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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코로나19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다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고 현 상황과 유사한 콘텐츠를 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읽기로 한 소설이다. 실은 코로나로 감금(?)당하면서 현재와 유산한 상황을 다룬 콘텐츠를 많이 보았다. 한국영화 <감기>와 <괴물>를 다시 보고, 외화 <컨테이젼>과 <눈 먼자들의 도시>도 시청하였다. 이제는 소설로 눈을 돌렸는데 그것이 <페스트>이다.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소재와 줄거리는 분명 <페스트>라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질병 너머 다른 것도 보인다. 위의 영화들에서처럼 단순히 질병과 바이러스, 그로 인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페스트>의 주요 등장인물은 의사 리유, 기자 랑베르, 말단 공무원 그랑, 천주교 신부 파늘루, 자살을 시도하던 코타루 그리고 사람 타루이다. 어느 4월 갑자기 알제리 오랑이라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도시에 페스트가 유행한다. 지금 코로나가 우리를 갑자기 찾아온 것 처럼. 오랑시 당국은 도시 폐쇄를 놓고 책임소재와 대처방안에 대해 답없는 회의만을 하고 아무튼 퍼져가는 사망자에 오랑시는 폐쇄를 당하고 폐쇄된 오랑 시민들이 만연한 페스트를 대처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의사 리유는 직업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환자를 치료하고, 오랑 사람이 아니었던 랑베르는 탈출을 시도하고 그랑은 자기가 할 수있는 자질구레한 일을 자처하고 파늘루는 열심히 신이 우리에게 반성의 형벌을 내리니 견뎌내자는 설교를 하고 페스트 직전 삶이 피폐로 자살하려던 코타루는 페스트 상황에서 오히려 활력을 찾고 있고, 타루는 당국은 그들의 할일을 하고 우리는 우리의 할일 - 민간 보건대를 청설한다. 소설은 보건대에서 각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오랑시민들은 감금된 도시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감염된 환자들이 어떻게 죽고 처리되는지를 심하게 무미건조한 문체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소설은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감기>나 <컨테이전>만큼 긴장되지도 않고 초조하지도 않다. 오히려 건조한 서술로인해 조금은 지루하다고나 할까? 왜냐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페스트에 찾아온 후 사람들의 삶은 지금 2020년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겪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며 고통받고 있는 나의 모습과 이웃의 모습을 다양해진 매체로 인해 우리는 생생하게 보고 듣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대로이다.
많은 고전들이 그러하겠지만 <페스트> 역시 줄거리를 따라가기 보다 등장인물의 생각에 집중해야 제대로 이 작품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 리유는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이동하는 동안 회의하는 동안 대화하는 동안 페스트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타루는 리유와 대화를 자청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피력하고 그랑과 랑베르도 보건대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발언한다.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발언과 생각은 그대로 카뮈의 생각과 사고의 결과물일 것이다.
리유는 머리를 흠칫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무의미한 실오라기와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멎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일이었다. (60쪽)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만큼,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172쪽)
˝제일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입니다. 아! 만사가 이렇게 단순하면 좋으련만!˝(184쪽)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272쪽)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자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332쪽)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잇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서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제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402쪽)
알베르 카뮈는 1913년 프랑스 본토가 아닌 프랑스가 통지하고 있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와 외할머니 집에서 기거했던 그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유햑을 갔다. 문학적 자질을 알게된 카뮈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당시 프랑스 문학은 최고 문학 학교인 그랑제꼴의 에꼴로망 출신이 다수였는데 알제리 출신이면서 에꼴로망 출신도 아니었던 카뮈는 많은 이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독일의 히틀러가 전쟁에 한창일 때 카뮈는 <이방인>을 발표했고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프랑스의 유명 작가 사르트르와 친하게 지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단체에서 아주 열렬히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레지스탕스 단체 '에서 꽁바'라는 기관지를 펴내며 직접 투쟁의 글을 써서 많은 프랑스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활동 당시에 사람들은 그 기고문들이 카뮈의 것인지 몰랐다가 전쟁이 끝난 후 알려졌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카뮈는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또다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속칭 왕따를 당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프랑스 내 변절자 처단 문제였는데, 레지스탕스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사르트르 및 다수 지식인들은 프랑스 혁명 후 과격파 쟈코뱅당과 로베스 피에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부 다 처단"을 주장한 반면 카뮈는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고 포용을 하자"는 입장이어서 당시 다수를 지배했던 프랑스 여론에 반하였기 때문에 카뮈는 프랑스 사회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배제되었다.
부조리를 주장했던 카뮈는 사실, 동양적인 중용을 좋아했던 투사이자 소설가로서 좌와 우 모두에게서 변절자, 회색 분자 취급을 받았는데 카뮈는 극단을 싫어하고 영웅주의를 혐오했으며 주어진 운명에 끊임없이 반항하며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을 좋아한 아나키스트 기질이 있던 사람이었다.
<페스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바이러스에 대항하던 타루,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 있던 타루의 결말을 그렇게 된 것도 카뮈의 깊은 계산이 있었던 것 같고, 열심히 자질구레한 자기 할일을 하는 그랑을 영웅의 반열에 올리고 싶어햇던 것도 카뮈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
전후 그가 목격했던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 일부 영웅주의에 쩔은 사람들의 행보, 신념을 위해 가졌던 권력이 나중에는 권력을 쥐기 위해 신념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그의 생생한 감정과 생각이 <페스트>라는 질병으로 은유하여 등장인물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실제로 <페스트>에 대하여 절친 사르트르는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고 평을 할 수준에는 택도 없지만 나는 카뮈가 느꼈을 당시의 외로움과 일종의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때문에 <페스트>를 읽었다가 <카뮈>에 매료되어 이번 독후감은 중언부언해버렸다. <이방인>도 다시 봐야겠고 <시지프의 신화> <티파사의 결혼>등도 찾아보아야 겠다.
아, 할 일은 많고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 여기서 나는 카뮈의 <부조리>를 이해하게 되는구나!
마지막에 사족을 달자면, 민음사판 <페스트>말고 다른 버전으로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자주 느끼는 것인데 민음사 고전 시리즈는 번역과 편집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순전한 개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