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사 수업 - 유대 문헌으로 보는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박양규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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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지만 동시에 부분적으로 역사서의 구실을 겸하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상당한 시대 간극이 뜨지만, 애초에 구약이 특정 시점에서 끊어졌고 신약은 저자의 인적 구성 면에서 구약과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종교적 관점은 일단 차치하고), 중간 시대의 공백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외경이라는 게 있어서, 아주 기록이 없지도 않고 그 나름대로 시대상을 흥미롭게 반영하기 때문에 이 중간사라는 게 관심을 더합니다. 

신구약 못지 않게 중간사 어느 씬을 다룬 미술 작품도 상당히 많은데 예를 들어 p38에는 렘브란트의 <벨사살 왕의 연회>가 언급됩니다. 메네 메네 데켈 우브라신 하는 그 이야기죠. 벨사살의 땅을 갈라서 메대와 바사 사람들에게 갈라준다는 그 예언(어떻게 해서 그런 뜻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왕의 당대에 바벨론이 망함으로써 실현이 됩니다. 메대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메데이아 왕국이며 고대부터 있던 정치 단위였는데 페르시아 제국의 협력자로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페르시아는 이처럼 여러 부족의 연합체로서 지역 통일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지금도 서부의 동서 아제르 주 같은 게 다 그 잔재입니다. 기질 드센 아제르바이잔 인들이 페르시아와 손잡고 제국을 공동 통치하는 일이 많았는데, 팔레비 샤의 황후도 아제르인이었습니다. 책의 후주를 보면 바빌론이 표준어이지만 성경 표기에 따라 "바벨론"이라 쓴다고 나옵니다. 성경은 여기서 개역개정판을 뜻하며, 책 내용은 마틴 헹엘, 스티브 메이슨의 책들, 또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작들을 참조했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가 그저 팩트의 앙상한 나열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그 안에는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희열, 분노, 원한, 희망, 극복의 의지 등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혼과 영혼이 배어나는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실증주의의 대표자 랑케의 쌀쌀맞은 말처럼 건조한 사실만 제시한다고 역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 민족은 예로부터 강대국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고,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제1성전이 초토화하고 타향으로 강제이주당해 노예 생활을 하는 등 무수한 고초를 겪으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중간사 오백년은 아득한 기간 같아도 우리가 태곳적처럼 느끼는 임진왜란도 지금으로부터 500년이 채 되지 않은 과거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병자호란은 아직 400년도 지나지 않았겠는데, 저자는 우리 역시 유대인들처럼 환향(還鄕)의 정서와 기억을 승계하는 민족이라며 그들과의 동질감을 환기합니다. 그러고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I am citizen of no mean city." 사도 바울의 유명한 말을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이때 mean이란 건 비열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잘것없는, 가난한 같은 뜻입니다. 저자는 p93 이하에서 70인역을 논하며 언어의 상스러움에 대해 독자들을 가르칩니다. 아티카 그리스어(고대)는 고상하고 코이네는 비속하며, 중세 내내 그토록 떠받들어졌던 불가타 라틴도 사실 저속하다는 뜻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책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5백 전의 교회(즉 로마 가톨릭)는 집시, 창녀 등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멀리했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그들을 누구보다 불쌍히여겼고,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어지는 교회는 이미 교회의 본분을 저버렸음을 상기합니다. 이어 저자는 중간사 이벤트로부터 소재를 취한 카라바조 같은 화가가 하층민들과 격의없이 어울린 사실도 독자에게 전합니다. 이 책은 역사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저자의 뜨거운 신앙심과 정의감 같은 게 어떤 일관된 맥락에서 전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역사상의 예수 그리스도가 에세네라는 특수 분파에 소속된 열혈 청년이자 엘리트 랍비였다는 가설이 유력하게 제기된 적 있습니다. p189에서 저자는 바리새파, 또 그로부터 분파되어 나온 하시딤이라는 이들을 소개하며 왜 신약에서 이들이 예수와 대립하는 포지션인지 그 역사적 배경을 가르칩니다. 중간사와 신약에는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이 여럿인데,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며 이웃 에돔인으로서 힘을 키워 갈릴리 일대를 통치했고 로마의 종주권 밑에 들기도 했다는 게 특이합니다. p222에 나온 인물은 분봉왕이라 불렸으며 분봉왕이 된 배경에는 헤롯 대왕의 땅을 고모, 다른 형제 셋과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죠(4분봉왕.tetrarch). 이 사정에 대해 책에서 자세히 풀어 설명합니다. 중간사의 대표적 영웅은 유다 마카베오인데, 한국 역사에서도 여러 독립 영웅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여러 모로 우리들의 공감을 받기 좋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직 마태복음에만 베드로의 유대식 이름이 바요나임이 기록되는데, 저자는이 바요나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음절을 달리해 읽었을 때 어떤 차이가 나는지 설명합니다. 

중간사는 지중해 세계의 격변기였으며 신 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알렉산더 제국, 로마 등이 패권국으로 자리를 바꿨습니다. 역사로 봐도 재미있고, 이 행적에서 신의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읽어낸다면 그것대로 또한 의미깊은 작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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