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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서 영원을 - 인생의 아름다운 계절을 맞이한 당신에게 선물하는 명시와 명언 그리고 사진
김태균 엮음, 이해선 사진 / 해냄 / 2024년 7월
평점 :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이럴 때 당장의 업무에 온전히 몰입하여, 이미 결정해 둔 계획을 더욱 다듬고 다듬어 나노퍼센트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완벽을 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잠시 빡빡한 루틴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먼 곳을 바라보며 기분 전환을 하고, 바짝 긴장했던 정신에 여유를 잠시 불어넣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잠시 들이쉬는 숨은 지극히 짧고, 찰나의 시간만 지나도 그 밀도가 흐트러지지만, 이를 통해 흡수한 좋은 기운은 영원의 유효기간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다보탑, 석가탑을 빚은 고대의 그 이름모를 장인도, 그저 기예에만 의존했다면 천 수백 년을 뛰어넘어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마스터피스의 창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을 영원으로 통하게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무구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는 티케이정형외과 김태균 원장님이 엮고 지으신 산문, 인생과 사회 생활의 깊은 이치와 묘미를 서늘하게 통찰하는 멋진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어느 누구의 특별한 삶이라 해도 이 산문들이 제시하는 심오하고도 촘촘한 준칙과 지혜의 적용 범위를 못 벗어날 만큼, 읽고 새기면 새길수록 근본의 깨달음이 마음을 울린다고나 할까요. 또, 대체 어느 누리의 어떤 시간대에 이런 기막힌 풍경이 포착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고도 정교한 사진들이 촘촘히 텍스트를 돕거나 이끌어갑니다. 사진과 명문이 함께하며 독자의 지친 영혼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인 봄 편에는, 기나긴 겨울의 시련을 딛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기운을 반영하듯, 새출발을 야심차게 다짐하는 이들에게 의욕이 채워질 만한 좋은 구절, 그리고 신선한 이미지들로 가득합니다. 예컨대 p76을 보면, 제임스 오펜하임이 말한, 참된 행복을 우리가 과연 어디서 찾아야할지를 명쾌하게 지적한 명언이, 영어 원문과 함께 제시됩니다. 바로 오른쪽에는 이해선 사진작가께서 2007년에 인도에서 어느 젊은 남성이 수줍은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자전거와 함께 찍은 한 컷도 있습니다.
이 사진은 구도가 절묘한데, 자전거 핸들 부분이 꽃다발로 가려져 있고 아마도 자전거 앞부분에 부착된 바구니에 저 꽃들이 담겼겠거니 상식적인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바로 뒤를 보면 화분이 배경처럼 공간을 차지하는데, 원근법을 고려 않는다면 마치 꽃들이 화분에서 바로 솟은 듯 착시도 생깁니다. 여튼, 우리 모두가 종종 잊곤 하는 진리란, 파랑새, 혹은 다른 말로 행복이, 언제나 우리 발아래에 흔한 듯 놓여 오히려 우리 시선을 비껴간다는 점입니다. 결코 먼 곳에 숨은 게 행복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거듭된 불운이 우리 약한 개인들에게 닥치면 연약한 마음가짐은 금세 탈출구, 도피처를 찾습니다. 그러나 한번 시련과 간난에 길을 내어 주면, 이들은 사람을 거듭하여 시험에 들게 하며 영원히 코뚜레를 꿰려고 수작을 부립니다. p94에서 시바타 도요[柴田豊] 시인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합니다. 그 따뜻하고 친근한 어조 덕분에, 우리들도 익히 아는 명시(名詩)인데, 잘 읽어 보면 시적 화자 본인도 현재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은 듯한데도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분위기임을 눈치챌 수 있죠. 도움이란, 나의 힘을 이웃에게 보태고, 그의 온기를 내 것으로 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참된 효용과 위력이 나타납니다. 제주도와 대략 500km 정도 떨어진 야쿠시마에서 이해선 작가께서 찍으신 사철 푸른 나무의 당당하고 넉넉한 자태를 보면 이 진리가 다시 확인되는 듯합니다.
p170을 보면 오세영 시인의 명문이 독자를 맞습니다. "8월은... 온 길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달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특히나 남달리 근면하면서도 한번 정한 목표에, 집요할 만큼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갈 길이 멀고 목표가 원대할수록, 여태 내가 걸은 길이 혹 먼발치에서 봤을 때 초점을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관조와 통찰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인에게는 그 반추와 성찰의 시간이 곧 8월이었던 셈입니다. 2003년에 이해선 작가가 사진에 담았다는 제주의 식물은 그 싱그러운 녹음을 마치 화면 밖으로 푸르른 화소를 뚝뚝 떨굴 작정으로 눈이 시리게 뽐냅니다. 그 여유, 그 멋스러움을 엿보고 우리들도 내 삶의 빈틈과 과오를 짚고 바로잡을 엄두를 냅니다. 글과 사진이 이처럼이나, 풍진에 찌든 우리네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 줄 줄이야 미처 몰랐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해냄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