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문관의 비망록 -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소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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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에 대한 신뢰와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읽게 되는 책. 어쩐지 포르투갈과 결이 잘 맞는 배수아와 섬세하고 단단한 작가의 문장이 잘 맞아 떨어지는..깔끔한 밀전병같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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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닫아도 햇빛이 가득하다

침묵만이 내 몸을 두르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눈꺼풀이 휘황한데


간판과 의자와

거닐고 또 앉은 사람들은 온통 주황빛이다

생경한 말들이 내 몸을 투과한다


긍지와 독설을 내뿜고

두려움으로 사람을 처형하는 동화의 광장


피의 압박 혹은 피의 이끌림

생체 시계는 조율 중인데


교수대에 걸려 부딪히는 시체들의 밤에도

소름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기어가는 새를 경멸할 줄 아는 자들

피를 물감으로 아는 자들, 그들에게 경의를


침묵하는 개를 지나

경계석을 넘는 새의 그림자


통과할 듯이

단번에 날아오다, 멈춘 황금빛

나를 한번 쭉 훑고는 판단을 끝낸다


슬픔이 집시처럼 춤을 추고

음표는 걷고 음표는 가지에서 흔들린다

거위들의 행진 같은 것


변박과 고저를 번갈아 가며

끝나지 않을 내전의 지대를 건넌다


홀로그램처럼 세계가 겹쳐지고

그림자와 사람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광장에는

시간이 길게 꼬리를 내리고

웅크린 채 엎드려 있다


피의 흔적은

어느 순간 떠올라 흘러다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안개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

스웨덴에 있다는 피의 광장을 떠올린다. 스톡홀롬 대학살이 있었다는 그 곳. 영문 모름과 억울함이 4분쉼표처럼 혹은 온쉼표처럼 적혔을 붉은 악보를 떠올린다.

광장..대학마다 있었던, 혹은 아직도 있었을 민주광장. 왕궁이 있던 곳이면 있었던 왕궁광장..아, 지금은 여의도 광장이라 불리는 옛이름이 5.16광장이었던 곳..

광장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 혹은 팔짱을 끼고 지나는 사람들, 또는 그곳에 모여 외쳐야 했을 사람들..광장은 그런 곳이리라. 지나가고 모여들고 환호하거나 비명으로 마감하는 공간. 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들만이 발자욱 소리를 기억하고 내밀한 사연을 담았을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구한 채 광장으로 놓인 골목이라는 것에 자랑스러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할게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들에 둘러싸인 광장..광장의 보도블럭 밑에 켜켜이 쌓여진 피의 화석을 허리 굽혀 찾는 사람이 있을까.

그랬었구나..라는 밑도 끝도 없는 정보 수집으로 끝날지도 모를일이다.


교수대에 걸려 부딪히는 시체들의 밤에도

소름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기어가는 새를 경멸할 줄 아는 자들

피를 물감으로 아는 자들, 그들에게 경의를


최근 우리는 광장을 경험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 광장을..시청앞 광장을, 그리고 광주의 도청 앞 광장을..

모두가 떨쳐 일어서는 광장의 힘과 광장의 생태를 현실 속에서 체득하고 역사로 기록한다.

그런 광장을 겪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가혹하다. 아직도 광장에 수혈이 덜 된 탓일까?

피폐해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독설을 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 행위의 정당성을 폭력적으로 확인한다.

비난은 혐오가 되었다. 혐오는 누군가를 이유없이 죽일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까닭도 모른 채 한 생명이 죽었고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에게 상처를 받아서..여자라서..

어떤 이들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겪고 있어서였다고 한다. 정신질환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생래적인 질환이 아니었다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만들었을까..남성과 여성이라는 것이 전선을 만들고 마주서야 할 존재인것인가.

사람들의 추모가 이어졌고, 피해자를 다시 조롱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를 되묻게 된다. 저들은 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피의 광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교수형을 당해도 '그랬대'라고 이야기할 만큼 건조하게..울며 추모하는 사람들을 조롱할 만큼 참혹하게..이어지고 있다.

강남역 출구 앞에 만들어진 추모의 광장은 드러난 광장이겠지만 수없이 많은 피의 광장들이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다.

쫓겨나는 사람들의 눈물이 고인 광장. 땅 위에 광장을 허락받지 못해 높은 굴뚝으로 올라가 만든 하늘 위의 광장, 깨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어서 일어나라 간절히 부르는 병원 앞 광장, 폭력과 조롱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 밖에 없는 여성의 광장,


결코 안녕인 세계..

많은 공간들이 들어차 있다. 그림처럼 고요하게 그려진 시 속에서 시의 혈관을 찾고 심장이 박동을 느끼는 것이 흥미롭다.

맥을 잘 짚는 용한 한의사에게 진맥을 받는다. 그는 심장이 안좋군요. 이렇게 치료를 해야겠어요. 조심하셔야 할것들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신장은 건강하군요. 이 아이를 살려봅시다. 이 놈이 힘차게 움직이면 다른 것들도 좋아지겠어요. 노력하셔야 할것들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암담함에서 해볼만 한으로 바뀌는 상황. 의사의 마지막 인사 '안녕히 가세요'를 기껍게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안녕하다고, 안녕해야한다고..결코 안녕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득..

광장 모퉁이에 서서 인사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안녕할겁니다. 광장을 벗어나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며 저 붉은 도로가 물감이 아닌 피의 역사인걸 말하겠습니다.

조롱과 혐오가 아닌 분리와 적대가 아닌 '우리'가 될 때까지, '우리'가 아니라고 우기는 저 입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안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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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0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세계에도 피의 광장이 많아요. 같은 의견이 보이면 단합하다가, 의견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고 합니다.
 

창작블로그란게 있다는 걸 알았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꾸역꾸역 읽어대는 습관에 어떤 변화 같은 걸 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하는것이 순전히 개인의 의지여야 하는 까닭에 별것 아닌 변명에도 곧잘 밀리고 밀리다 잊곤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읽었다는 사실조차 불분명해 질 때 블로그를 뒤져보면 리뷰가 있기도 했다. 서툴고 거칠고 투박하고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들로 뒤범벅인 걸 읽는다. 남들은 무슨소린지 모를 글이 신기하게 해독이 된다. 그 리뷰를 썼을 때의 감상같은 것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짧은 메모 그런걸 해 두기도 하지만 수첩을 통째로 버리는 만행을 자주 저지르는지라 별 효과는 없었다.

 

스스로 강제 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다 창작블로그를 생각해내고 설정을 했다.

5월부터 한달간 매일..

제대로 하면 꼭 30개의 글이 만들어지겠지만 처음부터 틀어졌다.

1일과 2일..뭘 써야하지? 고민이 되었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했다.

 

누가 본다고..어차피 혼잣말 아니었어? 라는 생각이 머리를 친건 3일.

3일부터 하나씩 시와 감상이랄것도 없는 생각을 쏟아냈다. 매일 시집 한 권을 독파하는 일은 고달프고 즐겁다.

단지 그걸 써내는 시간과 깜이 안되는 함량이 문제가 될 뿐.

뭐 대단한 거 한다고 가족들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휴일은 나도 쉰다.

14개의 시와 시집을 적어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걸 내가 읽었나?'싶어질 때 증거물처럼 확인할 요량으로..

 

앞으로 5월말까지 성실하게 쓴다면 열개쯤은 더 쓰겠다. 장담할 수는 없다..하지만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은 생긴다.

왜냐하면..매일처럼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떤 격려처럼, 어떤 응원처럼..그렇게 느껴진 시선들에 감사한다.

 

이 연재를 마무리 하고 난 후, 다시 시작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눈길 보태주시는 이웃님들께 감사하고 싶어..중언부언 말을 골라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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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9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천천히조급하지 않게 꾸준히 부탁드립니다..마라톤처럼요..100미터로 오래 못달리거든요^^

나타샤 2016-05-19 23:04   좋아요 0 | URL
좋은 경험이 동력이 되면 좋겠지만..^^
감사해요.

cyrus 2016-05-19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글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사실 서평을 읽고나면서 느낀 생각을 댓글로 쓰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글을 읽었는데 아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어요.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수줍어서 안 쓰는 사람도 있어요. 아무튼 이유는 많아요.

나타샤 2016-05-19 23:03   좋아요 0 | URL
^^ 늘 감사드립니다.
 

너무 심심해서

그리고그러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


싸우기가 귀찮아

말줄임표로 숨은 너, 너희들을 찾아서


오월의 빛과 시월의 바람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같은 언어들...

까르르, 백지에 알을 깐다



------------------------------------------------------

신문기사에서 최영미 시인의 근황을 읽는다. 참담했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2886460)

 

 

이틀전만해도 한국문학의 위대함이 어쩌고, 가능성이 저쩌고 떠들어대며 축제의 잔을 높이 들고 있었으나 잔 아래, 팔 아래, 허리 아래 감추어진 현실은 엄혹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기 힘든 시절, 혹은 나라.

김중혁은 글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메이드인 공장에 써두었었다.

그것을 읽으며 짧게 웃었던 것 같다. 길게 웃을 수 없는 현실이 거기 있었으니까..

첫 시집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시인은 글을 쓸수록 가난해진다고 했다.

어쩌면 시인이란 제 삶을 굴리고 부수고 끓이고 우려서 한 글자, 한 문장을 뽑아내는 아라크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염없이 뽑아내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그러니 이내 피폐하고 곤궁해지는지도 ..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책을 읽는 것이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삶이 지속되기 때문인건 아닌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 이전에 '살고 싶다'는 요구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 '인간답게'를 충족시켜줄 행위는 요원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를 쓸게다.

왜냐하면,그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착찹한 마음에 책더미를 뒤져 최영미의 시집을 꺼냈다. 

후기에 쓴 마지막 문구를 읽었다. 최영미답다.


"시는 내게 밥이며 연애이며 정치이며,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래서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들이여, 세상의 벗들과 적들에게 맛있게 씹히기를...

으자자자작  1998년 4월 최영미"


분명 시는 그녀의 연애이며 정치이며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녀의 운명인 것도 분명하다. 때로 그녀의 시를 왜곡해 씹어대는 얼토당토 않은 이들도 있었다. 신영복 선생과 엮어내려했던 추악한..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한 그녀의 시에 환호했던 이들도 있었다.

다만..시는 그녀의 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와 그러나는 언제나 싸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알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배고플 것이다.

그리고 온 삶을 뽑아내 직조한 글들은 잊혀질 것이다. 텅 빈 비문이 거기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참혹하게 이어지는 '그리고'를 인정치 않고 그녀의 알주머니에 씨가, 시가 그득해지길 반란군처럼 응원할 것이다.


오월의 빛과 시월의 바람 사이를 서성이는 날 선 언어들을 읽는다.


<싸워야지

낡은 수법으로 새롭게 길들이려는 손들에 맞서

싸워야지, 다짐해도

알량한 점심값 걱정을 하며 국수집 우동 앞에서

또 한번 살뜰히 오그라드는

오전과 오후 사이

폭삭,

주저앉는다

-최영미, 어떤 실종 중에서>


어떤 실종을 읽으며 긴 한숨을 뽑는다. 다만 읽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독자' 라는 이름이 자꾸만 '독사'처럼 오독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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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19 09:53   좋아요 0 | URL
그렇죠..속상하고 화나고..한강의 쾌거와 최영미의 현실을 같이 보는게 비극인거죠..

2016-05-19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19 10:21   좋아요 0 | URL
드러나지 않은 생활고가 이뿐일까? 생각하게 되요. 소위 베스트셀러를 찍은 작가도 이럴진대..ㅠ

cyrus 2016-05-1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아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김소월, 고은, 하상욱(?) 등을 많이 거론할 겁니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와 시인이 환영받지 못한 곳입니다.

나타샤 2016-05-19 17:57   좋아요 0 | URL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ㅠ
 

사람이 통째로 칼이 되기도 한다

한이 쌓이면 증오가 엉키면

퍼렇게 날 선 칼이 된다

나중에는 날이다 뭐다 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된다


살은 거멓게 타고 마르고

눈에는 핏발이 오른 뒤

그것도 지나면 차라리 누레지는 것이다

악물고 악물어 어금니가 주저앉고

밥도 잊고 잠도 잊고 나면

칼이 된다

입은 웃는 것처럼 잇바디가 드러나고

한기가 피식피식 웃음처럼 새는 것이다

무딘 듯 누더기인 듯 온몸이 서는 것이다


한두십년에 오지 않는다

진펄에 멍석말이로 뒹굴며

피떡이 되어 이백년 삼백년

비로소 칼이 서는 것이다

꺼먼 칼이 되는 것이다


김남주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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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을 기억해야 하기 전, 가슴 속에 해마다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울리는 통곡소리를 담고 살았다.

그 해 5월을 말이다.

수없이 많은 시인들이 노래했던 통곡의 곡조는 너무나 많아 어디쯤에서 눈물을 닦고 숨을 골라야할지도 알 수 없었다.

5월의 시는 그랬다. 처절했고 결연했고 혁명적이었으며 애통했다. 아무 상관도 없을 시에도 광주는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5.18 이후 모든 것에는 버즘처럼 광주가 피어있었다. 어떻게 읽어도 느껴지는 참담함은 어떤 트라우마 같은건지도 몰랐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때, 65%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노래라고..기사가 쓰이는 때, 독립군가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독립을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행태, 혹은 작태라 불러도 좋을 일들이 자꾸만 벌어진다.

광주민주화투쟁을 진압했던 이는 아직도 살아남았고, 사죄하지 않으며 급기야 발포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망언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칼을 잘 벼리지 못했나보다.

일격에 숨통을 베어낼 칼이 되지 못했나보다. 아직 남아있는 유약함과 비겁함이 어금니를 주저앉히지 못했나보다.

5.18이 일어나기 전에 나온 고은 선생의 시에서는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중략)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번

우리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화살-고은. 중에서)


고 했다.

화살도 되지 못했다. 칼도 덜 벼려졌다. 주저앉을텐가.

기꺼이 날아가 박힌 화살들이 있었다. 금남로에 충장로에 수북히 쌓였던 화살들을 기억해야 한다.

잘 벼리기는 커녕 자꾸만 녹이 스는, 피떡이 되어 뒹구는 것이 아직도 두려운 비겁을 떨쳐내어 꺼먼 칼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에 쓰여진 이름 '김남주'

이름 석자만으로도 서늘해지는 건, 아직 칼이 되지 못한 자책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광주에선 수없이 많은 칼들이 님들 위한 행진곡을 부를게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들은 오랫동안 시퍼런 칼이었다.

칼들의 노래가 들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통째로 칼이 된 사람들의 노래가 들린다.
오늘이 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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