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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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남긴 편지, 주로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서간문 중심으로 모아 놓은 책입니다. p5를 보면 "자연이 내게 속삭인 말을 속기(速記)로 적어 둔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가 특별히 글씨를 빠르게 적는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비교불가의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천재는 언제나 자연과 친밀히 교감할 수 있었고, 그럴 때 떠오른 영감들은 찰나(刹那)로 스쳐가는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게 귓전에서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글씨로든 그림으로든 재빨리 붙들어 둬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890년에 완성한 <(푸른) 밀 이삭(들)>이라는 그의 작품이 있습니다(p8~p9의 도판 참조). 이 책의 제목은 아마 그에서 따왔을 것입니다. 또 그는 1888년 12월에 폴 고갱과 싸우다가 자기 귀를 스스로 상처낸 사건도 겪었습니다. 네덜란드어로 oor(오어)는 사람, 동물의 귀라는 뜻이며, 원래 곡식의 이삭은 aar(아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고흐의 저 작품만은 Groene oren(oor의 복수형) van tarwe라고 통하는데, 이는 저 일화가 간접으로 끼친 영향 말고도, 영어의 ear가 귀, 이삭이란 뜻을 모두 가진 곡절이 있어서(어원은 서로 다릅니다) 세계 그림 유통 시장에서 그리 굳은 것입니다. 이런 정보는 구글에서 찾아도 안 나오고 아마 저의 서평에서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p70을 보면 고흐는 평소에 "자신 안에 숨은 사악한 자아"가 회피하려 들었던 모든 고귀하고 도덕적인 일에 대해 각별한 의무감을 느꼈던 듯합니다. 평범한 우리들처럼 세속적인 유형은 애초에 그런 의무감 자체를 희미하게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향한 강박 따위는 체험해 본 적조차 없죠. 그러나 이런 진짜 예술가들은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우선 자신에게 들이대기에 평소에도 그런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날이 없는 것입니다. 윤동주의 시구(詩句)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같은 게 다 같은 맥락 아니겠습니까. 

p111을 보면 아니나다를까 고흐는 "자연이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런 느낌은 고흐 같은 이에게만 찾아오지 싶은데, 이 서간문의 흐름을 보면 그의 동생 테오가 먼저 언급을 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큰 사람으로 자라나라면 어린시절을 시골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지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테오가 직접 그런 체험을 했다기보다, 자신의 형이 영감을 잃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단순히 물어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나는 이렇게 한다"며 고흐가 내놓은 대답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참고하기에 실로 맥이 빠지는 말입니다. "그리는 그림의 모티브를 바꾸거나 기법의 변화를 시도한다." 마치 교과서 중심으로 충실히 공부해서 수석합격했다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도 고흐는 "빛의 효과와 인물화는 서로 관계가 (비교적) 적음"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유파상으로 후기 인상파에 속하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타자들을 보면 스윙이 아주 간결하고, 그래서 장타와 홈런이 많이 나옵니다. p178을 보면 고흐가 일본 전통화나 당대 우키요에[浮世繪] 속의 솜씨에 대해 매우 감탄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고흐가 지적하는 요점은 선과 터치, 색채 등 모든 게 간결해서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무렵은, 1853년에 페리 제독의 강요에 의해 개항한 이래, 서양 문화와 빈번히 교류하며 영향을 계속 주고받던 일본의 작품들이 유럽에 대거 들어와 유행의 일각을 형성할 때이고, 그 흐름은 반 고흐의 작풍에도 큰 흔적을 남겼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입니다. 

p224를 보면 고흐는 역시 자신의 일차 관심사를 자연에 둔 화가임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글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은 대체 왜 자신과 달리, 자연에 흥미를 느끼지도 않고 닮으려고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는 말투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글의 마무리를, "그런 이들조차, 인간에게는 관심이 있겠으며, 비록 적극적으로 치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소극적으로나마) 동정하고 공감할 수는 있을 것이다"로 짓습니다. 이미 그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대해 체념, 절망했던 것입니다. 그런 당신들도, 최소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책망하듯 말하는 게 저 구절 아니겠습니까. 고흐의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큰 지지를 받고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남은 건, 이런 진정성 있고 순수한 그의 휴머니티가 작품에 가득 배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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