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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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아는 모부가 거쳐온 지난한 노동의 역사를 지켜보며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란 노동을 감당하는 이들이었다. 어떤 어른들은 많이 일하는데도 조금 벌었다. - P39

강연은 정보 전달 이상의 기능을 해야 한다. 각자의 일로 분주했을 독자들이 집에서 발 뻗고 쉬는 대신 작가의 이야기를 등겠다고 교통체증도 감내하며 찾아온 자리다. 이 시공간은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경험이어야 할 것이다. 슬아는 강연자로서의 자신을 반쯤은 공연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멋지게 입고 강연장에 간다. - P56

아우라는 강연자의 필수 덕목이다. 지나치게 긴장한 강연자는 아우라를 뿜을 수 없다. - P56

강연자는 주인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떤 청중이 듣고 있느냐에 따라 강연이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슬아는 청중과 함께 흔들리는 강연을 선호한다. 질의응답 시간을 길게 갖는다는 뜻이다. 일방적인 이야기는 한 시간 내로 마치고 질의응답에 삼십 분 이상 할애한다. - P57

웅이 입장에서 슬아는 괜찮은 보스다. 피고용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호하지 않게끔 요청한다. 웅이는 언제나 원하는 것이 분명한 상사를 선호해왔다. 그런 상사만이 정확한 지시를 할 줄 안다. - P277

"가족이라서 아빠랑 일하는 거 아니야. 아빠 같은 일끈이 의귀한 거 알고 있어요."
웅이가 잠자코 들으며 못 박는다. 그는 문득 호시절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딸에겐 젊음과 능력이 따르고 자신에겐 체력과 연륜이 따르는 이 시절. 별다른 슬픔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이 시절이 엉ㄴ제까지 계속될까? - P279

밤이 깊어간다.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임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들은 종교의 근처를 배회한다. - P297

어쨌거나 그 책은 이제 철이의 인생과 조금 유관해졌다. 누구에게나 그런 책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알아보는 자에게는 다음 책과 또 다음 책이 초롱불처럼 나타난다. - P303

"아름다움은 중요한 가치야.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그치만 무엇이 아름다운 건지는 우리가 직접 정할 수 있어.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명하게 될 거야."
슬아와 아이는 글을 마저 읽는다. 가족의 유산 중 좋은 것만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멀리 갈 수 있을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멀리 갈 수 있을까. 혹은 가까이 머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인 채로 말이다. 슬아가 아직 탐구중인 그 일을 미래의 아이는 좀더 수월히 해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 P307

글을 쓰고 싶게 만든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좋은 너, 미운 너, 웃긴 너, 우는 너, 아픈 너, 질투 나는 너, 미안한 너, 축하받아 마땅한 너, 대단한 너, 이상한 너, 아름다운 너, 다만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인 너, 동물인 너, 죽은 너, 잊을 수 없는 너, 그런 너를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먹고 기억하는 나. 문학의 이유는 그 모든 타자들의 총합이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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