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네 집
장은아 지음 / 문이당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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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무역 대국이며 동남아 등 외국에서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주해 올 만큼 풍요롭게 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도 1945년 식민지에서 갓 해방되고 불과 5년 만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후에는 세계 최빈국 레벨에서 가혹한 빈곤으로 고생한 적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시절 모두가 힘들어하면서도 서로를 아끼가며 한 줄기 희망을 갖고 살던 모습을 다뤘습니다. 

...라고 제가 요약은 했으나, 사실은 이 장편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주요 인물 준 하나인 옥화를 보면,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나쁜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물론 옥화도 포주라든가 깡패 같은 주변 인물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상처를 간직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혹 자신이 피해를 본 게 있더라도, 그 가해자를 찾아가 원한을 풀든지 해야지, "나는 더한 일도 남들한테 당했다"며 합리화한 후, 자신에게 아무 해를 끼친 적 없는 다른 이들에게 해코지를 한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더러운 창녀 근성, 첩의 본능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oo도 다른 남자의 자식임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작품 대표 빌런이라 할 옥화가 이렇게 생생하고 실감나게 그려진 점이 이 소설 최고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p116에서 옥화는, 앵두에게 강아지를 사 주려는 새달(아직도 얘가 자기 딸인 줄 아는)에게 핀잔을 줍니다. 웬일로 아이 인성 교육까지 신경을 쓰나 싶어 대견했는데, 개가 새로 살림에 들어오면 그만큼 자기 할 일이 늘어나 귀찮아서라고 합니다. 그럼그렇지 싶었습니다. 예전에도 아이들에게 병아리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는데, 부모님들은 그 병아리들이 어딘가 성치 못한 애들이라며 사지 말라고들 했는데 p117에서 새달은 1인칭 주인공 연지(장은아 작가님의 페르소나)에게 비슷한 말을 합니다. 마을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새달이지만 이런 걸 보면 은근 속이 깊은 사람입니다. 의도도 연지가 나중에 상처를 덜 입게 하려는 쪽인 듯하니 말입니다. 

p47을 보면 새달은 은근히 처음부터 옥화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이 이름이 앵두라는데 앵두를 닮은 데가 하나도 없고, 이 말 속에 어쩌면 (아빠라는) 자신을 한 군데도 안 닮았다는 미심쩍음이 벌써 들었는지도 모릅니다(아, 물론 과일 앵두를 애가 안 닮았다는 건 새달이 아닌 연지의 느낌입니다). p57을 보면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연지가 형석(월부 책장수)의 등에 업히다 대변을 지리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연지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몸이 말을 안 들어서인데, 예전에는 불량식품이 많어서인지 장 기능에 문제가 있는 애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요즘은 완전히 사라진 업종이 저 월부장수인데, 특히 책 전집을 팔고 할부로 대금을 받아내는 직종도 그 못살던 시절에 참 많았다 싶었네요. 애가 대변을 지려 화가 날 만도 한데, 이 애가 내 애려니 하는 정감과 인간애 때문에 끝까지 연지를 챙기는 마음씀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무전기 같은 미끼가 있어야 아이들을 끌어다닌다는 형석의 말은 그럴싸한데(물론 본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본사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겠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 군사 정권 때라서 저런 물건 함부로 들고 다니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으면 어쩌나 싶기도 했습니다(북파 공작원 이야기는 p222 이하에 나옵니다) . 역시 형석은 배운 사람이라서 연지에게 쉽게 인생에 대해 풀어 주는 품이 그럴싸합니다. 이런 좋은 영향을 어려서 받았기에 나중에 연지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나 제 멋대로 짐작합니다. 은혜를 좋게 간직하는 사람도 있고, 악으로 패륜으로 돌려 주는 저주받은 인생도 있는데 그 아들놈이 어딘가 모자라든가 해서 다 당대에 벌을 받기 마련입니다. 

여자애들도 은근히 별나고 개구지며 대담하다는 건 p162에서 몰래 술지게미를 퍼먹는 연지와 앵두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앵두 같은 애를 이렇게 휘어잡고(?)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연지도 보통 아닙니다. 두부 할머니(형석의 모친)이 왜 맨날 테레비(이것도 일본말이지만)을 데레비라고 하냐 하면, 일본어의 た행 음소들이 어두에 올 때 우리말 ㅌ보다는 ㄷ에 가깝게 발음되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예: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문제의 접대부 도경이 드디어 나타나서 형석을 홀립니다. 원래, 작부의 짝은 깡패보다는 룸펜 지식인 아니겠습니까. 연지 엄마(소설 맨처음에 치매로 고생하시는)가 사려 깊으신 게, 연지한테 형석과 작부 도경 사이에 정분이 났다는 말을 듣고 가십거리를 퍼뜨랄 생각부터 하는 게 아니라, 두부 할머니 상심할 일을 먼저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말입니다. 

우리말로 오쟁이를 졌다는 표현이 있는데 p252에서 새달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중국어로는 이런 꼴을 "자라대가리"라고 부른다는 말도 합니다. 영어로는 cuckhold라고 하죠. 아무튼 온갖 우여곡절 끝에 연지는 잘 자라 기반을 잡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앵두도 다시 만나 감격스러운 해후를 합니다. "엄마, 이젠 여기가 우리 집이야." 모두가 행복하게 만나, 비록 핏줄이 안 섞여도 가족처럼 다시 추억을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인 옥화도 편지에 쓰인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독자로서 바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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