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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전쟁
최진우 외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11월
평점 :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7년에 나왔습니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지속되는 지금 읽어 볼 때 더 시사하는 바가 많은 듯합니다. 2차 대전 종전 후 완전히 폐허가 되고 아무도 승자로 남지 못한채 자칫하면 전 유럽이 공산화되기 직전이었던 유럽 여러 나라. 미국의 마셜 플랜이 아니었다면 벌써 빈국 신세로들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희한하게도 전후 복구부터 해서 20세기 후반 재생의 시동을 걸어 준 곳도 전범이자 패전국이었던 독일이라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비로소 냉혹한 현실에 눈을 떴는지 전임자와 정반대 노선을 틀며 나라를 추스르려 애쓰지만 이미 실기(失機)한 게 아닐까 싶기만 한 게 독일연방공화국의 지금 모습입니다. 프랑스는 방금 들리는 뉴스로 하원을 해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20년 전 토니 블레어처럼 제3의 길 비슷한 걸 표방하며 국민의 환심을 사는 듯했으나 과연 정체가 뭔지 의심스러운 게 저 마크롱 선생입니다.
대체로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에서 유럽 주류는 좌우 할 것 없이 미국과 대립했습니다. 특히 저 시기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때 파리 시장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이었는데, 미국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했습니다. 트럼프 때도 마크롱은 미국과 싸웠는데(바이든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프랑스의 국익이 미국과 부딪히는 지점이 많아서이며, 그렇다고 마크롱이 종종 립서비스 하듯 친중(親中)은 전혀 아니니 속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 p54에서 논문필자 임종헌 교수는 심지어 그때도 유럽은 그 연합외교안보정책의 오랜 걸림돌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애초에 EU는 경제정책과 일부 행정에서만 공통정부를 작동시킬 뿐이며, 외교는 당초에 따로 놀고, 국방은 나토 가입국의 경우 완전히 다른 시스템에 의존합니다. 당시 집행위원회에서 발간한 한 보고서는 유럽을 두고 "국제사회 주요 행위자(임 교수의 번역이며, 원어는 Europe as a world partner입니다)"로서의 위상을 부여하려 애썼으나, 현실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과연 하나의 유럽이란 게 허상이 아닌지 의구심을 부릅니다.
이건 마치, 미국이, 1861~65년 남북 전쟁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United States가 단수(singular) 취급을 받았다고도 하듯 말입니다. EU도 진정한 합중국(合衆國)이 되려면 내전이든 외부와의 일전이든(러시아하고라든가) 한 판 전쟁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독자로서 개인적인 불길한 느낌도 듭니다. "공동외교안보정책과 내부사법에서 유럽의회의 공식적 권한이, 모두 의견을 제시함에 한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p100)"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며, 시스템의 획기적 개편 전까지는 유럽이 내내 겪어야 할 딜레마입니다. 김종법 교수는 p125에서 이른바 나토의 이중결정(double track decision)을 언급하는데, 각주에도 나오듯 저게 꼭 나토로 표현되는 (사실상) 미국에 한정된 건 아니고 소련 측도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무지 애를 썼고, 한편으로 강경책, 한편으로 데탕트(Detente)를 내세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 모순을 충분히 교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19세기 정통 마르크시즘 노선(이른바 썩은 문짝 이론)이 무색하게, 반대편 체제를 동경하던 젊은이들의 행동에 의해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동쪽에서부터 무너졌습니다(p126 하단 참조).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고 모럴 해저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일부 금융인들 잘못으로(과연?)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그 여파가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토마 피케티라는 이가 불평등의 극대화로 인한 체제의 위기를 본격 분석한 이론을 꺼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영국의 입장이야말로 유럽과 미국 사이에서 언제나 아슬아슬한 줄타기 신세였으며, p162에서 윤기석 교수는 저 묘한 처지를 Europeanism과 Atlanticism(미국 중심축) 사이의 딜레마라고 요약합니다.
난민 문제는 10년 전부터 북아프리카 정세의 불안함 때문에 비로소 촉발된 게 아니고 거의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제7장에서 김남국 고대 교수는 유럽연합의 인권정책을 다루며 특히 p245 이하에서 난민 정책을 깊이 분석합니다. p258의 표를 보면 여태 유럽연합이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들여 시스템적인 노력을 했는지 일별할 수 있습니다. p191에서 정병기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내내 취해온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이 취해온 행보를 요약하는데, 다른 필자들의 앞 논문들에서도 "나토의 다자주의" 운운이 무슨 뜻인지는 이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본래 나토는 말만 나토이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체제라서, 이 점에서는 미국 중심이 곧 대서양중심노선(Atlanticism)이지만, 반대로 나토 안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곤 하는 프랑스, 독일에 주목한다면 이는 나토 내에서의 다자주의 노선인 것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