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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 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 10주년 기념 수정 증보판
곽승지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은 초판이 10년 전에 나왔으며 그를 기념하여 내용이 수정, 증보되었습니다. 조선족은 현재 우리 나라 어디서도 쉽게 만날 수 있고, 10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경제적,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기반을 다진 이들이 많습니다. 누구누구가 조선족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이는 엄연한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먼저 그들이 지나온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중국현대사에서 무시못할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족의 지난 족적, 북한과의 미묘한 관계 등을 주로 짚고 마지막에 한국 사회 내에서의 그들이 어떤 동향을 보이는지 분석하고 내다봅니다. 이제는 선거 때 지지성향, 경제활동 참여 등 엄연한 상수로 작용하는 집단이기에 더 냉철하고 정확한 파악이 요구되며, 이 책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1930년대 초에 무서운 침략 성향과 기존 질서에 대한 노골적인 교란 의도를 드러내어 만주를 짓치고 들어왔습니다. 국제 사회도 일본 제국의 이런 침략 성향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으나 제국은 아랑곳없었습니다. 조선족은 당시 만주 일대에 거주했었고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일정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의 종주국은 소련이었고 스탈린이 대전 발발 전부터 내내 국민당 정권에 우호적이었음은 (아이러니컬하지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책에서는 이미 일본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고 종전이 된 후인 1945년 9월 중순부터 소련 당국의 태도가 중국 공산당 쪽으로 기울었음(p54)을 지적합니다.
사실 만주(이 책에서는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을 따라 "동북 지방"이라 일관되게 칭합니다)는 1930년대부터 중국이 통제권을 잃었고 19세기말부터 러시아가 일정 부분 이권도 유지하던 땅인데다 대전말 불가침 조약을 깨고 이들이 진주했을 때 아예 자국 영토로 편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 p59 같은 곳을 보면 소련군 일시 철수 후 국민당 세력이 대거 밀고들어와 공산당을 후퇴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책을 잘 읽어 보면 공산당 입장에서 "토비"로 인식되었던 현지의 잡다한 세력 토벌에 제법 큰 수고를 들이는 과정이 서술되어 재미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들이 인민공화국 수립에 적잖은 공을 세웠음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입니다.
p136 같은 곳을 보면 미국이나 소련이나 똑같이 장개석 국민당을 대륙의 맹주로 보고 처음에 지지했던 사실이 나와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미국은 또 미국이라 쳐도, 소련은 같은 공산당이었으면서도 정세를 그처럼이나 크게 오판했던 것입니다. 장개석은 무려 미소 양대 초강국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고도 대륙의 패권을 놓쳤으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서, 쑹메이링 영부인(마담 창)의 1943년 미국 방문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그 어느 외국도 이를 돕지 못하는...
p102 같은 곳을 보면 이미 1930년대부터 동북지역 거주 조선인들과 중국 공산당이 매우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음이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한국내 조선족이 돈은 한국에서 벌면서 소속감이나 충성심은 중국에 바치는 태도를 크게 비판하는데 그 당부를 떠나 그들의 그런 의식 세계가 형성되는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을 필요만큼은 뚜렷합니다. 그러한 인식의 정확한 바탕 위에 우리는 우리 나름의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FDR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미국 내에서 부정적 평가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 앨저 히스 같은 간첩의 농간으로 2차 대전 당시 소련 측에 과도한 양보를 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여튼 그를 승계한 해리 S 트루먼은 1947년 따로 독트린(p135)을 내어 소련을 적국으로 분명히 규정했습니다. 이 와중에 팔로군, 또 동북항일연군(p142) 등은 목숨 바쳐 가며(p144) 중국 공산당을 지지합니다. 재미있는 건 1949년, 아니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조선족 동포(이 말이 지금과는 달리, 저때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들립니다)들은 북한을 조국으로 받아들였다는 분석(p215)입니다.
마침 요즘이 중국 양회 시즌입니다. p235를 보면 1949년 9월의 정협에서 소수민족의 지위에 대해 공동강령이 채택된 일이 서술됩니다. 묘(먀오)족은 중국 내에서 매우 큰 규모(조선족과는 비교도 안 되는)의 소수민족인데 한자 표기도 이무렵 猫(비하 뉘앙스)에서 苗로 바뀌었다는 정말 흥미로운 정보도 나옵니다. 이 책도 마오의 대표적 실책인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인데 조선족뿐 아니라 한족 주류도 이를 십년(대)동란으로 부르는 등(p258) 태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덩샤오핑의 장남 등복방은 항구적인 장애인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일각에서 이에 대해서까지 숭배하는 경향을 드러내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곽승지 박사님, 전 연합뉴스 기자님이 쓴 이 책은 재미도 있거니와 동아시아 현대사의 흥미로운 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 정리하였기에 정말 유익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