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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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搜査)의 달인인 수사(修士). 우리말로는 묘하게 동음이의어 구조를 이루는 두 단어가 모두 이 주인공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캐드펠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박학하고 침착한 지성인의 전형입니다만 그 불타는 정열만큼은 최대한 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생의 순결을 서원하고 베네딕토 회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폐쇄된 공동체를 이루며 오로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명하고, 청빈과 지식 정리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의 모임치고는, 암투와 경쟁, 모함, 야망 등으로부터 기인한 복잡다단한 정치 싸움 때문에 그리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노르만 인은 일광이 길지 않은 추운 고장에서 내려와 유럽 곳곳에 세력을 뻗쳤습니다. 프랑스 북서쪽에 거하던 노르망디 공 윌리엄은 브리튼 섬의 혼란을 틈타 해협을 건너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새 왕조를 열었습니다. 영어에 침투한 고급 프랑스어 어휘는 대부분 이때 들어온 것입니다. 시리즈 3권 서두에 잠시 언급될 스티븐 왕과 마틸다는 비생산적인 싸움을 벌이다 결국 노르만 왕조의 문을 닫는데, 이 1권 p16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콜롬바누스 수사(고위 성직자의 길을 통해 출세의 우회로를 닦는)는 그 노르만 귀족의 혈통을 이어받아 훤칠한 외모에 튼튼한 체격이 돋보이는 인물입니다("야심가들은 수도복을 입고서도 엄청나게 출세를 한다잖아요[p236]"). 이처럼, 수도원에 들어온 인물들의 동기는 모두 제각각이며 생김새나 기질, 특기도 천차만별입니다. 

"농노가 자유민을 때리면 손목을 자르게 되어 있습니다.(p84)" 중세 신분제 사회가 배경이라 이처럼 비인도적 비합리적 인습도 도처에 가득합니다. 3권에서도 장원의 각종 비밀을 요긴하게 캐드팰에게 알려 주는 역이었던 앨프릭의 신분도 역시 농노였습니다. 여기에, 수천 년을 두고 이어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항쟁 대립상도 여전하며, 떠돌이 베네드와 쇼네드 리샤르트 사이의 사랑도 갖가지 악폐가 낳은 장애물 때문에 순조롭게 풀리지 못합니다. 캐드펠 등이 던져진 중세 영국은 이런 사회입니다. 이 와중에 리샤르튼는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됩니다(p128). 

잘 짜여진 추리소설은 일단 시신을 둘러싸고 그 위치, 자세, 주변 환경(밀실이라든가)에 대한 세팅이 무척이나 정교합니다. 이 사람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이 모습으로 죽을 수 없었을 텐데... 사실 누군가를 범인으로 정하려면 구태여 죽음(살인)의 매 단계를 물리적으로 소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2011년 경북 문경에서 일어난 십자가 살인사건의 경우도, 검경이 재판에서 밝힌 사건의 경위가 모두에게 납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명탐정은 일단 상식선에서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접근합니다. 이 의문이 풀리는 과정에서 진범의 정체도 자연스럽게 큰 단서를 노출합니다. "어떻게 얼굴을 바닥으로 한 채 쓰러지셨을까요?" "바로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지."(p190) 

카이, 아네스트나 쇼네드나 보통내기들이 아닙니다. 부수도원장 로버트나, 콜롬바누스 수도사는 이들 캐드펠의 동맹군들과 곳곳에서 부딪힙니다. 아무래도 영혼의 빛깔이 다르다보니 별것아닌 계제에서도 뭔가 서로를 밀어내게 되나 봅니다. "꼭 위니프리드 성녀가 자기 것이나 되는 양 큰소리를 치더라구요.(p275)" 성녀 위니프리드에 대해서는 p349에 후주로 설명되는데 은근히 이 작품 안에서 인문적으로 중요한 함의을 지니게 됩니다. 존 수사는 과연 집행관의 마수를 피해 신변의 안전을 꾀할 수 있을까요? 

"열정 앞에, 격식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뼛속까지 웨일즈인인 여자였다.(p298)" 캐드펠(혹은 전지적 화자)이 쇼네드를 두고 내린 평가이며 우리 독자들도 그녀의 행보에 대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중세적 억압도, 혹은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전개된 역사의 흐름도, 소수 종족의 자존과 개성을 끝내 말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그 민족혼의 불씨를 살려 새 발전의 발판으로 마련합니다. 압제는 항쟁을 짓누를 수 없고, 거짓과 흉계는 진실의 불빛을 폐색할 수 없음을 명탐정 캐드펠은 화려하게 증명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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