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심심해서

그리고그러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


싸우기가 귀찮아

말줄임표로 숨은 너, 너희들을 찾아서


오월의 빛과 시월의 바람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같은 언어들...

까르르, 백지에 알을 깐다



------------------------------------------------------

신문기사에서 최영미 시인의 근황을 읽는다. 참담했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2886460)

 

 

이틀전만해도 한국문학의 위대함이 어쩌고, 가능성이 저쩌고 떠들어대며 축제의 잔을 높이 들고 있었으나 잔 아래, 팔 아래, 허리 아래 감추어진 현실은 엄혹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기 힘든 시절, 혹은 나라.

김중혁은 글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메이드인 공장에 써두었었다.

그것을 읽으며 짧게 웃었던 것 같다. 길게 웃을 수 없는 현실이 거기 있었으니까..

첫 시집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시인은 글을 쓸수록 가난해진다고 했다.

어쩌면 시인이란 제 삶을 굴리고 부수고 끓이고 우려서 한 글자, 한 문장을 뽑아내는 아라크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염없이 뽑아내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그러니 이내 피폐하고 곤궁해지는지도 ..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책을 읽는 것이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삶이 지속되기 때문인건 아닌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 이전에 '살고 싶다'는 요구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 '인간답게'를 충족시켜줄 행위는 요원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를 쓸게다.

왜냐하면,그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착찹한 마음에 책더미를 뒤져 최영미의 시집을 꺼냈다. 

후기에 쓴 마지막 문구를 읽었다. 최영미답다.


"시는 내게 밥이며 연애이며 정치이며,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래서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들이여, 세상의 벗들과 적들에게 맛있게 씹히기를...

으자자자작  1998년 4월 최영미"


분명 시는 그녀의 연애이며 정치이며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녀의 운명인 것도 분명하다. 때로 그녀의 시를 왜곡해 씹어대는 얼토당토 않은 이들도 있었다. 신영복 선생과 엮어내려했던 추악한..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한 그녀의 시에 환호했던 이들도 있었다.

다만..시는 그녀의 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와 그러나는 언제나 싸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알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배고플 것이다.

그리고 온 삶을 뽑아내 직조한 글들은 잊혀질 것이다. 텅 빈 비문이 거기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참혹하게 이어지는 '그리고'를 인정치 않고 그녀의 알주머니에 씨가, 시가 그득해지길 반란군처럼 응원할 것이다.


오월의 빛과 시월의 바람 사이를 서성이는 날 선 언어들을 읽는다.


<싸워야지

낡은 수법으로 새롭게 길들이려는 손들에 맞서

싸워야지, 다짐해도

알량한 점심값 걱정을 하며 국수집 우동 앞에서

또 한번 살뜰히 오그라드는

오전과 오후 사이

폭삭,

주저앉는다

-최영미, 어떤 실종 중에서>


어떤 실종을 읽으며 긴 한숨을 뽑는다. 다만 읽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독자' 라는 이름이 자꾸만 '독사'처럼 오독되는 날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5-1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19 09:53   좋아요 0 | URL
그렇죠..속상하고 화나고..한강의 쾌거와 최영미의 현실을 같이 보는게 비극인거죠..

2016-05-19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19 10:21   좋아요 0 | URL
드러나지 않은 생활고가 이뿐일까? 생각하게 되요. 소위 베스트셀러를 찍은 작가도 이럴진대..ㅠ

cyrus 2016-05-1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아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김소월, 고은, 하상욱(?) 등을 많이 거론할 겁니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와 시인이 환영받지 못한 곳입니다.

나타샤 2016-05-19 17:57   좋아요 0 | URL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