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고 싶습니다
이만수 지음 / 카리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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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께서는 삼천포 삼한교회에서 목회에 종사하시는 목사님입니다. 서문에서 여태 자신은 시작(詩作)을 위한 본격적인 수업을 받아 본 적 없다고 겸손되이 말씀하십니다. 자연스러운 시심(詩心)이 내면에 이미 갖춰진 분에게 어떤 인위적인 교육이 구태여 필요하진 않을 듯하며, 또 시인께서는 여태 아름다운 풍광이 사람을 굽어보는 유리한 자연 환경에서 충분히 영감과 시감(詩感)을 섭취하신 듯 보입니다. 남해군은 그 자연 절경의 빼어남으로도 일찍부터 유명했지만, 동시에 거주민들의 실용적 기질과 꼼꼼한 사업 적성으로도 인근에 평판이 자자했죠. 

p44를 보면 온몸으로 고토(故土)를 지키고 선 겨울나무의 표백이 있습니다(<겨울나무>). 남해군이면 한반도 최남단에 가까운데 그 겨울이 과연 추울까 싶어도, 중위도 온난습윤기후대의 겨울은 역시 겨울의 매운 맛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서 고토라 함은 고토를 수복한다는 그 고토가 아니라, 일종의 "고향땅"을 가리킵니다. 시인께서도 일생을 고향에만 계시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에 독자인 저는 처음에 이 겨울나무의 고즈적한 다짐 배경이 더 북쪽인 다른 고장일 수도 있겠다고 여겼으나 저 고토의 한자 표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음은 자신의 피와 살 일부를 도려내어 세상에 내놓는 작업입니다. 그 출산의 고통이 또한 얼마나 자심합니까. 따라서 제 모친의 수고와 사랑을 부정하는 인간은 이미 스스로 사람이 아님을 세상에 자백함이나 같고, 포태와 출산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자가 언필칭 여권을 옹호함이란 그보다 더한 악질의 모순이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천리에의 순응이 그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은 깃들어야 하는데, 비천한 심성과 비뚤어진 기질이 이미 마음에서 일말의 수치심도 앗아가버린 채가 아닐지. 여튼, 어머니의 손에 자리한 그 주름들(p57)은 모두 자식의 생명과 활동에 바쳐진 정성의 자취이며, 우리는 설령 극한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저 체온과 촉감을 보고(=떠올리고) 초심을 찾습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어느 분의 말도 있었지만, p73에 나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고향으로부터 수백 리를 떠나와 "오색 불빛이 넘실거리는 창가"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낯선 도시의 생경하고 비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인간미 물씬 풍기던 고향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심정이겠으나, 저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인께서는 아마 고향의 숲과 가람 한복판에서도 "남해여! 아름다움이여! 그리움이여!"를 외치실 것 같습니다. 마치 한시도 엄마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갓난아기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의 수치를 가리시려 전신의 고통으로 선혈을 쏟으신 주님(p86)" 그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유독 형장에 끌려가기 전 그토록이나 혹심한 신체적 모욕을 감수하신 게 그런 동기가 또한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긴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어찌 속속들이 짐작하겠습니까.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수천년 동안 전해져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자성의 계기로 삼아집니다만, 간혹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 참람되게도 자신의 죄악을 합리화할 때 그 더러운 입에 올리기도 하죠.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흘린 피를 보혈(寶血)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제목이 굳이 "우정"인 이유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사지를 찔러드는 그 모진 고통(p120)이야말로 구원에의 언약, 표상이었습니다. 

"한 분의 육체 안에서 신과 사람은 하나가 되옵니다(p140)." 그래서 고대 이래 교부(敎父)들이 그토록 치열한 논쟁과 숙고, 나아가 신성한 가르침을 통해 양성론(dyophisitism)을 칼케돈 공의회 이래 확립하였으며, 이 신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거쳐 인간은 믿음을 바른 방향으로 잡고 마침내 구원에 이릅니다.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듯, 최후의 만찬에서 스승과 제자의 구분도 사라지고 세족(洗足)을 통해 화합합니다. 떠난 사람도 물론 있지만, 남은 사람들끼리는 먼저 마음을 열고 스스로 낮아져(p150) 그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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