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사 수업 - 유대 문헌으로 보는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박양규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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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지만 동시에 부분적으로 역사서의 구실을 겸하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상당한 시대 간극이 뜨지만, 애초에 구약이 특정 시점에서 끊어졌고 신약은 저자의 인적 구성 면에서 구약과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종교적 관점은 일단 차치하고), 중간 시대의 공백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외경이라는 게 있어서, 아주 기록이 없지도 않고 그 나름대로 시대상을 흥미롭게 반영하기 때문에 이 중간사라는 게 관심을 더합니다. 

신구약 못지 않게 중간사 어느 씬을 다룬 미술 작품도 상당히 많은데 예를 들어 p38에는 렘브란트의 <벨사살 왕의 연회>가 언급됩니다. 메네 메네 데켈 우브라신 하는 그 이야기죠. 벨사살의 땅을 갈라서 메대와 바사 사람들에게 갈라준다는 그 예언(어떻게 해서 그런 뜻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왕의 당대에 바벨론이 망함으로써 실현이 됩니다. 메대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메데이아 왕국이며 고대부터 있던 정치 단위였는데 페르시아 제국의 협력자로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페르시아는 이처럼 여러 부족의 연합체로서 지역 통일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지금도 서부의 동서 아제르 주 같은 게 다 그 잔재입니다. 기질 드센 아제르바이잔 인들이 페르시아와 손잡고 제국을 공동 통치하는 일이 많았는데, 팔레비 샤의 황후도 아제르인이었습니다. 책의 후주를 보면 바빌론이 표준어이지만 성경 표기에 따라 "바벨론"이라 쓴다고 나옵니다. 성경은 여기서 개역개정판을 뜻하며, 책 내용은 마틴 헹엘, 스티브 메이슨의 책들, 또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작들을 참조했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가 그저 팩트의 앙상한 나열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그 안에는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희열, 분노, 원한, 희망, 극복의 의지 등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혼과 영혼이 배어나는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실증주의의 대표자 랑케의 쌀쌀맞은 말처럼 건조한 사실만 제시한다고 역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 민족은 예로부터 강대국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고,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제1성전이 초토화하고 타향으로 강제이주당해 노예 생활을 하는 등 무수한 고초를 겪으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중간사 오백년은 아득한 기간 같아도 우리가 태곳적처럼 느끼는 임진왜란도 지금으로부터 500년이 채 되지 않은 과거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병자호란은 아직 400년도 지나지 않았겠는데, 저자는 우리 역시 유대인들처럼 환향(還鄕)의 정서와 기억을 승계하는 민족이라며 그들과의 동질감을 환기합니다. 그러고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I am citizen of no mean city." 사도 바울의 유명한 말을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이때 mean이란 건 비열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잘것없는, 가난한 같은 뜻입니다. 저자는 p93 이하에서 70인역을 논하며 언어의 상스러움에 대해 독자들을 가르칩니다. 아티카 그리스어(고대)는 고상하고 코이네는 비속하며, 중세 내내 그토록 떠받들어졌던 불가타 라틴도 사실 저속하다는 뜻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책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5백 전의 교회(즉 로마 가톨릭)는 집시, 창녀 등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멀리했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그들을 누구보다 불쌍히여겼고,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어지는 교회는 이미 교회의 본분을 저버렸음을 상기합니다. 이어 저자는 중간사 이벤트로부터 소재를 취한 카라바조 같은 화가가 하층민들과 격의없이 어울린 사실도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 책은 역사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저자의 뜨거운 신앙심과 정의감 같은 게 어떤 일관된 맥락에서 전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역사상의 예수 그리스도가 에세네라는 특수 분파에 소속된 열혈 청년이자 엘리트 랍비였다는 가설이 유력하게 제기된 적 있습니다. p189에서 저자는 바리새파, 또 그로부터 분파되어 나온 하시딤이라는 이들을 소개하며 왜 신약에서 이들이 예수와 대립하는 포지션인지 그 역사적 배경을 가르칩니다. 중간사와 신약에는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이 여럿인데,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며 이웃 에돔인으로서 힘을 키워 갈릴리 일대를 통치했고 로마의 종주권 밑에 들기도 했다는 게 특이합니다. p222에 나온 인물은 분봉왕이라 불렸으며 분봉왕이 된 배경에는 헤롯 대왕의 땅을 고모, 다른 형제 셋과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죠(4분봉왕.tetrarch). 이 사정에 대해 책에서 자세히 풀어 설명합니다. 중간사의 대표적 영웅은 유다 마카베오인데, 한국 역사에서도 여러 독립 영웅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여러 모로 우리들의 공감을 받기 좋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직 마태복음에만 베드로의 유대식 이름이 바요나임이 기록되는데, 저자는이 바요나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음절을 달리해 읽었을 때 어떤 차이가 나는지 설명합니다. 

중간사는 지중해 세계의 격변기였으며 신 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알렉산더 제국, 로마 등이 패권국으로 자리를 바꿨습니다. 역사로 봐도 재미있고, 이 행적에서 신의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읽어낸다면 그것대로 또한 의미깊은 작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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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경영 : 소상공인편 - 1000만 소상공인의 경영 위기 극복과 성장을 위한 경영 전략 실전서
황창환 지음 / 라온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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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컨설팅이라고 하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만 받는 것 아니냐는 게 한국에서의 통념입니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 내 사업은 내가 제일 잘 알지 남이 어떻게 훈수를 두냐고 콧방귀를 뀌는 경영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객관화가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많은 기업들을 두루 둘러보고 그 장점과 단점을 낱낱이 관찰한 제3자에게서는 반드시 배울 바가 있습니다. 또 요즘은 대형사뿐 아니라 중소형 컨설팅 업체라고 해도 확실한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접근합니다(아니면 벌써 도태되었겠죠). 사실 소상공인이야말로 대기업 중견기업보다 더 절실하게 컨설팅이 필요합니다. 유명 유튜버들이 전국의 가게를 둘러 보며 쓴소리를 해 주는 컨텐츠도, 볼거리를 위해 좀 과장했을 뿐 일종의 컨설팅입니다. 그들 눈에는 남들이 못 보는 게 다 보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소상공인은 경쟁률은 높지 기존 업종은 침체되지 다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소상공인들이야말로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도움을 정규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자 황창환 대표는 한국능률협회와 여러 조직을 거친 컨설턴트입니다. 책 앞날개에는 (주)삼진어묵에서 CEO를 역임한 경력이 표시되었습니다. 삼진어묵은 업력이 매우 오래된 지역 기업이죠. 그는 소상공인들이 어떻게 이 치열한 경쟁, 척박한 시장에서 살아남을지를 두고 우선 나만의 약점, 강점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파악하는 이른바 SWOT 분석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전국 단위의 사업을 하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p50)고도 제안합니다. 나의 가게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구축함은 물론, 아예 내 가게 스토리를 지역의 이슈로 만들어 보자고도 합니다. 확실히 요즘은 나만의 스토리가 있어야만 주목 받는 세상입니다. 특정 지역을 방문하는 외지인들이 그 지역 하면 내 가게를, 혹은 내 가게가 들어선 거리나 블록을 떠올리게 할 정도가 되면 경기 침체를 두려워할 이유가 크게 줄어듭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내 서비스와 상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혁신이 이뤄진 것이라야 하겠다고 덧붙입니다. p64에도, 독보적인 장점으로 고객의 니즈(needs)를 충족함이 최우선순위라고 다시 강조됩니다. 

중소상공인들은 자금력이 부족하고 규모가 작습니다. 그래서 연대를 부분적으로 이뤄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걸 두고 저자는 "함께 일하는 시너지의 기쁨(p83)"이라고 표현합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공동 개설 운영, 브랜드 공동 개발,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벤트의 공동 주최 등 여러 성공 사례가 소개됩니다. 여기에 연구개발을 위한 공동 출자까지 이뤄지면 정말 좋겠지만 우선은 현장에서 당장 업자들끼리 힘을 합칠 수 있는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게 현실적일 듯합니다. 또 타 상공인들과의 협력뿐 아니라, 일단은 내 기업, 가게의 직원들부터 잘 추스려야 합니다. 중소기업은 직원의 사기가 저하되거나 자긍심, 소속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죠. 이럴수록 직원들을 다독이고, 직장에의 일체감을 북돋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직원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곳이라면 우수한 인재가 지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산성도 크게 떨어집니다. 존중과 우대가 곧 복리입니다. 일할 맛이 나는 직장이라면 혹 급여가 다소 불만족스러워도 직원들이 정성을 다하게 됩니다. 

p119의 사례를 보면, 안목 있는 경영인이 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감지하고 메뉴 개편, 마케팅 전략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최고위경영자 한 사람만 의식을 바꾼다고 실천에 옮겨질 문제는 아닙니다. 실제로 일선에서 기획하고 개발하고 영업하는 이들은 직원인데, 이들에게 지금까지 전혀 하지 않던 일을 하라고 하면, 능력 유무를 떠나서 그게 쉽게 내킬 리가 없습니다. 사장은 마치 2차대전의 무다구치 렌야처럼 무작정 돌격을 외치는 무책임하고 무모하며 반인륜적인 리더십을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양질의 성과가 이뤄질 리도 없거니와 요즘 누가 그런 막무가내식 일처리에 동의하겠습니까. 결국 이 사례의 결론은, 사장님의 진정성 있는 설득과 소통 시도가 큰 결실을 맺어, 전 직원의 하나된 노력으로 새로운 시장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직원이 보배이며 그들을 소중한 인적 자원으로 대우하고 나아가 그들을 특급 인재로 양성할 어떤 책무까지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창의성 있는 직원들(p186)이 자발적으로 그 실력을 발휘해야 기업이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직원은 노고를 쥐어짜내는 대상이 아니라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의 동지들입니다. 50년 전 토요타는 현장의 직원들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여 글로벌 경쟁자들을 추월하는 JIT라는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M&A를 통해 갓 하나가 된 조직에서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는 건, 스마트하고 원대한 비전을 가진 CEO의 역량이 결정적 변수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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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생명 공부 -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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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은 앞으로 우리 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마련해 줄 텃밭이 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한때 이쪽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지원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좀 뜸해진 추세입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고, 또 우수한 인재들을 필요로 하는지를 생각헤 보면 대한민국의 우수한 두뇌들과 정말로 궁합이 잘 맞는 학문임이 틀림없습니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2부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코스닥의 경우 장래가 유망한 바이오기업들이 대거 몰려 있고 머지않아 화려하게 도약할 날만 기다리는 중인데, 바이오 스타트업 창업이 성공하려면 역시 생명과학 전공 인재들이 잘 양성되어야만 합니다. 이 책은 아마 그런 인재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심어 줄 수 있을 듯도 합니다. 

두문자암기라는 게 저 개인적으로는 썩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p93을 보면 미국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세포의 기능을 잘 기억하게 돕는 노래가 있다고 나옵니다. 길이도 상당히 길고, 내용도 매우 구체적입니다. 저도 중학교 때 생명체 생장에의 필수 원소인 C, H, O, N, S, P, Fe, Ca, Mg, K 등을 외울 때 선생님께서 특별한 암기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긴 합니다. 이른바 cram school 방식이라는 게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만 성행하는 것 같아도 저 노래의 가사를 보면 구체성이나 길이 면에서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곡조를 찾아 보고 저도 따라해 보고 싶었습니다. 

p44에는 스탠리 밀러의 원시 지구 생성에 대한 실험이 나옵니다. 매우 유명한 토픽이기도 하고 저도 고등학교 때 배운 기억이 납니다. 이후 많은 개정이 이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는 실험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호기심과 의욕을 심어 주는 멋진 시도였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 광대한 태양계(태양계만 해도 얼마나 광대한 공간입니까)에 오로지 우리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너무도 신비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아직도 밝혀져야 할 비밀이 많이 남아 있지요. 이 역시도 미래 세대의 우수한 두뇌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p130 이하에는 인간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가 설명됩니다. 당시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고 불렀는데, 일단 해독이 끝나자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공동으로 발표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이었으나 빠진 부분도 있었고 이는 20년이 지나서야 오온전히 채워졌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이나 사람이나 염기서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만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믿는 존엄성의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요? 저자는 고등생명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쓰지 않겠다고도 하십니다. p184 이하에는 대략 10여년 전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CRISPR-Cas9 기술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됩니다. 물론 악용될 시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나 얼마나 환상적인 혁신입니까. 

p224에는 세포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이 설명됩니다. 세포 역시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물리적 기능적 단위입니까. 이 세포의 작용이 인체 전체의 활기와 건강을 좌우하고, 마침내 생명체의 수명과 재생산에까지 관여하니 말입니다. 괴사(neocrosis)와 사멸(apoptosis)은 서로 다른데, 전자는 예측지 못한 손상으로 일선에서 퇴장하는 결과이지만 후자는 할 일을 다하고 자연스럽게 생명 대사 과정에서 은퇴하는, 저자의 말씀을 빌리자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와도 같은, 유기체 전체를 위한 장엄한 희생과도 같다고 합니다. 이런 살아있는 생생한 표현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어린 독자들에게 더 큰 흥미를 부르고, 더 강한 학습 동기를 심어 주는 것이겠습니다.   

p286 이하에는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부터 해서 항생제 내성 등 최근에 특히 민감하게 대두한 여러 이슈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플레밍의 우연한 실수로 발견된 페니실린은 한때 인류에게 온갖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을 가져다 줄 만큼 칭송받았습니다. 그러나 유전자의 신묘한 구조는 기어이 이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바이러스에게 가르처 주었고, 그 단순한 생체 구조 덕분에 이들은 갖가지 변이를 간단하게 일으켜 인류로부터의 위협을 극복하는 중입니다. 핵 사고가 터져 인류가 모조리 멸종해도, 바이러스, 혹은 그보다 훨씬 고등한, 아니 그냥 복잡한 생명체인 바퀴벌레들은 거의 아무렇지도 않게 변이를 거쳐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훨씬 고등한, 아니 복잡한 생명체인 인간은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 예쁘고 심오한 책은 자연과 생명의 궁극적 비의가 무엇일지 생각해 볼 강력한 동기를 어린 독자에게 심어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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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감성 장인 임영웅의 힘
서병기 지음 / 성안당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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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가수 임영웅씨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 그 큰 곳을 팬들로 가득채우고 티켓도 완판시켰다는 뉴스를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런가하면 콘서트 개최 과정에서 그의 인성에 대해 알게 해 주는 미담까지 나와서, 한 시대를 쥐락펴락하는 스타에게는 과연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점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 책은 대중문화전문가이자  중견 저널리스트인 서병기 씨가 썼는데, 가수 임영웅만의 매력과 인간적 장점, 문화산업계에 두루 끼친 영향 등이 두루 분석됩니다. 

"여백이 있는 힐링 보이스" 그의 음색을 놓고 이 책이 규정한 구절입니다. 너무 빈틈없이 신체 구석구석에서 생성되어 엄청난 볼륨으로 청자의 귀를 압도하는 보컬만 최고라면 임영웅보다 더 뛰어난 가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하지 않게 고막을 터치하면서도 정확하게 뽑히는 그의 성량과 음정이 이 시대 대중에게 부담 없이 어필했고, 선량하면서도 뭔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그의 마스크나 이미지, 언행 같은 게, 잦은 사고로 팬들을 실망시키는 셀럽들의 미숙한 처세에 신물이 났던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호감을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p38 이하에 서병기씨 특유의 냉철하고 절제된 언어로 이뤄진 분석이 나옵니다. 

과장이나 지나친 기교 없는 힐링 보이스 외에도 그에게는 많은 장점이 있고, 특히 엔터테이너 기질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p68에 나오듯 "기본적으로 발성이 좋으면 대사 연기도 좋은 것"인지 따로 연기를 배웠다는 말도 없던 그는 무대에서 필요할 때마다 그럴싸한 연기 실력도 보여 줘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준다고 합니다. 또 공연 끝에 다양하게 보여 주는 표정 연기도 그때마다 반응이 좋다고 나오네요.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연예인이 되려고 타고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그는 팬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시하는 타입이라고도 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진심인지 가식인지는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는 점에서 이 또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연예인들, 혹은 스포츠 스타들 중 실력이 뛰어나도 유독 팬서비스만은 좋지 않다는 평을 듣는 이들이 꽤 됩니다. 이런 점에서도 임영웅은 돋보입니다. 요즘은 더군다나 인성, 공감 능력을 강조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이러니 그의 콘서트장에는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모든 연령층이 다 모인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p90 이하에는 mbn 서혜진 국장과의 긴 인터뷰가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미스터트롯(임영웅을 배출한 시즌 1)의 인기 비결을 묻는 데에서 임영웅과 접점이 있습니다만, 서혜진씨가 몇 달 전에 론칭한 여러 프로그램들에 대한 언급이 자세해서 또다른 재미를 줍니다. <현역가왕>은 다들 알듯 여고생 전유진이 우승했고 이어 탑세븐 7인이 일본 대표들과 경연도 거쳤는데,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뒷이야기들을 많이 털어놓습니다. 이대 출신 서혜진 국장은 원래 sbs에서 pd로 잔뼈가 굵었고, tv조선에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을 연이어 성공시킴으로써 방송국 하나를 다른 레벨로 올려놓았으며, 무려 100억의 이적료를 받고 mbn으로 이적했다는 말이 돌면서 더 큰 화제가 된 인물입니다. 그녀의 감과 크리에이티브도 이제 한계에 달하지 않았겠냐는 세간의 짐작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에 또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인터뷰는 그에 대한 후일담 노릇도 겸합니다. 

서혜진pd와 호흡을 자주 같이 맞추는 작가가 노윤씨입니다. 이 책에는 임영웅을 처음 봤을 때 받았던 인상부터 해서 그녀의 솔직한 발언이 많기에 또한 재미있습니다. 역시 사람 생각은 서로 비슷한 데가 많은가 봅니다. p123 이하에는 서혜진이 론칭한 두 프로그램 이전에는 트로트 장르의 위상이 낮았으나 이 기획의 성공 이후로 종사자의 대접 자체가 달라졌다고도 나옵니다. 이  프로그램들이 배출한 다른 스타들은 이후 인기가 살짝 식기도 하는데 임영웅만큼은 갈수록 반응이 더 좋아지는 듯 보이는 것도 확실히 특이한 현상입니다. p144에도 나오지만 이런 경연 프로그램이 마련되고서야, 한국에 이처럼 재능있는 이들이 많았던 줄 처음 확인한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요즘 연예계는 팬덤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들은 예전같이 맹목적으로 연예인을 숭배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예인의 소속사 못지 않게 연예인에게 어울리는 컨셉을 짜 주고, 전략적 조언을 해 주고, 라이벌리를 형성하는 (혹은, 반대로 우군 같은 동맹이 가능한) 다른 연예인 팬덤과 대처하거나 소통하며 그 연예인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연예 산업의 새로운 풍속도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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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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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한 달 전쯤('24.5) 제가 <비트겐슈타인 입문>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저자분이 쓴 유명한 책 한 권을 리뷰했었는데요. 그 본문 중에 보면 contemporary 인류학자이자 여성학자(많이 배우신 부류의 페미니스트) 한 사람의 논문, 비트겐슈타인의 페미니스트 식 재해석을 다룬 글이 잠깐 인용되었더랬습니다. 그 논문 저자 이름이 비나 다스였고,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인도 사람입니다. 지금 이 책 저자 수바드라 다스 박사는 그분보다 젊은 분인데 다스("봉사자")라는 성씨가 원래 벵골 지방에 많아서일 뿐 두 사람이 서로 혈연관계이거나 한 건 아닙니다. 그 비나 다스, 지금 이 책 저자 수바드라 다스 모두 벵골 출신입니다. 다스라는 성은 힌디어로 दास라고 쓰는데, स는 원래 밑에 취소 기호가 붙어야 하지만 그냥 저렇게도 씁니다. 원 발음이 "다사"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찰스 다윈은 근대 들어서도 이어지던 종교적 폐습의 근본을 허문 사람으로도 칭송받습니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인종적 편견을 깬 데에도 크게 기여한 점을 강조합니다. 식민 통치 시절 영국인들로부터 혹심한 인종 차별을 겪었던 인도인들, 그 중에서도 벵골 지방에는 영국인들이 일찍부터 밀고들어와서 이 풍요로운 땅을 수탈했었습니다. 그 먼 후손이기도 한, 역사학자 수바드라 다스가 이 주장을 하는 건 정말 독자 입장에서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것입니다. p51을 보면 대영제국에 노예제 폐지법 적용이 겨우 1833년에 이르러서라는 건, 법적으로 대영제국에 편입된 식민지에의 적용을 말함이며, 인도는 엄밀하게는 무굴 제국과 각 토후국의 명목상 지배를 받았지 저때는 영국의 법적 통치를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사실상, 경제적, 무력 지배).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넘어서 세포이 항쟁 진압을 거치고 인도 제국이 선포되어 영국 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게 되었죠. 

p69를 보면 tu regere imperio populos, Romane, memento라는 라틴어 구절이 인용되며, 이 구절은 베르길리우스가 썼다고 나옵니다. 이게 고대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발췌되었으니 당연하겠습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17세기 계관시인 드라이든이 "그렇지만 로마인이여, 오로지 당신만의 힘으로 인류를 통치하고 세상을 복종시키는 것이다"라고 번역했다고 나오는데, 저 구절만으로는 그리 새겨지지 않습니다. "너 로마인이여 기억하라, 사람들을 제국의 힘 아래 통치한다는 것은"까지입니다. 드라이든의 저 번역에 해당하는 구절은 뒷부분까지가 다 나와야 합니다. "오로지 당신만의", "그렇지만" 같은 건 베르길리우스의 원문에 없고, 드라이든의 번역문에만 있는 문장 성분입니다. 아마 드라이든은 저 구절을 그리 읽고 싶었나 봅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따지자면, 드라이든은 "로마인이여"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로마라는 도시를 의인화하여 "로마여"라고 했죠.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라틴어 원문은 (이 책에서도 보듯) 명백하게 "로마인이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참 후 칼라일은 영국인을 새로운 로마인이라 선언했고, 매우 다른 동기에서 20세기 초 무솔리니도 영국인을 그리 불렀다고 책에 나옵니다. 저자가 구태여 칼라일과 무솔리니의 그 발언을 인용하는 게 매우 재미있게 읽힙니다. 

휴 블레어(p103)뿐 아니라 19세기 인류학자, 문화학자들은 너나할것없이 인종적 편견으로 가득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이 주장한 바는, 특정 민족이나 인종만이 문자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더 독특하게 보입니다. 잉카 문명만 해도, 키푸라는 고유의 기록 시스템(p114, p220)을 갖고 있었음이 최근에 밝혀짐에 따라 그 오랜 선입견 하나가 깨어졌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피사로 패거리에게 그토록 선진 시스템 전체가 쉽게 무너진 사실에 대해서도 별반 이상해할 게 없습니다. 그런 예는 몽골 기병에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 중 하나인 바그다드가 함락된 후 대학살이 벌어진 사실이나, 베이징의 빈틈을 여진-차하르 연합 세력이 수시로 공략하여 민간을 약탈하다가, 결국 도르곤이 입관하여 패권을 차지하고 양주의 학살을 지시한 예 등 부지기수입니다. 이 모두에 공통된 하나의 원리는, 패배한 이들 역시도 그 체제에 내부 모순이 심각하게 축적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잉카 제국이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는 점도 대단할 게 없는 게, 대영제국은 어디 면적이 좁아서 나치에게 멸망 직전까지 몰렸겠습니까? 

Death is the great equalizer(p309). 이 말은 개인뿐 아니라 문명권, 나라, 도시의 경우에도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 배운,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창시자 제러미 벤담의 죽음에 대해 다소 기이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제9장의 서술이 가장 재미있게 읽혔는데, 얼핏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토픽들을 기막히게 엮어서 "서양은 모든 죽음을 망쳐 놓았다(p337)" 같은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내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기술에 탄복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인기 있는 강연자, 채널 운영자인 사실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할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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