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우는 꿈에서 깨달았다. 미시아가 죽음의 일부를 건드렸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비록 완전한 죽음은 아니지만, 진짜 죽음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을 마비시킨다는 걸. 

"뇌수종(水腫)인 것 같아요.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거 같습니다. 방법이 없네요."
 의사의 말은 지금껏 의심으로 인해 얼어붙었던 게노베파의 사랑을 일깨우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게노베파는 이지도르를 사랑했다. 마치 오갈데 없는 강아지나 불구가 된 동물을 사랑하듯이.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순수한 연민의 감정이었다.

 지하실이 만들어지자 다들 이곳을 가리켜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완전한 집이 탄생한 건, 지붕을 얹고 그 위를 화관으로 장식하고 난 뒤였다. 벽이 사방을 틀어막아 공간이 생겨야 비로소 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에 갇힌 공간이야말로 집의 영혼이다.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 특히 빈번하게, 집중적으로 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경우, 상상은 물질의 파편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삶의 기류에 융합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뭔가가 뒤틀리면서 변화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그것이 충분히 강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물론 기대했던 바가 전부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초월한 신이 시간과 시간의 변형된 형태 속에 현존한다는건이상한 일이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땐(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변화하고 움직이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고 흔들리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주시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넘실대는 수평선이나 태양의 광환(光環)*, 지진, 대륙의 융기, 해빙, 빙산의 이동, 바다로 흐르는 강물, 움트는 새싹, 산을 조각하는 바람, 엄마의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생장, 눈가의 주름, 무덤 속 시신의 부패, 포도주의 숙성, 비가 온 뒤에돋아나는 버섯과 같은 것들 말이다.
신은 모든 과정 안에 있다. 신은 모든 변형 속에서 박동한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조금만 있고, 때로는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신은 그가 거기에 없는 순간에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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