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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프레임 - 우리는 왜 가짜에 더 끌리는가
샌더 밴 데어 린덴 지음, 문희경 옮김 / 세계사 / 2024년 6월
평점 :
세상사는 본디 너무도 복잡한 것이어서 우리는 어떤 인식의 틀을 먼저 마련해야만 이해의 첫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만약 인식의 기초가 되는 어떤 틀이 없다면, 분명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있어도 우리의 두뇌와 감정은 쏟아지는 정보 속에 온통 혼란에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프레임(frame)이란 그래서 우리의 정신 작용을 돕는 친구에 가까우며, 아무리 낮추어 평가한다고 해도 차악(次惡) 이상의 존재는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세계 각국에서 특히 정치 양극화 추세가 고조됨에 따라, 각 진영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 프레임을 짜서 대중 사이에 더 널리 퍼뜨리려는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른바 주객전도,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wag the dog)이 일상화했다는 점입니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유권자들에게 (형식적으로라도) 진실과 정의로 접근, 어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아예 대놓고서 누가 더 듣기 그럴싸한 프레임이나 사탕발림을 내세울 수 있는지만을 경쟁하는 듯합니다. 만약 저런 가증스러운 노력을 두고 "잘 설득하는 법"이라며 포장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책, 반 데어 린덴 캠브리지 교수가 쓴 이 책은, "나쁜 설득에 안 넘어가는 법"을 우리 독자에게 가르치는 멋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0을 보면 진실 착각 효과(illusory truth effect)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어떤 말을 진실 혹은 거짓이라고 판별할 때, 그 진위를 이치와 논리에 따라 분석하기보다는, 그 말을 얼마나 주변에서 자주 들었냐를 두고 결정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쓰디쓴 모순, 역설 혹은 부조리는, 우리 역시 경험칙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신조에 명백히 반하는 거북한 명제, 혹은 누구라도 반대할 만한 거짓이라 해도, 여튼 우리 주변에서 매우 자주 들린다면, 우리는 어느새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이 새롭게 강력하게 대두한 명제를 참으로 믿어 버립니다. 어떤 특정 정치인들이 일 잘하고 유능한가? 처음에는 아니라고 강력하게 거부했다가도, 주변에 그에 설득(세뇌)당한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 대세가 되어버렸다면, 이젠 나도 무의식중에 그 세뇌사항에 굴복해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과거와는 달리 고등교육을 널리 받고, 특정 정보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된 게 요즘입니다. 헌데 어떻게 된 게, 근거없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더 늘어난 게 또한 팩트입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1960년대에 법무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프랜시스 케네디 주니어가, 근거없는 음모론 수준의 허황된 주장을 하여 인기를 얻는 등 반지성주의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여 우려를 샀습니다. 이 책 p93을 보면, 음모론을 즐겨 퍼뜨리는 사람들의 언어에는 어떤 독특한 패턴이 발견되는데, 그 중 하나가 감정 중에서도 분노에 의존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은, 차분한 설득이나 교육이 아니라 그의 분노 포인트를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미국 노예폐지론자 소저너 트루스는 "진실은 힘이 강하며, 나중에라도 반드시 승리한다."는 명언을 남긴 적 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결국은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20세기에는 마틴 루서 킹 같은 위대한 민권운동가가 등장하여 유색인종의 권리가 더욱 확충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제2부의 제목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거짓은 힘이 세다"입니다. 본래 사람은 거짓을 억지로 꾸며내기 어려운 존재이며,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내는 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갖가지 거짓을 설계하고 이를 널리 파급하는 기술이 발전하여, 오히려 "거짓은 힘이 세다" 같은 역설적인 명제가 진실인 양, 씁쓸한 맥락에서 저리 쓰이게 된 것입니다.
벡신이 다양한 질병으로부터 인체를 지켜주고 집단면역을 형성하여, 그 결과 특정 전염병의 경우 지상에서 완전히 소멸한 건 오로지 인류의 빛나는 지혜가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21세기인 지금 백신의 유해성, 딥스테이트가 고의로 퍼뜨리는 인류 복속의 수단 등 터무니없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이것이 대중 사이에 제법 세력을 얻고 확산됨을 우리는 압니다. 이런 반지성주의의 발호를 멈추지 못하면, 10년 안에 백신 반대 담론이 소셜미디어 페*스북을 완전히 (진실인 양) 점령하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199).
이 책은 서두에서부터 반지성주의, 선동, 음모론 세뇌 등을 하나의 질병이나 바이러스로 보는 듯한 표현을 자주 구사했습니다. 사람의 정상적인 신체 기능이나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현상만 병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이성을 파괴하는 것도 하나의 병으로 보고, 어떻게 하면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행여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자발적으로 반지성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올지 그 방법을 제3부에서 제시합니다. 보다 강력해진 세뇌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제시하는 제3부가 이 책의 압권이며, 이성적 논리적 사고에 평소에 자신있어하던 독자라고 해도 한번 정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