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다. 개 돼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머릿속에서는 개가 짖고 돼지가 울었다.

어스름 저녁 개인지 늑대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는 걸 이제는 관용구처럼 쓴다. 언제나 코앞에까지 다가서야 구분이 가능한 위기와 안정.

끝나지 않는 노래에 맞춰 고무줄 뛰기를 하는 것 같았다. 고무줄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것은 즐거움에서 고단함으로 바뀐지 오래다. 차라리 저 끝에서부터 정체를 밝히고 와 줘서 고맙다고 할 지경이다. 최소한 모르는 척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펑지차이의 "백사람의 십년"이 드디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표지도 예쁘던데..아직 알라딘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구술문학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후마니타스에서 출간했던데..고맙다.

다시 되짚어 봐야할 이야기들이다.

고마워할 수 있는 곳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다..책 하나를 사는데 출판사까지 따져봐야하는 것이 피곤하지만, 대표적인 출판사만 알고 있는지라 같은 계열사이거나 할 때는 일일이 확인을 못하곤 하지만..여튼.

시인이 시를 앓고 소설가가 소설을 낳듯이 천형처럼 써대듯이 독자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신병을 앓는지도 모른다.

 

책이 검색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알림 신청만 해놓는다. 조만간 올라오겠지.

몇가지 책을 장바구니에서 구해낸다.

 

진정제 삼아서 쓰려는거다. 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방법은 없겠지만 잠시 이 굴욕을 진정시켜야하겠기에 말이다.

마침 디어마이프렌즈 소줏잔도 도착했고..

 

 

 

 

 

 

 

 

 

 

 

 

 

 

 

 

 

 

 

 

 

 

 

 

 

 

 

 

 

  어떤 주제도 의식도 없이 그저 잡히는대로 주문해버린다.

개와 돼지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게다. 이윽한 밤으로 가는 시간이 아닌 햇살이 시작되는 시간으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꽤 오래 견뎌오지 않았는지..따져보면 패배의 기억이 깊어서 그렇지 그렇게 엄청나게 지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승리하는게 감질나서 그랬지 영 지고만 있지도 않았었다.

 

뜨거운 노래를 읽으며 이 시간을 견뎌내야겠다.

늘 하는 말을 되씹어본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덤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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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시대 세트 - 전5권 공부의 시대
강만길 외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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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시대를 사야할까 고심중이었다. 내용을 간략하게라도 훑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요즘 출판사들의 공급률 문제로 시끄러운 와중에 실망스러운 작태를 보이는 몇몇 메이저 출판사들의 모습에 그나마 어찌할 수 없어서 구입하곤 했던 책들조차 이젠 더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 시간 신뢰를 보낸 결과가 이것이라니 어쩐지 공범의식마저 생긴다. 저들이야말로 독자를 개 돼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적당한 말로 구스르면 제편이 되어 이익을 만들어내는데 동조하게 될 집단쯤으로..

또는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책을 내겠어? 하는..비약일까?


여튼 사람이든 개 돼지든 배우고 볼 일이다. 공부의 시대. 그 때가 지금이겠다. 간절히 배우고 싶어진다. 막연한 지식의 흡수가 아닌 사유와 행위를 끌어낼 공부.

맛보기(?)로 받은 소책자에서 가볍지 않은 이름들을 본다. 특히나 정혜신 박사의 꼭지는 어떤 채무감으로 읽었다. 공동의 선을 창출할 수 있기 위한 전제 공동체. 그 속에서 개인의 역할과 권력에 침탈당한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과정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선뜻 내밀지 못하는 손길을 간단없이 내밀고 맞잡는 그녀에게 배운다.

배움이라는 것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이론을 가르쳐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행보를 보이며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 그것에 배움의 첫번째 자세가 있는것이리라.

밑줄을 그으며 읽어낸 소책자.


강만길의 역사공부에서 당연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 당연함이 현실화 되지 못하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한다.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대목..

<한때는 독재권력이 '한국적 민주주의'니 하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적 보편성이 중요하고 국가적, 지역적 특성은 그 보편성 안의 제한된 특수성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번번히 농락당하는 '한국적'의 민낯이다. 특수성을 강조하며 보편성을 무시하는..민주주의를 국가주의와 아무렇게나 섞어 귀속시킨 오류다. 국가의 안보 혹은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고 권력의 이익과 민주주의가 대립할 때 그것을 제압할 명분으로 주어지는 '한국적' 사실 이 '한국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폭력의 미화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좀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영란의 책읽기의 쓸모. 우리에겐 '김영란 법'으로 더 유명한 이의 글. 급하게 후루룩 읽어내는 습관이 부끄러웠다.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읽어제끼기'시작한 것이다. 책 한권을 들고 표지가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놀고 하던 습관이 어느 순간 많이 읽어대는 것으로 변했다. 허영이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어. 이 책 나도 읽었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따위의 달콤한 칭찬에 길들여진건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것. 배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텍스트를 읽어내고 책을 읽었다고 해도 될까? 많은 책을 읽은 것이 과연 내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가져온 걸까?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구구단을 19단까지 틀리지 않다고 외운다한들 그것으로 수학적 소양이 있다고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 만으로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문제일거다.

유시민의 공감필법, 정혜신의 사람공부,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으로 이어지는 간략한 책자를 읽으며 호기심은 어떤 확신이 된다.


읽어야겠구나.

마트 시식코너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것을 발견한 기분.

그래서 구입하고 나면 생각보다 덜한 경우도 종종 있지만 광고만 보고 구입한 것 보다는 시식해보고 구입한 것이 실패율이 더 낮았다. 내 경우엔..

 

정혜신의 글 중 한마디가 자꾸 입 속에 맴돈다

<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생생하고 뜨거운 집중과 주목 없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 말이 주는 울림이 크다.

민중을 개돼지로 보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집중과 주목이 아닌 '자본'에 대한 집중과 주목으로 일관하는 정치세력들. 그들이 국민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하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사람공부가 제일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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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2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식들에게 그렇게 고부하라고 시키고 윽박질러도 부모는 정작 공부 안하는..대부분의 핑게가 먹고 사나이즘 때문이라고 하죠.

나타샤 2016-07-12 10:36   좋아요 1 | URL
부모 역시 공부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일지도요..
 
소년은 침묵하지 않는다 - 히틀러에 맞선 소년 레지스탕스 생각하는 돌 15
필립 후즈 지음, 박여영 옮김, 용혜인 해제 / 돌베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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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웅변은 은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사용되며.. 금인 것은 참 많았다. 시간은 금이었고, 침묵도 금이었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도 배웠다. 이런 이율배반의 금언들을 듣고 자라며 편리한 것들만 선택해 제 주장을 펼 때 인용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했다. 과연 그럴까? 침묵은 금일까?

점잖게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 그건 배부른 사람들의 에티튜드일지도 몰랐다.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는 건 약한 것이라고 배웠고, 식사 중 떠들어선 안된다고 배웠고,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그렇게 맞지 않는 행동양식을 배우고 때로 익히며 나는 혹은 우리는 저항을 두려워하거나 저항에 무뎌지게 된것인지도 몰랐다.

 

책을 읽으며 본능적인 저항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기에, 강요되거나 세뇌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저항. 그것이 있구나. 이 아이들이 그 증거구나. 라고 말이다.

2차대전. 독일의 침공이 극에 달할 때 덴마크의 십대 아이들이 모여 사보타지를 시작했다. 이웃나라 노르웨이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데, 조용히 침공을 수긍하는 자국의 어른들과 정치인들의 침묵에 분노한 십대 아이들이 저항을 시작한다.

 

도로표지판을 돌려두는 것에서 시작해 방화, 무기탈취..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십대의 아이들을,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평범한 아이들의 저항은 조금씩 규모를 갖추고 조직화되어간다. 군사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조직을 만들고 운영해본 적도 없고, 대장도 없고,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더더욱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 때론 의견이 충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아이들어서, 이내 언제 그랬냐는듯 일을 착수한다.

행동이 커질수록 위험도 커지고, 침묵하던 어른들은 독일경찰을 도와 총을 훔친 아이를 지목해주기도 한다.

 

저항과 함께 단련되며 자라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실화다.

일명 '처칠 클럽'이라 불리운 아이들. "모두가 침묵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싸우기로 했다"고 ..

문득 독립군을 하겠노라 여린 몸뚱이 하나로 만주로 하얼빈으로 뛰어갔다는 소년병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도화선이 되겠다고 했던 선배들, 혹은 어른들.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무기력해진걸까.

그렇게 지켜낸, 그렇게 이뤄낸 자유인데 말이다.

 

우스개 소리로 '불의를 보면 참는다'는 말. '요즘 애들 무서워서..'라고 변명하는 말. 그동안 침묵했던 우리들이 만들어낸 아이들의 표정일지도 몰랐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순진하게 듣고 있어야했던 아이들. 더는 침묵이 금도 아니고 뭣도 아닌 것이다.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 더불어 같이 자랄 수 있는 사람. 국가를 위해 가족과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국과 자신과 가족이 모두 소중한 사람. 더는 희생이 강요되서는 안되는 나라. 그런 사람,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 할 책임 같은 것이 명치 끝에서부터 아리게 감각된다.

 

유쾌발랄하게 쓰여진 책.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시작한 사보타지. 기관총과 총알을 훔치면서 탄창을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그 아이들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였을까. 2차대전 속 아이들의 이야기는 안네의 일기로 대표되는 절망과 비탄, 두려움과 공포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 속에서 단단하게 자라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반갑다. 이들이 살아낸 시간이 덴마크를 덴마크답게 만들고 있는 것이리라..

 

북한이 도발은 하지만 전면전을 벌이짐 못하는 이유가 우리에겐 중2가 있기 때문이라고 누가 그랬다.

통제 안되는 아이들.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그렇게 통제에 길들이려고 하는 순간. 아이들은 본래적 저항을 잊는건 아닐까? 내가 그랬던것처럼..

 

저항은..순수하게 일어나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찔끔찔끔 눈물을 찍어내며, 마음을 조리고 응원하며, 귀여운 웃음을 빼물며 읽는다.

회색의 표연이 자욱한 전쟁 속에 빛나는 무지개로 침묵하지 않은 아이들..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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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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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짜증과 분노가 일어날 때, 무의식적으로 뱉어내는 말이 있었다. '아..씨 다 죽여버려.' 사실 이 말은 아무런 힘도 의도도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누군가를 죽일 수도 없으며 죽여도 좋을 명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실제로 내 손에 흉기가 주어지고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다면 가능할까? 그 역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심지어 사형제도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티비 앞에 앉아 뉴스를 보며 이야기 한다. "저런 놈들은 다 죽여야 돼. " 말이 그런거다. 이런 분노를 대신해 암암리에 흉한 놈들을 대신 죽여주는 청소부 같은 이가 있다면 아마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겠지. (민간인이 모르는 특수 임무를 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릴리와 테드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 테드는 어차피 남이니까 부인 미란다의 이야기를 한다. 건축업자 브래드와 눈이 맞아버린 부인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어차피 죽일 수도 없고 릴리는 처음 본 사람이니 이렇게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 된다. 테드가 죽고 미란다가 죽고 브래드가 죽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엔 릴리가 있다. 사춘기무렵 첫 살인을 하게 되는 릴리.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자유분방한 부모님들 덕에 집엔 손님들이 들끓었고 그렇게 릴리의 집에 묵게 된 쳇. 릴리의 첫 대상이 된다.

우물에 그의 시체를 숨기는 릴리. 우물과 시체..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1922편에서 ..아내의 시신을 우물에 숨기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릴리는 그들이 죽어 마땅하고, 자신이 죽여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릴리.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빨간 머리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딘가 닮은 내용들이 여기저기서 떠오르긴 하지만 비슷한 풍경이지만 온도가 다른 느낌이랄까?

릴리의 입장은 '인과응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끼어들었지만, 결국 그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일 뿐이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릴리의 행보에 은근히 응원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섬칫했다. 대리만족이었던걸까. 이런 억지가 어딨어? 라고 단번에 반박하지 못하고, 그럼, 그럴 수 있지. 라고 수긍하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이야기의 내용에 스릴을 느끼는게 아니라, 이야기에 반응하는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작가는 충분히 역할을 해 낸게 분명하다.

 

특별히 피가 튀고 살이 찢기고 부산스럽지 않게 낮은 온도로 차분하게 목숨을 거두는 릴리..그녀를 응원하고 이해하게 되는 독자. 이쯤되면 음..

짜임이 탄탄하고 흥미롭다. 이렇게 올해도 여름맞이 스릴러를 시작하게 되나보다.

 

미출간 도서라 서평쓰기가 좀 그랬지만..곧 나올테니까. 미리 읽는 것은 신나기는 반면 뭔가 작당하는 것 같아서 늘 조심스럽다. 내가 뭐라고..먼저 읽누. 이런 마음? 재미있어도 재미있다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재밌음. 이라는 말 대신 나쁘지 않음. 이라는 말을 선택하게 되는...먼저 읽기의 딜레마..

여튼 고맙고 감사히 읽었다.

 

 

 

 

 

 

사람들은 생명이 존엄하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누군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미란다처럼 자신을 향한 상대의 사랑을 남용하다면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해요. 너무 극단적인 처벌처럼 들리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모든 사람의 삶은 다 충만해요 .설사 짧게 끝날지라도요.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경험이라고요.
(....) 살인을 정당화한 말은 아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래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이용당할 때까지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 중에서..릴리와 테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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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 영화보다 재미있는 세상의 모든 신화
마크 대니얼스 지음, 박일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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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비가 쏟아졌다. 세상을 끝장내려는 것처럼, 혹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어떤 움직임처럼..


마야의 신화 속에 후납 쿠가 세상을 세 번이나 거듭 창조하고 나서 만족했다고 했다. 첫 번째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물 뿜는 뱀을 시켜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켰고, 두 번째 세상에서는 촐로브족이 부정한 짓을 저질러 또 홍수를 일으켰고 마지막 세상에서 마야족을 만들고 만족했다고 했다. (p203 요약)

아즈텍에서도 창조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첫번째 재규어의 모습으로 세상을 멸망시켰고, 두번째 바람으로 땅위의 것을 쓸어버렸는데 그때 소수의 사람들이 원숭이로 변했다고 했다. 세 번째 창조했을 때는 홍수로 모든 걸 파괴했고, 남아있던 사람들 몇명은 새로 변했고, 네 번째 물의 여신의 피눈물로 홍수가 나서 또 한번 멸망했으며 이번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고기가 되었다고 했다.연거푸 세상을 만드는 일에 실패하자 신들은 죽은 사람들의 뼈를 모아 신의 피를 섞어 다시 살려내기로 했다. 이러한 파괴와 재창조의 개념은 여러 신화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북유럽의 라그나뢰크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처럼..(p211-212요약)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다. 잔뜩 부푼 생선의 배를 가른 듯 쏟아져 내렸다. 그런 날씨를 보며, 단지 장마일 뿐인 시기의 날씨를 보며 창조와 파괴를 생각하는 건 지금이 신화가 필요한 때여서는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신의 힘과 신의 권능을 빌어서라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현실. 인간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어릴 때 베개맡에서 할미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잠이 든 날이면 영락없이 꿈을 꾸었다. 뭐든 마음먹은대로 되는 꿈. 그 꿈에서 뭐든 할 수 있었지만 심판관의 입장이 되어 단호하게 악한 것(어린 생각과 판단에)을 벌하고 선한 것을 지켜내려 했었다. 악한 것이래봐야 더 어린 동생의 과자를 빼앗는 오빠들이나 언니들이었지만, 그들의 손을 오징어 다리처럼 변하게 하고 내게 우유를 나눠주던 친구에게 천사 날개를 달아주는게 전부였지만 옛날 이야기를 들은 밤이면 꿈을 꾸곤 했다. 사람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수 없을 때, 하늘을 본다. 어쩐지 그 하늘엔 누군가 내 억울함을 보고 있을 것 같아서, 나 대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의 손,발을 오징어다리로 만들어줄 것 같아서..


신화를 읽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어린 아이들은 다양하게 출간되는 신화를 접하기도 한다. 그림책으로 만화책으로 짧은 동화로.."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자란 아이들은 제우스와 유피테르(쥬피터)를 알고 아프로디테와 베누스(비너스)를 알고 에로스와 큐피드를 이야기하지만 늘 헷갈리기 일쑤다. 너무 닮은 이야기들,.심지어 쥬피터와 헤라를 부부로 엮어버리기도 한다. 많이 읽어 오히려 헷갈리는 이름들, 사실 이름이 무슨 상관이엤는가. 그들의 모험과 사랑과 증오와 화해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더없이 흥미롭고 달콤한데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신화들은? 북유럽의 신화들도 간간히 알려지긴 했다. 보통 판타지 소설이나 RPG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거기에 북유럽의 신들이 있었다.

연초에 우연한 기회에 '라마야나'를 읽고 동아시아 신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읽어봐야지 했다. 중동신화를 읽었고, 아프리카 신화를 읽었다. 어째서 신화인가. 곰곰히 생각했지만 어떤 의지, 희망같은 것이 생기길 바라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그들만의 달콤한 일상에 젖을 것이 아니라 창조해 놓은 세상을 좀 보라고 귀를 기울여보라고 따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신과 다투고 싶다니..여기에서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드러난 셈이나. 이웃집, 혹은 조금 높은 곳에 사는 나보다 조금 더 힘이 있는 거인과 같은 존재.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사람에 의해 창조되어진 신들. 건방지게도 그들이 내린 신탁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틈. 그런 틈을 더 좁히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스, 로마신화, 북유럽신화는 물론이고이집트, 수메르, 중국, 북아메리카 원주민, 중남미,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오리의 신화까지 도표와 그림과 큰 줄기로 써놓은 책은 참으로 유용했다. 호기심이 일었던 에피소드를 길고 깊게 읽고 싶었지만 간략하게 소개된 것이 아쉽긴 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일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신화를 읽는 것도 계획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설계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어떤 계보로 읽어야할지 틀과 길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참고서라고할까?

신화를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해결방법도 뭣도 찾아지진 않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위로', 그리고 '격려'일지도 모르겠다.


힘없는 피조물이 아니야. 몇번이고 재창조하고 파괴하고 만들어 낸 아주 중요한 존재야. 신에게 복종하려고 하지마. 신과 함께 살아. 너는 위대한 '인간'이야. 라고 말해주는 책. 책꽂이 높은 곳에 두었던 '궁극의 리스트' 옆에 꽂아두기로 했다. 이 역시 흥미로운 리스트다. 헤시오도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일리야드 오딧세이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더 재미있었던 기억을 깨우기로 한다. 이렇게 책이 부르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궁극의 리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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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04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살 돈이 많으면 신화 사전 한 권 장만하고 싶습니다. ^^