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선긋기 : 얼굴 - 삐뚤어져도 괜찮아! 괜찮아! 시리즈
스쿨존에듀 편집부 지음 / 스쿨존에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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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밟는 단계는 선 긋기일 것 같습니다. 어른들도 마음 먹고 선을 바르게 그어 보라고 하면 마음만큼 잘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아이들한테 시킨다면, 삐뚤빼뚤 가관도 아니겠죠. 그러나 그 나이 때에는 자신감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괜히 기죽이지 말고 잘하는 점만 지적하여 아이가 신 나서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게 북돋워야 하겠습니다. 

이 교재에는 다양한 주제를 주고, 아이한테 선을 긋게 합니다. 예를 들면 p3에는 여러 모양을 한 차들이 나오는데, 푸드트럭, 스쿨버스, 택시(노랑색) 등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차들이 그렇게 운행하는지는 제가 모르겠으나, 푸드트럭은 이 책 안에서는 마치 산봉우리의 능선처럼 삼각형을 그리며 움직이는가 봅니다. 그런가하면 택시는 직선으로 올라가다 사선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선 속에는 일종의 규칙이 보이는데, 아이들은 재빨리 저런 패턴에 익숙해지면서 점선을 따라 똑같이 선을 그으며 교재의 의도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p7에는 아이들이 좋아라하는 동물들이 제시됩니다. 맨위는 생쥐 같고, 중간은 소, 아래는 고양이처럼 보보입니다. 쥐는 마치 수학의 sine 곡선처럼 구불구불 움직이는가 본데, 점선을 따라가다 보면 치즈 조각에 닿게 됩니다. 소는 직사각형 여럿을 살짝 오른쪽으로 구부려 늘어놓은 패턴으로 움직이는데, 끝까지 가면 키가 큰 풀더미가 나옵니다. p6(왼쪽 페이지)의 세 동물들은 각각 기린, 얼룩말, 치타라고 분명히 이름이 나오는데, p7에서는 이름이 없습니다. 아마 독자들에게 직접, 그 동물들이 무엇인지까지를 생각해 보게 하려는 교재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다에는 딱딱한 껍질을 가진 동물들이 많이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p15를 보면 제목이 "딱딱한 껍질의 바다 생물"입니다. 이 동물들 앞에도 점선이 놓여서 우리 어린 독자들에게 따라서 그어 보게 하는데, 교재는 이 구불구불한 선들이 실제로 이 동물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암시하는 듯합니다. 세 동물들은 각각 게, 새우, 가재로 보입니다. 바다에도 가재가 사니, 이상할 건 없습니다. 

트럭이라고 해도 한 가지 패턴으로만 자취가 생긴다는 법은 없습니다. p21을 보면 빨간 트럭 한 대, 그 덩치에 맞게 바퀴도 울퉁불퉁하며 정말 큰데, 어떤 길에서는 삼각형 모양으로, 어떤 길에서는 직선으로, 또 어떤 때에는 유선형 자취를 남기는 등 다채롭습니다. 이 다양한 선들을 아이들이 따라 긋게 하는데, 처음에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다양한 선들을 그어 보면서 창의력도 기르고, 마음먹은 대로 선이 그어지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교재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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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 후회와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기 위한 심리학자의 마음 수행 가이드
변지영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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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생각이 없어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도 행동이 꼬입니다. 이 책 겉표지를 보면 대뜸 이 말이 눈에 띕니다. "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건 언제나 생각이었다!" 아마 이 말에 공감이 크게 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만사휴의가 되고 마는 난감한 체험, 우리 모두가 한 번 정도는 겪어 보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 생각을 포기할 수야 또 없는 일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우리가 생각의 가닥을 잘 정리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우리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지를 차분하게 가르칩니다. 

p30을 보면 참으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나옵니다. 즉,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작은 텃밭을 갖고 있다는 건데, 그게 바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일생을 두고 가꾸어 나가는 게 우리의 과제인데, 물론 당사자가 잘못해서 농사를 망치는 것도 부지기수입니다만, 때로는 우리 자신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 터져 텃밭과 수확을 모두 그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농사라는 게 본래 그렇지 않겠습니까. 농부가 게으르면 물론 답이 없지만, 반대로 농부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하늘이 돕지 않고, 갑자기 가뭄이나 폭우가 닥치는 일도 흔합니다. 이때 어떻게 텃밭을, 즉 내 작은 마음 한 뙈기를 잘 수습하는지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우리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도 쓸데없이 자학, 자책하는 건 문제입니다. 물론, 이렇게 자신에게 모든 문제를 귀속시키면서 정말로 숨어 있던 심각한 문제를 찾아내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생각이 괜히 많다"며 지적받는 사람들은, 이 자책, 자학이 과해서 문제입니다. 잡초를 제때 제거하지 않아서, 모를 적기에 옮겨 심지 않아서 농사를 망쳤다, 이러면 그건 분명 농부 자신의 과오입니다. 그런 게으른 농부는 자신이나 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천재지변, 악의를 가진 타인의 난입 등으로 문제가 빚어졌다면, 이건 설령 문제의 확산,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야 있겠으나 지나친 비생산적 자책으로 시간과 역량을 소진할 일은 또 아니겠습니다. 

p104에서는 집착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는 양가적이며 좋음과 싫음을 동시에 표현한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난 너를 좋아한다며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며 집착한다면, 이는 물론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일개 폭력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나쁜 자는 겉이 아니라 속으로도 상대방(즉 집착대상)을 싫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는 왜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니?라며 그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 장점을 파괴하려 듭니다. 얼마나 무서운 악한 인간성입니까. 그 죗값은 아마 그 사람의 아들, 정신이 성치 못한 그 손자가 대신 갚을 것입니다.  

책 p136에서는 이런 불건전하고 비생산적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깊은 명상을 시도해 볼 것을 권합니다. 성공적인 명상은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나의 문제를 마치 남의 상황을 보듯 대상화하고 분석할 수 있게끔 돕습니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상처입고 괴로워하며 왜 내가 이런 상황에 빠져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자신을 저 위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여러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명상 기법을 매우 통합적으로, 또 체게적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가르친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불편하게 할 때, 왜 저 사람은 나에게 이런 짓을 할까?라며 공연한 생각으로 힘을 빼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나에게 악의를 갖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또 알아본들 그게 나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그보다는, 내가 저 사람의 말과 행동 어떤 부분 때문에 이렇게 상처를 받고 불편해지는 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참으로 타당한 지적입니다.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가르침과 실천 사항이 많아 독자에게 유익한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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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익스프레스 -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의 마음 관리
이동연 지음 / 북카라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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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익스프레스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과학입니다. 사람의 마음만큼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 접근하기 부적절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싶은데, 의사 프로이트는 자신의 시대에 꽤나 발전했던 자연과학에서 뭘 그닥 많이 빌려오지 않고도 대단히 치밀하고 따라서 독창적인 이론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심리학의 창시자인 그는 여태 인류가 갖지 못했던 유력한 도구를 하나 선사하고 세상을 떠난 셈인데, 그래서 두고두고 후세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칭송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천재의 이론답게 그의 저술들은 대단히 난해합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 확고한 이해를 지닌 저술가의 솜씨로 쉽게 풀어 쓴 책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살면서 자주 겪는 여러 난감한 문제들을, 프로이트의 탁월한 이론적 틀을 적용하여 저자가 풀어헤쳐 준 내용들이 가득 실렸습니다. 읽으면서, 아 정말 그렇겠다 싶은 대목도 많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더 깊은 생각을 다짐하게 되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p61에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이 몸이 크는 것은 성장인데, 정신이 크는 것은 성숙이라고 부르는 점 우리 모두 잘 압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상하게도 몸이 크면 그에 맞춰 마음도 자동으로 자라겠거니 착각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크는 게 절대 아니기에, 사람은 제 마음을 키우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해 줘야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누가 과연 나의 반려자로서 적합한 사람인가?"로 논의를 옮깁니다. 만약 사람이 육체적 성장처럼 정신의 성숙도 태어날 때부터 뭔가 정해진 바가 있다면, 우리가 누군가와 정신적으로 맞고 안 맞고도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겠죠. 그러나 성숙은 그 사람이 노력하고 안 하고에 좌우되는 바 큽니다. 그럼 나한테 맞춰 줄 만한 사람, 내 노력에 부응하여 뭔가 노력이라도 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p121에는 데키무스 유베날리스의 명언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가 인용됩니다. 우리는 이걸 보통 근대 올림픽의 대부 쿠바를 쿠베르탱 남작의 말로 알지만 사실 저 고대 로마 시인이 원 출처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저자께서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의 대뇌는 정말로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 평소의 습관, 의지, 취향에 따라 그 구조와 성능, 개성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몸을 일정 용도로 쓰면 정말로 뇌 역시 그에 맞게 가소성있게 변화하며, 예컨대 운동을 하면 그 운동으로부터의 만족감 덕분에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도 평화가 자리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p187에서 저자는 1980년대 가수 이은하의 노래 한 소절을 인용합니다.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요. 의미를 잃어버린 그표정" 이 다음엔 "사랑은 끝났으니까 애타게 기다리지 말아요"라는 말도 나오죠(순서는 제가 바꿈). 이 곡은 작사도 이은하씨가 했는데 작곡은 기인 장현씨의 여동생 장덕씨 작품입니다. 여튼 우리는 모두 의미의 구조 속에 사는 동물들입니다. 역시 프로이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구조주의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의 논의를 구태여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금전적 욕망, 식욕, 성욕 등에 끌려서만 행동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명예, 체면, 허영, 충성심, 헌신 등 상징의 영역에 속하는 가치를 위해 심지어 목숨도 거리낌없이 버립니다. 

외모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외모는 안타깝게도 우리 의사 결정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칩니다. 책 p211에는 방통(이명 봉추)의 일화, 또 복룡(?)의 부인 황씨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어떤 면이 그렇게 싫은지 생각을 해 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부분적 요소가 그렇게나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 사람의 전체는 사뭇 다르지 않을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상식에 비추어 과하게,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을 싫어하거나 증오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누군가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 충성을 바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죠(엉뚱한 사람한테 감정적 보상을 구하려 듦). 그 누군가는 아마 그 사람의 생존에 관한 목줄을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p50). 어린 첩으로 남의 집에서 식모처럼 살림을 살아줬다거나... 물론 이런 걸 지적하면 큰 소리로 부인하겠지만 진실이 목소리의 크기에 비례하여 잘 지워지는 건 아닙니다. 

쉬우면서도 유익한 이야기들이 인생의 이런저런 정곡을 찌르는 책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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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교수의 인문핵 - 인문학으로 본 원자핵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3
서균렬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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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균렬 교수께서는 한국 원자핵공학계의 권위자 중 한 분이십니다. 지금은 의치한약수 열풍이 불어 공과대학 선호도가 많이 낮아졌지만 과거에는 우수한 두뇌들이 대거 공대를 진학했었고, 특히 서울대의 경우 원자핵공학과의 입결이 대단히 높았었습니다.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 중에서도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셨고 어린 나이에 MIT에 진학하셔서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분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서 교수께서는 저때에도, 문과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언어학에 관심을 보이셨고, 지금 우리 독자들도 아는 대로 그 깊이 있는 인문적 소양이 벌써 저때 맹아를 드러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여튼 핵공학자가 풀어 주는 인문 이야기란 벌써 그 서두만 들어도 흥미롭습니다. 

"미숙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미술가는 훔친다(p42)." 피카소의 말입니다. 사실 훔친다는 말에는, 그걸 훔쳐서 완전히 내것으로 만든다(제2의 예술품을 새롭게 세상에 내놓는다)는 자신감이 깔린 말이지, 정말로 창의성 0이면서 뻔뻔스럽게 뭘 내세우기만 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겠습니다(이런 나쁜 인간들도 세상에는 있습니다). 피카소가 아프리카의 원시 예술(일단 이런 명칭을 쓰겠습니다)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음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러나 피카소의 작품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논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개성과 논리가 새로이 이식되었습니다. 

p43을 보면 한국 핵공학 1세대 개척자들이신 임창생, 강창순 같은 원로들의 성함이 열거됩니다. 이분들, 또 저자 서 명예교수님은 남의 기술을 그저 훔쳐 오신 분들이겠습니까? 솜씨가 나쁘면 훔친 기술을 새로운 환경(한국)에서 써먹지도 못합니다. 43쪽의 "우리 실정에 맞게 정착"이라는 대목을 눈여겨 보십시오. 공학자의 천재성은 저렇게 현지적응성, 응용력에서 증명이 되는 겁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핵시설 수출 시장에서 프랑스를 꺾고 맹활약하지 않습니까. 우리만의 기여가 생겼음을 이제 국제 사회가 다 인정하는 겁니다. 전에 뿌린 게 있어야 지금 거둘 게 생기는 법이지 않습니까. 

"나라가 부르고 겨레가 찾으면 불새가 되어서라도 날아가겠다.(p57)" 이 멋진 말은 과연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의 입에서 나올 만한 표현입니다. 물리학, 화학 등이 괜히 기초과학이 아니라서,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응용공학에서 진도가 안 나갑니다. 결과만 반복학습을 통해 익히는 정도로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라늄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그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실무에서 정말 까다로운 부분은 매번 뭐가 튀어나와도 나오는 수많은 난관을 어떻게 요리조리 닷지(dodge)해 나가느냐 하는 디테일에 있습니다. 이런 건 공부머리를 넘어 거의 일머리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일류 엔지니어들은 그저 공부만 파는 너드들이 아니라 거의 준 경영자라 할 수 있는 인재들입니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교수님은, 원자핵공학에서 정말 중요한 소양은 물리학 뼈대 중 하나인 유체역학이라고 합니다. 

p65를 보면 스리마일 사고가 언급됩니다. 구 소련에 체르노빌이 있었다면 미국에선 그에 앞서 스리마일이 있었죠. 이런 이야기를 보면 교수님은 참 혜안이 있으셨던 듯합니다. 이제 미국은 글렀으니, 핵 선진국인 프랑스로 가야겠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래도 미국이 떠오르는 태양(1970년대)이니 정치적 기류가 바뀔 걸 기다리려고 마음먹을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청출어람이라고, 저랬던 프랑스를 이번에 우리가 수주전에서 이겼으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선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황태자의 첫사랑> 무대였던 하이델베르크에 들르셨던 추억도 있고, 아름다운 사모님 미모에 끌려 미군[駐獨]들이 접근한 사연 등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처럼 공부 잘하면 예쁜 반려자가 생길 가능성이 크니 서균렬 교수님처럼 열심히들 해야 하겠습니다! 

책 앞에서도 프린시피아라는 이름(물론 뉴턴의, 라틴어로 쓰인 과학 고전에서 따온 이름)이 나왔는데 p104에 본격적으로 그 연구소가 세상에 어떻게 나왔는지가 잘 설명됩니다. 여기서도 보듯이 좋은 이름은 일차원적으로만 좋은 뜻을 가지는 게 아니라, 이리 읽어도 저리 보아도 또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다차원의 서기(瑞氣)를 풍깁니다. 괜히 작명소를 철학관(?)이라고도 부르는 게 아닙니다. 인문이란 본디 현상의 이면에 흐르는 대 맥락을 짚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가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그 원작 논픽션은 십수년 전에 우리말로도 이미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 후반부는 영화보다 재미있게, 20세기 후반 핵공학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세계의 모습 자체를 바꿔 놓았는지가 설명됩니다. 역시 천재는 그 입으로 뭘 설명해 줘도 자연스러운 흥이 전체를 지배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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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략 - 소설의 기초부터 완성까지 오에 컬렉션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성혜숙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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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선생은 따스한 주제가 담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준 작가였지만, 그가 남긴 소설들이 이룬 세계를 돌아보면 마치 튼튼한 성벽 주변에 깊은 해자(moat)를 두른 듯합니다. 이는, 동경대 출신 엘리트인 그가 애초부터 치밀한 전략 하에 작품을 창작했음을 뜻합니다. 만약 그가 고유의 소설론을 남기지 않았다면 평론가나 학자들이 그의 내면과 동기를 탐구라느라 진땀깨나 흘렸겠으나, 다행히도 그가 직접 이렇게 정치한 이론을 구성한 바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비교적 손쉽게 오에 월드의 조감도와 도면을 참조하여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나아가 소설과 문학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단어(들)의 열거 자체가 문학적 기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p58)." 이는 이노우에 히사시가 청대 문인 장종지의 글에서 발췌한 바가 묘하게도 그 음성적 효과와 더불어 일본 독자들에게 미학적 쾌감을 선사했다며 오에가 주장한 내용입니다. 글쎄, 우리 한국인들도 (건륭기[乾隆期]의 문장가들처럼) 위장에 통증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역시 이 예(例)로부터 외형률의 고유한 느낌을 의도대로 접수하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한자의 발음이 다르므로). 물론 수사법으로서의 열거법은 꼭 두운, 각운 등의 음성 요소가 개입해야만 성립하는 건 아니며, 적시적소(適時適所)의 열거 그 자체가 레토릭의 효과를 냅니다. 러시아의 평론가 바흐친은 이를 장사꾼의 호객행위와도 닮았다고 했다는 오에의 지적이 p58에 나오는데, 어딜 감히 문학의 기법에 비기냐고 할 수 있어도 사실 그 근본이 같음은 부인 못합니다. 한편으로 저런 바흐친의 언급까지도 꼼꼼히 짚어내는 걸 보면 역시 선생은 박식한 분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학문적 대성을 이룬 미르치아 엘리아데라는 종교학자가 있으며 해당 분야에서 엄청난 위상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의 주요 저작들이 이미 빼어난 솜씨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 엘리아데와 비슷한 처지였던 문장가 에밀 시오랑(아름다운 산문의 매력으로, 한국에도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었죠)이라든지, 부조리극의 대가이자 대명사인 이오네스코(뭐 새삼 소개가 불필요합니다) 같은 이름들이 매우 정겹게 언급됩니다. 사실 이들 문인들과 오에 선생이 직접적인 교분을 나누었던 건 아닙니다. 저 세 사람은 루마니아 혈통인데다 나이도 다들 비슷한 또래지만 오에는 거의 저들의 아들뻘이죠. 다만 이들의 유려한 프랑스어 문장을 선생이 진심으로 사랑하여 깊이 파고들었고, 그 연구의 결과가 이처럼 깊어졌다 할 수 있습니다. p100 이하에 오에 선생의 르상티망(resentiment)론(論)이 짧게나마 나와 독자의 흥미를 부르기도 합니다. 

오에 컬렉션 제3권 리뷰에서 제가 미시마 유키오를 짧게 언급했었는데, 이 제4권에는 미시마 유키오 부부와 오에가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 일화가 간접적으로 회고되어 흥미롭습니다. 사실 오에가 노벨 문학상을 탄 데에는 1960년대부터 꾸준히 그의 작품을 영어로 옮겨 온 존 네이던의 역할이 적다고는 못합니다. 그런데 오에는 이 대목에서 한때 친구였던 네이던이 사실을 크게 왜곡하여 자신이 미시마의 부인과 갈등을 빚었다고 거짓말을 서문에 썼다며 불쾌감을 표현합니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네이던이 어떤 극작가 기질이라도 발휘하여 독자의 흥미를 위해 한 편의 소극을 꾸렸겠다며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관대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쩌면 이 모두가, 본래부터 친한 사이였던 두 분 사전 합의 하에 빚어진 유쾌한 소통극인지도 모르겠네요. 

윌리엄 블레이크는 20세기 후반 들어 토머스 해리스의 스릴러 <레드 드래곤>에서 중요한 모티브 구실을 하는 등 재조명되어 대중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에밀 시오랑도 "인간은 이 험하고 모순 가득한 세상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다" 같은 비관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p130에 인용된 블레이크도 "아기는 요람 속에 있을 때..."라며 비슷한 냉소주의를 표명합니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농도 짙고 진정성 높은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오에가 이 말들을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독자들도 익히 알듯, 오에에게는 날때부터 신체가 불편했던 아들이 있었기에 일생을 두고 그를 향한 연민과 괴로움에 시달린 바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심원한 달관은 그런 시련에 직면해서도 비관과 염세로 치닫기보다 오히려 초극과 낙관의 진로를 잡았기에 독자에게 감동을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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