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슈퍼파더>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이란, 요즘 같은 세상에 아빠 노릇 제대로 하려면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정도는 기본으로 해 줘야 한다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 는 아직 미혼이지만 언젠가는 자녀를 낳아 기를 테고, 그때쯤이면 파더들에게 요구되는 기본 사양이 높아졌으면 높아졌지, 더 완화되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분명하기 때문이죠. 이 내용들을 다 실천에 옮기면 자격 있고 칭찬 받아 마땅한 "슈퍼 파더"가 된다기보다, 아버지의 위상과 역할, 자격 요건이 변화 중인 과도기를 살며 이것저것 몸소 행동에 옮기고 실적도 내어야 하며 피드백도 받아야 하는 일을 직장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겪어야 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 대한 다소의 연민을 담아, "노력이 가상하다"는 의미에서의 "슈퍼"가 아닐까 생각해요.
저자의 면면을 잠시 살피면, 안드레아 미쿠스라는 저널리스트, 우베 볼만이라는 아동심리학자, 이 두 분의 공동 저술로 되어 있습니다. 두 분 저자 모두 여성입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때로는 동정적으로, 때로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이 시대의 아버지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고 치밀하면서도 건전한 열정을 담아 논하고 있습니다.
왼쪽: 안드레아 미쿠스,
가운데: 독일어 원서 표지(<강한 아빠들, 강한 아이들>),
오른쪽: 우베 볼만
이제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저 자들은 독일권 저술에서 흔히 볼 수 있듯, 논의의 대상에 대한 역사적이고 중층적인 고찰부터 먼저 시도합니다. 육아가 어머니의 전권 재량이고 전업적 의무였던 종래의 현실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를, 보다 길고 깊은 차원에서 검토하면 어떨까요? 아버지의 역할이란 우리의 예상과는 다소 벗어나게도,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 여러 번의 변전을 겪은 개념이라고 합니다. 로마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가장(家長. pater familias)은 가족 구성원은 물론 가노(家奴)들에게까지 롤 모델(role model)이 되는 존재였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이 역할은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도 큰 변화가 없었는데요. 이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농경이 중심이었던 생산 구조에서는 여전히 각 가정에 상시 거주하며, 경제 제사(諸事)와 결정권을 가진 존경과 권위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거죠. 독일 기준으로 불과 19세기까지만 해도 인구의 2/3가 비도시거주민이었는데, 1차 대전이 끝나고서는 반대로 2/3가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한 소득원을 책임진 아버지라는 존재는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도시에서의 생활 영위에 적합한 수단 마련을 위해, 현대적이고 조직화된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합니다. 자연히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게 되고, 더 이상 그는 아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나 "롤 모델"이 아닌 위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다 해도 1950년대까지는 여전히 상당한 정도로 좀엄과 경외가 바쳐졌는데요,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의 (1955년 <하우스키핑>이라는 월간지에 실렸다는)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지침"을 보십시오.
아 마 웃음을 참지 못할 분들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여권 신장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아버지란 존재는 이제 더없이 움츠려든, 가정에서 소외되고 직장에서 burn-out되는 처량한 신세로 바뀝니다. 여기까지의 서술만 읽어 보면, 이것이 독일이라는 멀리 떨어진 나라의 사정 정도로 이해되시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던 아버지가, 어느 새 아이들한테나 아내에게 "돈벌어 오는 기계"쯤으로 인식될 뿐이라는 탄식과 개탄이 유행어처럼 번지던 얼마 전 우리네 사정을 그대로 연상케 합니다.
저자들이 "슈퍼파더"라고 새로이 규정하는 "아버지상"은, 여기까지에서 보듯 시대에 따라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었다가, 이제 도로 제 자리를 찾아오는 변덕스러운 "유행 복귀 지점"도 아니고, 복고풍 가부장 이념의 시대착오적 회귀도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일찍이 없었던 민주적이고 입체적이며 철저히 개방적인, 그러면서도 versatile한 만능성을 요구하는, 미증유의 유능한 양친 역할의 전면적 혁신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원천이랄까 지침의 거울에는, 엉뚱하게도(?)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근대의 시기, 고작 "아버지를 따라 배우기만 의무로 강요당했던" 자식이라는 위상은, 이제 그들의 요구에 따라 아버지들이 스스로의 기능과 의무를 재점검, 재정형해야 하는 방향으로까지 바뀐 것입니다. 다시 저 위의 사진에서, 이 책 독일어 원서의 제목을 보십시오. "강한 아버지들, 강한 아이들"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아이들을 바로 자라게 하는 그 중추적 지점에 아버지가 자리하고, 아버지는 육아를 위해 거듭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열망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봐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뀐 세상에서 아빠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롤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그러면 이 결론은 로마 시대, 가장이 가족성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때와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롤 모델이 되긴 하되, 구시대의 폐습인 독재, 폭력, 강압, 일방적 지시 따위를 일삼고, 어울리지도 않는 억지 춘향식 영웅 역할을 떠맡는 게 아니라, 아이가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기준에 맞는 사회 성원이 되는 데에 일차적 조력자로서, 막중한 의무감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전근대에는 광활한 농촌에서 각자 고립된 지역에서만 거주하였기에, 아이들이란 더 넓은 세상에서 어떤 표준과 가치관이 지배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커뮤니티의 원칙에만 충실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듯) 인구의 2/3가 도시에 거주하게 된 현실에서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그 보고 배우는 바가 이미 아버지의 그것을 유월할 만큼 폭과 깊이가 넓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이 모든 배움과 습득의 원천을 무리 없이 조화로운 인격 속에 담고 자랄 수 있게, 최선의 노력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롤 모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게, 이 책에서의 "슈퍼파더"입니다.
바뀐 시대에서 아버지는 그저 이런 힘든 의무만을 짊어질 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며, 이런 멋진 경구를 독자에게 소개해 주고 있네요. "아버지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인간답게 죽을 수도 없다." 실제로 많은 아버지들은(어머니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갓 태어난 아이들, 아무런 보호막 없이 태어나 만약 방치라도 되면 그대로 생명의 불꽃이 꺼질 것 같은 연약한 존재를 보면서,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인격자가 될 것을 다짐하게, 자신의 분신인 아이를 양욱하며 무한한 희열과 긍지를 느끼며 또 도덕적 결의를 다집니다. 이처럼 아이란, 활력이 소진되어 가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생명력의 원천이며, 워즈워드의 유명한 시구에서처럼 "어른의 아버지" 구실을 하는 법이죠(A child is the father of man). 이 시구를 다소 바꾸어 응용하면, "아이야말로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아버지들은, "아이를 키움으로 인해 나는 종전의 나보다 개선된 존재가 되어 행복하다."는 고백을 연달아 털어 놓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여성이지만, 급진적인 흐름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사실 이 지점이 바로 이런 저서의 집필 출발점이자, 독자들에게 전달할 유니크한 메시지의 시초입니다). 어떤 아이에게건, 아버지는 필요하다는 겁니다. 보 통 급진적인 여권론자들은, 아버지 없어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훌륭히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결국 범죄자, 반사회성향자, 폭력적 기질의 소유자 중 상당 비율이, 바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존재임을 통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거죠. 아이가 바로 자라는 과정에 있어서, 아버지는 필수의 존재이며, 그런 아버지의 상을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슈퍼파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가령 이혼 가정에 있어 "잃어버린 아빠, 거부당한 아빠"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요? 한번 파판이 났으니, 더 이상 그런 편모 슬하의 아이들에게는 바르게 자랄 희망이 없기라도 하다는 말일까요? 그럴 리가요. 이 책의 장점은 공연한 이상론만 되뇌는 게 아니라, 이처럼 구체적인 문제에 직면한 이들에게 어떤 실용적인 해답을 내려 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이 책은,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왜 대체로 엄마 편을 들고, 이혼한 아빠를 배척하면서 만나지도 않으려 하는지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구체적인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겠으므로 이 리뷰에서는 생략합니다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죠. 여튼 이런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독일 법원의 대부분은 엄마에게 양육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접견권(우리 법률용어로는 면접 교섭권이라고 합니다)마 저 제한합니다. 그뿐입니까? 아이의 양육비만은 또 아버지에게 칼같이 부담시키고 있는 관행을 유지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혼한 아버지쪽이 입는 상처도 아주 크다고 합니다(이혼했다고 해서 전부가 다 문제가 있는 아버지이거나 유책배우자는 아닐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가, 전 배우자와 재결합은 못 하더라도, 자신의 피붙이들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기 위한 방법에는 그럼 어떤 게 있을까요?(앞서서 소개한 전제 사항처럼, 화해는 아버지 일방만을 위한 게 아니라, 아이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지침도 책에 잘 나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몇 페이지에 나와 있는지도 안 가르쳐 드립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마가 부적격자라서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 책의 매력이랄까, 진정한 인간미는, 바로 이런 "특이 가정의 아빠"들을 위한 배려도 충분히 내용적으로 베풀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상적인 패턴의 성원들이 남에게서 딱히 도움을 받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느 한 요소에 결핍이 있는 분들이라야 남의 도움이 진정 절실하고, 말 못 할 고민에 대한 답을 책에서 구하려 드는 게 보통이니까요. 이 런 "싱글 대디"들은, 아이에게 엄마가 베풀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수단과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 자괴감, 자책감이 매우 크고, 실제로 도움을 받을 네트워크가 불충분하며(그러나 요즘처럼 가상공간에서의 소통이 활발한 시대라면 곧 사정이 달라지지 않을까 짐작해요) 동료 남성들로부터 괴물 취급 당하며 소외당하는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게 보통이라는 군요. 이 책에서는 개인 차원에서 시도할 수 있는 여러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이 문제 역시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의 대응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편모 가정에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물적 배려와 따뜻한 시선이 주어지지만, 편부 가정이라고 하면 왠지 희화화된 시선으로 보는 게 보통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제 다시 평균적인 아버지의 역할과 의무, 노력 사항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슈퍼파더"는, 주로 그 자녀들과의 이상적인 관계, 릴레이션십을 염두에 두고 동원되는 개념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저자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p81)
1. 시간을 제대로 홣용하라.
2.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라.
3. 감정이입을 훈련하라.
4. 칭찬을 자주 하라.
5. 갈등에 대처하라.
6. 동기유발을 강화하라.
이와 같은 행동지침은 아이를 행복하게도 만들고, 또 강하게도 만들 것이라는 게 저자즐의 주장입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저 위 사진의 원서 제목을 보십시오. <강한 아빠 강한 아이>입니다. 저자들은 독일 문화권 특유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사람이 그의 인생을 사는 목표가 그저 행복하는 데에 그치지 않음을 이미 통찰하고 있습니다. "행복함" 못지 않게 "강함"의 미덕도 중요합니다. "강함"은 행복을 지켜 내는 수단이기도 하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유지하는 데에 필수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가 아빠와의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이 소통이라는 덕목에 있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가 봅니다. 아이에게는 물론 "약속 위반"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그의 행동에 대해, 일종의 교정과 제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무 작정 야단을 치면, 이는 아이에게 "모욕감"과 상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존감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기는 모욕감은 극히 회피해야 할 결과라고 합니다.그리고 이런 중요한 "약속"을 맺을 때에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일방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함께 내용을 형성해갈 것을 권장합니다. 약속은 자발적인 약속이고, 두 당사자의 진정한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거죠.
"감정이입을 훈련하라"는 장은, 물론 아빠가 아이들의 감정 상태에 즉각 반응하고 아이의 상태에 적응해 보라는 조언입니다. 아 이들은 아직 감정이 성숙한 상태가 아니므로,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빠진다고 해도 자신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아빠는 재빨리 개입하여, 그 감정이 어떤 것이며 앞으로 자주 찾아올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가장 현명한지, "롤 모델"로서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칭찬도 자주 해 줘야 한다는군요. 그 칭찬이, 그저 아이를 즐겁게 해 줄 뿐 아니라, 아이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여러 차례 되풀이하지만, 저자들은 이 "강함"이라는 미덕에 대해 특별한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동기유발을 위해서는 특히, 아이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분명한 이해를 도와 주고, 이 장점에서부터 모든 "자발적인" 동기가 샘솟게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강화하고 또 강화하며("강화[enforcement]의 정의에 대해서는 심리학 사전이나 교과서를 참조하십시오), 칭찬하고 또 칭찬해야 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에게는 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양친과의 갈등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이 때에는 어떤 내용이라도 격의 없이 오갈 수 있는,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원탁 회의가 열려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야단도 치고, 비판도 해야 하지만, 반드시 대안 제시와 합리적 논거 부연을 잊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버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화풀이성 요소"가 조금도 곁들여져서는 안된다고 당부합니다.
독일어권의 저서에서는 추상적이고 엄정한 체계가 돋보이기는 해도, 구체적인 사례 제시가 다소 부족하다는 게 보통의 경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지막 제 5장, 전체 분량의 1/3 가량을 CASE STUDY의 소개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 연구에 나오는 가정과 아빠, 아이들의 일화는 너무도 흥미롭고 전형적이어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한 훌륭한 복습, 응용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아직 부모의 처지에 놓여 있지 않은 저 같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몰입, 때로는 진지한 성찰과 예비적 통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사회의 건전한 발전 그 토대는 결국 행복한 가정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아버지상을 정립해 줄 수 있는 좋은 교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