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빌딩 찐부자의 생존 비법 - '평범한 직장인에서 당당한 건물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부자를 만드는 '부동산 투자'의 힘
다크호스 조태호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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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태호 대표님(다크호스. 줄여서 닥호)의 이력을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근로소득만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경제적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들에게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을 13년 동안 다니셨지만 부동산 투자, 임대사업을 통해서 현재의 풍요로움에 이른 그 과정을 보면, 요즘 왜 다들 해외주식이나 코인에 몰두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투자는 직장인들에게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데, 그렇다고 사행심으로 무턱대고 아무거나 대세라며 몰려다닐 수도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7을 보면 엘지, 삼성 등 친구들도 다들 어엿한 대기업 좋은 부서에 근무하는 분들이고 직장에서 능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도 퇴직 후 고기집 등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몇 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는 예가 나오는데 이런 일이 비단 이분한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버티다버티다 안 되어서 폐업신고를 세무서에 하러가는 사장님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래서 뭘 하든 간에,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대표님은 투자도 투자지만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교육도 하는 등 우리가 종래 알던 그런 사업자 유형이 아닙니다. 요즘은 남보다 앞서가려면 이렇게 방송인(?), 컨텐츠 제작자 노릇도 겸하는 등 팔방미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살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며 과거 농경사회, 산업화 시절처럼 나라에 사람만 많다고 그게 다 인적자원이 되는 게 아니고, 그래서 한국도 지금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겁니다. 더 이상 많은 사람이 살 필요가 없는 경제 구조로 이행하는 중이며, 이전의 인구 구조만 바라보던 자영업이 그래서 다들 죽어나가는 거죠. 이런 사회에서는 하나만 잘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p72를 보면 학생 시절부터 친구였던 분과 함께 일을 하시던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독자로서 냉정하게 읽어 보면 이분이 일을 잘 못하시고(대표님 관점에서), 그래서 야 친구야, 더 이상 의 상하기 전에 이 일을 니가 알아서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둘러서 권하는 겁니다. 마음아프지만 현실이 이런데 어쩔 수가 없죠. 그런데 사람은 또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마인드셋이건 실력이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괜찮은 투자안을 발견하여 열심히 브리핑하는 친구분을 보며 대표님은 또 생각이 바뀝니다. 세상 이치가 다 이렇습니다. 

임대사업자는 또하나의 적폐세력인가?(p81) 자본주의가 뭐가 좋냐면, 어떤 업종이 위기일 때 아 난 이거 도저히 못들고 있겠다 싶은 사람은 다 나가고, 적성이든 실력이든 뭐든 나는 이걸 유지하겠다 싶은 사람이 끝까지 버티다가, 그 사람만 망하든지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다시 업황이 살아나든지 해서 체제가 생명을 이어가는 거죠. 사회주의는 모든 걸 국가가 결정하기 때문에 관료가 정책을 잘못 입안, 집행하면 나라 전체가 절단나는 건데, 구 소련이 그랬고 지금 중국이 고생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다만 중국은 완전한 관제(官制)가 아니기 때문에(=민간이 어느 정도 위험을 분담하기 때문에) 소련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 건데, 여튼 저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 주택 공급이 문제될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몸테크(p118)라는 말이 있는데 앞으로 재개발이 예정된 요지의 구축 아파트에 실거주하면서 승인이 떨어지는 그날만 기다리는 투자(?)를 가리킵니다. 이 대목에서 대구 동구로 이사 간 친구분에게 저자가 하는 말을 보면 직장인 중 공감가는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요약하면 모두가 선망하는 그런 좋은 아파트, 갖출 것을 다 갖추고 내가 잡은 그 시점부터 죽 우상향하는 그런 아파트는 지금 그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없어서 머뭇거리는 것뿐인데 온갖 합리화를 해 대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게 고작이라는 거고, 가슴아프긴 해도 이게 저 친구분 같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처한 현실이란 거죠. "넌 내 유튜브를 안 봐서 그래!" 

"때로는 머리보다 손발이 빠른 사람들이 더 성공하기도 합니다.(p251)" 역시 보는 안목이 있는 분이라서, 사정상 급매(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내놓은 좋은 물건을 그대로 매입해서 지금껏 잘 키우고 자녀분들도 13살, 9살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기운을 받아야 사업운이 트이고 장사가 번창한다고 하는데, 세상사가 운으로만 잘 풀리거나 하진 않습니다. 매순간 공부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정보를 쌓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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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도정치 - 과연 한국정치에서 제3의 길은 가능할까?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3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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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로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오신 홍성민 박사님(파리 제10대학)의 새 책입니다. 종래 홍알정 시리즈가 두 권까지 나왔었고 저도 모두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이번 셋째 권의 주제는 "유럽의 중도정치"입니다. 

미국이나 프랑스나 한국이나 대체 중도를 걷는(혹은 그렇게 주장하는) 정치인, 정치세력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여튼 중도 비슷한 걸 처음에 표방했던 마크롱도 12월 초에 행정부 붕괴를 겪었습니다. 프랑스의 내각 붕괴는 그들의 제5공화국 출범 후 처음 겪는 사건인데, 프랑스의 유서 깊은 민주주의가 이제 본격적인 도전에 직면한 시점이라 하겠습니다. 20여년 전 영국의 토니 블레어(p102. 단 이 책에서는 30년 전인 1994년 그가 노동당 당권을 잡았을 때를 먼저 회고합니다)는 노동당 소속이면서도 제3의 길을 표방했었는데 당시로서는 큰 환영을 받았으나 지금 블레어의 후계를 자청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없습니다. 책에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아니나 제가 읽기로는 그런 취지로 봐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는, 어떤 천재의 아들이었고 본인도 천재였던 J S 밀의 <자유론>에 크게 빚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1부의 2장에서 그의 <자유론>, <사회주의론>을 자세히 분석합니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21세기의 독자들이 느끼는 바가 크게 다를 수 있는데 밀이 이 책을 쓴 건 1859년, 칼 마르크스가 <자본(Das Kapital)>을 쓴 것보다 8년이나 앞선 시점이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인류사 최초의 그 실험이 행해진 것보다 반 세기를 훌쩍 넘는다는 점도 먼저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심지어 진 웹스터의 청소년용 고전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도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 정확한 의미를 따질 수 없습니다. 

p71을 보면 교수님께서 각주 60번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서도 거대 기업의 이윤공유제를 주장한 관료가 있었으나 반대가 많아 시행되지 못했다"고 하신 대목이 있는데 독자인 제가 알기로는 이 비슷한 일(정확히 뭘 염두에 두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라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그 정부에서 동반성장위원장 자격(그 직전에 국무총리 역임)으로 그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그것도 노동자가 기업의 이윤을 공유한다기보다 중소협력업체와 대기업이 나눈다는 취지였죠. 정운찬 총장보다 7년 연하인, 고대 농경제학과를 나온 사업가 출신 정운천씨가 있는데 이분은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장관을 지냈고 나중에(2016년) 새누리당 공천으로 전북 전주시 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 있는 인사입니다. 

p99 이하에 앤서니 기든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으며, 애초에 제3의 길이라는 말도 이 양반이 코인한 용어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특히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공저한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가 자주 인용됩니다. 고 김수행 교수님은 한국에서 최초로 마르크스 원전(독어판 말고 영문판. 마르크스는 영국에도 망명차 오래 체류했죠)을 옮긴 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말로는 국민정치파라고 옮겨지는 mass politics(김수행 교수 번역에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박사님이 각주에서 밝힙니다)는, 노동당(영국)이라고 해도 널리 국민 대중을 바라보고 정치해야 한다던 팩션이었으며 이 후계자들이라면 지금도 노동당에 있습니다. 아니, 당장 현 수상인 키어 스타머만 해도 노동당 안에서 구 블레어 노선과 유사하며 그렇게 해서 올해 7월의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죠. 

2부에서는 독일의 중도정치가 역사적으로 고찰됩니다. 페르디난트 라살레(이 책의 표기를 따르겠습니다)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여러모로 특이하긴 하죠. 책에서는 현장 노동자 출신이라고 하는데 라살레는 집안이 부유해서 대학 교육도 받았고 나중에 마르크스 등에게도 후원까지 해 준 적 있습니다. 다만 워낙 기인이었던 그가 노동일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p115에 나오는 독일 사회주의 사상 계보도가 매우 재미있게 정리되어 눈길을 끕니다. 라살레의 포지션을 보통 국가사회주의라고 하는데 이 명칭을 20세기의 나치당이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p122를 보면 <노동자 강령>에서 그가 농민들의 움직임은 본질적으로 반동이라고 타매하는 대목이 인용되는데 유럽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농민에 대한 불신이라는 게 이처럼 역사가 유구합니다. 이러니 나중에 마오가 스탈린, 흐루시초프한테 사람 취급을 못 받았죠. 20세기 말 기민당 콜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잠시 정권을 잡았던 사민당의 슈뢰더(한국인 부인을 맞은 일로도 유명합니다)의 노선도 설명됩니다. 

3부에서 프랑스 중도노선의 역사가 설명되는데 우리에게는 <자살론>으로 유명한 뒤르카임(이 책의 표기를 따르겠습니다)의 이른바 "연대주의"에 대한 조망이 이 책에서 아주 뭐 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입장을 이해해야, 한때 인기가 좋았던 마크롱의 앙마르슈 당 노선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는데, 제가 생각할 때 특히 p235의 이민법 같은 건 좌우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국익이 도모될 만한 정책(서평자인 제 생각일 뿐이며 저자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인 듯한데 좌우 양쪽으로부터 십자 포화를 맞았고 그의 정권이 이렇게 몰락해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부에서는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이분도 김수행 교수 라인입니다)의 연구가 인용되며 이분은 원래 미국에서 토지 공유를 주장했던 헨리 조지 전공입니다. 이분이 한국 이승만 정부에서 농림장관을 지냈고 나중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던 죽산 조봉암 사상 사이의 연관을 다루었습니다. 귀속재산처리와 농지개혁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 놓은 중대 정책 수립, 집행이었는데 이 의의를 짚은 박명림 고대 교수(한국전 성격 파악에 있어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중요 연구자이기도 합니다)의 주장도 자주 인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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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나무 책고래마을 55
장세련 지음, 용달 그림 / 책고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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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왜 나는 저 친구처럼 키가 크지 않을까, 왜 나는 못생기고 인기가 없을까, 왜 공부를 저렇게 잘하지 못할까 등등 쓸데없는 고민을 합니다. 사람은 어떤 획일적 잣대로 계량화하여 그 가치를 자리매김할 수 없고, 그 하나하나가 대체 불가이며 소중한 존재들이죠. 물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이 가진 장점이나 재산을 그저 부러워만 하고 거저 손에 넣을 궁리만 하는 사람은 사회에 아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혹 운이 좋아 분에 넘치는 자리까지 올라갔더라도 곧 제 위치를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작은 소나무는 숲 속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들처럼 눈에 확 띄는 존재가 아닙니다. 숲을 찾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꽃들을 보고 앙징맞다며 예쁘다며 칭찬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작은 소나무는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저 사람들이 나한테는 어떤 칭찬을 해 줄까?" 아마 누구라도 성장기에 이 비슷한 체험을 해 봤을 것입니다. 사실 다 지나고 보면,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은 아무 뜻도 없습니다. 칭찬도 비판도 두루 다 겪어 본 사람은 모든 걸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남의 격려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자신이 맡은 일을 더 잘하게 된다면, 또 남의 지적에 분발하여 내 결점을 빨리 보완한다면, 이는 분명 생산적인 소통의 일부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 행복한지 아닌지는, 세상 누구도 모르고 오로지 그 자신만 아는 참된 가치, 여기에 대해 본인이 얼마나 자존감을 갖느냐에 달렸습니다. 희한하게도, 사람들 앞에서 부리는 허세와는 전혀 별개로, 본인은 자신이 어느 정도 중요한 사람인지 정직하게 알고 있습니다. 세상 앞에 눈가림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쟤들처럼 알록달록 꽃이 피지도 않고, 늦가을이면 예쁘게 단풍이 피지도 않을까? 작은 소나무는 정말 쓸데없는 비교를 통해 고민합니다. 성장기를 지나는 모든 어린이, 청소년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데, 어른들은 그런 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다 겪어 본 처지로서 그런 걱정이 다 부질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갈등에 슬픔에 날을 지새우니, 그 나이에는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결국 저 시기는 스스로 그 아픔을 이겨내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른들은 더 마음이 아픕니다. 

꽃이 알록달록 피지 않고 단풍이 들지 않는다는 건 전혀 단점이 아닙니다. <논어> 자공편에 보면 歲寒然後에 知松栢之後凋라 했고, 이 구절을 2700년 후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그림에 담았는데, 이처럼 동아시아의 옛 성현들은 상록수의 독특한 습성을 선비의 지조에 비겨 절개의 상징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작은 소나무가 저런 현자, 성인들이 자신이 속한 무리를 두고 그처럼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는 걸 알면 과연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그뿐이 아닙니다. 이 책에도 나오듯 독일에는 O Tannenbaum이란 노래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탄넨바움은 전나무이지만 크게는 소나무와 같은 종류이며 그래서 한국어 가사로는 소나무라고 번역되었죠. 이 노래에서도 "언제나 푸른 네 빛"이 칭송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저 독일 노래는 영어로는 "오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번역됩니다. 소나무, 전나무가 성탄절 트리로 많이 쓰였으니 당연합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지역 아동 센터의 소년은 그 이름이 타로였나 봅니다. 센터 선생님의 제안으로 이 작은 소나무를 사게 된 일행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정성껏 장식합니다. "성탄 나무 덕분에 더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겠구나." 과연 센터의 세말이 행복한지는 알 수 없으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을 모으면 그 안에 행복이 절로 깃드는 건 맞습니다. "다시는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을거야." 타로와 선생님과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소나무도 한가득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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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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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남긴 편지, 주로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서간문 중심으로 모아 놓은 책입니다. p5를 보면 "자연이 내게 속삭인 말을 속기(速記)로 적어 둔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가 특별히 글씨를 빠르게 적는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비교불가의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천재는 언제나 자연과 친밀히 교감할 수 있었고, 그럴 때 떠오른 영감들은 찰나(刹那)로 스쳐가는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게 귓전에서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글씨로든 그림으로든 재빨리 붙들어 둬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890년에 완성한 <(푸른) 밀 이삭(들)>이라는 그의 작품이 있습니다(p8~p9의 도판 참조). 이 책의 제목은 아마 그에서 따왔을 것입니다. 또 그는 1888년 12월에 폴 고갱과 싸우다가 자기 귀를 스스로 상처낸 사건도 겪었습니다. 네덜란드어로 oor(오어)는 사람, 동물의 귀라는 뜻이며, 원래 곡식의 이삭은 aar(아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고흐의 저 작품만은 Groene oren(oor의 복수형) van tarwe라고 통하는데, 이는 저 일화가 간접으로 끼친 영향 말고도, 영어의 ear가 귀, 이삭이란 뜻을 모두 가진 곡절이 있어서(어원은 서로 다릅니다) 세계 그림 유통 시장에서 그리 굳은 것입니다. 이런 정보는 구글에서 찾아도 안 나오고 아마 저의 서평에서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p70을 보면 고흐는 평소에 "자신 안에 숨은 사악한 자아"가 회피하려 들었던 모든 고귀하고 도덕적인 일에 대해 각별한 의무감을 느꼈던 듯합니다. 평범한 우리들처럼 세속적인 유형은 애초에 그런 의무감 자체를 희미하게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향한 강박 따위는 체험해 본 적조차 없죠. 그러나 이런 진짜 예술가들은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우선 자신에게 들이대기에 평소에도 그런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날이 없는 것입니다. 윤동주의 시구(詩句)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같은 게 다 같은 맥락 아니겠습니까. 

p111을 보면 아니나다를까 고흐는 "자연이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런 느낌은 고흐 같은 이에게만 찾아오지 싶은데, 이 서간문의 흐름을 보면 그의 동생 테오가 먼저 언급을 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큰 사람으로 자라나라면 어린시절을 시골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지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테오가 직접 그런 체험을 했다기보다, 자신의 형이 영감을 잃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단순히 물어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나는 이렇게 한다"며 고흐가 내놓은 대답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참고하기에 실로 맥이 빠지는 말입니다. "그리는 그림의 모티브를 바꾸거나 기법의 변화를 시도한다." 마치 교과서 중심으로 충실히 공부해서 수석합격했다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도 고흐는 "빛의 효과와 인물화는 서로 관계가 (비교적) 적음"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유파상으로 후기 인상파에 속하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타자들을 보면 스윙이 아주 간결하고, 그래서 장타와 홈런이 많이 나옵니다. p178을 보면 고흐가 일본 전통화나 당대 우키요에[浮世繪] 속의 솜씨에 대해 매우 감탄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고흐가 지적하는 요점은 선과 터치, 색채 등 모든 게 간결해서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무렵은, 1853년에 페리 제독의 강요에 의해 개항한 이래, 서양 문화와 빈번히 교류하며 영향을 계속 주고받던 일본의 작품들이 유럽에 대거 들어와 유행의 일각을 형성할 때이고, 그 흐름은 반 고흐의 작풍에도 큰 흔적을 남겼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입니다. 

p224를 보면 고흐는 역시 자신의 일차 관심사를 자연에 둔 화가임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글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대체 왜 자신과 달리, 자연에 흥미를 느끼지도 않고 닮으려고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말투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글의 마무리를, "그런 이들조차, 인간에게는 관심이 있겠으며, 비록 적극적으로 치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소극적으로나마) 동정하고 공감할 수는 있을 것이다"로 짓습니다. 이미 그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대해 체념, 절망했던 것입니다. 그런 당신들도, 최소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책망하듯 말하는 게 저 구절 아니겠습니까. 고흐의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큰 지지를 받고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남은 건, 이런 진정성 있고 순수한 그의 휴머니티가 작품에 가득 배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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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긍정적 마인드셋
얼 나이팅게일 지음, 최은아 옮김 / 오아시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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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의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질적 양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서슬퍼렇던 나치의 침략 야욕도 미국의 미친 생산력 앞에 결국 무릎을 꿇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시기였던 만큼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그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티베이터, 강연자, 자기계발 스타 전문가들도 다수 등장했는데, 얼 나이팅게일(1921~89)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얼 나이팅게일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성공학 이론을 고안하여 독자, 청중에게 어필하는 능력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특히 그는 힘있고 젠틀한 음색을 갖춘 유려한 연설가이기도 했는데, 나중에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도 아나운서, 라디오 방송 진행자 시절 그와 경력이 일부 겹칩니다(나이는 레이건이 열 살 정도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떠어떠한 직업은 미래가 없기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얼 나이팅게일은 모든 직업은 이유가 있어 그 상황,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며, 어떤 직업이라고 해도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무슨 마음가짐으로, 어떤 열의로 일에 임하느냐에 따라 완성도, 기여도, 중요성, 명예가 달라지는 법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이 빛나는 사람이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그 일이 당신을 따라 함께 빛나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얼 나이팅게일보다 17년 연상이었는데, 생전에 마오에게 견제를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방(下放) 중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험한 일을 열심히, 또 유능하게 해 내어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마오 사후에 중국 권좌 정상에 올라 오늘날의 부강한 국가로 도약하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얼 나이팅게일은 자신보다 앞선 시대의 자기계발 이론가들을 깊이 연구한 행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나폴레온 힐(1883~1970)인데, 이 사람은 얼 나이팅게일에게 거의 할아버지뻘이지만 장수한 덕에 활동기간이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합니다. 나폴레온 힐에게도 거의 아버지뻘인 세대의 강연가였던 윌리엄 조지 조던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이 책 p72에서 얼 나이팅게일은 그의 책 일부를 인용합니다. 인생에 있어 평온이라는 걸 지나치게 추구하지 말라, 완전한 평온은 죽은 후에나 찾아오는데, 그나마도 바람직한 건 못 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라야 기쁨도 보람도 성취감도 생기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모험과 도전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대략 이런 취지입니다. 전혀 위험이 없다면, 가치 있는 그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으며 현상 유지에만 만족하려는 삶은 결국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얼 나이팅게일은 "용기"라는 덕목을 무척 중시했습니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은 안일하게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지금의 나 안에 모든 가능성과 성공 조건이 갖춰졌다고 확신한 후 과감하게 도약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과연 저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모두가 회의적으로 보는데도 기어이 뛰어올라 그걸 거머쥐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들은 그를 운(運)이 도왔다고도 하지만, 이 운이라는 게 사실은 그가 자신 안에 내재시켜 놓은 원동력, 모멘텀(p103)에 다를 바 없다는 게 얼 나이팅게일의 주장입니다.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 마주하여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는 건, 그 사람의 내면에 둥지를 튼 긍정적인 생각이 비로소 개화를 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the force 같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확신과 열정에 가득한 사람은 이미 초능력을 보유한 셈이니 말입니다. 

얼 나이팅게일은 p152에서 폴 스파이커(Paul Speicher)의 책 <용기라는 선물>의 일부 구절을 인용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신의 선물로써 주어진 게 있다. 그게 바로 용기이다." 또 불행을 완성하는 최후의 감정이 바로 체념이라고도 합니다. p184에서 인용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인내는 불굴의 용기가 낳은 딸"이며, 우리도 잘 아는 장자크 루소의 말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도 나옵니다. p217에는 새뮤얼 버틀러의 장편소설 <Erewhon>의 몇 구절이 인용되는데, 번역자 최은아씨가 적절한 본문 내 역주를 달아 놓아 문맥에 낯선 독자도 이해하기 좋게 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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