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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평점 :
이역만리에 떨어져 얼굴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베푸는 거룩한 삶에 대해 들을 때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신, 혹은 절대자의 소명을 받아야 가능하겠으며 평범한 이들은 감히 그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런 책을 읽고 혹시 힘 닿는 범위 안에서 작은 도움이나 될 수 있을지 미흡한 마음이나 먹어 볼 뿐이죠.
평생 책을 써 본 적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라며 겸손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가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평생 고아들을 도우며 거룩한 삶을 사신 그 모친의 별세였던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모든 사연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편지 형식입니다. 당사자의 거룩한 인생에 대해 설령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해도, 이 글들을 읽으며 아주 작은 자락이나마 짐작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내 인생을 돌보지 않고 좋은 일을 할 때조차 뜻하지 않게 장벽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독선적인 이들을 만날 때가 이를테면 그 한 예입니다. 과연 자신은 그 말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갖고 있을까요? 그 말대로 했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무슨 책임을 지려고 저렇게 목소리를 높일까요?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수시로 출몰하여 일의 진행을 막습니다. "허허 내가 웃는다(p95)." 아마 모친께서도 생전에 이런 난감한 일을 겪기도 하셨나 봅니다. 저자는 자신으로서는 저런 포용과 관용, 달관의 경지를 이해 못하겠다며 스스로를 소인배라고 반성합니다. 저자의 그런 마음가짐에조차 다가가지 못하는 독자는 소인배 아래 그 무엇일까요 그럼.
사람은 자신이 나고자란 공간 외에 다른 곳을 찾고 싶은 욕망이 꼭 있습니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던 때를 회고합니다. 이때 저자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이렇게 아픈 무릎을 하고 먼 길을 나서는데 아무 느낌도 깨우침도 못 받으면 어쩌나. 남한테 오해를 사서 고립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런데 이런 건 대부분 근거 없거나 공연한 불안감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두려움을 우리들 대부분은 쉽게 떨칠 수 없습니다. "그들도 저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p143)."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움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주연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저자는 언급합니다(p162). 이어 저자는 모친이 생전에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고아를 보살핀 행적을 다시 회상합니다.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가, 왜 타인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던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작은 족쇄와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에 묶어 두는 걸까요. 그 근거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자존감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힘든 걸 얼굴에 써놓고 다니지 마라(p222)." 힘든 걸 티 내도 힘든 게 줄어들지도 않으며 괜히 남들도 불편하게 만들 뿐입니다. 더욱이 이는 그 일을 어차피 감당해야 하는 본인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결과만 낳습니다. 이것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면 의연하게 떠안는 게 맞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먼저 내 마음에 티끌 같은 게 없어야 가능하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힘든 일을 견디는 건 이제 자립의 인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법한 아들에게도 들려 줘야 할 조언(p148)의 주제입니다. 구름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가려진 태양을 생각하자! 마치 영어 속담 중 silver ling에 대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먹구름만 보았을 때 우리의 인생은 비전이나 지향점이 결코 떠오를 수 없습니다. 어두움의 이면이 보이고 난 후에야 다음의 노력과 성취, 희망이 눈에 비추이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어느 작가님이 지은, 희생과 제물과 피에 대한 단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p106에서 "사람들이 피와 눈물을 원한다"고 하는데 대체로 그것은 타인에게서 요구하는 거지 자신이 배출할 생각들은 품지 않습니다. 이런 행태, 잔인하고 이기적입니다. 저자는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 다른 말을 많이는 덧붙이지는 않으시는 걸로 보아 이에 대해서만은 여전히 분노를 느끼시는 듯도 합니다. 인간인 이상 이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태도를 보고 태연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어차피 우리가 이웃으로서 공존해야 할 이들입니다. 사람의 본성을 일개인이 교정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분노와 슬픔으로 채우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고 또 소중합니다. 만약 조물주가 그저 세상을 허무와 기계적 동작으로만 설계했다면, 그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 바로 남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를 지은 조물주보다 더 성숙하고 더 도덕적일 수도 있음을 이렇게 증명하는 거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