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는 대학 생활 - 슬기로운 당신을 위한 진로 백서
홍기훈.김도경 지음, 김벼리 그림 / 북카라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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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매우 민감한 이슈입니다. 책 p32에 나오는 대로, 어떤 청소년들, 또는 영 애덜트들은 "왜 나는 잘하는 게 없을까?"라며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능이란 사실 뭘 잘한다, 뭘 못한다가 칼로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드러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어떤 재능은 그저 파묻히기도 하고, 어떤 재능은 찬란하게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이런 건 당사자가 얼마나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있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 이론이 시사하는 바처럼, 지능이란 어느 하나의 요소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를 당사자가 어떻게 잘 가꾸고 소중하게 키우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때로 우스운 결과를 랜덤으로 빚어내는 곳이라서, 능력도 정직성도 학력도 지능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자가, 예를 들면 회식 자리에서 노래 한 곡 잘 뽑았다고 좋은 자리에 발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오래가지 못해, 결국은 한직을 뺑뺑이돌다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어느 회사, 심지어 대기업(p226)이라 해도 유력한 자가 쓰레기 처리 용도로 한껏 쓰고 나서 폐기처분하는 인력 한둘 정도는 자기 밑에 두곤 하니 말입니다. 이런 자한테 몇 푼만 쥐여줘도, 워낙 없이 살았다 보니 큰 출세나 한 양 감지덕지하여 부잣집 종놈이 주인에게처럼 굽신대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하무인으로 교만하게 굽니다. 그런데 이런 구시대적 패턴으로 비굴하게 처세하는 자는, 결코 그 보잘것없는 자리나마 오래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결국 정의의 패턴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당대에 벌을 받는다고, 애도 그래서 그 모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대 문제도 활용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p173에 나옵니다. 이 책에 나온 어떤 사례를 보면, 다양한 사람, 심지어 몸에 문신을 한 사람과도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던져놔도 자신을 끝까지 지키면서 더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요령이나 피우고 분위기 파악 못 한 채 까불다가 어디가 다쳐서 나오는 미련한 인간도 있지만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지가 잘난 줄 압니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이 따를 리가 있겠습니까? 어디 술집에 데리고가 줘서 환심이나 사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그런 식이 아니면 남의 호감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유형이죠). 책 p175에 나오듯, 군대에서도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한 경로를 마련한다든가, 각종 특기를 살려 오히려 입대 전보다 더욱 특기를 살려 전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청년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군대 18개월이 인생의 무덤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 p136을 보면 린다 그랜턴 박사의 주장 그 한 예가 나오는데, 요즘은 인생에 있어 어떤 경계선이 없고, 모든 구간이 모호한 과도기로만 연속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지도 모릅니다(아이러니죠). 책에서는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성장을 매 순간 확인하려고 두려워하며 불안해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독자인 제 생각으로는(저자의 취지도 그런 듯하지만) 매 순간이 모호한 과도기라면 오히려 매 순간이 기회이기도 한 것 아니겠습니까? 막 늦었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챙길 건 확실히 챙긴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업무(대학생이라면 공부)에 전념하다 보면, 결국은 원하는 자리에 가 있을 것입니다.  

p237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좋은 교훈을 들려 줍니다. 이미 10년 전에 중국 베이징 인근에서는 중관촌(中關村)이라는 게 형성되어 젊은이들이 창업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은 중국의 공산품(비록 짝퉁, 불량 논란도 있지만)이 세계를 휩쓸게 되었지요. 지금 우리가 테무니 알리니 하는 데서 싼 제품을 살 수 있는 것도 결국 그 덕 아니겠습니까?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몇 달 전 중국에 가서 과잉생산 문제를 지적하며 덤핑 수출, 나아가 디플레이션 수출(?)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지만, 제가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니, 19세기 초 서세동점의 시기에 영국, 서유럽 상인이 대거 몰려온 건 과잉생산 문제 해결 목적이 아니면 뭐였다는 겁니까? 소비자가 값싼 물건을 소비하고 싶어하며 이 니즈를 맞춘 생산자만이 살아남는 건 시장 구조와 자본주의의 본질입니다. 이제 공수(功守)가 바뀌어, 과거에 주던 대로 돌려받는 건데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p230을 보면 공무원 시험 경쟁률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의 예가 대조적으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한국은 다들 편한 길만 가려다 보니(의대 입시 열풍도 마찬가지) 나라가 더 크지를 못하고 만성적인 경제 위기를 겪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기업조차, 줄만 잘 타고 능력은 하나도 없는 기회주의자 요령꾼이 득세하다 보니 서서히 저렇게 망조가 드는 거죠. 젊은이들은 알차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되, 때로는 과감하게 난제에도 도전하여 자신과 사회의 앞날을 개척할 필요도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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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치활동 - 한국형 로비 대관활동 연구
윤홍근 지음 / 인간사랑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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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미국은 2차 대전 후 로비 활동이 합법화하여 직업적인 로비스트들도 다수 활동하는 실정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로비"라는 말 자체가 음습한 부정부패, 증수뢰, 범죄 등과 거의 동일시하는 형편이며 이 때문에 기업은 상시로 감옥에 발 한 쪽을 들여 놓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합니다. 법이란 본시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해석 적용에 따라 기업의 대외 활동, 특히 공직자들과의 소통 접촉 중 상당수가 범죄의 사전 정지 작업쯤으로 여겨질 소지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선 이른바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는 중이니 로비는커녕 그 비슷한 활동도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는 격이 되기 쉽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대관활동"이란 말이 나옵니다. 대관이란 용어가 낯설 수 있는데, 공연장 등을 대여한다는 뜻의 貸館이 아니라, 관가(官街)를 상대(相對)한다는 뜻에서의 對官입니다. 한국 같이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밀집하여 사는 나라에서는 각종 규제가 시행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떤 종류의 사업을 하더라도 관공서를 방문하여 각종 신고, 허가, 인가를 넣거나 따 내야 합니다. 대관 활동 없이는 기업(규모를 막론하고)이라는 게 영위될 수가 없으며 존속부터가 불가능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표나 이사가 전과자가 되고 안 되고의 사정이 그저 우연이나 운수 등에 맡겨진다면 기업이 경제 활동이란 걸 할 수 없고 대한민국 자체가 흔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이제 로비는 분명한 기준을 정해서 합법의 영역으로 대거 편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도 변호사 연 2,000명 배출시대를 맞은지 오래인데 그 많은 신규인력을 어떻게 소화시킬지가 과제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려면 꼭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p67 이하에 잘 나오듯 잘나가는 로비스트 중 변호사가 꽤나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합법 로비는 여러 사람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충돌지점들을 최소화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과정이니 마치 민사소송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또 의회에서 주로 로비스트들이 활동하고, 의회란 본질적으로 법을 만드는 곳이니, 법률에 밝은 변호사들이 큰 활약을 펴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PAC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political action committee의 약자입니다. 아무리 돈이 당락을 좌우하는 미국 정치, 선거판이라고는 하나 이 단위를 거치지 않고는 돈을 모으거나 쓸 수 없습니다. 일정 규모 이하의 자금 출납만 허용되다 보니 재산가나 정치 거물, 고위공직자 상대뿐이 아니라 소시민, 대중을 향한 홍보, 동원, 모금 활동도 갈수록 중요해졌는데 이는 지금의 우리나라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그래스루츠(grassroots) 로비라 부른다고 합니다. 

Barry Baysinger 교수(p138)는 기업의 정치활동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그 기준은 근본적인 동기와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릅니다. 1) 영역 비교우위 창출 2) 영역 수호 3) 영역 유지. 2)와 3)의 차이가 있다면, 2)는 공공정책이 자기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최소한으로 묶으려는 활동(동기)이며, 3)은 개별 정책 사안이 기업 목표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선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활동입니다. 2)는 이미 이뤄지는 공격에 대한 적극적 수비이고, 3)은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빌드업에 가깝죠. 1)은 주로 타 경쟁기업들과 관련된 활동입니다. 

이러한 미국 학계의 분석틀을 기반으로, 책의 제4장부터 한국의 사례에 대한 분석이 본격 시작됩니다. 기업은 한편으로 명문대 졸업자들을 신입시절부터 입사시켜 엘리트 공직자들과의 인적 접촉 지점을 미리 만들어 양성하며, 한편으로 퇴직 고위 공직자들을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영입하여 보다 직접적이고 단기즉효의 루트를 구축합니다. 

또 기업의 규모에 무관하게, 개별 로비스트들을 기용하기보다 단체를 만들어 대관 활동을 벌이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전경련, 상의, 무협, 경총 등이 그 좋은 예입니다. 탄핵 사태 때 전경련은 공식적으로 해체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합니다. 단기적(일회성)으로는 거래형 접근법이 유효하겠고, 장기로 본다면 관계구축형이 더 효과적이겠으나 "정책 사안 관련 불확실성 정도가 크며 자원의 자산특정성 수준이 높다면 기업 정치 활동을 총괄적으로 수행하는 내부 조직을 편제해 두는 게 효율적(p242)"이라고 합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로비의 무한정 합법화는 물론, 미국식의 제한적 합법화조차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기업 로비 활동상을 감인하면 언제까지 이를 음지에 묶어 두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하고 정경유착의 근착을 조장하게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형 로비법제(p295)를 숙고와 연구, 공론화 끝에 조속히 마련하여 기업활동의 제고와 법의식 타락 방지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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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 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 10주년 기념 수정 증보판
곽승지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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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판이 10년 전에 나왔으며 그를 기념하여 내용이 수정, 증보되었습니다. 조선족은 현재 우리 나라 어디서도 쉽게 만날 수 있고, 10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경제적,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기반을 다진 이들이 많습니다. 누구누구가 조선족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이는 엄연한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먼저 그들이 지나온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중국현대사에서 무시못할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족의 지난 족적, 북한과의 미묘한 관계 등을 주로 짚고 마지막에 한국 사회 내에서의 그들이 어떤 동향을 보이는지 분석하고 내다봅니다. 이제는 선거 때 지지성향, 경제활동 참여 등 엄연한 상수로 작용하는 집단이기에 더 냉철하고 정확한 파악이 요구되며, 이 책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1930년대 초에 무서운 침략 성향과 기존 질서에 대한 노골적인 교란 의도를 드러내어 만주를 짓치고 들어왔습니다. 국제 사회도 일본 제국의 이런 침략 성향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으나 제국은 아랑곳없었습니다. 조선족은 당시 만주 일대에 거주했었고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일정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의 종주국은 소련이었고 스탈린이 대전 발발 전부터 내내 국민당 정권에 우호적이었음은 (아이러니컬하지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책에서는 이미 일본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고 종전이 된 후인 1945년 9월 중순부터 소련 당국의 태도가 중국 공산당 쪽으로 기울었음(p54)을 지적합니다. 

사실 만주(이 책에서는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을 따라 "동북 지방"이라 일관되게 칭합니다)는 1930년대부터 중국이 통제권을 잃었고 19세기말부터 러시아가 일정 부분 이권도 유지하던 땅인데다 대전말 불가침 조약을 깨고 이들이 진주했을 때 아예 자국 영토로 편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 p59 같은 곳을 보면 소련군 일시 철수 후 국민당 세력이 대거 밀고들어와 공산당을 후퇴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책을 잘 읽어 보면 공산당 입장에서 "토비"로 인식되었던 현지의 잡다한 세력 토벌에 제법 큰 수고를 들이는 과정이 서술되어 재미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들이 인민공화국 수립에 적잖은 공을 세웠음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입니다. 

p136 같은 곳을 보면 미국이나 소련이나 똑같이 장개석 국민당을 대륙의 맹주로 보고 처음에 지지했던 사실이 나와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미국은 또 미국이라 쳐도, 소련은 같은 공산당이었으면서도 정세를 그처럼이나 크게 오판했던 것입니다. 장개석은 무려 미소 양대 초강국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고도 대륙의 패권을 놓쳤으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서, 쑹메이링 영부인(마담 창)의 1943년 미국 방문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그 어느 외국도 이를 돕지 못하는... 

p102 같은 곳을 보면 이미 1930년대부터 동북지역 거주 조선인들과 중국 공산당이 매우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음이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한국내 조선족이 돈은 한국에서 벌면서 소속감이나 충성심은 중국에 바치는 태도를 크게 비판하는데 그 당부를 떠나 그들의 그런 의식 세계가 형성되는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을 필요만큼은 뚜렷합니다. 그러한 인식의 정확한 바탕 위에 우리는 우리 나름의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FDR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미국 내에서 부정적 평가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 앨저 히스 같은 간첩의 농간으로 2차 대전 당시 소련 측에 과도한 양보를 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여튼 그를 승계한 해리 S 트루먼은 1947년 따로 독트린(p135)을 내어 소련을 적국으로 분명히 규정했습니다. 이 와중에 팔로군, 또 동북항일연군(p142) 등은 목숨 바쳐 가며(p144) 중국 공산당을 지지합니다. 재미있는 건 1949년, 아니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조선족 동포(이 말이 지금과는 달리, 저때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들립니다)들은 북한을 조국으로 받아들였다는 분석(p215)입니다. 

마침 요즘이 중국 양회 시즌입니다. p235를 보면 1949년 9월의 정협에서 소수민족의 지위에 대해 공동강령이 채택된 일이 서술됩니다. 묘(먀오)족은 중국 내에서 매우 큰 규모(조선족과는 비교도 안 되는)의 소수민족인데 한자 표기도 이무렵 猫(비하 뉘앙스)에서 苗로 바뀌었다는 정말 흥미로운 정보도 나옵니다. 이 책도 마오의 대표적 실책인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인데 조선족뿐 아니라 한족 주류도 이를 십년(대)동란으로 부르는 등(p258) 태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덩샤오핑의 장남 등복방은 항구적인 장애인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일각에서 이에 대해서까지 숭배하는 경향을 드러내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곽승지 박사님, 전 연합뉴스 기자님이 쓴 이 책은 재미도 있거니와 동아시아 현대사의 흥미로운 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 정리하였기에 정말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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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 : 정책적 측면 다층적 통치성 총서 6
이동수 엮음 / 인간사랑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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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개념에 근거한 통치성의 근대적 측면을 집중 탐구하는 다층적 통치성 총서 제 6권입니다. 이 책에서는 근대적 통치성의 발전적 극복을 모색하며 주로 정책적 측면에서의 고찰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지방자치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체적 제도로도 평가되는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전횡을 막고 민주적 통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필수로 꼽힙니다. p31을 보면 주민자치회의 운영 모델을 크게 세 가지로 꼽는데,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주민자치회는 통합형에 가까우며 이는 지방자치의 이상적인 구현보다는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가깝다"는 게 김태영 교수의 견해입니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개인개인의 이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자치(self-governing)에 가깝다면, 지방자치의 단위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으며, 이를 위해서는 주민조직형 자치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총서 앞 권들에서도 나왔지만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보통 여섯 요소(p14, 또 p38 이하 등)로 구성된다고들 합니다. 첫째 통치의 총체성(ensemble), 둘째 통치의 주체(relationship of the self ro self. 이 구절 자체가 푸코 고유의 체계에서만 등장합니다), 셋째 통치의 방식(manifestation of the truth), 넷째 통치의 구현(surface of contact), 다섯째 통치의 도구(reason, knowledge) 여섯째 다층성(multilayered) 등입니다. 김태영 교수의 논문은 이 다섯 개를 기준으로 삼고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을 진단합니다. 

어떤 형태의 행정 작용, 통치라고 해도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예산(budget)입니다. p59에서는 근대 예산의 중요 원칙들을 드는데 의회에 의한 사전의결(prior authorization), 행정부에 의한 예산 편성(executive budgeting), 예산의 단일성 및 포괄성(unity and comprehensivenesss), 연도별 예산(fiscal year), 결산 및 감사(settlement of accounts and audit) 등인데, 이들 원칙의 목적은 "공공재정의 조성 및 납세자에 의한 재정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합니다. 김정부 교수의 이 논문은 지방자치에 있어서도 각종 주민 복리의 실현을 위한 핵심 제도가 바로 예산과 재무이며 어떤 방안을 통해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시행될지를 논합니다.  

조석주 교수는 푸코의 1979년 강의를 인용하여 통치성 개념을 검토하며, 또 근대적 통치성 개념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인 자유주의에 대해 잠시 조명합니다. 사실 "자유"라는 말이 대단히 모호하기 때문에 자유주의라는 개념도 때로는 좌파적으로, 때로는 우파적으로 구성, 해석되곤 합니다. 푸코는 저 강의에서 18세기 중엽에 출현한 통치성 내부의 자유주의는 차라리 자연주의(naturalism)로 부를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 근거는 "개인의 자유를 그 자체로 존중한다기보다, 통치되는 인구 집단의 자연(발생)적 메커니즘"에 주목해서라는 것입니다(확실히 푸코스러운 깐깐함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실천, 근대적 통치성 실천의 핵심에 자유가 기능하므로 여전히 자유주의란 개념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데 읽으면서 탁견이다 싶었습니다. 

시장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론 본질이란, 어떤 단일한 요소로 이뤄지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대상을 파악할 때 무엇이 그 실존, 혹은 작용의 핵심을 이루는가, 혹은 이해와 파악의 주체 쪽에서 무엇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느냐는 얼마든지 따져 볼 수 있습니다. 푸코는 19세기말을 분기점으로 시장의 본질은 더 이상 "교환"이 아니라 "경쟁"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르크시즘 진영에서 19세기 유럽 경제를 독점자본주의 단계 진입으로 보고 자본주의는 더 이상 경쟁이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아이러니컬하지만, 그만큼 어느 진영에서도 "경쟁"이 논의의 초점이었음이 재확인되는 셈이기도 합니다. 

제5장 채진원 교수의 논문에서는 남북 문제에의 접근 도구로써 푸코의 구성주의 시각을 활용한다는 게 독특합니다. p168를 보면 이상과 현실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될 수 없고, 가장 비탈협적이고 교조적인 구조를 갖기 쉬운 종교조차도 때로는 국가공동체의 통합요청에 응해 현실적합적으로 변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예로 든 신라 원효대사의 전거는 아마 세속오계를 제정한 원광법사의 오기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세계사는 끝없는 분리와 통합 사이의 투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시사 받아 개항과 근대화를 시도한 개화파의 움직임은 "청(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으로 볼 수 있고, 일제에 대항한 투사들의 행보 역시도 해양 세력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2016년의 브렉시트는 유럽 대륙으로부터 잉글랜드가 보인 독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중심의 통합을 도모하는 움직임이라 볼 수 있겠네요. 

유길준, 부들러 등도 19세기말 조선의 중립을 국제법상으로 보장되게끔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반향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탁상공론이라며 비판받았습니다. 중립은 타국의 보장과 존중에 의해 성립, 유지되는 게 아니라 중립을 내세우려는 당사국의 강력한 의지와 실력이 받춰 주어야만 가능합니다. 책에 나오듯 히틀러도 유대 자본과 인사들을 대놓고 비호하는 스위스에 대한 군사 침공을 고려했었으나 스위스의 방어 태세를 보고 지레 포기하여 이후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북구 스웨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반면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주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의 "스위스는 나라 전체가 하나의 군대"라는 말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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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전쟁
최진우 외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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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7년에 나왔습니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지속되는 지금 읽어 볼 때 더 시사하는 바가 많은 듯합니다. 2차 대전 종전 후 완전히 폐허가 되고 아무도 승자로 남지 못한채 자칫하면 전 유럽이 공산화되기 직전이었던 유럽 여러 나라. 미국의 마셜 플랜이 아니었다면 벌써 빈국 신세로들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희한하게도 전후 복구부터 해서 20세기 후반 재생의 시동을 걸어 준 곳도 전범이자 패전국이었던 독일이라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비로소 냉혹한 현실에 눈을 떴는지 전임자와 정반대 노선을 틀며 나라를 추스르려 애쓰지만 이미 실기(失機)한 게 아닐까 싶기만 한 게 독일연방공화국의 지금 모습입니다. 프랑스는 방금 들리는 뉴스로 하원을 해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20년 전 토니 블레어처럼 제3의 길 비슷한 걸 표방하며 국민의 환심을 사는 듯했으나 과연 정체가 뭔지 의심스러운 게 저 마크롱 선생입니다. 

대체로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에서 유럽 주류는 좌우 할 것 없이 미국과 대립했습니다. 특히 저 시기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때 파리 시장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이었는데, 미국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했습니다. 트럼프 때도 마크롱은 미국과 싸웠는데(바이든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프랑스의 국익이 미국과 부딪히는 지점이 많아서이며, 그렇다고 마크롱이 종종 립서비스 하듯 친중(親中)은 전혀 아니니 속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 p54에서 논문필자 임종헌 교수는 심지어 그때도 유럽은 그 연합외교안보정책의 오랜 걸림돌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애초에 EU는 경제정책과 일부 행정에서만 공통정부를 작동시킬 뿐이며, 외교는 당초에 따로 놀고, 국방은 나토 가입국의 경우 완전히 다른 시스템에 의존합니다. 당시 집행위원회에서 발간한 한 보고서는 유럽을 두고 "국제사회 주요 행위자(임 교수의 번역이며, 원어는 Europe as a world partner입니다)"로서의 위상을 부여하려 애썼으나, 현실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과연 하나의 유럽이란 게 허상이 아닌지 의구심을 부릅니다. 

이건 마치, 미국이, 1861~65년 남북 전쟁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United States가 단수(singular) 취급을 받았다고도 하듯 말입니다. EU도 진정한 합중국(合衆國)이 되려면 내전이든 외부와의 일전이든(러시아하고라든가) 한 판 전쟁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독자로서 개인적인 불길한 느낌도 듭니다. "공동외교안보정책과 내부사법에서 유럽의회의 공식적 권한이, 모두 의견을 제시함에 한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p100)"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며, 시스템의 획기적 개편 전까지는 유럽이 내내 겪어야 할 딜레마입니다. 김종법 교수는 p125에서 이른바 나토의 이중결정(double track decision)을 언급하는데, 각주에도 나오듯 저게 꼭 나토로 표현되는 (사실상) 미국에 한정된 건 아니고 소련 측도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무지 애를 썼고, 한편으로 강경책, 한편으로 데탕트(Detente)를 내세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 모순을 충분히 교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19세기 정통 마르크시즘 노선(이른바 썩은 문짝 이론)이 무색하게, 반대편 체제를 동경하던 젊은이들의 행동에 의해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동쪽에서부터 무너졌습니다(p126 하단 참조).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고 모럴 해저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일부 금융인들 잘못으로(과연?)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그 여파가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토마 피케티라는 이가 불평등의 극대화로 인한 체제의 위기를 본격 분석한 이론을 꺼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영국의 입장이야말로 유럽과 미국 사이에서 언제나 아슬아슬한 줄타기 신세였으며, p162에서 윤기석 교수는 저 묘한 처지를 Europeanism과 Atlanticism(미국 중심축) 사이의 딜레마라고 요약합니다. 

난민 문제는 10년 전부터 북아프리카 정세의 불안함 때문에 비로소 촉발된 게 아니고 거의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제7장에서 김남국 고대 교수는 유럽연합의 인권정책을 다루며 특히 p245 이하에서 난민 정책을 깊이 분석합니다. p258의 표를 보면 여태 유럽연합이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들여 시스템적인 노력을 했는지 일별할 수 있습니다. p191에서 정병기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내내 취해온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이 취해온 행보를 요약하는데, 다른 필자들의 앞 논문들에서도 "나토의 다자주의" 운운이 무슨 뜻인지는 이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본래 나토는 말만 나토이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체제라서, 이 점에서는 미국 중심이 곧 대서양중심노선(Atlanticism)이지만, 반대로 나토 안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곤 하는 프랑스, 독일에 주목한다면 이는 나토 내에서의 다자주의 노선인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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