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 보안 전략 - 일찍 시작하고 끝까지 지키는 안전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필수 방어 기술
콜린 도모니 지음, 류광 옮김 / 정보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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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I는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약자입니다. p6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API는 공격자들에게도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말은, 대략 15년 전부터, 라이브러리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이처럼 중간단계를 두어 개발상의 여러 편의를 도모하는 API 시스템이, 그 누구보다 개발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더랬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API라는 게, 마치 전에 없던 새 시대를 연 듯(일부 사실이지만) 폭발적 호응을 얻었던 게 대략 15년 전이라는 뜻이죠. 그러나 저 구절에서도 보듯, 섬뜩하게도 API는 공격자, 즉 해커들에게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타겟이 되어가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라이브러리도 물론 핵심 파일들의 묶음입니다. 그러나 API는 이보다 더 높은 단계에서 부품들을 미리 엮어두어, 다소의 변형만을 가한 채 사용하기 때문에, 이제 어떤 프로그램이라 해도 대충의 얼개가 닮아가는 셈입니다. 개발자의 개성이 희석되었으니 도둑들이 편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p7을 보면 "기존 보안 도구들은 API의 보안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 예로 웹 애플리케이션 방화벽 같은 걸 들고 있습니다. 한때 이것만 갖춰 놓으면 든든하다고들 여겼던 강력한 도구들이 뒷방 노인 취급 받는 걸 보면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더 심각한 지적은 뒤에 나옵니다. "개발자가 API의 보안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도 합니다. "개발자란,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사이다."  우리도 흔히 "행복회로를 돌린다"는 말을 냉소적으로 쓰곤 하지만, 미국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happy path라는 표현이 있나 봅니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개발자가, 한번 만들어 놓은 코드 변경을 일반적으로 꺼리는 데에도 원인이 있는데, 그 이유야 시스템이 깨질까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사안일주의에 젖어서는, 예리하고 의욕 가득한 침투자들의 끊임없는 시도를 막을 길이 없고, 그들의 눈에 어느 정도 빤하게 보이는 API의 허점을 보완, 엄폐하기가 난망합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크게 API 보안 방향성을, 속도제한, 암복호화, 해시-HMAC-서명, 전송보안, 인코딩 등을 통해 잡습니다. 이상의 주제들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책에서는 p46 이하에서 아마존의 예를 드는데, AWS는 HTTP 상에서 키 기반 HMAC 맞춤형 인증 메커니즘을 쓴다고 합니다. 앞서가는 기업은 이처럼 보안에도 철저하여, 오히려 업계 보안 수준까지 자신들이 선도합니다(외주 업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수준을 능가함). 다들 알듯 아마존은 회원에게 자주 쓰는 카드번호도 저장해 놓으라고 하는데, 어디 여간 강심장 아니고서야 있던 것도 지우지, 그걸 얻다가 저장해 놓겠습니까? 그래도 여태 한 번도 아마존에서 그게 누구한테 털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반면 국내 기업을 보십시오. 매번 고객 개인 정보 유출에, 심지어 자발적으로 타국 기업에다 이전(?)까지 해 줍니다. 이러니 광고업체가 망할 수밖에 없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마이너리티 리포트 세계관이 일찍 실현될 태세입니다. 

p91에 보면 국제배송업체가 PII 유출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음을 간파하고, 일단의 보안 연구자들이 해당 업체에다가 그 사실을 통보해 준 사례가 나옵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이처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안 이슈를 설명해 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튼 취약점이 생기게 된 주된 원인으로 거론된 건, 속도제한 부재(많은 관리자들이 간과합니다. 저 뒤 p193도 함께 참조할 것), 과도한 정보 노출 등이었는데, 그 외에도 책에서는 "클라리언트나 프런트엔드가 저런 과잉정보를 적절히 걸러서 표시하겠거니" 기대를 가지지 말라고도 조언합니다. 위험에 있어서의 지형(landscape)를 개발자들은 거의 언제나 무시한다며 현실을 개탄합니다. 

보안을 강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도둑이 되어 누군가를 공략해 보는 것입니다. p142 이하에, 좋은 예제 하나를 마련하여 이를 직접 공격해 보라고 자세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대상이 되는) API와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이와 관련, 좋은 자료가 많이 모인 곳으로는 깃허브닷컴의 awesome-api-security 같은 곳을 추천해 주네요. p161에서, 만약 열린 포트들을 찾았다면, 이후 동적 스캐너를 사용하여 호스트의 이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 외에도 제7장에서 부채널(side channel) 공격이라든가, p203의 경로 순회 등도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정보였습니다. 

예사로 생각하고 책을 열었다면 뜻밖에 좋은 정보가 많아서, 또 설명이 매우 구조적이고 체계적이라서 놀란 독자들이 많았겠습니다. 아직은, 깊은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역시 외국 저자 책을 봐야겠다는 점 실감하게 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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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첫 문해력 신문 - 읽기로 시작해 쓰기로 완성하는
이다희 지음, 서희진 그림 / 아울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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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에게 핵심 자질 중 하나입니다. AI에게 유효한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능력도 결국은 문해력과 밀접한 관계이며, 모두가 소셜 미디어로 연결되다시피한 세상에서 다른 이들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 의사를 내 의도대로 전달하는 능력도 그 기반은 문해력입니다. 그런데 이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우리 사는 공간의 거의 모든 소식을 잘 가공하여 전달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고기는 수십 년 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양성화하여 유통되지 못했으며 보신탕이니 영양탕이니 하는 우회적 명칭으로만 통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불법까지는 아니었는데 2024년 1월 국회에서 개식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어서 이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반려견을 두는 인구가 수천만에 달하며 관련 산업(미용, 사료)도 급성장한 마당에 개 식용 관행이 이런 추세와 양립할 수 없다는 판단이겠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개를 먹을거리로 삼는다는 생각이 그리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수 있어도, 어린이들은 "대체 왜 개를 먹어?"라며 그 발상 자체가 이상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교재에서는 "신아리"라는 캐릭터를 내세워서,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려 보게 합니다. 물론 지금껏 개를 먹어왔던 건 잘못이나, 개가 계속 식용으로 쓰일 줄 알고 농장에서 개를 키워 왔는데, 이 개들은 당장 어떻게 할지가 과제입니다. 그대로 야생에 풀어 버리면 가뜩이나 유기견이 문제를 일으키는 요즘 걷잡을 수 없이 파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신아리는 아이답게(?) 하나의 방법을 내놓는데 물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 재원과 부지를 마련하는 일까지라면, 어린이들에게 답을 묻기는 좀 버거운 단계이겠습니다. 

교재에서 다루는 토픽은 최신의 시사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까지도 포함합니다. 이 교재는 과거와 현재를 두루 넘나들지만, 예전에 역사신문이라고 해서 역사만 전문으로 다루는 베스트셀러가 있었던 것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책보다 이 책이 좀 더 친근감 있게 다가왔는데 아이들한테 부과되는 과제 면에서 더 (현실적으로) 난도를 낮췄으며, 포맷이 좀 부드럽고, 신아리 캐릭터가 더 귀엽다는 점 등에서입니다. 

p48에서 어린 독자들에게 던져지는 질문도 매우 흥미로운데, 저도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만약 윤봉길 의사(義士)께서 뜻을 같이하는 분 열 명 정도를 모아 거사를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문제가 그 대표적입니다. 윤의사는 상해 홍구 공원 의거의 주역이지만, 문제에서는 그보다 앞서 일어난 일왕 행차 폭탄 투척 사건으로 상황을 살짝 바꾸었습니다. 윤의사가 공격한 단상의 일본 장성들도, 일왕만큼은 아니라도 대단한 거물급들이긴 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서 대체현실을 꾸리는 작업은 무척 흥미롭고 아이가 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보기에 재미있습니다. 교재에 나오는 사진 속의 윤의사는 지성적이고 사려 깊으면서도 코카서스인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상입니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프로젝트를 벌여 다시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화성입니다. 바로 어제에도 화성의 표면 아래 물이 존재하여, 마치 지구의 해저처럼 바다생물 같은 게 살지 않을지 하는 가능성이 점쳐졌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교재에서는 신아리가 "만약 네가 화성에 살게 된다면 무엇을 가져가고 싶어?"라며 어린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저자 이다희 대표가 실제로 초등교사 13년 경력자이며 현재 학부모이기도 하므로 그 점에서 아이들의 정서를 잘 캐치하여 현실감 있게 구성한 곳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p63에는 화산 폭발(아이슬란드 블루라군 2024년 3월의 폭발 뉴스)을 두고 꾸민 대목도 그렇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을 점검하고 꾸준한 글쓰기 습관까지 기르게 하기 위해 일기쓰기도 학교에서 시킵니다. 그런데 이 교재에서는 신문과 일기를 결합하여 신문일기 쓰기도 제시하는데,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일기도 자신의 하루 일상에 대한 보고(報告. report)이니 애초부터 일기와 신문은 서로 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꼭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아무 생각이나 적게 하는 코너도 있어서 아이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자연과 동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제인 구달 박사에 대한 설명도 있고, 심신(心身) 같은 한자어를 학습하게도 하여 (요즘 신문에는 한자가 많지 않지만) 아이들의 한자문해력 향상도 배려합니다. 곳곳에 QR 코드가 찍혀 동연상 자료로 연결되게 돕는데 저는 개복치 영상이 흥미로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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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네 집
장은아 지음 / 문이당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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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무역 대국이며 동남아 등 외국에서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주해 올 만큼 풍요롭게 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도 1945년 식민지에서 갓 해방되고 불과 5년 만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후에는 세계 최빈국 레벨에서 가혹한 빈곤으로 고생한 적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시절 모두가 힘들어하면서도 서로를 아끼가며 한 줄기 희망을 갖고 살던 모습을 다뤘습니다. 

...라고 제가 요약은 했으나, 사실은 이 장편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주요 인물 준 하나인 옥화를 보면,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나쁜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물론 옥화도 포주라든가 깡패 같은 주변 인물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상처를 간직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혹 자신이 피해를 본 게 있더라도, 그 가해자를 찾아가 원한을 풀든지 해야지, "나는 더한 일도 남들한테 당했다"며 합리화한 후, 자신에게 아무 해를 끼친 적 없는 다른 이들에게 해코지를 한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더러운 창녀 근성, 첩의 본능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oo도 다른 남자의 자식임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작품 대표 빌런이라 할 옥화가 이렇게 생생하고 실감나게 그려진 점이 이 소설 최고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p116에서 옥화는, 앵두에게 강아지를 사 주려는 새달(아직도 얘가 자기 딸인 줄 아는)에게 핀잔을 줍니다. 웬일로 아이 인성 교육까지 신경을 쓰나 싶어 대견했는데, 개가 새로 살림에 들어오면 그만큼 자기 할 일이 늘어나 귀찮아서라고 합니다. 그럼그렇지 싶었습니다. 예전에도 아이들에게 병아리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는데, 부모님들은 그 병아리들이 어딘가 성치 못한 애들이라며 사지 말라고들 했는데 p117에서 새달은 1인칭 주인공 연지(장은아 작가님의 페르소나)에게 비슷한 말을 합니다. 마을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새달이지만 이런 걸 보면 은근 속이 깊은 사람입니다. 의도도 연지가 나중에 상처를 덜 입게 하려는 쪽인 듯하니 말입니다. 

p47을 보면 새달은 은근히 처음부터 옥화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이 이름이 앵두라는데 앵두를 닮은 데가 하나도 없고, 이 말 속에 어쩌면 (아빠라는) 자신을 한 군데도 안 닮았다는 미심쩍음이 벌써 들었는지도 모릅니다(아, 물론 과일 앵두를 애가 안 닮았다는 건 새달이 아닌 연지의 느낌입니다). p57을 보면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연지가 형석(월부 책장수)의 등에 업히다 대변을 지리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연지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몸이 말을 안 들어서인데, 예전에는 불량식품이 많어서인지 장 기능에 문제가 있는 애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요즘은 완전히 사라진 업종이 저 월부장수인데, 특히 책 전집을 팔고 할부로 대금을 받아내는 직종도 그 못살던 시절에 참 많았다 싶었네요. 애가 대변을 지려 화가 날 만도 한데, 이 애가 내 애려니 하는 정감과 인간애 때문에 끝까지 연지를 챙기는 마음씀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무전기 같은 미끼가 있어야 아이들을 끌어다닌다는 형석의 말은 그럴싸한데(물론 본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본사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겠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 군사 정권 때라서 저런 물건 함부로 들고 다니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으면 어쩌나 싶기도 했습니다(북파 공작원 이야기는 p222 이하에 나옵니다) . 역시 형석은 배운 사람이라서 연지에게 쉽게 인생에 대해 풀어 주는 품이 그럴싸합니다. 이런 좋은 영향을 어려서 받았기에 나중에 연지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나 제 멋대로 짐작합니다. 은혜를 좋게 간직하는 사람도 있고, 악으로 패륜으로 돌려 주는 저주받은 인생도 있는데 그 아들놈이 어딘가 모자라든가 해서 다 당대에 벌을 받기 마련입니다. 

여자애들도 은근히 별나고 개구지며 대담하다는 건 p162에서 몰래 술지게미를 퍼먹는 연지와 앵두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앵두 같은 애를 이렇게 휘어잡고(?)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연지도 보통 아닙니다. 두부 할머니(형석의 모친)이 왜 맨날 테레비(이것도 일본말이지만)을 데레비라고 하냐 하면, 일본어의 た행 음소들이 어두에 올 때 우리말 ㅌ보다는 ㄷ에 가깝게 발음되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예: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문제의 접대부 도경이 드디어 나타나서 형석을 홀립니다. 원래, 작부의 짝은 깡패보다는 룸펜 지식인 아니겠습니까. 연지 엄마(소설 맨처음에 치매로 고생하시는)가 사려 깊으신 게, 연지한테 형석과 작부 도경 사이에 정분이 났다는 말을 듣고 가십거리를 퍼뜨랄 생각부터 하는 게 아니라, 두부 할머니 상심할 일을 먼저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말입니다. 

우리말로 오쟁이를 졌다는 표현이 있는데 p252에서 새달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중국어로는 이런 꼴을 "자라대가리"라고 부른다는 말도 합니다. 영어로는 cuckhold라고 하죠. 아무튼 온갖 우여곡절 끝에 연지는 잘 자라 기반을 잡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앵두도 다시 만나 감격스러운 해후를 합니다. "엄마, 이젠 여기가 우리 집이야." 모두가 행복하게 만나, 비록 핏줄이 안 섞여도 가족처럼 다시 추억을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인 옥화도 편지에 쓰인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독자로서 바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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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처럼 흐르고 싶다
이만수 지음 / 카리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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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많은 땅이 필요한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둘은 톨스토이 우화집에 실린 작품들의 제목이며 그는 작품 안에서 자신의 답을 내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p26 <삶의 이유>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하나는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 할 이유"라고 합니다. 나는 배를 채울 많은 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 앞에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큰 재산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 대체 내가 왜 이 시각 이 지점에 두 발을 디디고 서야 하는지 그 이유가 필요합니다. 만약 어떤 시니컬한 철학자가 말했듯, 아무 이유 없고 그저 툭 던져졌을 뿐이라면, 이제 존재 이유(raison d'etre)가 사라졌습니다. 그럼 존재가 한순간에 휙 하고 없어져도, 나는 아무 아쉬움도 미련도 서러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이냐? 신이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를 이렇게 여기다 빚었다는 확신, 소명감입니다. 

이 시집의 제목은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집 전체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 p48의 <자유>입니다. 자유는 우리들 인간의 영혼에 새겨진 심장이며, 존재가 작동하는 가장 근본의 엔진입니다. 과연 그래서 작품의 제3행이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이기도 합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보면 꿈꿀 수 없는 걸 꿈꾸고, 견딜 수 없는 걸 견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붙들 수 없는 걸 붙들려 하고, 막을 수 없는 걸 막으려 하는" 인간의 미련(未練)과 미련스러움이 그 모든 시름을 낳는다고 합니다(물론 세르반테스의 취지는, 반대로 인간의 위대함을 지적함이지만). 그리스도가 이른, 들판의 꽃은 길쌈을 않아도 솔로몬보다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공중의 새들도 주님이 거두어먹인다는 구절(마태 6:26 이하)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예수는 진리를 얻기 위해 광야(wilderness)에서 40일 간 고행했는데 p92에서 시인은 이를 두고 사투(死鬪)라 표현합니다. 단지 혹독한 더위, 추위, 굶주림이 문제가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는 악마의 교란, 유혹, 모든 걸 포기하고 타락하라는 손길 등이 그리스도를 극한의 괴로움에 들게 합니다. 빌라도 앞에서 받은 태형, 그리고 그다음날 집행된 십자가형 등을 위한 리허설이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사람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인간의 육신을 한 그리스도가 가장 배고플 때 떡 한 트럭을 들고 나타나 원초적 욕구를 파고든 중상자(the diabolic)가 보기 좋게 실패하는 장면입니다. "동구를 응시할 아버지"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올 탕아(the prodigal son)을 기다리는 그 부친을 가리키겠습니다. 

책날개에는 저자 이만수 목사님이 1953년생이시라고 나옵니다. 사실 자신과 한참 다른 세대에 대해서는 연도로부터 나이가 직감적으로 잘 계산하려 들지 않기에 예사로 봐넘겼으나, p124에 <칠순을 넘기면서>라는 작품을 읽고 엥?하며 시인의 연세를 다시 세어 보았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조훈현 9단,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 차범근, 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 등과 동갑이십니다. 목사님 같은 분도 더 성실히, 더 정직하게, 더 경건하게 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으시는가 봅니다. 그러나 과오는 과오대로 인정하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자신에게 남은 소명이라고 단호히 선언하는 게 시인의 목소리입니다.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것." 어느 막장드라마 시청 중 들은 대사인데(출처를 정확히 알지만 여기 적지는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이에 공감 크게 못하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누군가를, 무엇을, 활활 타오르도록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겠습니다. "버림으로써 얻고, 썩어야만 거둘 수 있어(p158)" 그리스도는 손바닥에 못이 꽝꽝 박히고 구속 사업을 완수했습니다. 이보다 더 열렬하고 완전한 헌신과 사랑은 없을 텐데 그나마도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였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삭혀둔 그리움은 동토(凍土)를 비집고 나오는 새싹처럼 또렷이 고개를 드는(p186) 것입니다. 모든 중생의 구원과 영생을 다짐하며.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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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고 싶습니다
이만수 지음 / 카리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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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께서는 삼천포 삼한교회에서 목회에 종사하시는 목사님입니다. 서문에서 여태 자신은 시작(詩作)을 위한 본격적인 수업을 받아 본 적 없다고 겸손되이 말씀하십니다. 자연스러운 시심(詩心)이 내면에 이미 갖춰진 분에게 어떤 인위적인 교육이 구태여 필요하진 않을 듯하며, 또 시인께서는 여태 아름다운 풍광이 사람을 굽어보는 유리한 자연 환경에서 충분히 영감과 시감(詩感)을 섭취하신 듯 보입니다. 남해군은 그 자연 절경의 빼어남으로도 일찍부터 유명했지만, 동시에 거주민들의 실용적 기질과 꼼꼼한 사업 적성으로도 인근에 평판이 자자했죠. 

p44를 보면 온몸으로 고토(故土)를 지키고 선 겨울나무의 표백이 있습니다(<겨울나무>). 남해군이면 한반도 최남단에 가까운데 그 겨울이 과연 추울까 싶어도, 중위도 온난습윤기후대의 겨울은 역시 겨울의 매운 맛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서 고토라 함은 고토를 수복한다는 그 고토가 아니라, 일종의 "고향땅"을 가리킵니다. 시인께서도 일생을 고향에만 계시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에 독자인 저는 처음에 이 겨울나무의 고즈적한 다짐 배경이 더 북쪽인 다른 고장일 수도 있겠다고 여겼으나 저 고토의 한자 표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음은 자신의 피와 살 일부를 도려내어 세상에 내놓는 작업입니다. 그 출산의 고통이 또한 얼마나 자심합니까. 따라서 제 모친의 수고와 사랑을 부정하는 인간은 이미 스스로 사람이 아님을 세상에 자백함이나 같고, 포태와 출산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자가 언필칭 여권을 옹호함이란 그보다 더한 악질의 모순이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천리에의 순응이 그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은 깃들어야 하는데, 비천한 심성과 비뚤어진 기질이 이미 마음에서 일말의 수치심도 앗아가버린 채가 아닐지. 여튼, 어머니의 손에 자리한 그 주름들(p57)은 모두 자식의 생명과 활동에 바쳐진 정성의 자취이며, 우리는 설령 극한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저 체온과 촉감을 보고(=떠올리고) 초심을 찾습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어느 분의 말도 있었지만, p73에 나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고향으로부터 수백 리를 떠나와 "오색 불빛이 넘실거리는 창가"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낯선 도시의 생경하고 비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인간미 물씬 풍기던 고향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심정이겠으나, 저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인께서는 아마 고향의 숲과 가람 한복판에서도 "남해여! 아름다움이여! 그리움이여!"를 외치실 것 같습니다. 마치 한시도 엄마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갓난아기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의 수치를 가리시려 전신의 고통으로 선혈을 쏟으신 주님(p86)" 그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유독 형장에 끌려가기 전 그토록이나 혹심한 신체적 모욕을 감수하신 게 그런 동기가 또한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긴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어찌 속속들이 짐작하겠습니까.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수천년 동안 전해져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자성의 계기로 삼아집니다만, 간혹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 참람되게도 자신의 죄악을 합리화할 때 그 더러운 입에 올리기도 하죠.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흘린 피를 보혈(寶血)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제목이 굳이 "우정"인 이유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사지를 찔러드는 그 모진 고통(p120)이야말로 구원에의 언약, 표상이었습니다. 

"한 분의 육체 안에서 신과 사람은 하나가 되옵니다(p140)." 그래서 고대 이래 교부(敎父)들이 그토록 치열한 논쟁과 숙고, 나아가 신성한 가르침을 통해 양성론(dyophisitism)을 칼케돈 공의회 이래 확립하였으며, 이 신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거쳐 인간은 믿음을 바른 방향으로 잡고 마침내 구원에 이릅니다.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듯, 최후의 만찬에서 스승과 제자의 구분도 사라지고 세족(洗足)을 통해 화합합니다. 떠난 사람도 물론 있지만, 남은 사람들끼리는 먼저 마음을 열고 스스로 낮아져(p150) 그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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