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법적 용어에 따르자면, 나의친구를 윤락녀‘ 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역사에서 어느한 부분을 함께했던 나로서는 "스스로 타락해서 몸을 망친 여자,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 라 부를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런 도덕적 관점만으로는 읽을 수 없는 내 친구의 삶이 있었다. 그런 이름 붙이기는 내 친구의 현재에또는 총체적인 삶에 다가서는 데 어떤 도구도 제공하지 못했다. 한편 나는괴로웠다. 내 안에 어떤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예진이와의 만남이 여러 가지 빛깔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면으로마주해야 했던 것은 무력감‘ 이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통제할 수도 없는 알 수도 없는, 심지어는 질감할 수조차 없는, 무언가 있는데 보이지는않는 느낌들로 만들어진 벽. 소통되지 않는 공간, 예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수록 더욱 강한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내안에 무엇과 무엇이 충돌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내면의 공간은 더 확대되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패턴을 바꾸기 어렵듯이 말이다. 예진이가 자신의 삶을바꾸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대학원생으로 있는 나의 위치가 매우 불편했다. 예진이의 삶이 바뀌어지길 기대하면서 정작 내 자신은 내가 살아왔던방식, 내가 가진 것들을 토대로 살면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 삶의 어떤부분이 잘못되었다든가 어떤 형태의 삶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나는 내가가진 경제적인 부분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예진이에게 있어 다른방식의 삶을 시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인 수익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왜?‘ 라는 질문을 난사하고 있는 나를 향해 왜그런 질문을 하는가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왜 그것을 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는지를 묻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혐의를 두기보다는내가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그들을 의심했다. 그것은 내 이해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난 ‘이상한 일‘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빈 그물을 걷어올리는 듯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다. 답답함이 먼 바다의 수평선까지 차올랐다. 왜 라는 경험의 장벽을 넘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야하게 치장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그것이 왜 우습게 느껴졌을까? 우리의 웃음 속에는 분명 비하적인 코드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비하나 낙인은 심각하고 저주스러운 취급을 당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준어‘ 라는 서울 중심적인 기준이 지역 사투리, 북한 말이나 연변 총각 말투를 비하적이고 우스꽝스러운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 여성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입는 옷과 치장이 우스꽝스러울 까닭은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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