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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 : 정책적 측면 ㅣ 다층적 통치성 총서 6
이동수 엮음 / 인간사랑 / 2023년 9월
평점 :
미셸 푸코의 개념에 근거한 통치성의 근대적 측면을 집중 탐구하는 다층적 통치성 총서 제 6권입니다. 이 책에서는 근대적 통치성의 발전적 극복을 모색하며 주로 정책적 측면에서의 고찰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지방자치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체적 제도로도 평가되는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전횡을 막고 민주적 통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필수로 꼽힙니다. p31을 보면 주민자치회의 운영 모델을 크게 세 가지로 꼽는데,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주민자치회는 통합형에 가까우며 이는 지방자치의 이상적인 구현보다는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가깝다"는 게 김태영 교수의 견해입니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개인개인의 이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자치(self-governing)에 가깝다면, 지방자치의 단위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으며, 이를 위해서는 주민조직형 자치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총서 앞 권들에서도 나왔지만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보통 여섯 요소(p14, 또 p38 이하 등)로 구성된다고들 합니다. 첫째 통치의 총체성(ensemble), 둘째 통치의 주체(relationship of the self ro self. 이 구절 자체가 푸코 고유의 체계에서만 등장합니다), 셋째 통치의 방식(manifestation of the truth), 넷째 통치의 구현(surface of contact), 다섯째 통치의 도구(reason, knowledge) 여섯째 다층성(multilayered) 등입니다. 김태영 교수의 논문은 이 다섯 개를 기준으로 삼고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을 진단합니다.
어떤 형태의 행정 작용, 통치라고 해도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예산(budget)입니다. p59에서는 근대 예산의 중요 원칙들을 드는데 의회에 의한 사전의결(prior authorization), 행정부에 의한 예산 편성(executive budgeting), 예산의 단일성 및 포괄성(unity and comprehensivenesss), 연도별 예산(fiscal year), 결산 및 감사(settlement of accounts and audit) 등인데, 이들 원칙의 목적은 "공공재정의 조성 및 납세자에 의한 재정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합니다. 김정부 교수의 이 논문은 지방자치에 있어서도 각종 주민 복리의 실현을 위한 핵심 제도가 바로 예산과 재무이며 어떤 방안을 통해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시행될지를 논합니다.
조석주 교수는 푸코의 1979년 강의를 인용하여 통치성 개념을 검토하며, 또 근대적 통치성 개념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인 자유주의에 대해 잠시 조명합니다. 사실 "자유"라는 말이 대단히 모호하기 때문에 자유주의라는 개념도 때로는 좌파적으로, 때로는 우파적으로 구성, 해석되곤 합니다. 푸코는 저 강의에서 18세기 중엽에 출현한 통치성 내부의 자유주의는 차라리 자연주의(naturalism)로 부를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 근거는 "개인의 자유를 그 자체로 존중한다기보다, 통치되는 인구 집단의 자연(발생)적 메커니즘"에 주목해서라는 것입니다(확실히 푸코스러운 깐깐함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실천, 근대적 통치성 실천의 핵심에 자유가 기능하므로 여전히 자유주의란 개념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데 읽으면서 탁견이다 싶었습니다.
시장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론 본질이란, 어떤 단일한 요소로 이뤄지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대상을 파악할 때 무엇이 그 실존, 혹은 작용의 핵심을 이루는가, 혹은 이해와 파악의 주체 쪽에서 무엇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느냐는 얼마든지 따져 볼 수 있습니다. 푸코는 19세기말을 분기점으로 시장의 본질은 더 이상 "교환"이 아니라 "경쟁"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르크시즘 진영에서 19세기 유럽 경제를 독점자본주의 단계 진입으로 보고 자본주의는 더 이상 경쟁이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아이러니컬하지만, 그만큼 어느 진영에서도 "경쟁"이 논의의 초점이었음이 재확인되는 셈이기도 합니다.
제5장 채진원 교수의 논문에서는 남북 문제에의 접근 도구로써 푸코의 구성주의 시각을 활용한다는 게 독특합니다. p168를 보면 이상과 현실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될 수 없고, 가장 비탈협적이고 교조적인 구조를 갖기 쉬운 종교조차도 때로는 국가공동체의 통합요청에 응해 현실적합적으로 변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예로 든 신라 원효대사의 전거는 아마 세속오계를 제정한 원광법사의 오기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세계사는 끝없는 분리와 통합 사이의 투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시사 받아 개항과 근대화를 시도한 개화파의 움직임은 "청(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으로 볼 수 있고, 일제에 대항한 투사들의 행보 역시도 해양 세력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2016년의 브렉시트는 유럽 대륙으로부터 잉글랜드가 보인 독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중심의 통합을 도모하는 움직임이라 볼 수 있겠네요.
유길준, 부들러 등도 19세기말 조선의 중립을 국제법상으로 보장되게끔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반향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탁상공론이라며 비판받았습니다. 중립은 타국의 보장과 존중에 의해 성립, 유지되는 게 아니라 중립을 내세우려는 당사국의 강력한 의지와 실력이 받춰 주어야만 가능합니다. 책에 나오듯 히틀러도 유대 자본과 인사들을 대놓고 비호하는 스위스에 대한 군사 침공을 고려했었으나 스위스의 방어 태세를 보고 지레 포기하여 이후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북구 스웨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반면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주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의 "스위스는 나라 전체가 하나의 군대"라는 말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