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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도정치 - 과연 한국정치에서 제3의 길은 가능할까? ㅣ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3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12월
평점 :
학부로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오신 홍성민 박사님(파리 제10대학)의 새 책입니다. 종래 홍알정 시리즈가 두 권까지 나왔었고 저도 모두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이번 셋째 권의 주제는 "유럽의 중도정치"입니다.
미국이나 프랑스나 한국이나 대체 중도를 걷는(혹은 그렇게 주장하는) 정치인, 정치세력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여튼 중도 비슷한 걸 처음에 표방했던 마크롱도 12월 초에 행정부 붕괴를 겪었습니다. 프랑스의 내각 붕괴는 그들의 제5공화국 출범 후 처음 겪는 사건인데, 프랑스의 유서 깊은 민주주의가 이제 본격적인 도전에 직면한 시점이라 하겠습니다. 20여년 전 영국의 토니 블레어(p102. 단 이 책에서는 30년 전인 1994년 그가 노동당 당권을 잡았을 때를 먼저 회고합니다)는 노동당 소속이면서도 제3의 길을 표방했었는데 당시로서는 큰 환영을 받았으나 지금 블레어의 후계를 자청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없습니다. 책에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아니나 제가 읽기로는 그런 취지로 봐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는, 어떤 천재의 아들이었고 본인도 천재였던 J S 밀의 <자유론>에 크게 빚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1부의 2장에서 그의 <자유론>, <사회주의론>을 자세히 분석합니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21세기의 독자들이 느끼는 바가 크게 다를 수 있는데 밀이 이 책을 쓴 건 1859년, 칼 마르크스가 <자본(Das Kapital)>을 쓴 것보다 8년이나 앞선 시점이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인류사 최초의 그 실험이 행해진 것보다 반 세기를 훌쩍 넘는다는 점도 먼저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심지어 진 웹스터의 청소년용 고전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도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 정확한 의미를 따질 수 없습니다.
p71을 보면 교수님께서 각주 60번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서도 거대 기업의 이윤공유제를 주장한 관료가 있었으나 반대가 많아 시행되지 못했다"고 하신 대목이 있는데 독자인 제가 알기로는 이 비슷한 일(정확히 뭘 염두에 두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라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그 정부에서 동반성장위원장 자격(그 직전에 국무총리 역임)으로 그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그것도 노동자가 기업의 이윤을 공유한다기보다 중소협력업체와 대기업이 나눈다는 취지였죠. 정운찬 총장보다 7년 연하인, 고대 농경제학과를 나온 사업가 출신 정운천씨가 있는데 이분은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장관을 지냈고 나중에(2016년) 새누리당 공천으로 전북 전주시 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 있는 인사입니다.
p99 이하에 앤서니 기든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으며, 애초에 제3의 길이라는 말도 이 양반이 코인한 용어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특히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공저한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가 자주 인용됩니다. 고 김수행 교수님은 한국에서 최초로 마르크스 원전(독어판 말고 영문판. 마르크스는 영국에도 망명차 오래 체류했죠)을 옮긴 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말로는 국민정치파라고 옮겨지는 mass politics(김수행 교수 번역에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박사님이 각주에서 밝힙니다)는, 노동당(영국)이라고 해도 널리 국민 대중을 바라보고 정치해야 한다던 팩션이었으며 이 후계자들이라면 지금도 노동당에 있습니다. 아니, 당장 현 수상인 키어 스타머만 해도 노동당 안에서 구 블레어 노선과 유사하며 그렇게 해서 올해 7월의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죠.
2부에서는 독일의 중도정치가 역사적으로 고찰됩니다. 페르디난트 라살레(이 책의 표기를 따르겠습니다)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여러모로 특이하긴 하죠. 책에서는 현장 노동자 출신이라고 하는데 라살레는 집안이 부유해서 대학 교육도 받았고 나중에 마르크스 등에게도 후원까지 해 준 적 있습니다. 다만 워낙 기인이었던 그가 노동일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p115에 나오는 독일 사회주의 사상 계보도가 매우 재미있게 정리되어 눈길을 끕니다. 라살레의 포지션을 보통 국가사회주의라고 하는데 이 명칭을 20세기의 나치당이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p122를 보면 <노동자 강령>에서 그가 농민들의 움직임은 본질적으로 반동이라고 타매하는 대목이 인용되는데 유럽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농민에 대한 불신이라는 게 이처럼 역사가 유구합니다. 이러니 나중에 마오가 스탈린, 흐루시초프한테 사람 취급을 못 받았죠. 20세기 말 기민당 콜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잠시 정권을 잡았던 사민당의 슈뢰더(한국인 부인을 맞은 일로도 유명합니다)의 노선도 설명됩니다.
3부에서 프랑스 중도노선의 역사가 설명되는데 우리에게는 <자살론>으로 유명한 뒤르카임(이 책의 표기를 따르겠습니다)의 이른바 "연대주의"에 대한 조망이 이 책에서 아주 뭐 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입장을 이해해야, 한때 인기가 좋았던 마크롱의 앙마르슈 당 노선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는데, 제가 생각할 때 특히 p235의 이민법 같은 건 좌우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국익이 도모될 만한 정책(서평자인 제 생각일 뿐이며 저자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인 듯한데 좌우 양쪽으로부터 십자 포화를 맞았고 그의 정권이 이렇게 몰락해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부에서는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이분도 김수행 교수 라인입니다)의 연구가 인용되며 이분은 원래 미국에서 토지 공유를 주장했던 헨리 조지 전공입니다. 이분이 한국 이승만 정부에서 농림장관을 지냈고 나중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던 죽산 조봉암 사상 사이의 연관을 다루었습니다. 귀속재산처리와 농지개혁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 놓은 중대 정책 수립, 집행이었는데 이 의의를 짚은 박명림 고대 교수(한국전 성격 파악에 있어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중요 연구자이기도 합니다)의 주장도 자주 인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