데, 그 이유야 시스템이 깨질까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사안일주의에 젖어서는, 예리하고 의욕 가득한 침투자들의 끊임없는 시도를 막을 길이 없고, 그들의 눈에 어느 정도 빤하게 보이는 API의 허점을 보완, 엄폐하기가 난망합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크게 API 보안 방향성을, 속도제한, 암복호화, 해시-HMAC-서명, 전송보안, 인코딩 등을 통해 잡습니다. 이상의 주제들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책에서는 p46 이하에서 아마존의 예를 드는데, AWS는 HTTP 상에서 키 기반 HMAC 맞춤형 인증 메커니즘을 쓴다고 합니다. 앞서가는 기업은 이처럼 보안에도 철저하여, 오히려 업계 보안 수준까지 자신들이 선도합니다(외주 업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수준을 능가함). 다들 알듯 아마존은 회원에게 자주 쓰는 카드번호도 저장해 놓으라고 하는데, 어디 여간 강심장 아니고서야 있던 것도 지우지, 그걸 얻다가 저장해 놓겠습니까? 그래도 여태 한 번도 아마존에서 그게 누구한테 털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반면 국내 기업을 보십시오. 매번 고객 개인 정보 유출에, 심지어 자발적으로 타국 기업에다 이전(?)까지 해 줍니다. 이러니 광고업체가 망할 수밖에 없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마이너리티 리포트 세계관이 일찍 실현될 태세입니다. 

p91에 보면 국제배송업체가 PII 유출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음을 간파하고, 일단의 보안 연구자들이 해당 업체에다가 그 사실을 통보해 준 사례가 나옵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이처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안 이슈를 설명해 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튼 취약점이 생기게 된 주된 원인으로 거론된 건, 속도제한 부재(많은 관리자들이 간과합니다. 저 뒤 p193도 함께 참조할 것), 과도한 정보 노출 등이었는데, 그 외에도 책에서는 "클라리언트나 프런트엔드가 저런 과잉정보를 적절히 걸러서 표시하겠거니" 기대를 가지지 말라고도 조언합니다. 위험에 있어서의 지형(landscape)를 개발자들은 거의 언제나 무시한다며 현실을 개탄합니다. 

보안을 강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도둑이 되어 누군가를 공략해 보는 것입니다. p142 이하에, 좋은 예제 하나를 마련하여 이를 직접 공격해 보라고 자세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대상이 되는) API와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이와 관련, 좋은 자료가 많이 모인 곳으로는 깃허브닷컴의 awesome-api-security 같은 곳을 추천해 주네요. p161에서, 만약 열린 포트들을 찾았다면, 이후 동적 스캐너를 사용하여 호스트의 이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 외에도 제7장에서 부채널(side channel) 공격이라든가, p203의 경로 순회 등도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정보였습니다. 

예사로 생각하고 책을 열었다면 뜻밖에 좋은 정보가 많아서, 또 설명이 매우 구조적이고 체계적이라서 놀란 독자들이 많았겠습니다. 아직은, 깊은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역시 외국 저자 책을 봐야겠다는 점 실감하게 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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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첫 문해력 신문 - 읽기로 시작해 쓰기로 완성하는
이다희 지음, 서희진 그림 / 아울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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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에게 핵심 자질 중 하나입니다. AI에게 유효한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능력도 결국은 문해력과 밀접한 관계이며, 모두가 소셜 미디어로 연결되다시피한 세상에서 다른 이들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 의사를 내 의도대로 전달하는 능력도 그 기반은 문해력입니다. 그런데 이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우리 사는 공간의 거의 모든 소식을 잘 가공하여 전달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고기는 수십 년 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양성화하여 유통되지 못했으며 보신탕이니 영양탕이니 하는 우회적 명칭으로만 통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불법까지는 아니었는데 2024년 1월 국회에서 개식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어서 이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반려견을 두는 인구가 수천만에 달하며 관련 산업(미용, 사료)도 급성장한 마당에 개 식용 관행이 이런 추세와 양립할 수 없다는 판단이겠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개를 먹을거리로 삼는다는 생각이 그리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수 있어도, 어린이들은 "대체 왜 개를 먹어?"라며 그 발상 자체가 이상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교재에서는 "신아리"라는 캐릭터를 내세워서,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려 보게 합니다. 물론 지금껏 개를 먹어왔던 건 잘못이나, 개가 계속 식용으로 쓰일 줄 알고 농장에서 개를 키워 왔는데, 이 개들은 당장 어떻게 할지가 과제입니다. 그대로 야생에 풀어 버리면 가뜩이나 유기견이 문제를 일으키는 요즘 걷잡을 수 없이 파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신아리는 아이답게(?) 하나의 방법을 내놓는데 물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 재원과 부지를 마련하는 일까지라면, 어린이들에게 답을 묻기는 좀 버거운 단계이겠습니다. 

교재에서 다루는 토픽은 최신의 시사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까지도 포함합니다. 이 교재는 과거와 현재를 두루 넘나들지만, 예전에 역사신문이라고 해서 역사만 전문으로 다루는 베스트셀러가 있었던 것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책보다 이 책이 좀 더 친근감 있게 다가왔는데 아이들한테 부과되는 과제 면에서 더 (현실적으로) 난도를 낮췄으며, 포맷이 좀 부드럽고, 신아리 캐릭터가 더 귀엽다는 점 등에서입니다. 

p48에서 어린 독자들에게 던져지는 질문도 매우 흥미로운데, 저도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만약 윤봉길 의사(義士)께서 뜻을 같이하는 분 열 명 정도를 모아 거사를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문제가 그 대표적입니다. 윤의사는 상해 홍구 공원 의거의 주역이지만, 문제에서는 그보다 앞서 일어난 일왕 행차 폭탄 투척 사건으로 상황을 살짝 바꾸었습니다. 윤의사가 공격한 단상의 일본 장성들도, 일왕만큼은 아니라도 대단한 거물급들이긴 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서 대체현실을 꾸리는 작업은 무척 흥미롭고 아이가 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보기에 재미있습니다. 교재에 나오는 사진 속의 윤의사는 지성적이고 사려 깊으면서도 코카서스인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상입니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프로젝트를 벌여 다시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화성입니다. 바로 어제에도 화성의 표면 아래 물이 존재하여, 마치 지구의 해저처럼 바다생물 같은 게 살지 않을지 하는 가능성이 점쳐졌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교재에서는 신아리가 "만약 네가 화성에 살게 된다면 무엇을 가져가고 싶어?"라며 어린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저자 이다희 대표가 실제로 초등교사 13년 경력자이며 현재 학부모이기도 하므로 그 점에서 아이들의 정서를 잘 캐치하여 현실감 있게 구성한 곳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p63에는 화산 폭발(아이슬란드 블루라군 2024년 3월의 폭발 뉴스)을 두고 꾸민 대목도 그렇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을 점검하고 꾸준한 글쓰기 습관까지 기르게 하기 위해 일기쓰기도 학교에서 시킵니다. 그런데 이 교재에서는 신문과 일기를 결합하여 신문일기 쓰기도 제시하는데,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일기도 자신의 하루 일상에 대한 보고(報告. report)이니 애초부터 일기와 신문은 서로 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꼭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아무 생각이나 적게 하는 코너도 있어서 아이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자연과 동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제인 구달 박사에 대한 설명도 있고, 심신(心身) 같은 한자어를 학습하게도 하여 (요즘 신문에는 한자가 많지 않지만) 아이들의 한자문해력 향상도 배려합니다. 곳곳에 QR 코드가 찍혀 동연상 자료로 연결되게 돕는데 저는 개복치 영상이 흥미로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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