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치활동 - 한국형 로비 대관활동 연구
윤홍근 지음 / 인간사랑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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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미국은 2차 대전 후 로비 활동이 합법화하여 직업적인 로비스트들도 다수 활동하는 실정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로비"라는 말 자체가 음습한 부정부패, 증수뢰, 범죄 등과 거의 동일시하는 형편이며 이 때문에 기업은 상시로 감옥에 발 한 쪽을 들여 놓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합니다. 법이란 본시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해석 적용에 따라 기업의 대외 활동, 특히 공직자들과의 소통 접촉 중 상당수가 범죄의 사전 정지 작업쯤으로 여겨질 소지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선 이른바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는 중이니 로비는커녕 그 비슷한 활동도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는 격이 되기 쉽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대관활동"이란 말이 나옵니다. 대관이란 용어가 낯설 수 있는데, 공연장 등을 대여한다는 뜻의 貸館이 아니라, 관가(官街)를 상대(相對)한다는 뜻에서의 對官입니다. 한국 같이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밀집하여 사는 나라에서는 각종 규제가 시행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떤 종류의 사업을 하더라도 관공서를 방문하여 각종 신고, 허가, 인가를 넣거나 따 내야 합니다. 대관 활동 없이는 기업(규모를 막론하고)이라는 게 영위될 수가 없으며 존속부터가 불가능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표나 이사가 전과자가 되고 안 되고의 사정이 그저 우연이나 운수 등에 맡겨진다면 기업이 경제 활동이란 걸 할 수 없고 대한민국 자체가 흔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이제 로비는 분명한 기준을 정해서 합법의 영역으로 대거 편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도 변호사 연 2,000명 배출시대를 맞은지 오래인데 그 많은 신규인력을 어떻게 소화시킬지가 과제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려면 꼭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p67 이하에 잘 나오듯 잘나가는 로비스트 중 변호사가 꽤나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합법 로비는 여러 사람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충돌지점들을 최소화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시키는 과정이니 마치 민사소송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또 의회에서 주로 로비스트들이 활동하고, 의회란 본질적으로 법을 만드는 곳이니, 법률에 밝은 변호사들이 큰 활약을 펴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PAC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political action committee의 약자입니다. 아무리 돈이 당락을 좌우하는 미국 정치, 선거판이라고는 하나 이 단위를 거치지 않고는 돈을 모으거나 쓸 수 없습니다. 일정 규모 이하의 자금 출납만 허용되다 보니 재산가나 정치 거물, 고위공직자 상대뿐이 아니라 소시민, 대중을 향한 홍보, 동원, 모금 활동도 갈수록 중요해졌는데 이는 지금의 우리나라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그래스루츠(grassroots) 로비라 부른다고 합니다. 

Barry Baysinger 교수(p138)는 기업의 정치활동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그 기준은 근본적인 동기와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릅니다. 1) 영역 비교우위 창출 2) 영역 수호 3) 영역 유지. 2)와 3)의 차이가 있다면, 2)는 공공정책이 자기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최소한으로 묶으려는 활동(동기)이며, 3)은 개별 정책 사안이 기업 목표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선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활동입니다. 2)는 이미 이뤄지는 공격에 대한 적극적 수비이고, 3)은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빌드업에 가깝죠. 1)은 주로 타 경쟁기업들과 관련된 활동입니다. 

이러한 미국 학계의 분석틀을 기반으로, 책의 제4장부터 한국의 사례에 대한 분석이 본격 시작됩니다. 기업은 한편으로 명문대 졸업자들을 신입시절부터 입사시켜 엘리트 공직자들과의 인적 접촉 지점을 미리 만들어 양성하며, 한편으로 퇴직 고위 공직자들을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영입하여 보다 직접적이고 단기즉효의 루트를 구축합니다. 

또 기업의 규모에 무관하게, 개별 로비스트들을 기용하기보다 단체를 만들어 대관 활동을 벌이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전경련, 상의, 무협, 경총 등이 그 좋은 예입니다. 탄핵 사태 때 전경련은 공식적으로 해체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합니다. 단기적(일회성)으로는 거래형 접근법이 유효하겠고, 장기로 본다면 관계구축형이 더 효과적이겠으나 "정책 사안 관련 불확실성 정도가 크며 자원의 자산특정성 수준이 높다면 기업 정치 활동을 총괄적으로 수행하는 내부 조직을 편제해 두는 게 효율적(p242)"이라고 합니다. 

한국적 현실에서 로비의 무한정 합법화는 물론, 미국식의 제한적 합법화조차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기업 로비 활동상을 감인하면 언제까지 이를 음지에 묶어 두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하고 정경유착의 근착을 조장하게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형 로비법제(p295)를 숙고와 연구, 공론화 끝에 조속히 마련하여 기업활동의 제고와 법의식 타락 방지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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