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당 평전 - 진리의 길 구국의 생애 이상의 도서관 27
조영록 지음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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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에 대해서는 유독 기이한 설화가 많습니다. 왜에 건너가 임란 때 잡혀간 동포들을 쇄환하게 하는 과정에서 길을 지나며 병풍에 쓰인 문구를 다 암기했다거나, 끓는 방에 얼음 빙(氷) 자를 쓴 종이 한 장을 던져 냉골로 만들었다거나, 그 스승 서산대사(휴정)과 도술을 겨루었다거나 하는 괴력난신의 민담이 대단히 많습니다. 


물론 이것이 사실일 수는 없고, 다만 다른 구전 설화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개성이 유독 그에 관한 기록에서만은 많이 발견되는 게 특이합니다. 또 양적으로도 다른 임란 때 위인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풍성합니다. 임란 때 활약한 다른 의병장들 중에도 승려가 있고, 공적이 혁혁한 인물도 많지만 오로지 이분에 대해서만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창작된 건 확실히 특별합니다. 


저자는 "설화적으로 덧칠된 사명당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게 이 책의 의도라고 밝힙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조선시대는 창업 이래 내내 유학자들이 객관적 관념론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이를 치국의 원리로 삼았으며 향촌 질서를 재편하려 들었기 때문에 전조인 고려에서 크게 존숭되었던 불교를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또 조직적으로 폄하하곤 했습니다. 


저자는 이 때문에, 당당히 정사에서 큰 비중으로 조명되었어야 했을 사명당의 역사적 행적이 문자로 된 기록에 담기지 못하자, 그를 보충 혹은 설욕하고자 민중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를 현창하여 남은 게 바로 다양한 저 설화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저자 조명록 교수는 사학계의 원로이며,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밀양(사명당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에는 다름 아닌 사명당이 두터운 족적을 남긴 사찰 표충사가 소재하기도 합니다. 


특히 임진왜란의 큰 향방을 가름한 전투 중 하나인 평양성 전투에서 사명당의 지략 전술은 아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사명당은 속명이 임응규이며 본디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찰에 몸을 의탁하여 성장했습니다. 조선조 내내 숭불 행각으로 유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던 문정왕후 시절 시행된 승과에 급제하여 두각을 나타낸 그는 나라가 모처럼만에 불가에서 인재를 데려다 쓴 보람이 있었는지 이백여년 만에 닥친 큰 국난을 맞아 종횡무진 활약했습니다.


왜는 우리와 달리 열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기층민중에 침투해서나 집권층 사이에서나 큰 비중으로 숭앙되었고 이는 무로마치 막부 통치기나 오다 노부나가의 승승장구 시기나 비슷한 추세였습니다. 천주교를 믿었던 고니시와 달리 가토는 전통에 따라 불교를 적잖이 존중했으며 이에 따라 적장과 말이 통할 만한 기개 있는 승려였던 유정을 조선 조정에서도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담에서 조선의 보배를 묻는 가토에 답하여 "조선의 보배는 조선 것이 아니라 일본에 있으니 가토 당신의 머리가 바로 그 보배"라고 답한 유정의 호방하고 재치있는 발언은 일본에서도 유명해졌습니다. 이것은 인물의 호연지기와 지적 재치가 극에 달해야 그 자리에서 나올 법한, 실로 천재의 징표라 하지 않을 수 없죠. 이런 큰 인물이 국난의 시기에 출현했다는 자체가 천운의 현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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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논술세계대표문학 2
마리아 트라프 지음, 이경애 엮음 / 훈민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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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작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원작 논픽션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저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었던 수녀 마리아가 책의 저자입니다. 


영화에서 마리아 역의 배우 줄리 앤드류스는 상당히 젊게 보이지만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는데 이 책 저자 마리아 수녀가 폰 트라프 대령 집안 사람들과 오스트리아를 떠날 때 대략 그 정도 나이였음을 알 수 있네요. 배우 나이를 잘 맞춘 셈입니다. 물론 현재 와서 보면 줄리 앤드류스 외에 다른 배우는 이 역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의 캐스팅이 맞습니다. 배우 줄리 앤드류스는 80대 후반인데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 명의가 "마리아 트라프"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영어로 쓰였고 1949년에 최초로 출간되었다고 나옵니다. 원저 명의가 마리아 오거스타 트랍이므로 구태여 독일,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의 표시인 von를 쓰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내용은 다 아는 대로이며... 영화에서는 폰 트랍 대령과 마리아 수녀가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 안슐루스, 즉 오스트리아 합병이 벌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리아 수녀는 이십대 초반에 대령과 결혼했고, 영화에서 보던 대로 (공교롭게) 계이름 일곱 개와 숫자가 같은 7남매를 돌봤으며 이후 대령과의 사이에 세 아이를 더 보게 됩니다. 


도레미 송은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도 배웠을 만큼 유명하며 각 나라의 사정에 맞춰 계이름에 연관된 구절을 집어넣어 말장난을 할 수 있게 옮깁니다. 영어 노래가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솔, 즉 G음에 대해 a needle pulling thread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실을 당기는 바늘.... 우리가 고1 정도에 배우는 단어 중 sew(쏘우), "바느질하다"라는 동사가 있는데, 과거형이 sewed이며 과거분사가 sewn(쏘운)입니다. 이걸 왜 배우냐 하면 비슷한 단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다"라는 단어는 sow(쏘우)인데 발음이 같습니다. 과거형은 sowed이며 과거분사는 sown이죠. 사실 도레미 송의 가사는 좀 무리를 해서 만든 느낌인데, sew가 needle이라고 하지만 니들은 명사이며 sew는 "바느질하다"라는 뜻의 동사일 뿐 명사로서의 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민감한 언어감각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걸 처음에는 못 알아듣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 노래가 너무나 유명해져서 영어유치원 등에서 필수로 가르칠 정도라 그 가사에 나오는대로 그냥 그런 용법이 있나 보다 여기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고 많은 도움을 받아 드디어 원하는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이후 폰 트랍 대령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이들이 꼭 읽어 봐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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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스꾸리 자서전 - 박쥐의 딸
나나 무스꾸리 지음, 양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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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라면 현재 50대 중반 이상에서 70대 초반 정도 되는 분들에게 아주 인지도가 높은 분입니다. 책에는 그리스가 낳은 전설적인 아티스트라고 소개가 나오는데 이분은 가수, 공연자이지만 작곡가로서 반젤리스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나나 무스꾸리가 반젤리스보다 십 년 정도 연상입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위로한 에디트 피아프하고는 대략 이십 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에디트 피아프는 아득한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란 느낌이 있는 반면 이분은 아직도 생존해 있습니다. 


에디트 피아프도 지독하게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덕에 그 아픔과 복잡다단한 감정을 자신의 목소리에 담아낼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던 것처럼, 나나 무스꾸리도 그리 순탄치 못했던 십대를 보냈다고 이 책에서 고백합니다. 재능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이런 시련도 하나의 멋진 도약 계기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온리 러브 ♬ 캔 메이크 메모리~" 이 곡은 영어로 불렀고 사실 우리 나라 청중들은 그녀가 영어, 불어 외에 다른 언어로 취입한 곡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노래 실력이 탁월한 이들이 흔히 그렇듯 성장기 내내 자국에서만 지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게 영어 딕션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라디오나 영화 등을 통해 미국 노래를 장르 불문 많이 접한 덕이 컸다고 하며 한국의 패티 김 같은 분도 미8군에서 처음 경력을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본격적 성장에는 이때로부터 20년 후 마이클 잭슨을 세계적 가수로 만든 대 제작자, 작곡가인 퀸시 존스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커리어 내내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 독어, 모국어인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등 노래에 사용하지 않은 언어가 없다시피합니다. 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 그녀가 부른 곡으로는 <트라이 투 리멤버>가 있겠는데 이 노래는 원래 브라더스 포가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리지널보다 나나 무스꾸리 버전이 훨씬 좋습니다. 브라더스 포의 히트곡 중에는 "그린 필즈" 같은 게 한국에서도 유명하죠. 


또 <사랑의 기쁨(Plasir d'amour)> 역시 아주 오래된 프랑스의 가곡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어느 프랑스 가수가 부른 버전보다도 나나 무스쿠리 커버가 단연 인기 최고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그녀가 자유자재로 만드는 선율을 따라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 곡에서도 그녀의 프랑스어 딕션은 원어민보다도 더 좋으며 불어 고유의 매력적인 사운드를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다 조음하는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 줍니다. 한국에 내한 공연을 왔던 스페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도 한국말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른 적 있는데 "누구의♪ 주제려어언가~~"까지 나올 때 한국 관객들이 까무러칠 듯 놀라고 감탄하는 반응이 화질, 음질 다 나쁜 유튜브 클립 영상 밖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영상을 보고 또 봐도 볼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다만 이상한 게... 나나 무스꾸리 같은 천재형 가수는 진짜 뭘 불러도 원곡자보다 더 잘 부를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도 <Smoke gets in your eyes> 같은 곡에서는 영 맛을 못 살립니다. 이 노래는 플래터스가 부른 게 한국에서는 유명합니다. 플래터스는 "오 예에에~ 아임♪♩ 더 그레잇 프리텐더~"를 부른 4인조 그룹이었죠. 


제목 "박쥐의 딸"은 그녀의 부친이 용모 때문에 동네에서 그리 별명이 붙었던 것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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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바이올린 켜줄게 춤춰봐 춤춰봐 춤춰봐 - 할머니가 쓴 육아에세이 : 나는 이렇게 손자를 키웠다
원숙자 지음 / 유씨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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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쁜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손자인 한결이가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데, 한결이는 커서 나중에 너무너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독자인 제게 들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 책 초두에 "내 아이를 내 엄마가 (대신) 키워 주셨기에 아이 키우는 것, 엄마 된다는 게 뭔지를 몰랐으나 이제 내 손자를 내가 키우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말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요즘은 여성들도 사회 생활을 하는 게 일반적이므로 육아에 쏟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정부도 일정 부분 육아비를 보조하고 육아 휴가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나 여전히 많이 부족하죠. "외손자를 키워 주는 친정 엄마"는 이제 하나의 사회적 합의 내지 공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내켜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예외도 엄청 많습니다. 내 아이를 키워 주는 친정 엄마가 고마운 줄을 (새삼) 알아야 할 딸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적어도 "그저 당연히 여길 일"은 아니라는 거죠. 


참 사진이 많기도 많습니다. 아기가 기어다니는 모습, 아직 눈도 잘 못 뜨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은 물론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언제 커서 두 발로 잘 걸어다닐까, 언제 어른처럼 의젓하게 말하기를 배울까 등등 여러 생각을 스쳐지나가게도 합니다. 물론 때가 되면 다 무리없이 배우고 거치는 절차들이지만 아기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되고 한편으로 경이롭기도 한 느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결이가 참 총명한가 봅니다. p141에 보면 저자 자신은 도무지 외울 수 없었던 공룡 이름을 손자가 줄줄 외우는 걸 보고 신기하게 여기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른들도 아마 자신이 어렸을 때 책에 안 나오던 새로운 이름은 못 외울 겁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천재이기라도 한지 그 긴 이름을 줄줄 외우고 그림을 보며 일일이 구분하는 등 무슨 전공 학자처럼 놀라운 능력(?)을 뽐냅니다. 이처럼 총명하던 머리가 왜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점점 바보가 되는 건지 알다가다 모을 일입니다. 


할머니와, 아직 어린 손자가 나누는 대화를 여태 여러 책에서 읽어 왔습니다. 읽을 때마다 신기한 게 어린 손자가 할머니에게서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게 메인이겠으나 이런 대화를 통해 오히려 뭔가를 새롭게 배우는 건 어른들인 편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결아, 쓸쓸하다는 게 뭔지 알아?" "응, 혼자 있는 거에요(p235)." 거참 뭘 알고서 저리 대답하는 건지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저자는 "혼자 있어 본 적도 없으면서"라며 속으로 "여럿이 있을 때 쓸쓸한 게 진짜 쓸쓸한 것"이란 대답을 내놓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다 공감할 대목입니다. 왜 "군중 속의 고독"이 진짜 고독인지 말이죠. 


"땅은 무구하다(p277)." 사실은 사람도, 어렸을 때는 때묻지 않고 무구한 마음입니다. 사람이 태초에 그리 생긴 대로 자연에만 머문다면 계속 깨끗한 마음으로 살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때 묻히는 건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동료 인간들입니다. 저자는 손자가 도와 주는(?) 고구마 농사를 이어가며 우리네 땅이 이처럼 정직한 소출을 내놓으며 죄 많은 인간을 먹여살리는 이치를 궁금해합니다. 


p278, 그리고 책 앞날개에 왜 저자가 운영하는 농장 이름이 "구원(具元)"인지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니 해당 한자의 참뜻과는 무관하지만 저는 독자로서 좀 엉뚱하게, 결국은 자연에 귀의하고 티없는 땅에 의존할 때에야 비로소 사람의 구원(救援)이 가능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기의 티없이 맑은 눈을 보면 이런 결론이 더 굳어지는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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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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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에 떨어져 얼굴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베푸는 거룩한 삶에 대해 들을 때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신, 혹은 절대자의 소명을 받아야 가능하겠으며 평범한 이들은 감히 그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런 책을 읽고 혹시 힘 닿는 범위 안에서 작은 도움이나 될 수 있을지 미흡한 마음이나 먹어 볼 뿐이죠.


평생 책을 써 본 적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라며 겸손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가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평생 고아들을 도우며 거룩한 삶을 사신 그 모친의 별세였던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모든 사연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편지 형식입니다. 당사자의 거룩한 인생에 대해 설령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해도, 이 글들을 읽으며 아주 작은 자락이나마 짐작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내 인생을 돌보지 않고 좋은 일을 할 때조차 뜻하지 않게 장벽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독선적인 이들을 만날 때가 이를테면 그 한 예입니다. 과연 자신은 그 말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갖고 있을까요? 그 말대로 했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무슨 책임을 지려고 저렇게 목소리를 높일까요?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수시로 출몰하여 일의 진행을 막습니다. "허허 내가 웃는다(p95)." 아마 모친께서도 생전에 이런 난감한 일을 겪기도 하셨나 봅니다. 저자는 자신으로서는 저런 포용과 관용, 달관의 경지를 이해 못하겠다며 스스로를 소인배라고 반성합니다. 저자의 그런 마음가짐에조차 다가가지 못하는 독자는 소인배 아래 그 무엇일까요 그럼.


사람은 자신이 나고자란 공간 외에 다른 곳을 찾고 싶은 욕망이 꼭 있습니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던 때를 회고합니다. 이때 저자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이렇게 아픈 무릎을 하고 먼 길을 나서는데 아무 느낌도 깨우침도 못 받으면 어쩌나. 남한테 오해를 사서 고립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런데 이런 건 대부분 근거 없거나 공연한 불안감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두려움을 우리들 대부분은 쉽게 떨칠 수 없습니다. "그들도 저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p143)."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움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주연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저자는 언급합니다(p162). 이어 저자는 모친이 생전에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고아를 보살핀 행적을 다시 회상합니다.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가, 왜 타인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던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작은 족쇄와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에 묶어 두는 걸까요. 그 근거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자존감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힘든 걸 얼굴에 써놓고 다니지 마라(p222)." 힘든 걸 티 내도 힘든 게 줄어들지도 않으며 괜히 남들도 불편하게 만들 뿐입니다. 더욱이 이는 그 일을 어차피 감당해야 하는 본인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결과만 낳습니다. 이것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면 의연하게 떠안는 게 맞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먼저 내 마음에 티끌 같은 게 없어야 가능하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힘든 일을 견디는 건 이제 자립의 인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법한 아들에게도 들려 줘야 할 조언(p148)의 주제입니다. 구름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가려진 태양을 생각하자! 마치 영어 속담 중 silver ling에 대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먹구름만 보았을 때 우리의 인생은 비전이나 지향점이 결코 떠오를 수 없습니다. 어두움의 이면이 보이고 난 후에야 다음의 노력과 성취, 희망이 눈에 비추이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어느 작가님이 지은, 희생과 제물과 피에 대한 단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p106에서 "사람들이 피와 눈물을 원한다"고 하는데 대체로 그것은 타인에게서 요구하는 거지 자신이 배출할 생각들은 품지 않습니다. 이런 행태, 잔인하고 이기적입니다. 저자는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 다른 말을 많이는 덧붙이지는 않으시는 걸로 보아 이에 대해서만은 여전히 분노를 느끼시는 듯도 합니다. 인간인 이상 이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태도를 보고 태연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어차피 우리가 이웃으로서 공존해야 할 이들입니다. 사람의 본성을 일개인이 교정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분노와 슬픔으로 채우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고 또 소중합니다. 만약 조물주가 그저 세상을 허무와 기계적 동작으로만 설계했다면, 그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 바로 남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를 지은 조물주보다 더 성숙하고 더 도덕적일 수도 있음을 이렇게 증명하는 거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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