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에 관한 여러 이야기 가운데 특히 잊기 어려운 것은 그가. 관가에 붙들려 가 모진 고생을 겪은 끝에 불쌍한 죽음을 당한 아비의 관짝을 옆구리에 끼고 산으로 묻으러 가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임꺽정을 다룬 이야기 가운데서 아직까지는 가장 훌륭한 것으로 알려진 벽초의 소설 속에 나오는 대목이지만 그(임꺽정)의 힘, 그의 사람됨을 헤아리는 데는 더없이 적절한 대목이다. 그의 힘(아비의 송장이 든 관짝을 책보라도 끼듯 가볍게 옆구리에 끼었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천성 가운데 하나인생명 가진 것에 대한 거의 우악스럽다 할 사랑이 그 대목에서처럼 감동적으로 묘사된 곳은 벽초의 소설 안에서도 다른 대목에서는 결코 쉽사리 다시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죽음은 생명 가진 것에 가해지는 최악의 폭력이며 그것에 대한슬픔과 분노는 사람 목숨의 존귀함과 그것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최대의 표현인 것이다.

임꺽정 내가 빼앗은 재물은 모두 백성의 피땀을 짜내어 만들어 가진 재물이며 나는 그것을 빼앗아 본디 임자에게 돌려주었다. 내가 살상한 인명은 그러한 바르지 못한 재물을 가진 자거나그것을 지키려던 자들이다.

남치근 만일 사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어찌해서 네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느냐? 너는 나라의 행정을 믿지 않느냐?

임꺽정 믿지 않는다. 나라의 행정이 바로 그 모든 그릇됨의 근원이 아니냐. 그리고 나 혼자서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한 일은 없다. 나와 뜻을 같이한 사람이 많다. 저기 죽어 넘어진 내 형제들이 모두 나와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임금이 만일 하늘이라면 어째서 눈 앞의 간신배도 가려볼 줄 모르며 백성 굶주리고 구박받는 사정도 모른단 말이냐. 그리고 하늘이 어디 소 잡는 놈 천대하고 갓 쓴 놈 우대하는 법 있더냐. 비 오면 소 잡는 놈도 비 맞고, 갓 쓴 놈도 비 맞지 않더냐.
또 어두우면 갓 쓴 놈도 더듬고 소 잡는 놈도 더듬지 않느냐.

 둘의 기운은 어느 쪽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으나 격국 일신을 버리고 싸우는 자에게 일신을 위해서싸우는 자가 마지막에는 견디지 못하였다. 꺽정이 피가의 두 무릎을 망가뜨려 놓았던 것이다.
꺽정은 도둑이 된 뒤로 이때처럼 슬퍼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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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까지 쫓아와 문을 두드리며 "레즈비언은 꺼져라!" 욕을 하며 위협하기도 했다.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야. I am not a…… 너는 왜 그렇게 생각했니? What made you………(사역 동사가 들어간 4형식 문장으로) 심각한위협 속에서도 성실하기만 했던 내가, 화장실에 앉아서 대답할 영어 문장을연습하는 동안 성질 급한 미군은 가 버리고 없었지만, 당시 내가 레즈비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우리가 레즈비언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한 논점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이름은 남성 중심적인 공간에서 지켜야 할 금기를 깬 여성들을 추방 시킬근거였을 뿐이다. 야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것, 여성이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그리고 말을 거는 것, 그것이 위배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실제로 외국의 현장 활동가 중에는 여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남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남장을 하고 다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생각하면 당시 나는 그들의 방식대로 친해지기‘ 라는 그들의 방식‘
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나치게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게다가서기, 그들이 내게서 다름 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기대가 나의 신분을 의심하게 했던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그들은 나보다 삶에 대해 더욱진지한 사람들이고, 더 건강하고 더 수줍은 사람들이었다. 이미 그들의방식대로 행동하려는 나의 태도에는 편견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내가 왜 그때 히스테리컬하게 결혼‘ 에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경찰에게서 조여 오는 신분 없음‘ 에 대한 추궁과 그에 대한 반향이었으리라. 우리에게 쏟아진 경찰들의 질책은 폭력 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적령기가 지난 여자가 남편 없음 으로 하여 보호자 없는 거리의여자‘로 취급되었고, 그들은 노골적으로 우리를 함부로 대했다. 수년간을학생 신분으로만 살아온 내게 그러한 대우는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일종의쇼크를 유발시키는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취조가 끝난 뒤로는 인터뷰를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풀려나면서 뒤늦게 와락 겁을먹은 것이었다.
우리의 당당함은 무력했고 초라하게 일그러졌다. 

없음과 있음. 그리고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겪고 맞부딪쳐야 하는 신분 없음‘ 에 대한 확인, 거리의여자로 취급된다는 것은 그런 것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위법한 존재인그 여성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 경험으로 하여 나는 성 판매 여성들이 왜 그토록 남자에게 목숨을 거는지, 왜 착취적인 관계를 인식하지못하는지, 포주나 기둥서방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지에 대한 구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오버 차지는 금기를 묵인한 대가 같은 것이다. 내가 경험한 부당한 택시 요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우리‘ (나를 포함한 그런 여자)를 쓰레기같이 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성에게 부과된 금기, 밤길을 다니고 야한 옷차림을 한 ‘공공의 성적 대상‘ 에게 승차 서비스를 제공한 자신의 ‘선의‘ 와 자존심‘ 에 대한 대가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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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적 용어에 따르자면, 나의친구를 윤락녀‘ 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역사에서 어느한 부분을 함께했던 나로서는 "스스로 타락해서 몸을 망친 여자,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 라 부를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런 도덕적 관점만으로는 읽을 수 없는 내 친구의 삶이 있었다. 그런 이름 붙이기는 내 친구의 현재에또는 총체적인 삶에 다가서는 데 어떤 도구도 제공하지 못했다. 한편 나는괴로웠다. 내 안에 어떤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예진이와의 만남이 여러 가지 빛깔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면으로마주해야 했던 것은 무력감‘ 이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통제할 수도 없는 알 수도 없는, 심지어는 질감할 수조차 없는, 무언가 있는데 보이지는않는 느낌들로 만들어진 벽. 소통되지 않는 공간, 예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수록 더욱 강한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내안에 무엇과 무엇이 충돌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내면의 공간은 더 확대되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패턴을 바꾸기 어렵듯이 말이다. 예진이가 자신의 삶을바꾸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대학원생으로 있는 나의 위치가 매우 불편했다. 예진이의 삶이 바뀌어지길 기대하면서 정작 내 자신은 내가 살아왔던방식, 내가 가진 것들을 토대로 살면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 삶의 어떤부분이 잘못되었다든가 어떤 형태의 삶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나는 내가가진 경제적인 부분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예진이에게 있어 다른방식의 삶을 시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인 수익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왜?‘ 라는 질문을 난사하고 있는 나를 향해 왜그런 질문을 하는가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왜 그것을 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는지를 묻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혐의를 두기보다는내가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그들을 의심했다. 그것은 내 이해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난 ‘이상한 일‘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빈 그물을 걷어올리는 듯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다. 답답함이 먼 바다의 수평선까지 차올랐다. 왜 라는 경험의 장벽을 넘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야하게 치장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그것이 왜 우습게 느껴졌을까? 우리의 웃음 속에는 분명 비하적인 코드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비하나 낙인은 심각하고 저주스러운 취급을 당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준어‘ 라는 서울 중심적인 기준이 지역 사투리, 북한 말이나 연변 총각 말투를 비하적이고 우스꽝스러운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 여성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입는 옷과 치장이 우스꽝스러울 까닭은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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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우는 꿈에서 깨달았다. 미시아가 죽음의 일부를 건드렸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비록 완전한 죽음은 아니지만, 진짜 죽음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을 마비시킨다는 걸. 

"뇌수종(水腫)인 것 같아요.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거 같습니다. 방법이 없네요."
 의사의 말은 지금껏 의심으로 인해 얼어붙었던 게노베파의 사랑을 일깨우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게노베파는 이지도르를 사랑했다. 마치 오갈데 없는 강아지나 불구가 된 동물을 사랑하듯이.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순수한 연민의 감정이었다.

 지하실이 만들어지자 다들 이곳을 가리켜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완전한 집이 탄생한 건, 지붕을 얹고 그 위를 화관으로 장식하고 난 뒤였다. 벽이 사방을 틀어막아 공간이 생겨야 비로소 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에 갇힌 공간이야말로 집의 영혼이다.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 특히 빈번하게, 집중적으로 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경우, 상상은 물질의 파편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삶의 기류에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뒤틀리면서 변화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그것이 충분히 강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물론 기대했던 바가 전부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초월한 신이 시간과 시간의 변형된 형태 속에 현존한다는건이상한 일이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땐(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변화하고 움직이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고 흔들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주시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넘실대는 수평선이나 태양의 광환(光環)*, 지진, 대륙의 융기, 해빙, 빙산의 이동, 바다로 흐르는 강물, 움트는 새싹, 산을 조각하는 바람, 엄마의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생장, 눈가의 주름, 무덤 속 시신의 부패, 포도주의 숙성, 비가 온 뒤에돋아나는 버섯과 같은 것들 말이다.
신은 모든 과정 안에 있다. 신은 모든 변형 속에서 박동한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조금만 있고, 때로는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신은 그가 거기에 없는 순간에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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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아는 여느 다른 인간들처럼 불완전한 상태로 조각조각 나뉘어 태어났다. 보는 것, 듣는 것, 이해하는 것, 느끼는 것, 감지하는 것, 경험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녀 안에서 제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앞으로 미시아의 전 생애는 이것들을 온전하게 하나로 결합했다가 다시 부서뜨리는 데 할애될 것이다.

창조란 단지 시간을 뛰어넘어 영구히 존재하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무(無)로부터 무엇인가를 창조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사물에서 풍겨 나오는 그럴듯한 외형에 속지 않기 위해 두 눈을 감은채로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리고 계속해서 호기심을 거두지 않는다면, 비록 잠시지만 사물의 진정한 실체를 볼 수 있다.
사물은 시간도 움직임도 없는 다른 현실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단지그 표면만 드러나 있고,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나머지 속에 물질적 대상의 의미와 본질이 숨겨져 있다. 커피 그라인더가 바로 그러한 예다.
그라인더는 갈아낸다‘라는 관념으로부터 도려낸 형상의 조각이다.

여자는 인류가 은밀히 고여 있는 그릇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아이들은 여자들에게서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 다음 깨진 알은 스스로 붙어 다시 고유의 형태를 회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바란 건 보다 고차원적이고 지속적이며 고귀한 것, 인간보다는 시간에게 더욱 익숙한 그런 것이었다. 시간 속에서 그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시간속에서 미시아를 영영 멈추게 만드는 것. 덕분에 그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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