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을 사로잡을 12가지 트렌드 - ‘로봇 식당’에서 ‘배보다 배꼽 마케팅’까지
KOTRA(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 엮음 / 알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트렌드"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에서도 잘 정의하고 있지만, "트렌드"와 단순한 "유행"은 일견 비슷하면서도 본질적이다 싶게 다른 면이 있습니다. 다소 시니컬하게도 들리지만, "트렌드"는 일시적인 게 아니라 (그 설명자의 그럴싸해 보이는 내러티브에 힘입어) 뭔가 문화적, 산업적, 나아가 인문적 맥락이 담겨진(혹은 그렇게 우리에게 제시된) 거대, 혹은 마이크로 동향을 의미합니다. 책에서 내세우는 절실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물리적 본질은 유행과 트렌드가 서로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를 두고 있음에 불과합니다. 특히나 소비 부문 트렌드(라고 저술가들 애널리스트들이 내 놓은 것)을 보면,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모를 만큼 모호하면서도 수긍이 안 가지는 않는, 정체불명의 녀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싣고 있으니 친근하면서도, 전체로서는 거대한 실체가 따로 있어 분석가들의 필터와 준거틀이 따로 소모된다고 하니, 알면서도 모를 존재가 바로 이 트렌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이제는 캘린더나 다이어리만큼 연말 연시 필수 검토 아이템이 되어 버린) 이 트렌드 분석서를 접하면서도, 소비쪽 부문에서는 뭔가 가벼움, 한 단계 낮춰 보는 듯한 우월감, 흡사 장르문학을 대하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반면 이 책과 같은 생산 부분 리포트를 두고는 옷깃을 여미는 다소의 삼감을 마음에 장착하기도 하는 거죠. 알고 보면 이 또한 착시 현상이거나 속물 근성일 뿐입니다. 트렌드가 트렌드지 그럼 뭐겠습니까?


그래서 해외의 동향으로부터 가까운 장래의 우리 트렌드를 추정해 내는 건, 간단하면서도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아직 외국 현지에서 "트렌드성"이 채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땅에서 나비 효과처럼 폭풍과 같은 거대 트렌드를 형성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곳에서 거주민들, 소비자들을 다 빨아삼킬 듯 강력히 형성된 트렌드도 정작 물 건너 이 땅에 상륙하면 일개 미풍으로 소멸하는 것들도 있을 터입니다. 사실 어떤 특정의 해외 트렌드가 국내에서 의미있는 경제적 효과를 일으킬지의 여부는, 과거의 사례, 즉 외국 조류와 한국에서의 여파가 어떤 함수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한, 회고적 함수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작 트렌드의 분석에 소요되는 사전 작업치고는 너무도 많은 비용이 드는 과제이기에, 우리는 이처럼 현지 무역관들의 인상비평적, 휴리스틱한 르포로 그 역할을 대신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트렌드가 무엇인지, 무엇일지 정확히 포착해 냈다 쳐도, 그 역시 구체적인 생산 라인과 마케팅 프로세스의 확정이 아닌, 그저 모종의 영감 원천으로 기능하는 데에 그치는 까닭입니다.


제가 책을 펼치면서부터 대번에 주목했던 것은, 터키, 러시아, 그리고 중앙아의 대표 주자로서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사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잘 잊곤 하는 중대 사정 중 하나가, 한국은 세계에 몇 되지 않는 테러 청정 지역이며, 방범과 치안의 유지도 대단히 이상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단일민족국가이기에 소수민족의 존재가 부르는 분란의 리스크가 없다는 점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대단찮게 다가오는 터키 같은 나?顫?, 알고 보면 (과거 대제국의 영화에는 비길 바 못되나) 아직도 상당한 넓이의 영역을 점유하고 있고, 국민의 인종적 구성도 다양한데다, 기독교와 이슬람, 원리주의적 신정과 세속주의의 실용, 그리고 인종 도가니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복잡다단한 지역이죠, 이런 곳에서 개인의 신상 안전 이슈가 부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호신 물품과 CCTV등 방범 체계의 구축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러시아 역시 구 제국 시대 이래 다민족 국가였고, 소 연방의 붕괴로 자립했다고는 하나 소수 민족 문제로 영일이 없죠, 이와는 별개로 스킨 헤드족 문제로 야간의 치안이 불안합니다. 여기에, 이들 나라의 독특한 민족성과 열악한 교통 사정으로 모니터링 시스템의 도입이 국가적 과제라는 점을 해당 파트의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으며, 특히 생산재의 경우 실수요의 강력한 추동력은 어느 심리적 마케팅 팩터에 비길 바가 아님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대단히 "말랑말랑한" 소재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대 유통업체 카르푸의, 파리에서의 사례를 소개한 대목인데요(김영호 무역관 서술 파트). 앞부분에 나온 프랑스인 A씨 운운은 사실 김영호씨 자신의 경험담이 아닌지, 현지인의 정서라기엔 너무 한국스러운 느낌이 강해서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실적과 무관하게 "할인 구매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포인트 지급을 남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커피캡슐을 사게하고 일정 구매량 초과시 커피 머신을 제공한다는 이른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법"은, 사실 유통과 마케팅 면에 있어 세계적 레벨에서도 귀신이 되다시피한 한국의 실정에서도 흔히 보는 양상입니다. "어차피 정상가에 구입할 뿐"이라는 비판자들의 지적이 타당하게, 애초에 높이 책정된 소비자가에서 할인 폭의 확대란, 일종의 속임수에 불과하니까요. 1990년대 중반 이미 한국의 대법원은 이런 케이스(이른바 사기세일 사건)에서 백화점측에 유죄 선고를 내린 적도 있습니다. 여튼 한국에서 이런 상술이란 너무도 진화한 형태로 만연하고 있어 새삼 트렌드라고 불러 줄 일도 아닙니다. 그 뒤에 나오는 잡지 부록 사례 역시, 한국에서는 아마 1970년대부터 만연한 판촉 행위였고, 제 개인적 기억으로도 2000년대 초반 잡지가보다 비싼 DVD 부록 끼워주기 행태가 떠오르는군요(이 역시 반짝 유행에 그쳤던 게, 이후 초고속 인터넷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며 곧 불법 해적판 공유 파일이 밀려오는 바람에 DVD 시장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장품 등을 여성지에 끼워 주던 모습도 대략 10년 전까지 보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보 소스의 일차적 중요성을 잡지, 신문이 상실한 지 오래라서, 이런 일본의 (몇 걸음 뒤처진) 모습이 큰 참고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찾아 보기 좀처럼 어렵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장래에 대두할 벤치마킹 대상으로 보기도 어려운 게 바로 네덜란드 KLM의 하위셔 세트 판촉입니다. 희소성과 개별 상품에 부여된 다차원의 소장 가치를 겸한 이 아이템은, 알고 보면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명품성"과, 해당 기업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이미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외산 물품(이를테면 아이폰)에 대한 마니아적 열풍이 다소 존재하는 정도고, 기본적으로 사회적 존경을 받는(부러움의 대상은 있습니다만) 기업이 없다는 게 문제죠. 여기에, 미술품, 공예품에 대해 특별한 안목과 존중을 국민적 전통으로 갖춘 네덜란드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이게 가능한 겁니다. 한국은 한때 세계적 품질의 도기와 자기를 생산하던 나라지만, 그 시절에조차 기능공과 예술품에 대한 존경이 없었습니다. 지금 부는 패션 명품 추종 현상은 심미적 능력에 기인한 게 아닙니다.


창조 경제라는 컨셉이 요즘 어디에서나 이슈죠? 문제는 이를 구체화할 방법론입니다. 첫째 조건은 이 책이 표제로 잘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 핵심 자산(비용이 아닌)임을 깨닫고, 이를 육성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역시 책에 나오듯이 규모의 경제, 혹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이런 자원과 집단은 클러스터를 이뤄야 합니다. 고립된 자원은 결국 자신의 효용 하나마저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책에서도 제시하고 있지만) 엔젤 인베스터, 캐피탈을 제도화할 방안이 요구됩니다. 현재 클러스터화의 요구는 한국의 서울, 구로구나 충남 대덕 등지에서 국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지만, 진척도는 대단히 미흡합니다. 투자지원의 문제는 정책당국의 의지 결여, 사회적 신뢰의 결핍으로 여전히 요원한 형편입니다. 이런 판에 당장 2014의 트렌드랍시고 내세우기엔 신선함과 현실성 모두를 결한 게 사실이지만,"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처럼 우리는 이를 아젠다로, 내년에도 올해처럼 밀고나가야겠지요. 이는 이미 트렌드라기보다 맥박적럼 항구적인(혹은 그래야만 할) 명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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